[김종석의 그라운드] "롤모델을 이기다." 김효주와 황유민, 꿈의 무대에 만날 선후배의 아름다운 교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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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토도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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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경기도 성남시 남서울골프장. 한연희 골프 아카데미의 문을 조심스레 두드린 16세 소녀가 있었습니다. 고교 1학년이던 황유민은 단순한 실력 향상을 넘어 한 사람을 닮고 싶다는 마음에 그곳을 찾았습니다.
그녀가 바랐던 건, 천재 골퍼 김효주처럼 성장하는 것. 김효주가 중학생 시절부터 지도받아 온 한연희 감독에게 직접 배우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그곳으로 이끌었습니다. 황유민에게 김효주는 나침반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날부터 황유민의 골프 인생은 김효주라는 이름을 따라 걷기 시작했고, 6년 뒤 그녀는 마침내 그 선배와 우승 경쟁에서 당당히 맞선 끝에 승리의 감격을 누렸습니다.
황유민은 어릴 적부터 8살 위인 김효주를 롤모델로 삼았습니다. 김효주는 고교 시절 이미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우승할 정도로 골프 신동이었고,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에 초청선수로 출전해 정상에 올라 LPGA 투어에 직행했습니다. 그런 김효주를 본받고 싶었던 겁니다.
김효주는 2012년 국내 최고 권위의 대회인 강민구배 한국여자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오르며 스타 탄생을 알렸습니다. 황유민 역시 2021년 같은 대회에서 우승했는데, 그것도 54홀 최소타(14언더파 202타) 신기록을 세우며 '제2의 김효주'라는 찬사를 들었습니다. 황유민은 김효주와 같은 롯데를 메인 스폰서로 삼았으며, 두 선수는 한동안 관리를 맡은 소속사도 같았습니다.
김효주가 2021년 KLPGA투어 OK저축은행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황유민은 국가대표 신분으로 아마추어 1위를 차지해 트로피를 받았습니다. 김효주는 황유민과 기념사진을 찍으며 축하를 해줬습니다.
올해 KLPGA투어 롯데오픈에서 김효주와 황유민은 같은 조로 플레이했습니다. 김효주는 틈나는 대로 "유민아 얼른 LPGA 투어에 오라"고 말했습니다. 황유민에 대해 김효주는 "잘하고 있는 동생한테 뭐라 할 말은 없다. 영어도 잘 준비하고 있고, 거리도 많이 나가니까 '더 큰 무대에 빨리 와서 실력을 펼치라'라고 얘기했다"라며 칭찬했습니다.
이제 황유민이 김효주와 같은 무대에 오르게 됐습니다. 그것도 김효주와 치열한 우승 경쟁 끝에 승리하면서 값진 직행 티켓을 차지했습니다.
'돌격대장' 황유민은 5일 미국 하와이 주 오아후 섬 에바비치의 호아칼레이CC(파72)에서 끝난 LPGA 투어 롯데챔피언십에서 최종 합계 17언더파를 기록해 하늘 같은 선배 김효주를 1타차로 제치고 우승했습니다. 이번 대회 2라운드에 라이프 베스트인 10언더파 62타를 몰아쳤던 황유민은 3라운드에 75타로 무너져 좌절하는 듯했으나 마지막 날 마지막 4개 홀에서 연속 버디를 낚는 화려한 마무리를 펼쳤습니다.
이로써 황유민은 LPGA 투어 회원 자격을 얻게 돼 올 시즌 남은 LPGA 투어 대회와 2027년까지 2년 출전 자격을 얻었습니다. 우승 상금은 45만 달러(약 6억3000만 원)입니다.
황유민에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게 될 이 대회는 김효주가 2022년 우승했던 대회이기도 합니다. 경기 후 김효주는 우승자 자격으로 생방송 인터뷰를 하던 황유민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려 주며 엄지척을 보냈습니다.
대회 전통에 따라 황유민은 하와이 전통 훌라춤을 췄습니다. 김효주 역시 우승 당시 똑같은 세리머니를 했죠, 황유민은 김효주가 훌라춤 추는 영상을 과거에 봤나 봅니다. 황유민은 "TV로 볼 때는 쉬워 보였는데 막상 내가 하려니 긴장도 되고 참 어려웠다"라며 웃었습니다.
최근 KLPGA투어의 상금 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지면서 한국 선수들의 LPGA 투어 도전도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경비도 많이 들고, 적응에 애를 먹고, 경쟁도 치열한 미국에 굳이 가지 않더라도 국내 투어만으로도 충분히 부와 명예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롯데에서 주최하는 KLPGA투어 대회에서 우승하면 LPGA 투어 롯데 챔피언십 출전 자격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출전권을 포기하는 예도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대회 출전을 위해 오가는 시간 동안 차라리 국내 투어에 집중하는 편의 실익이 더 크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하지만 황유민은 달랐습니다. 줄기차게 LPGA 투어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지난해 LPGA 투어 진출 관문에 해당하는 퀼리파잉 시리즈에 출전하려다 허리 통증으로 포기해 아쉬움을 남긴 뒤 올해에도 틈나는 대로 LPGA 투어 대회에 참가한 끝에 마침내 직행의 꿈을 이뤘습니다.
황유민은 "이번에 우승 못 했어도 올해 LPGA 투어 퀄리파잉스쿨을 통해 도전하려 했다. 스폰서인 롯데의 초청으로 기회를 맞이해 잘 잡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제 꿈이 이제 시작되는 기분이라 설렌다"라고 흥분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11세 때인 2014년 아버지를 따라 간 골프연습장에서 우연히 골프를 시작한 황유민은 근력과 유연성이 뛰어나 163cm의 크지 않은 체구에도 드라이버를 260야드 넘게 날립니다. 한연희 감독 밑에서 김효주와 함께 훈련하며 실력을 키우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2023년 KLPGA투어에 뛰어든 뒤 통산 2승을 올렸습니다.
황유민을 담당하는 와우 매니지먼트 이수정 상무는 "그동안 박인비, 유소연 프로 등을 지원한 것처럼 전폭적으로 지원할 생각이다. 전담매니저, 캐디, 코치. 영어, 피지컬 및 멘탈 코치 등 선수와 상의해 가며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전방위적으로 돕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강형모 대한골프협회 회장은 "황유민 프로는 국가대표 시절부터 꾸준하고 일관된 기량을 펼쳤다. 한국여자오픈을 비롯한 주요 프로 출전 대회에서도 베스트 아마추어상을 놓친 적이 별로 없다. 승부처에서 집중력이 뛰어나 발전 가능성이 커 보인다"라고 평했습니다.
김재열 SBS 해설위원은 "미국은 페어웨이도 한국보다 넓고 OB도 없으므로 티샷의 정확도가 떨어져도 거리로 보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코스 세팅이 한국보다 어려워 코스 매니지먼트가 중요하다. 쉽게 더블보기를 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라며 "그린을 미스했을 때 파를 세이브할수 있는 다양한 쇼트게임 능력이 필요하다"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러면서 김 위원은 "황유민 프로는 워낙 탤런트가 뛰어난 선수여서 성공할 가능성은 충분하다"라고 기대감을 드러냈습니다. 황유민은 우승 소감에서 김효주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았습니다. "한국 선수 우승자 명단에 효주 언니와 함께 내 이름을 올릴 수 있어서 영광스럽다. 효주 언니를 어릴 때부터 무척 좋아해서 언니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같은 우승자가 돼 기분이 더 좋다."
한연희 감독은 "유민이가 하나부터 열까지 효주를 닮고 싶어 했다. 평소 늘 존경심을 드러내며 훈련 루틴, 연습 방법까지 따라 할 정도였다. 근데 이번엔 효주를 이겼다"라며 "미국 진출의 오랜 꿈을 이뤘으니 잘 적응할 것 같다. 쇼트게임과 체력 보강이 과제"라며 흐뭇해했습니다.
황유민과 김효주가 우정 어린 승부를 펼친 하와이는 '레인보우 스테이트'라 불립니다. 김효주와 황유민이 함께 걷는 LPGA의 길이 무지개처럼 찬란하게 빛나길, 골프 팬들은 마음을 모아 응원하고 있습니다.
김종석 채널에이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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