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때는 하루 숙박 100만원…PGA 투어 기자들이 사라진 이유 [골프 메이저리그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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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토도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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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 매킬로이는 지난 3월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을 앞두고 드라이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택시로 대회장에서 약 260km 떨어진 집에서 클럽을 가져왔다. 택시비는 995달러였다. 우버 요금 665달러(약 97만원)에 팁 330달러(약 48만원), 총 145만원이 들었다. 한국에서 비슷한 거리의 서울역에서 김천역까지 택시비가 23만원 안팎인 것과 비교하면 6.3배다. 이 것이 미국의 물가다.
매킬로이는 이 드라이버로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했고, 상금 450만 달러를 받았다. 1000달러를 들여 450만 달러를 벌었다고 단순 계산하면 4500배 장사다.
이것이 PGA 투어의 스케일이다. 상금이 크기에 선수들은 이런 소비가 가능하다. 매킬로이는 우버 기사에게 팁도 넉넉히 줬다. LIV 골프 출범 이후 상금이 올랐고 선수들에게는 스폰서도 있다. 이경훈은 "여행 경비가 엄청나지만 일 년에 몇 주만 잘 치면 만회할 수 있으니 부담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미국 기자들이 사라진 이유
하지만 선수가 아닌 관계자들은 힘들어졌다. PGA투어는 상금을 늘리려 직원들을 대규모 해고했다. 미국 물가는 한국의 4~5배 수준으로, PGA 투어를 따라다니는 것 자체가 도전이다.
PGA 투어 현장에서 가장 놀라운 변화는 미국 기자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와 달리 일반 대회에는 미국 언론이 거의 오지 않는다. 메이저 대회 위주로만 취재한다. 2025년 PGA 투어 대회에 가장 많이 출석한 기자는 미국 기자가 아니라 한국 중앙일보 기자였다. 일본 기자들도 마쓰야마 히데키가 출전하는 대회에는 빠짐없이 온다.
단순히 물가 문제만이 아니다. 미국 지역 언론의 축소, 디지털 전환으로 인한 취재 인력 감축 등 구조적 변화가 반영된 결과다. 세계 최고의 골프 투어가 열리는 현장에 정작 현지 기자는 없고, 한국과 일본 기자들이 더 많이 모여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펼쳐지고 있다.
기자들이 모두 가는 메이저대회는 점점 커지는데, 일반 PGA 투어 대회는 미국 기자들이 많이 가지 못하니 기사 질도 떨어지고 관심도 줄었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가격들
PGA 투어 대회가 열리는 코스는 주로 경치 좋은 고급 관광지 근처에 많다. 이곳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다이나믹하게 변한다. 평소 100~150달러 하던 호텔이 대회 기간에는 300달러로 오르고, 메이저 대회 때는 600달러를 넘는다.
하루 숙박비가 100만원에 육박하는 것이다. 한국이었다면 바가지 논란이 일었겠지만, 미국에서는 당연한 시장 원리로 받아들여진다. 일요일은 의외로 저렴하다. 미국에서는 멀리서 온 관중들이 돌아가는 길도 멀기에 일요일 관객이 적다. 마스터스 같은 메이저 대회도 마찬가지다.
식당 물가도 만만치 않다. 맥도널드 같은 저가 체인을 제외한 레스토랑에서 음료와 팁(20%)을 포함하면 7만원에 육박한다. 임성재의 아버지 임지택씨는 "한국에서 먹던 음식 가격을 생각하면 미국에서 식당을 이용할 수가 없다"고 한 이유다.
댈러스 포트워스 공항에서 러브필드 공항까지 25km를 택시로 이동하니 팁 포함 85달러(12만원)가 나왔다. 30분 거리에 12만원이다. 미국인들은 가까운 거리 우버비 20달러(2만8000원)면 "거의 공짜"라고 생각한다.
썬더스톰, 모든 일정을 흔드는 변수
PGA 투어에서 가장 예측 불가능한 변수는 썬더스톰(雷雨)이다. 미국 중부 평야는 따뜻하고 습한 멕시코만 기단과 북쪽의 차가운 공기가 충돌하며 거대한 뇌우를 만든다. 이 구름이 로키 산맥을 넘어온 서풍에 밀려 동쪽으로 이동하며 비를 뿌린다. 덕분에 미국 중부는 비옥해졌지만, 항공 교통과 골프 경기는 자주 마비된다.
실제로 두 경기 중 한 번은 썬더스톰으로 일정이 틀어졌다. 낙뢰 위험이 크지 않아 보이는 상황에서도 인근에 뇌우가 접근하면 모든 활동이 멈춘다. 위험을 방치했다는 이유로 막대한 손해배상 판결이 나온 사례들이 많아, 과도할 정도의 안전주의가 자리 잡았다.
경기가 중단되면 선수는 물론 모든 관계자가 곤란해진다. 미디어센터는 대부분 텐트 구조물이라 피뢰침이 없으면 반드시 대피해야 한다. 골프장 안에는 제대로 된 대피 공간도 없다. 경기 일정이 꼬이면 숙박과 항공편을 연장해야 하는데, 이런 자연재해로 인한 취소·변경 패널티는 전적으로 소비자 부담이다.
최근 기후 변화로 이런 현상은 더욱 빈번해졌다. 과거 건조했던 텍사스에서 동남아시아 우기처럼 폭우가 쏟아지는 광경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한국 선수들이 미국 투어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예측 불가능한 일정 변동이라고 한다.
PGA 투어 현장 생존 가이드
PGA 투어를 따라다니려면 나름의 전략이 필요하다. 호텔은 너무 비싸기 때문에 대회장에서 멀리(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떨어진 곳에 잡는다. 미국은 기름값이 저렴하고 도로가 좋아 장거리 이동이 수월하다. 금요일까지만 예약하고 컷 이후 상황을 보며 재예약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가격이 반드시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항공은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유용하다. 수하물 2개까지 무료였기에(최근 폐지됨) 다른 항공사보다 10만원가량 저렴했다. 다만 좌석 지정제가 아니라 먼저 탑승하는 순서대로 자리를 선택하는 독특한 시스템이다. 저렴한 티켓을 사면 마지막에 탑승해 덩치 큰 승객들 사이에 끼어 앉을 가능성이 크다.
가능하면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이 낫다. 항공료가 비싼 것도 있지만, 공항에서는 늘 문제가 생긴다. 연착, 결항, 수하물 분실은 기본이고, 트렁크 파손이나 탑승구 변경도 잦다. 렌터카는 예약을 해도 차가 준비되지 않거나, 팁이 없어서인지 직원들이 지나치게 느긋하게 일해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많다.
PGA 투어 선수들이 프라이빗 제트기를 타고 다니는 걸 좋아하는 이유다. 대회 스폰서 측은 선수들에게 무료로 공항에 차를 가져다주고 공항에 반납할 수 있게 배려해 준다.
통신도 복잡하다. IT 최강국이지만 e-SIM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캄캄한 밤 공항에 도착했는데 휴대전화가 먹통인 경험은 당황스럽다. 로밍도 관광지와 대도시에서는 괜찮지만, 골프장이 있는 외진 곳에서는 수시로 신호가 끊긴다. 결국 미국 현지 휴대전화를 별도로 구매하는 것이 확실하다.
세계 최고 투어의 이면
PGA 투어는 세계 최고의 골프 무대다. 상금 규모도 크고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다. 하지만 그 화려함 뒤에는 극단적으로 높은 물가, 예측 불가능한 기후, 복잡한 이동 시스템이라는 현실이 있다. 선수들은 큰 상금으로 이를 감당할 수 있지만,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한국 선수들이 이런 환경에서 매주 경쟁하고 있다는 건 대단하게 느껴진다. 골프 실력뿐 아니라 물류 관리, 일정 조율, 비용 통제까지 해내야 하는 것이 미국 투어의 실제 모습이다. 화면으로 보는 PGA 투어와 현장의 PGA 투어는 완전히 다른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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