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전, 안에서는 비극-밖에서는 희극 [서귀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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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토도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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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멸망전'이라는 명칭 자체가 맞붙는 두팀은 괴롭지만 밖에서 볼 때는 이것만큼 흥미진진한 경기도 없다.
마침 일요일 딱 한경기만 배정된 K리그1의 경기였기에 최종전을 한경기 앞둔 '꼴찌간의 싸움' 제주SK와 대구FC의 경기는 K리그 팬들에게 큰 관심을 받았다.
현장에서 본 이 '멸망전'은 안에서는 비극이지만 밖에서는 이만한 희극도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제주SK와 대구FC는 23일 오후 2시 제주도 서귀포의 제주 월드컵경기장에서 하나은행 K리그1 2025 37라운드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거뒀다.
전반 28분 제주 최다득점자인 유리 조나탄의 득점으로 제주가 앞서갔다. 왼쪽에서 김륜성의 날카로운 왼발 크로스를 문전에서 대기하던 유리 조나탄이 수비 2명의 키를 넘겨 흐른 크로스를 다이빙 헤딩골로 연결한 것. 김륜성의 크로스가 다소 강하고 빨랐음에도 유리 조나탄은 자신에게 온 한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대구는 후반 23분 동점을 만들었다. 박스 밖에서 대구는 중앙으로 로빙패스를 투입했는데 이 공을 막으려 제주 수비 2명이 달려들었다가 서로 겹치며 양보하다 공이 뒤로 빠져버렸고 대구의 미드필더 지오바니가 달려들어가 골키퍼 일대일 기회를 맞았다. 지오바니는 침착하게 가슴으로 잡아놓고 튀어나온 김동준 골키퍼 옆으로 왼발로 차넣어 1-1 동점을 만들었고 이로 인해 1-1 무승부로 종료됐다.
두팀에게는 처절한 경기였다. 대구 입장에서는 이 경기를 진다면 12위 최하위로 잔여 한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강등이 확정될 수 있었다. 제주 입장에서는 이 경기를 진다면 대구와 순위를 맞바꾸는 12위가 된채 최종전을 맞이해야하는 상황. 그 누구도 질 수 없고 지는 순간 클럽의 운명이 바뀔 수 있는 경기였다.
양팀 사무국 직원들은 경기가 열리기 2주전, A매치 휴식기부터 누가 더 착한일로 업보를 쌓지 않았는지를 진지하게 얘기했고, 김병수 대구 감독의 말에 의하면 '러닝도 힘든' 대구 세징야는 원정경기, 그것도 제주에서 열리는 경기임에도 경기 당일 비행기를 타고 와 대구를 응원하는 열정을 보였다.

제주 역시 올시즌 평균관중보다 많은 거의 만명에 가까운 팬들이 모였고 대구 역시 대규모 응원단이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
일요일 경기였기에 다음날이면 회사 출근 혹은 학교에 가야하는 일정들이었겠지만 그것보다 내가 사랑하는 팀이 강등당하지 않게 응원하고자 하는 마음은 제주 팬이나 대구 팬이나 모두 같았다.
선수들 역시 간절함을 내보였다. 제주 김정수 감독대행은 올시즌 4경기밖에 뛰지 않은 김정민을 깜짝 선발 출전 시킨 이유로 "경기에 대한 의지가 남달랐다. 이런 경기는 실력 외적인 부분에서 결정될 수 있다"며 간절하게 뛸 수 있는 의지가 선발 출전 요건이었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처럼 안에서는 단 1승, 1골을 위해 아등바등하는 비극이었지만 사실 밖에서 볼때는 이만한 희극도 없다. '지면 강등'이라는 타이틀 하나로 충분히 자극적이고 서로 한골씩 주고 받으며 후반 추가시간이 무려 12분이나 주어질 정도로 서로 박터지는 경기는 외부에서 보면 이만한 '꿀잼' 경기도 없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하지 않던가. 제주와 대구의 '멸망전' 역시 두팀과 관련된 이들에게는 비극일정도로 처절한 싸움이지만 그 외 나머지 축구팬들 입장에서는 이만큼 재밌는 경기도 없는 희극이었다. 축구의 아이러니다.
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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