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도토리거위벌레와 골프
작성자 정보
- 작성자 토도사뉴스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조회 1,406
본문

[골프한국] 숲을 거닐다 보면 참나무 주변 아래에 도토리가 달린 가지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도토리는 모두 구멍이 뚫려있다. 자세히 보면 나뭇가지는 가위로 자른 듯 단면이 뚜렷하고 구멍도 바늘로 찌른 듯 일정하다.
다람쥐와 청설모가 도토리를 먹기도 하지만 참나무 가지를 절단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범인은 다람쥐도 청설모도 아닌 '숲속의 나무꾼' 도토리거위벌레다. 몸길이는 1cm 정도로 긴 주둥이를 갖고 있다. 톱처럼 생긴 긴 입이 거위 부리를 닮아 도토리거위벌레란 이름이 붙었다.
알을 낳고 가지를 자르는 과정이 흥미롭다. 암컷이 적당히 설익은 도토리에 구멍을 뚫고 있으면 어디선가 암컷의 페로몬 냄새를 맡은 수컷이 찾아와 짝짓기가 이뤄진다. 짝짓기를 마친 암컷은 구멍을 뚫어놓은 도토리 안에 산란관을 넣어 알을 낳는다. 한 마리가 보통 20~30개의 알을 낳는데 한 개의 도토리 구멍에 1~2개의 알을 넣는다.
이때 도토리거위벌레는 덜 여문 도토리를 고른다. 애벌레에겐 덜 익은 과육이 연해서 먹기 좋기 때문이다. 도토리 열매는 익으면 떫은맛을 내는 타닌 성분이 많아지는데 덜 여문 도토리는 타닌 성분이 적어 애벌레가 먹기 좋다. 산란이 끝나면 알이 빠지지 않게 구멍을 막은 뒤 도토리가 달린 가지를 3~4시간에 걸쳐 톱질하듯 반듯하게 잘라 낸다. 암컷이 가지를 자르는 동안 수컷은 주변 경계를 선다.
오랜 작업 끝에 잘린 가지는 바로 땅에 떨어지지 않고 바람을 타고 천천히 떨어진다. 도토리거위벌레가 자른 나뭇가지에 2∼3장의 잎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도토리거위벌레가 알을 낳은 도토리만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몇 장의 잎과 함께 떨어뜨리는 이유는 잎이 공기 저항을 받아 천천히 떨어져 도토리 안에 들어있는 알이 충격을 적게 받고 잎이 시들기 전까지 광합성을 계속해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가 과육을 먹고 성충이 되기까지 신선한 영양분을 계속 섭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니 놀랍다.
도토리 과육을 다 먹고 자란 애벌레는 도토리 껍질을 뚫고 나와 땅속으로 들어가 긴 겨울을 난 후 이듬해 여름 번데기가 되어 우화해 성충이 되고, 본능적으로 참나무에 기어올라 도토리에 알을 낳고 가지를 자르는 행위를 반복한다.
예전에는 도토리거위벌레가 해충으로 인식되어 구멍 뚫린 도토리를 수거하는 노력을 했지만 생물학자들에 의해 공생관계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도토리거위벌레의 산란을 위한 가지치기로 참나무는 지나치게 많은 열매로 부실해지는 위험이 줄어 튼실한 도토리를 맺는 이른바 과실 솎아내기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다.
골프가 항상 즐겁고 신사의 스포츠인 것만은 아니다. 특히 동반자와의 관계로 라운드에서 경험하는 파동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화기애애하기만 라운드는 없다. 어느 순간 경쟁 구도가 만들어지면 미묘한 신경전이 일어난다. 보이지 않는 방해 공작이 나오고 농담을 가장한 노골적인 행동도 없지 않다. 심한 경우 혹시 동반자가 속임수를 쓰지 않나 감시의 눈초리를 번득이기도 한다. 뒤풀이 후에도 뒷맛이 개운치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긴 시각으로 보면 나의 골프는 동반자들의 이런 방해 공작, 감시의 눈, 불편한 반응 등으로 성장했음을 깨닫게 된다. 다양한 동반자들과 라운드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절차탁마가 되어 골프가 업그레이드 되는 효과를 보는 것이다. 어쩌면 나를 괴롭히는 동반자들이 나를 튼실하게 하는 도토리거위벌레일 지도 모른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관련자료
-
링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