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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의 골프세상] 캐디에게 배우는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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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토도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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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가을 아시안 스윙' 두 번째 대회인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한 김세영 프로가 최종라운드에서 캐디 폴 푸스코와 경기하는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골프한국] 골프는 철저하게 자신과 외로운 싸움을 벌여야 하는 운동이라고들 한다. 3~4명이 한 조를 이루지만 동반자로부터는 도움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골프는 결코 혼자서 하는 운동은 아니다. 캐디라는 협조자의 도움을 얻어야 한다. 캐디 없이 라운드할 수 있는 골프장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캐디가 배정되는 국내 골프장에 익숙한 사람들은 캐디 없이 정상적인 플레이를 하기 어렵다.



 



캐디 없이 혼자서 플레이한다고 가정해 보자. 거리나 방향, 그린의 빠르기, 코스 곳곳에 도사린 함정 등을 제대로 알아낼 수 없다. 자신의 핸디캡보다는 최소한 5타 이상, 많게는 10타는 더 치게 된다.



 



캐디(Caddie)는 프랑스어 'cadet'(젊은 하급장교 또는 보조자)에서 유래했다. 16세기 스코틀랜드에 이 용어가 전해지며 귀족의 젊은 자제나 장교를 수행하던 젊은이를 '카데'라고 불렀다. 기록에 나타난 최초의 여성 골퍼인 스코틀랜드의 메어리 여왕이 1562년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코스를 찾아 골프에 열중했는데 이때 프랑스에서 데려온 카데를 대동하면서 경기 보조자로서 캐디가 처음 등장했다.



 



골프가 유행하면서 부유층 골퍼들이 골프 장비를 들어주는 하인을 두는 것이 관습화되면서 역할도 단순히 장비를 나르는 일을 넘어 코스 지형을 알려주고, 전략을 조언하는 등 오늘날의 캐디로 발전했다. 



 



주말골퍼들이 좋은 캐디를 만나는 것은 좋은 스승을 만난 것만큼 행운이다. 코스에서 캐디 말은 항상 옳다. 플레이어는 그 골프장이 처음이거나 라운드 경험이 몇 번밖에 안 되지만 캐디는 연중 거의 매일 라운드한다. 이것만으로도 캐디는 플레이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갖고 있는 셈이다. 많은 라운드를 돌면서 홀마다의 특성과 그린의 흐름, 실수를 범하기 쉬운 코스, 착각하기 쉬운 코스 등을 꿰뚫고 있다. 여기에 플레이어의 특성까지 제대로 읽어낼 줄 아는 캐디라면 금상첨화다.



 



캐디가 아주 신참이 아니라면 골프장에서는 자신의 판단보다는 캐디의 판단을 더 믿고 조언을 고맙게 받아들이는 게 현명하다. 특히 그린에서 캐디의 판단과 조언은 절대적이다. 아무리 그린 읽기를 잘하더라도 낯선 골프장을 찾았을 때 그린을 제대로 읽어내기란 불가능하다. 그린에서 타수를 줄이는 첩경은 캐디의 판단과 조언을 신뢰하고 따르는 길뿐이다. 



 



골프가 생업인 프로선수들에게 캐디는 단순한 보조자나 도우미가 아니다. 선수와 끊임없이 교감하며 선수와 한 몸 한마음이 되어 경기에 집중하는 동반자이자 전략가이다. 



 



프로 골프에서 '보이지 않는 50%'를 캐디가 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수가 스윙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한다면 캐디는 선수의 경기 흐름을 관리한다. 좋은 캐디는 선수가 기술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마음의 여유를 만들어준다. 



 



마스터스를 창시한 바비 존스(Bobby Jones)와 함께 1930년대 미국 골프계를 풍미한 진 사라센(Gene Sarazen)이 US오픈을 휩쓸고 1928년 브리티시 오픈에 참가했다. 미국인으로서 최초의 브리티시 오픈 우승이라는 영광을 안고 싶었으나 험난하기로 유명한 로열 조지스 코스에서 같은 미국의 월터 하겐에게 2타 차로 패배했다.



 



진 사라센은 영국의 명 캐디 스킵 다니엘즈(S. Daniels)의 말을 딱 한 번 안 들은 것이 패배의 원인임을 깨닫고 후회했으나 이미 경기는 끝난 뒤였다. 헤어질 때 다니엘즈는 진 사라센에게 "내 생전에 꼭 당신을 우승시키겠다."고 약속했다.



 



4년 후 브리티시 오픈에 다시 출전한 사라센은 다니엘즈와 손을 잡았다. 70세의 노구에 시력도 나쁘고 병중에 있던 다니엘즈는 필사적으로 사라센을 도왔다. 사라센 또한 다니엘즈를 단순히 캐디가 아닌 대 스승으로 모시고 완전한 신뢰감 속에 그의 지시와 조언대로 플레이해서 대망의 타이틀을 획득했다. 시상식 때 사라센은 승리의 절반은 다니엘즈 몫이라며 동석을 요청했으나 전례가 없고 경기규칙에도 어긋난다고 해서 다니엘즈는 먼발치에서 시상식을 구경했다. 사라센은 우승자의 상징인 녹색 재킷을 받자 그대로 다니엘즈에게 달려가 입혀주었다. 이로써 진 사라센은 4대 메이저인 마스터스와 US오픈, 브리티시 오픈, PGA챔피언십을 모두 석권한 최초의 골퍼가 되었다. 다니엘즈는 사라센과의 약속을 지키고 두 달 후 조용히 눈을 감았다.



 



훌륭한 캐디는 골프 외적인 중요한 징후까지 놓치지 않는다. 14년간이나 대 선박회사 사장의 골프를 뒷바라지 해온 캐디가 어느 날 홀 아웃 한 사장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제 넘는 말 같지만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보시지 않겠습니까?"



사장이 놀라서 이유를 묻자 캐디가 대답했다.



"사장님 몸이 이상한 것 같습니다. 겨우 1주일 만에 거리가 줄어 오늘은 모든 클럽을 하나씩 크게 했습니다. 어딘가 이상한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장은 다음 날 바로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아 간 기능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의사는 그대로 방치했으면 위험할 뻔했다고 말했다.



 



명골퍼 옆엔 늘 명캐디가 존재한다.   



필 미켈슨은 20년 이상 동행하며 메이저 5회 우승을 함께 한 짐 맥케이를 '전략가이자 심리상담가'라고 평가했다. 맥케이는 "캐디의 일은 무엇을 말할지보다 언제 말하지 말아야 할지를 아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켈슨이 위기 상황에서 흔들릴 때 캐디의 침묵이 오히려 큰 신뢰를 줬다고 한다. 미켈슨의 성향을 잘 아는 맥케이는 중요한 순간마다 "이 샷이 정말 네가 원하는 샷이냐?"라는 한마디만 던졌다고 한다. 미켈슨은 "맥케이는 절대 명령하지 않았다. 대신 내가 내 마음을 다시 보게 했다"며 "진짜 리더는 결정의 순간 경청한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타이거 우즈 전성기의 절반을 함께 한 스티브 윌리엄스는 매우 단호하고 직선적인 스타일로 '타이거 우즈에게 유일하고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불렸다. 그는 "캐디는 선수의 거울이다. 당신이 흔들리면 그도 흔들린다."며 경기 중 감정의 균형을 지키는 걸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다. 실제로 우즈는 "스티브의 냉정함 덕에 내 스윙보다 마음이 더 강해졌다"고 털어놨다.



 



부상과 긴 공백기에도 우즈 곁을 떠나지 않은 조 라카바 (Joe LaCava)는 "캐디는 경기 중은 물론 선수의 인생 리듬 전체를 이해해야 한다"며 "충성은 기술보다 가치가 크다"는 말을 남겼다. 그는 우즈가 복귀 우승을 했을 때 울면서 "내가 아니라 우리가 돌아왔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 완벽주의자였던 우즈는 실수를 하면 캐디에게 감정을 드러내곤 했으나  조 라카바와 함께하면서 바뀌었다. "자존심보다 신뢰가 먼저다. 조는 내게 화를 내지 않는다. 그 대신 나를 믿는다. 나는 그 신뢰 덕분에 다시 자신을 믿게 됐다."고 털어놨다.



 



젊은 시절 감정 기복이 심했던 로리 매킬로이의 캐디 해리 다이아몬드는 고향 친구이기도 했다. 경기 중 로리가 화를 내면, 해리는 "숨을 한번 고르자"라는 짧은 말만 했다. 로리 매킬로이는 "그는 내 감정을 통제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내 감정이 흐르는 리듬을 스스로 느끼게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실패 앞에서 나를 꾸짖는 사람보다, 묵묵히 기다려주는 사람이 더 큰 힘이 된다. 캐디는 나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침묵의 울타리였다"고 고백했다.



 



지난 19일 해남 파인비치 골프링크스에서 막을 내린 LPGA투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5년 만에 '붉은 바지의 마법'을 깨워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일궈낸 김세영과 캐디 폴 푸스코도 '명 골퍼와 명 캐디 콤비'다. 김세영은 LPGA투어 진출 후 한 번도 캐디를 바꾸지 않았다. 현역 선수 중 한 캐디와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하고 있는 선수다. 위기도 있었지만 폴 푸스코는 김세영을 떠나지 않았다. 김세영은 "성적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 폴이 떠날 수도 있었으나 지금까지 나를 지켜준 데 대해 감사한다"며 이번 우승을 푸스코의 덕으로 돌렸다. 2014년 LPGA투어 데뷔를 앞둔 김세영과 Q스쿨에서 인연을 맺어 12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골프는 거리의 게임이 아니라 마음의 길을 걷는 여행이다. 그 길에서 캐디는 골퍼의 거울이자 길동무다. 선수를 깨닫게 해주는 내면의 스승이자 골퍼의 또 다른 자아이다.



그런 면에서 캐디는 리더의 압축판이다. 리더란 앞서기보다 함께 걸어주는 사람이다. 캐디의 리더십은 스윙보다 느리고, 바람보다 부드럽고, 말보다 깊다.



'진정한 리더십은 방향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라 옆에서 걸어주는 발걸음이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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