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게 놀자, 그 뿐이다' 스물하나 김서현을 위한 가을 놀이터, 최원태가 입증한 '비워야 채워지는' 마음의 기적[SC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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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토도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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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이제 스물 한살 어린 투수. 대권 도전을 꿈꾸는 팀의 마무리 중책은 너무 무겁다.
정규시즌 1위를 놓친 데 대한 자책이 트라우마로 남았다. 지금은 상처받은 마음 치유와 극복에 힘써야 할 시기다.
치유와 극복은 반복된 성공 체험이다. 편안한 상황에서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야 선수도 살고, 한화도 산다.
김서현은 경기 후 눈물을 쏟았다.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마음의 상처가 남았다.
가을야구를 앞둔 김서현은 두번의 실수는 없다며 다짐, 또 다짐을 했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말고는 없다. 솔직히 계속 생각해봤는데 최대한 잘해야 한다는 생각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정규시즌 마지막에 아쉬운 게 있었다.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은 것 같다."
오묘한 세상의 이치는 반대로 움직인다. 너무 잘하려고 집착하면 오히려 잘 안 풀린다. 적당히 힘을 빼고 결과와 거리를 둬야 매듭이 풀린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힘 빼는 게 제일 어렵다.
잘하려고 힘을 쓸수록 몸이 굳고 같은 스피드라도 볼끝이 의욕과 긴장 속에 딱딱해진 몸 만큼 무뎌진다.
데뷔 첫 가을야구 무대, 김서현의 모습이 딱 그랬다.
18일 대전에서 열린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1차전. 한화는 9-6으로 앞선 9회초 김서현을 올렸다.
하위타선이라 큰 부담 없이 끝낼 줄 알았지만 예상 밖 상황이 전개됐다.
선두타자 이재현에게 홈런을 맞았고, 김태훈의 안타와 강민호의 진루타, 이성규의 적시타로 순식간에 2실점 하며 1점 차로 쫓겼다. 만회하려는 의욕 속 몸에 힘이 잔뜩 들아가니 스피드와 별개로 볼끝이 밋밋했고, 특유의 춤추는 듯한 슬라이더의 움직임도 무뎠다. 공도 가운데로 몰리니 먹잇감이 되기 딱 좋았다.
한화 벤치가 결단을 내렸다. 김서현을 내리고 김범수를 올려 1점 차를 지키고 9대8 진땀승을 거뒀다. 7년만에 품은 한화의 가을야구 승리에도 김서현은 굳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 마음의 짐이 더 커졌다.
한화 벤치도 김서현 살리기에 몰두하고 있다.
김경문 한화 감독은 "김서현을 살릴 방법을 고민해보겠다"며 더한 상처를 줄까 하는 우려에 말을 아꼈다.
양상문 투수코치는 "이런 상황 저런 상황이 역사적으로 많이 있었다. 김서현이 결국 이겨내야 한다"며 "2위까지 올라오는데 있어 50%는 서현이의 힘이었다. 투수가 매일 잘 던질 수는 없다. 안 좋을 때가 있으니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진심을 담아 조언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김경문 감독과 양상문 코치가 줄 수 있는 도움은 편안 상황 속 등판을 통해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뿐이다.
마인드 변화가 필요하다.
더 잃을 것도 없다는 생각 속에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올 시즌 초까지만 해도 김서현은 마무리 투수가 아닌 그냥 볼 빠른 '유망주'일 뿐이었다.
달라진 건 없다. 3년 차 신예 답게 보너스 처럼 찾아온 가을축제를 김서현 답게 즐기면 된다. 맞으면 또 어떤가. 아버지 뻘도 더 되는 양상문 코치가 "지금까지 온 건 50%가 서현이 너의 몫"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진심이다. 3년 차 구원 2위. 올시즌 할 거 이미 다 했다. '한방 더 맞고 올게요' 씩씩하게 말하고 올라가 신나게 싸우고 오면 된다.
잘 하려는 의욕을 덕아웃에 훌훌 던져놓자. '칠 테면 쳐봐라'는 마음가짐으로 힘을 쭉 빼고 포수 사인대로 가운데 보고 던지면 된다. '용기' 한스푼을 실은 볼끝은 타자가 느낄 때 완전히 다른 체감의 공이 된다. 김서현이 할 일은 결과 상상 없이 실컷 놀고 내려오는 것 뿐이다.
아주 미세한 차이가 엄청난 결과 차이를 부른다. 마인드를 바꾸는 순간, 타자가 노리고 쳐도 파울이 되는 강력한 구위와 춤추는 무브먼트가 살아난다.
마인드 변화가 가져오는 기적 같은 변화는 상대 팀 '가을영웅' 최원태가 보여주고 있다.
잘하려는 의욕이 가득했던 최원태는 지난해까지 가을만 되면 작아졌다.
코너를 보고 강한 공만 던지려다 보니 몸에 힘이 들어갔고, 볼이 난무했고, 볼카운트가 불리해지면서 타자의 노림수에 걸렸던 탓이다. 와일드카드 결정전 때만해도 미출전선수 명단에 오르는 굴욕까지 당했다. 준플레이오프 1차전을 앞두고 "144㎞ 이하로 가운데 보고 던지라"는 포수 강민호의 조언이 비로소 가슴에 들어왔다.
'더 잃은 게 없다'는 마음으로 힘을 쭉 빼고 가운데 포수 미트만 보고 던지자 기적이 일어났다. 힘을 쭉 빠진 어깨와 몸놀림이 자연스러운 테일링과 무브먼트를 만들어냈다.
볼 카운트를 앞서갔고, 급해진 타자들의 정타율이 뚝 떨어졌다. "민호형 사인대로만 던졌다"는 결과는 2경기 13이닝 1실점, 결정적인 2승으로 돌아왔다. '가을계륵'에서 '가을영웅'으로 탈바꿈 하는 순간이었다.
대단한 건 없다.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한 변화가 기적을 만든다. 최원태가 보여줬다. 이제는 김서현의 차례다.
이 좋은 가을에 오렌지 장관을 펼치고 있는 모든 한화 팬이, 모든 김서현 찐팬들이 보고 싶은 건 김서현의 호투가 아닌 불끈 쥔 주먹과 환한 미소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 스물하나 청년투수에게 일찌감치 찾아온 인생교훈. 어마어마할 미래를 품을 김서현을 위한 값진 수업료다. 현재 힘든 건 훗날 보면 아무 것도 아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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