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호의 '스리백'은 죄가 없다 [박순규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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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토도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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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 | 박순규 기자] 브라질과 10일 평가전에서 받아든 0-5라는 참담한 결과는 한국 축구대표팀의 현재 전술적 혼란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팬들의 가슴에는 안타까움이, 머릿속에는 불안감이 가득하다. 경기 후 많은 팬들은 시험 가동 중인 스리백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했지만 정작 문제의 본질은 스리백이 아니라 그 시스템을 지탱할 ‘전술적 설계’의 부재에 있다.
홍명보 감독은 이번 브라질전에서 2026년 북중미 월드컵 본선을 대비해 실험 중인 스리백 시스템(3-4-2-1)을 가동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험이 아니라 붕괴였다. 전반 13분 만에 수비 라인이 완전히 무너졌고, 브라질의 측면 침투와 2선 연결에 속수무책이었다. 상대는 전체 슈팅 14개 중 7개를 유효슈팅으로 연결하며 5골을 터뜨렸다. 반면 한국은 단 1개의 유효슈팅에 그쳤다.
문제는 포메이션이 아니라, 포메이션 안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스리백은 기본적으로 중앙 수비의 안정감과 측면 윙백의 왕성한 활동량을 전제로 하는 현대 축구의 주요 전술 중 하나다. 하지만 이날 경기에서 우리가 목격한 것은 스리백의 장점이 아니라, 수비수들이 공간을 내주고, 중원이 무너지며, 좌우 측면이 속수무책으로 뚫리는 '재앙'이었다. 윙백으로 나선 설영우와 이태석은 수비와 공격의 균형을 잡지 못했다. 수비의 중심축인 김민재까지 실수를 했다. 브라질의 비니시우스와 이스테방이 양쪽 측면을 자유자재로 휘젓는 동안, 한국의 윙백들은 수비 지원과 역습 타이밍 모두를 놓쳤다.
또한 중원 운영의 부조화는 더욱 뼈아팠다. 부상에서 복귀한 황인범과 이재성은 실전 감각이 떨어진 상태였고, 두 선수 모두 볼을 소유했을 때 전진 패스보다는 안전지향적인 횡패스에 머물렀다. 이는 스리백의 핵심인 ‘빠른 전환’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했다. 스리백은 단순히 수비 숫자를 늘리는 전술이 아니라, 공격 전환 시 3-2-5 형태로 변형되어야 하는 ‘유기적 시스템’이다. 이 점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으니 손흥민은 전방에서 철저히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최고의 컨디션이 아닌 선수들을 중요 길목에서 실험하는 것은, 경기의 흐름과 결과에 대한 고려 없이 '명분'만을 쫓는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수비진에 5명(스리백+윙백)을 배치하고도 5실점을 허용한 것은 수비 숫자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수비 시 압박 타이밍과 강도가 전혀 맞지 않았고, 수비수와 미드필더 간의 간격은 벌어질 대로 벌어져 브라질의 개인 기량이 뛰어난 공격수들에게 침투할 공간을 허용했다. 특히, 후반 시작 직후 연속 실점은 선수들의 실책에서 비롯되기도 했지만, 이는 조직력이 완전히 와해된 팀의 집중력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을 운영하는 방법'의 문제였던 셈이다.
공격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원톱으로 나선 손흥민은 시종일관 고립되었고, A매치 최다 출전 기록을 세운 기념비적인 날에도 유효 슈팅 하나 기록하지 못했다. 포스트 플레이에 강점이 없는 손흥민에게 롱볼을 의존하는 공격 패턴은 비효율적이었고, 중원에서의 빌드업은 브라질의 강한 압박에 번번이 막혔다. 윙백들의 공격 가담은 실종되었고, 공격진과 수비진이 완전히 분리되며 '따로 국밥' 식의 축구가 펼쳐졌다.
더욱 아쉬운 점은 전술 운용의 유연성이었다. 준비한 플랜 A가 전혀 통하지 않을 때, 감독은 빠르게 플랜 B, 혹은 플랜 C를 가동해야 한다. 그러나 홍 감독은 경기 후 "결과보다 파이브백으로 경기를 마치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변화 없이 갔다"고 밝혔다. 강팀과의 평가전은 결과를 떠나 다양한 전술을 시험하고 선수들의 대처 능력을 확인하는 장이다. 플랜A가 무너진 상황에서 변화를 주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인 것은 '시험'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결과적으로는 '변화 부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실제로 손흥민은 이날 경기에서 공 터치 29회, 슈팅 0회에 그쳤다. 그것도 박스 안에서의 터치는 단 2회에 그쳤다. 역습 과정에서도 홀로 상대 수비를 상대하다보니 볼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상대 수비를 분산시킬 수 있는 선수가 부재했다. LAFC에서 드니 부앙가와 투톱으로 활약할 때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어서 보는 사람마저 어리둥절케 했다.
"전술이란 배우들의 배치가 아니라, 대본이 있어야 하는 연극이다." 이 말은 이탈리아의 명장 안첼로티가 한 말이다. 아무리 훌륭한 시스템이라도 그 안에서 선수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한 ‘전술적 대본’이 없다면 전술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홍명보호의 스리백은 지금 바로 그 상태다.
반면, 일본 대표팀의 모리야스 감독은 지난 2년간 스리백과 포백을 자유롭게 오가며 ‘하이브리드 전술’을 완성했다. 그 결과 일본은 최근 10경기에서 7승 2무 1패, 평균 실점 0.7점이라는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10일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에서는 2-2로 비긴 것을 포함해 최근 3경기에서 6실점한 것을 제외하면 이전 7경기에서는 연승을 구가하며 단 1실점에 그쳤다.시스템보다 중요한 것은 ‘전술적 일관성과 선수 이해도’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홍명보 감독은 경기 후 "실험의 과정이 필요했다"고 설명했지만, 실험은 준비된 계획 위에서만 의미가 있다. 브라질이라는 세계 최강을 상대로 전술 완성도 50%짜리 실험을 감행한 것은 위험했다. 준비가 부족한 실험은 배움이 아니라 상처를 남긴다. 공자는 "군자는 기틀을 세운 뒤 일을 행한다(君子務本, 本立而道生)"고 했다. 기틀 없는 시도는 결국 길을 잃는다는 뜻이다.
홍명보호의 스리백은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그것을 작동시키지 못한 전술적 사고의 빈곤과 조직력의 미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전술의 폐기가 아니라, 전술의 ‘정의(定義)’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강팀과의 대결에서 확실한 강점이 있는 스리백을 유지한다면 그 안에 확실한 빌드업 원칙과 공격 전환의 루트를 만들어야 한다.
브라질전의 0-5 패배는 단순한 점수 이상의 메시지를 남겼다. '형식이 아니라 내용으로 승부하라.' 포메이션은 도구일 뿐이다. 도구는 사용하는 이의 철학에 따라 무기가 되기도, 짐이 되기도 한다. 홍명보호가 지금 필요한 것은 전술의 철학, 다시 말해 '왜 이 전술을 쓰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이다. 그것이 없는 한, 어떤 시스템도 ‘대패의 변명’으로 남을 뿐이다.
요한 크루이프는 '패배는 전술의 실패가 아니라, 생각의 실패다'고 말한 바 있다. 홍명보 감독이 이 말을 되새긴다면, 스리백은 결코 실패한 선택이 아니다. 이제는 ‘플랜A’가 아니라 ‘플랜의 완성’을 보여줄 차례다.
skp200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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