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비극으로 끝난 ‘롯데 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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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부산 사직야구장에 가을은 또 오지 않았다. 벌써 8년째다. 올해 롯데 자이언츠 팬은 마음이 더 무너진다. 분명 8월초까지만 해도 4위권과의 격차가 넉넉한 3위였고, 당시 확률적으로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이 95%에 이르렀다. 봄을 넘어 전반기가 끝나고, 후반기가 시작됐을 무렵까지 계속된 희망은 두 달 만에 연기처럼 사라졌다.
8월에 겪은 12연패가 너무 컸다. 시즌 10승5패 평균자책점 3.65의 성적을 내던 터커 데이비슨을 방출하고 메이저리그 출신 빈스 벨라스케즈를 영입한 직후부터 무너졌다. 롯데가 10승 투수를 교체한 주된 이유는 이닝 소화력 때문(평균 투구이닝 5⅔이닝)이었다. 데이비슨은 22경기에 선발 등판했는데 7이닝 이상 던진 경기가 3차례에 불과했다. 특히 6월 이후 6회를 못 버티거나 조기 강판하는 일이 잦았다. 위기 관리 능력에도 의문부호가 달리면서 가을야구에서 1·2선발로 쓰기에는 부족하다는 판단이 섰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찰리 반즈 대신 5월에 영입한 알렉 감보아가 꽤 괜찮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던 터라 외국인 투수 교체에 자신감도 있었다.
'불펜 과부하' 롯데·SSG, 어디서 희비 엇갈렸나
하지만 벨라스케즈가 예상외로 너무 부진했다. 11경기 등판에서 1승4패 평균자책점 8.23의 성적을 냈다. 무엇보다 경기 초반 무너지는 경우가 잦았다. 데이비슨과 비교해 많은 이닝을 책임져줄 것이라는 기대치가 있었으나 벨라스케즈의 평균 투구이닝은 4이닝도 채 되지 않았다. 불펜 과부하를 줄이기 위해 데려왔는데 오히려 더 과부하를 줬다. 수도권 구단의 한 고위 관계자는 "외국인 선수는 리그 적응 등의 문제가 있어 시즌 중에는 웬만하면 잘 안 바꾼다. 우리라면 10승 투수를 중간에 바꾸는 모험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마디로 위험한 도박이었다.
사실 외국인 투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박세웅(평균 투구이닝 5⅔이닝), 나균안(평균 투구이닝 5이닝) 등 국내 선발진 또한 평균 투구이닝이 6이닝을 넘지 못하면서 불펜들이 4이닝 이상을 책임지는 일이 많았다. 불펜 계투진 중 정현수는 82경기(47⅔이닝 투구)에 투입돼 KBO리그 투수 중 가장 많은 경기에 섰다. 지난 시즌 뒤 두산에서 트레이드되어온 정철원 또한 75경기(공동 5위·70이닝 투구)에 나섰다. 김강현(67경기 72이닝 투구)이나 시즌 중 합류한 최준용(49경기 54⅓이닝 투구) 또한 등판이 잦은 편이었다. 마무리 김원중(53경기 60⅔이닝 투구)도 8회에 투입돼 멀티 이닝을 소화할 때가 꽤 있었다.
전반기에는 그나마 '있는' 자원으로 불펜이 잘 돌아갔다. 선발진은 불안했으나 뜨거웠던 방망이와 힘이 남아있던 불펜으로 그나마 버텨냈다. 하지만 선발이 안정화되지 않으면서 불펜은 서서히 힘을 잃어갔다. 이와 더불어 마이너리그에서조차 한 시즌 80이닝 이상을 던져본 적이 없는 감보아가 순위 싸움이 제일 치열했던 9월에 체력적인 문제와 팔꿈치 부상이 겹치며 무너졌다. 감보아는 순위 싸움이 치열하던 9월 4경기에 선발 등판해 승리 없이 평균자책점 9.68을 기록했다. 감보아가 마지막으로 승리투수가 된 것은 7월24일 키움 히어로즈전이었다. 롯데가 8월부터 시즌 종료까지 챙긴 선발승은 단 4승에 불과했다.
불펜 소모가 많았던 점은 정규리그 3위에 오른 SSG 랜더스와 비슷하다. 필승조만 놓고 보면, 오히려 롯데보다 더 많이 마운드에 올랐다. 베테랑 노경은이 77경기에 등판해 80이닝을 소화했고, 21세의 이로운은 75경기에서 77이닝을 던졌다. KT 위즈에서 SSG로 트레이드된 김민 또한 70경기 63⅔이닝을 투구했다. 평균자책점 1.60을 자랑하는 마무리 조병현은 무려 69경기에 투입돼 67⅓이닝을 책임졌다.
다만 조병현은 8월 중순 이후 멀티 이닝을 던진 적이 없다. 김원중의 경우는 8월 이후 13차례 등판했는데 이 중 9차례 멀티 이닝을 소화했다. 정현수·정철원 등이 힘이 떨어졌을 때 대체 자원이 없어 김원중에게 하중이 몰렸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SSG는 필승조 외에도 박시후·전영준·한두솔·김건우 등 젊은 투수들을 골고루 전략적으로 기용하면서 필승조의 과부하를 줄여갔다. SSG가 불펜(평균자책점 3.36·전체 1위)을 앞세워 '깜짝' 3위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물론 SSG가 불펜 효과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드류 앤더슨, 미치 화이트 두 외국인 원투 펀치가 꿋꿋하게 마운드를 지켰기 때문이다.
조급함 버리고 구조 고쳐 나가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8월 이후 롯데 방망이도 침체했다. 롯데는 전반기에 4점을 주면 5점을 내는 공격형 야구를 추구했다. 김태형 롯데 감독은 스리볼 카운트에서도 자신 있게 휘두르라고 주문하는 사령탑이다. 이를 바탕으로 7월까지 팀타율 1위로 승승장구했다. 전민재(3~5월 타율 0.387), 장두성(5~6월 타율 0.312) 등의 깜짝 활약이 빛났다. 하지만 풀타임을 처음 뛴 이들은 '상수'가 아니었다.
나승엽은 4월까지 7홈런을 터뜨렸으나 이후 5~9월까지는 단 2개의 홈런만 뿜어냈다. 윤동희, 고승민의 8월 타율은 각각 0.179, 0.133에 불과했다. 이 와중에 베테랑 전준우까지 부상으로 이탈했다. 그 결과 롯데는 8~9월, 최악의 타격 슬럼프를 겪었다. 수비 또한 와르르 무너졌다. 롯데가 이 기간에 챙긴 승수는 11승(29패)에 불과했다. 교체 외국인 투수로 말미암은 선발 붕괴에 이은 불펜 과부하, 그리고 최악의 타격 침체가 겹치면서 포스트시즌 진출 확률은 95%에서 0%가 됐다.
올 시즌 정규리그 1위 LG 트윈스도 암흑의 시대가 있었다. 10년 연속(2003~12년) 가을야구에 초대받지 못했었다. 당시 LG 프런트가 했던 것이 잦은 사령탑 교체였다. 5년 계약을 했던 박종훈 감독이 2년 만에 물러날 정도였다. 오죽하면 감독의 무덤이라고 했을까. 하지만 이후 팀 사정에 맞는 FA 영입과 내부 육성에 전력을 다했다. 그 결과물이 10구단 체제 타이 기록인 7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다. 지금의 LG 상황이라면 내년, 내후년에도 충분히 5강 전력이다.
롯데의 최근 행보를 보면 예전의 LG 같다. 8년간 사령탑만 5명이다. 단장도 3명이나 거쳐갔다. 성적 조급증 탓에 이해할 수 없는 외부 FA 영입(유강남·노진혁·한현희)도 있었다. 시즌 전을 돌아보면, 롯데를 5강 후보로 꼽은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LG, KIA, 한화, 삼성, KT 등과 비교해 전력 강화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부 FA였던 김원중도 겨우 계약했다는 얘기가 있다. 8년째 이어진 실패의 서사는 어느 날 갑자기 역전되지 않는다. 그러나 방향을 바로잡을 수는 있다. 조급함을 버리고, 구조를 고치고, 믿음을 쌓을 때 비로소 사직에도 가을이 돌아올 것이다. 가을야구는 우연이 아니라 구조의 결과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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