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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전유성, 제자 김신영 오열 속 영면 "사무치게 그립고 보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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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토도사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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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김가영 기자] ‘개그계의 대부’ 전유성이 영면에 들었다.

사진=연합뉴스
28일 오전 6시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는 고 전유성의 영결식이 열렸다. 이날 자리에는 유족과 고인의 수많은 후배들이 함께해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추도사를 맡은 이홍렬은 “한국 코미디의 큰 별 선유성 선배님을 보내드린다”며 “무대 위 혁신가이자 무대 뒤 스승이었다. 웃음이 한 사회의 공기이고 문화임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신영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병원에서 교수님과 얘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고 발도 주무르고 휴대폰 게임 하시던 모습이 선한데 이제는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드리게 됐다”며 눈물을 보였다.

고인의 제자이자 후배인 김신영은 고인이 눈을 감기 전 나흘 간 병실에서 시간을 함께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병원에서 교수님은 제게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친구 고맙다. 즐거웠다’ 하셨다. 그 말씀이 제 마음을 울렸다. 제자를 넘어서 친구라고 불러주셨고 그 따뜻한 마음 평생 간직하겠다”며 “교수님은 제가 가장 힘들 때 ‘한물 가고 두물 가고 세물 가면 보물이 된다. 두고 봐라’라고 했던 믿음이 저를 지금의 자리까지 이끌어줬다. 제 코미디를 가장 먼저 인정해준 분, 모두가 허무맹랑하다고 했던 아이디어를 밤새 즐거워해 주시던 유일한 분, 아무것도 모르는 저를 사람으로 만들어주신 분, 어린 제자라도 존중해주신 분”이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김신영은 “마지막 수요일에도 교수님은 간호사에게 팁을 주라고 하시면서 ‘말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기쁘고 즐거운 날을 만들 수 있다. 팁은 아낌없이 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남을 배려하고 웃게 해주셨던 교수님의 모습 저는 절대 잊지 않겠다”며 “병원에 계시면서 자꾸 서울가서 일하라고 힘들게 하는 것 같다고 하셨는데 교수님, 저에게는 병원에서의 4일이 40년 중에 가장 진실되고 진심이었다. 이제는 걱정하지 않길 바라겠다. 그곳에서는 부디 편안히 코도 곯면서 주무시고 휴대폰도 원없이 하셔라”고 말했다.

이어 “훗날 저희가 그 길을 따라가면 꼭 마중 나와달라. 늘 즐거웠고 감사했다. 마지막으로 건네주신 주유비 10만원 끝까지 제자들을 챙기는 그 마음까지 제 평생의 보물로 간직하겠다. 사랑하는 우리 교수님, 전유성 선배님, 나의 어른. 사무치게 그립고 보고싶다”고 눈물을 쏟았다.

사진=연합뉴스
이날 진행된 영결식 사회는 이수근이 맡았고, 기도는 개그맨 겸 목사인 표인봉이 올렸다. 고인이 가장 좋아했다는 ‘숭구리당당’ 퍼포먼스를 후배 김정렬이 선보이며 마지막 배웅을 했다.

발인을 마친 운구 행렬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KBS를 돈 뒤 장지로 향할 예정이다.

고 전유성은 지난 25일 오후 9시 5분 사망했다. 지난 6월 기흉 시술을 받고 건강이 악화해 급히 병원에 입원한 고인은 최근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고 가족과 지인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며 생을 마무리했다.

고인이 남긴 유언처럼 장례는 희극인장으로 진행됐다. 희극인장은 코미디언들의 장례식을 일컫는 말로, 동료 코미디언들이 주도해 장례를 치르는 방식이다. 대한민국방송코미디협회가 주관한다. 앞서 고 송해, 고 서세원 등의 장례가 희극인장으로 치러졌다.

1949년생인 고 전유성은 1969년 TBC 동양방송 특채 코미디 방송 작가로 데뷔한 후 코미디언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유머1번지’, ‘쇼 비디오 자키’ 등의 프로그램으로 이름을 알렸다. 희극인이나 코미디언이라는 말로 불리던 시절, ‘개그맨’이라는 명칭을 만들어 코미디를 하나의 문화예술 장르로 다지는 역할을 했다.

김가영 (kky1209@edaily.co.kr)

원문: 바로가기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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