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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아파트 속 나무들... '콘크리트 녹색섬' 지키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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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토도사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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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평론가]

실뱅 쇼메가 감독한 프랑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엔 시한부 삶을 사는 여자 마담 프루스트(앤 르 니 분)가 등장한다. 아파트에 숨겨진 비밀 공간에다 불법적으로 정원을 꾸며 놓고 사람들에게 정체불명의 약초를 공급하는 일로 소일하던 그녀가 죽음을 앞두고 일생일대의 과업에 착수하는 모습을 영화가 인상 깊게 살핀다.

그 일이란 다름 아닌 나무를 지키는 것. 그녀가 이따금 찾아 그늘에서 우쿠렐레를 연주하길 즐기던 아름드리 나무가 베어질 위기에 처한 것을 알고 이를 막고자 하는 것이다. 늙고 병든 나무라 이제는 베어내야 한다고 다가서는 인부들을 몸으로 가로막으며 프루스트는 말한다.

"그러지 마세요, 여러분은 지금 천국을 없애려는 겁니다!"

또 다른 영화 한 편, 이번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 소개된 이명륜 감독의 독특한 색채의 단편 <목인>이다. 영화는 근미래, 숲을 밀어내려는 인부들과 그들의 작업을 방해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살핀다. 작업차 기름통에 몰래 물을 넣는 그의 모습은 일견 극단적 환경운동가의 작업 방해 행위로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는 그의 공로를 결코 허투루 돌리지 않는다. 다시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파괴를 목전에 두었던 이 숲이 지구에 단 하나뿐인 귀한 숲으로 기려지는 모습이 영화에 주요하게 등장하는 것이다.

숲은 그저 이 남자의 수고를 통해 지켜지지 않는다. 말 없던 남자가 곧 나무가 되고, 박동하는 귀한 나무의 이야기가 퍼져 나가며 숲을 베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벨 수 없는 귀한 나무만이 숲을 지키는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일까.
▲ 콘크리트 녹색섬 스틸컷
ⓒ 한국독립영화협회
서울 아파트 단지 안에 생긴 울창한 숲

227회 독립영화 쇼케이스 상영작 <콘크리트 녹색섬>을 보며 앞의 두 영화가 떠오른 건 왜일까. 하나 같이 극단적 환경운동가 취급을 받으며, '어째서 이토록 집착하는지 모르겠다'는 시선을 받는 이들이 그저 극영화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영화는 사진작가 출신인 이성민 감독의 장편 다큐다. 지금은 재개발이 진행된 강남 개포 주공 1단지에서 지난 2017년부터 나무를 기록하고 기억하며 지키는 운동을 펼쳐왔던 이성민의 이야기가 한 편의 영화로 화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이곳으로 전학 와 12년을 살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 되어 경기도로 떠났다는 감독이다. 사진작업을 하며 언젠가 고향에 다시 가 보아야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던 감독의 시선이 재개발을 앞둔 아파트 단지의 나무들에 가 닿은 건 정말로 우연한 일이었을까.

영화 속에 담긴 개포동 주공아파트 1단지의 나무들은 거의 도심 숲을 이뤘다 해도 좋을 모습이다. 서울에선 좀처럼 볼 일 없는 커다란 나무들이 마음껏 자라 울창한 모둠을 이루었다. 통상적으로 아파트 단지 내의 나무들이란 정기적으로 가지를 치고 적절하지 않은 곳에 자란 것은 베어내는 등 관리를 받게 마련인데, 이 단지가 무려 20여 년 동안 재개발 논의의 중심에 서며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재개발을 앞두고선 거주민들이 제 주거를 관리하는 데 비용을 들이지 않는다는 흔한 부작용이 나무에겐 도리어 마음껏 숨 쉴 공간을 허한 것이다.

'콘크리트 녹색섬'이란 제목처럼 콘크리트로 지어진 아파트 단지는 마치 도시와 동떨어진 녹색섬처럼 보인다. 전체 단지 내에 심겼다는 수만 그루의 나무에 그치지 않고, 인근 산에서 새들이 물고 온 씨앗이 여기저기 뿌려져 싹을 틔우고 줄기를 뻗어 어느새 가로수 못잖은 굵은 기둥을 가졌다. 흔히 조경을 위해 심는 나무만이 아니라, 흔히 볼 수 없는 나무들이, 또 일자로 쭉 뻗지 않고 제멋대로 자란 기둥이며 가지들이 그대로 도심 숲의 매력을 한껏 발한다.
▲ 콘크리트 녹색섬 스틸컷
ⓒ 한국독립영화협회
수만 그루가 22그루가 되고

영화 속엔 2017년부터 이듬해까지 약 10회에 걸쳐 감독이 진행했다는 개포동 나무산책과 기억산책 프로그램이 등장한다. 온라인을 통해 나무가 곧 베어지리란 사실을 알게 된 옛 주민들이 하나하나 참여하여 제가 살았던 곳에 자란 나무를 둘러보고 그와 함께 한 추억을 나누는 행사를 가진 것이다. 나무는 아무렇게나 심기고 다시 베어져 나가는 물건일 뿐인가, 사람과 교감하고 추억 속에 자리할 가치가 있는 생명인가. 재개발의 시일이 시시각각 닥쳐오는 가운데서 이 숲에 심긴 나무들에게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노력이 간절하게 빛이 난다.

한국의 재개발은 일괄삭제와 일관건설을 원칙으로 한다. 대상 부지를 완전히 밀어버린 뒤 그 위에 새로운 단지를 건설하는 것이다. 특히나 지하주차장이며 상업시설까지를 포괄하는 요즈음 재개발은 지층 아래까지도 파고 들어가 전에 없던 새로운 도시를 빚어내는 것이다. 지도상의 땅은 그대로지만, 지질부터 그 위의 건물과 도로, 랜드마크가 되는 상징물까지가 완전히 사라진다. 법으로 지정된 보호수며 문화재, 유적 정도가 재개발이란 이름의 초토화적 파괴와 건설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희소한 존재들이다. 하물며 고작 수십 년 된 나무들 정도야.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속 프루스트 여사는 오로지 한 그루 나무를 살리기 위해 온종일 그 나무 앞에 자리하고 버텼다. 그 병든 나무가 시한부인 제 생명과도 같아서였을까. 그 같은 노력이 빛을 발하여 나무는 얼마간의 생명을 더 지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인부들은 그녀를 억지로 나무에서 떼어 내고, 나무는 결국 베어져 쓰러진다. 그 나무에 저를 투영한, 그 나무가 제 추억이며 신비한 영적 무엇을 나누어 가졌다 믿던 프루스트 여사 또한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고작 나무 따위에 저처럼 나서는 이유가 무어냐고, 많은 이들은 그와 같은 저항을 이해하지 못했을 테다.

<목인> 속 숲은 숲이라서가 아니라 사람이 저를 버려 나무가 되었던 그 한 그루 특별한 나무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보통의 나무는, 그 나무를 위해 저항하는 평범한 사람이면 안 되는 것이, 신비하고 경이로울 때에야 비로소 생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엔 온통 범상한 것들 뿐, 아파트 단지를 둘러싼 이색적인 울창한 숲이라 해도 제 생을 더 부여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 콘크리트 녹색섬 스틸컷
ⓒ 한국독립영화협회
결국은 돈 때문에

그러나 그게 과연 당연한 일일까. <콘크리트 녹색섬> 속 불거지는 몇 개의 순간이 진짜 이유를 내보인다. 모든 것을 부수고 다시 짓는 일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도 다시 그곳에 심을 나무가 필요한 게 당연지사, 그렇다면 이미 이 땅에 살고 있는 나무를 옮겨다가 다시 심는 것은 왜 안 되는가를 묻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나무를 뽑고 옮기고 다시 심는 데 드는 비용보다 베어버리고 새 나무를 옮겨오는 편이 훨씬 싸게 먹힌다는 이야기.

그나마 감독이 민의를 모아 꾸준히 지자체에 접촉한 결과, 재개발 뒤 생길 공원 예정지에 들어갈 나무가 있다면 그들만큼은 살려주겠다는 결과를 얻는다. 공원 예정지에 들지 못한 수천, 아니 수만 그루가 하나하나 베어지는 상황 가운데서 마침내 남는 것은 스물 두 그루의 메타세콰이어다. 그 운명이 공원 예정지 경계를 두고 갈라지게 되는 것이다. 측량결과 이들은 그 어느 쪽에 속하는가. 재건축 이후 도면엔 처음부터 나무가 고려되지 않았으므로, 이들이 선 위치가 그중 어디일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째서 한눈에 보기에도 이토록 특별한 나무들을 재건축 이후 도면은 고려하지 않은 걸까. 그에 대한 답을 영화 속 여러 사람이 쉽게 내린다. 아마도 이곳에 와서 직접 본 적 없으리란 것. 그리하여 그 특별함을 알아보지 못했으리란 것이다. 마치 사형선고를 내리는 이가 사형수를 본 적 없을 것이란 듯이. 그러나 나는 도면을 작성한 이가 이곳에 와서 나무를 직접 보았을 수도 있으리라 여긴다. 무심하고 무감하게, 쉽게 뜨는 시선으로 말이다.

스물 두 그루 나무는 끝내 지켜지지 못하고, 공무원이며 결정권을 가진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어쩔 수 없다는 말만을 반복한다. 조합 관계자는 다시 총회를 여는 데 드는 비용이 수억 원에 이른다고 말하는데, 그것이 감당할 수 없으면 이쯤에서 멈추라는 윽박지름처럼 들리는 건 왜일까.
▲ 콘크리트 녹색섬 포스터
ⓒ 한국독립영화협회
다른 가능성은 불가능한지를 묻는다

<콘크리트 녹색섬> 속 나무들은, 그 수만 그루 나무들 대다수가 끝내 지켜지지 못한다. 그들이 살아온 수십 년의 시간이 전기톱에 아무렇지 않게 베어져 고꾸라지는 모습이 영화 안에 인상적으로 담긴다. 드론을 적극 활용해 전체를 조감하고 미감 있게 나무 숲을 담아낸 촬영감독 김비오의 솜씨 또한 돋보인다. 그가 앞서 언급한 <목인>의 촬영을 맡기도 했다는 점에서, 두 영화가 은근한 접점을 가진 사실도 엿볼 수가 있겠다.

개포 주공 1단지가 있던 자리엔 새로운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 영화 속 나무들은 오간 데 없이 새로운 나무들이 심겨 그 자리를 대신했다. 주민들은 알고 있을까. 저들이 들어온 그 자리에 수십 년을 살았던 굳고 정한 생명들이 있었다는 것을. 오늘의 아파트가 솟기까지 수만 그루 나무들이 무참하게 베어졌다는 것을. 그들이 다른 곳에 심겼다가 다시 돌아오는 대신, 혹은 예정된 공원부지에 적어도 몇 그루라도 들어오는 대신에, 몽땅 다 베어지기까지 그 결정은 오로지 비용 때문에 이뤄졌다는 것을. 그 사실을 바꾸려 한 이가 몇 명쯤 있었고, 수년에 걸친 노력 또한 있었다는 것을. 그러나 마침내는 도면을 바꾸는 물음조차 비용 탓으로 묻지 못했다는 것을.

<콘크리트 녹색섬>은 2025년 대한민국에 몹시 유효한 작품이다. 여전히 대규모 택지 재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때문이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나무가 이와 같이 베어지고 있는 때문이다. 영화는 무조건적으로 나무를 구해야 한다는 강성의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나무가 인간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묻고, 그를 살릴 수 있는 대안을 우리가 마련해줄 수는 있지 않았느냐고 확인하게 하는 영화다. 나는 그 질문이 마땅하다고 여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원문: 바로가기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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