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동업 계획 틀어지자 아내는... 부부가 직접 찍은 내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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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토도사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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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평론가]
바야흐로 야구의 계절이다. 야구의 꽃이라 불리는 가을야구, 144경기에 이르는 지난한 페넌트레이스를 끝내고 최종 왕좌를 가리는 시기가 한창이다.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까지, 최종승자는 야구, 나아가 프로스포츠 역사에 기록되는 영예와 함께 저를 지지해준 팬들과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할 테다.
모두가 승자일 수는 없다. 역전의 순간은 오로지 선택받은 이에게만 주어진다. 나머지는 다시 내일을, 어쩌면 영영 오지 않을 영광을 꿈꾸며 끝없는 담금질에 나서야 한다. 야구는 매 순간이 승부다. 최종전뿐이 아니라, 매 회, 매 타석, 매번 던지는 공 하나하나가 하나의 승부를 이룬다. 그 모든 승부에 성패가 있다. 확률로 매겨지는 과학적 분석 가운데서도 어쩌면, 이번은 다르리라고 기대하는 언더독이 언제나 있다. 그리고 때로는 그 언더독이 탑독을 잡아내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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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케가 홈런을 칠 거야 스틸컷 |
| ⓒ 한국독립영화협회 |
말은 현실이 됐다. 키케 에르난데스는 상대 투수 잭 그레인키의 5구를 때려 솔로포를 터뜨렸다. 경기는 2대 2 동점이 됐고 류현진의 패전 또한 사라졌다. 이달 21일 서울 홍대입구역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제226회 독립영화 쇼케이스에서 상영된 영화 <키케가 홈런을 칠 거야>의 제목이 바로 이로부터 왔음을 추정하게 되는 건 스포츠팬으로서의 자연스런 귀결이다.
영화엔 야구는커녕 공 하나, 심지어는 중계방송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키케 에르난데스나 류현진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야기다. 영화 내내 카메라 앞에 서는 건 실제 부부이기도 한 영화감독 박송열과 제작자인 원향라다. 이들이 주연이 되어 마치 저들의 삶을 그대로 옮긴 게 아닌가 싶을 만큼 현실적인 이야기를 펼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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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케가 홈런을 칠 거야 스틸컷 |
| ⓒ 한국독립영화협회 |
영태(박송열 분)와 미주(원향라 분)는 주머니 한없이 가볍지만 관계만큼은 단단한 부부다. 새로 집을 마련해 들어온 이들 부부에겐 나름대로 꿈이랄 것이 있는데, 단단하기만 한 가정에서 아이를 갖고 단란한 가정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려면 주머니 사정도 확실해야 할 터다. 가진 돈 하나 없는 영태에게도 계획이랄 것이 있으니, 바로 선배와 동업으로 식당을 인수해 운영하는 일이다.
열심히만 하면 다 잘 풀리리란 기대는 하루아침에 박살난다. 동업을 약속했던 선배가 영태가 빈털터리란 걸 듣고는 동업을 파기해버린 때문이다. 마음이 뭉개지지만 그래도 가장이 아닌가. 아내에게까지 부담을 지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고뇌하던 어느 날 집을 나서는 길에 현관문 앞에다 붙여놓은 메모에 적힌 글귀가 바로, "걱정하지 마. 키케가 홈런을 칠 거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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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케가 홈런을 칠 거야 스틸컷 |
| ⓒ 한국독립영화협회 |
<키케가 홈런을 칠 거야>를 무슨 영화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 앞서 '씨네만세'에서 소개하기도 했던 김준석 감독의 영화가 꿈과 현실, 일과 육아 사이에서 갈등하는 현실적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박송열 감독의 관심은 부부로서 세상을 살아내는 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영화엔 돈에 쪼들리는 상황부터, 사채를 쓰고 빚에 쫓기는 어려움, 그 사이에서도 서로를 지탱하는 부부의 관계, 희노애락애오욕을 건너 삶 자체를 감당해나가는 인간의 모습이 감정을 거세한 채로 등장하는 때문이다.
감정을 제했다는 것, 그는 이 영화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영화 속 영태와 아내 미주는 시종 뚱한 표정으로 등장한다. 아무리 즐거운 일이 있어도, 힘겨운 때를 마주해도 이들은 표정이랄 것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다. 비언어적 수단으로 많은 정보를 알리는 표정을 제함으로써 영화가 의도한 것이 있다는 뜻이겠다. 그는 무엇일까. 감정을 제할 때 더욱 잘 드러나는 관계의 본질적 일면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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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케가 홈런을 칠 거야 독립영화 쇼케이스 포스터 |
| ⓒ 한국독립영화협회 |
배우의 표정 뿐 아니라, 신과 신 사이에서도, 쇼트와 쇼트에서도 생략이 많은 작품이다. 때로는 그 생략이 지나쳐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보다 설명이 부실하다 느껴질 때도 있다. 영화가 모호하다거나 불명확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여럿이다. 그 공백이 의도한 것이 있는지, 감독이 숙고한 결과로써 그 같은 선택과 연출을 하였는지를 끝끝내 알아챌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 공백으로부터 얻어진 좋은 것이 아예 없지는 아니하니, 공백을 통하여 관객은 비로소 작품의 의도와 의미에 대해 생각의 나래를 펼칠 수가 있다는 점이겠다. 또한 다른 어느 부부의 사정이란 바깥에서 완전히 속속들이 알 수는 없는 것이고 약간의 공백쯤은 둘 밖에 없다는 것도.
영화 속 영태가 줄줄 읊는 시대며 자본에 대한 소시민적, 혹은 적대적 감상을 마치 주제의식처럼 여길 필요는 없을 테다. 노동자가 자본에 시간과 노동을 파는 상황에 대한 단상이 실재하는 현실이라거나 현실을 반밖에 알지 못하는 부지의 소치라 할지라도, 그것이 영화 바깥의 관객을 설득하려는 의도는 아닌 때문이다. 소시민적 삶을 둘러싼 체계에 대하여 깊이 있는 분석과 해석은 부재하다. 그러나 그것이 또한 소시민의 현실적 삶이고보면, 이 영화 <키케가 홈런을 칠 거야>가 펼치는 본래의 이야기란 드러난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날 키케는 류현진 대신 나와 홈런을 쳤다. 그러나 그가 대타로 나온 매 경기에서 홈런을 치지는 못했다. 현실 가운데서 대타가 홈런을 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영화 속 영태의 기대와 달리 현실이 꼬여만 가는 것처럼. 그럼에도 우리는 삶을 어떻게 지탱하는가. 1년 144경기를 치러내야만 하는 약체팀처럼, 우리네 소시민들의 삶 가운데서도 역전의 기회는 어딘가에 있는 것이라고 믿을 수가 있을까. <키케가 홈런을 칠 거야>의 매력은 아직도 홈런을 꿈꾸는 대타가 있다는 것, 그를 믿고 교체하는 감독이 있다는 것, 그리고 가끔은 실제로 홈런이 터지기는 한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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