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모은설 작가가 구현한 기적의 예능 '언포게터블 듀엣'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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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토도사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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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를 따라가진 않아요. 그 순간 제가 만들고 싶은 것, 의미 있는 것을 합니다. 잘되는 게 곧 트렌드죠." 요리 서바이벌부터 10대 음악 서바이벌, 그리고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출연자와 가족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예능까지. 모은설 작가의 예능에는 사람이 보인다. 다채로운 포맷 속에서도 출연자 개개인의 서사를 반짝이게 만드는 힘, 그 바탕에는 모은설 작가만의 깊은 인류애가 자리한다.
1996년부터 KBS에서 일을 시작한 모은설 작가는 예능 '뭉쳐야 찬다' 시리즈를 비롯해 '뭉쳐야 뜬다' '승승장구' '옥탑방의 문제아들' ‘뜨거운 씽어즈' '흑백요리사'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예능들을 기획하면서 대중을 울리고 웃긴 굵직한 예능들을 탄생시켰다. 모은설 작가는 현재 MBN '언포게터블 듀엣', JTBC '뭉쳐야 찬다' '우리들의 발라드'를 맡고 있으며 넷플릭스 '흑백요리사2', 디즈니플러스 '운명전쟁49' 공개도 앞두고 있다. 최근 가장 핫한 예능들은 모두 모 작가의 손을 거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모 작가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5일 첫 방송된 MBN '언포게터블 듀엣'은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출연자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감동적인 듀엣 무대가 그려지는 리얼리티 뮤직쇼다. '언포게터블 듀엣'은 음악이라는 매개를 통해 기억과 관계, 그리고 삶의 의미를 다시 묻는 형식의 서사 구조를 강조한다. 특히 첫선을 보였던 이철호와 그의 어머니의 무대는 작위적 설정이나 인위적인 장치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더욱 여운을 남겼다. 인위적인 장치보다 삶이 먼저인 무대는 늘 모 작가가 추구해온 방식이다.
여러 작품을 병행하며 힘들진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모 작가는 "영혼을 갈아넣고 있다. 겹치기도 했다"라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가벼운 농담이었으나 그 안에는 묵직한 책임감이 배어 있었다.
'언포게터블 듀엣' 속 글로벌 통용하는 정서
'언포게터블 듀엣'은 모 작가가 3년 전에 만든 기획안이다. '판타스틱 듀오' '유희열의 스케치북' 등 음악쇼를 만들었던 노하우가 모두 축약됐다. 여기에 모 작가는 해외 콘텐츠 시장에서 K-콘텐츠가 보다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요소로 새로운 음악 장르의 변주를 노렸고 '언포게터블 듀엣'이 그렇게 탄생됐다. 모 작가는 서바이벌 예능의 범람 속에서 사람을 중심으로, 사람을 더 돋보이게 하는 예능을 떠올렸다.
모 작가는 "음악은 결국 '누가' 부르냐가 관건이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달라져야 하고 새 인물이어야 한다. 고민을 하던 중 한 해외 치매 센터에서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니 순간적으로 기억을 되찾는 환자의 영상을 봤다. 여기에 착안을 했고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과 기억을 붙잡고 싶은 사람이 듀엣을 한다는 헤드라인의 한 줄이 떠올랐다"라고 설명했다. 또 한국 시청자들의 까다로운 눈높이를 맞추면서도 글로벌로도 다 통용될 수 있는 정서를 구현해야 했다. 모 작가에 따르면 '언포게터블 듀엣'은 현재 호주·뉴질랜드·인도·터키·일본·대만 등과 포맷 옵션 계약이 진행됐다.
모 작가는 "해외 시청자들 역시 따뜻한 음악쇼, 스토리가 있는 쇼를 원하는 것 같았다. 포맷으로 제가 기획 개발 제작을 했으니 의미가 남다르다"라면서 유독 애착을 가진 이유를 밝혔다. "'언포게터블'은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긴 했지만 사실 한국 시청자들의 허들이 더 높아요. 한국은 시즌이 반복되면 이전 시즌과 계속 비교되거든요. 그래서 저는 무엇보다 한국에서 제가 만족할 만한 퀄리티를 만드는 게 목표였습니다. '글로벌'을 목표로 했지만 한국에서 잘 만들어지는 게 우선이었습니다."
모 작가는 '언포게터블 듀엣' 제작이 결정됐을 때 기쁨과 동시에 우려도 컸단다. 치매를 앓고 있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았기 때문에 변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사전 기획 단계부터 의학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받고 또 현장에서 의료진을 상비시켜 놓으며 돌발 상황에 대비했다.

치매를 앓고 있는 주인공을 직접 인터뷰를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러야 하는 포맷이기에 모 작가 역시 때로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모 작가는 "현장에서 '이분이 과연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싶다가도, 스튜디오에 오면 어느 순간 기적처럼 노래를 하신다. 어느 출연자는 기억의 버스에 오르는 순간 치매가 맞나 싶을 정도로 삶의 한 순간을 또렷이 떠올리며 기억을 되살리기도 한다. 기적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지만 기적이라는 말 외에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MC 장윤정씨도 '미쳤다'라고 할 정도다"라면서 감격스러웠던 순간을 떠올렸다.
섭외는 더 어려웠다. 치매라는 병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사회 분위기, 돌봄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죄인처럼 여겨지는 시선 탓에 가족들의 망설임이 컸다. 모 작가에 따르면 파일럿 출연자인 홍지민 역시 처음에는 많이 주저했지만 제작진의 취지에 동의해 출연이 성사됐다. 다음주 방송 예정인 철가방 요리사는 자신의 불우했던 시절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으나 할머니와의 마지막 추억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에 출연을 결심했다.
"출연자들, 영상으로 기록되는 것에 감사하다고 인사"
모 작가는 이러한 상황을 짚으면서 "그럼에도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다'며 출연을 결정하는 분들이 있다. 소중한 순간을 영상으로 남겨주는 것에 대해 제작진에게 많이 고마워하신다. 기억이 없어 되돌릴 수 없던 순간들을 영상으로 보며 함께 기억할 수 있다는 점을 좋아해 주신다"라면서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언포게터블 듀엣'에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의 순간들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사전 리허설까지 할 수 없었던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이들이 가족의 손을 잡고 함께 무대에 올라 노래를 따라 부르는 장면은 어느 드라마,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명장면이다. 모 작가는 "기억을 잃은 치매 어르신들이 흐릿한 기억 속에서 본인이 젊은 시절 즐겨 불렀던 노래를 기적처럼 따라 부르기도 한다. 저는 기적을 믿지 않는 편이었는데,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정말 신기한 경험을 했다"라면서 "저는 실제로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 되면 믿지도 못하고 구성도 못하는 편인데, 요즘은 좀 더 유연하게 바라보려고 한다. 현장에서 저를 비롯해 모두가 눈물을 흘린다"라고 돌아봤다.
사실 '언포게터블 듀엣'의 론칭이 발표됐을 때 자칫 치매라는 무거운 주제를 동정이나 슬픔으로만 소비하리라는 우려가 있기도 했다. 그러나 베일을 벗은 '언포게터블 듀엣'은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이들과 가족의 관계성, 그리고 음악의 힘을 균형감 있게 조명하며 감동 이상의 감정들을 선사한다.
이에 모 작가는 "신파적으로 다루거나 눈물을 짜내고 싶지 않았다. 그럴 의도로 만든 프로그램도 아니다. 음악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다.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과 음악이 만나면 폭발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슬픔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어느 순간 기억을 해내는 그 찰나를 시청자와 함께 즐기고 싶었다. 그런데 하다보니 그들의 인생이 자연스럽게 담기기 때문에 눈물이 날 수밖에 없다"라면서 기획 의도를 강조했다.
그렇기 때문에 모 작가를 비롯한 제작진의 가장 큰 걱정은 치매 주인공들의 컨디션이다. 치매인들은 새로운 환경에서 불안감을 느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무대에서의 리스크를 최대한 축소시켰다. '언포게터블 듀엣'이 극적 장치를 가졌지만 신파스럽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서 나온다. 불필요한 스토리나 신파 요소는 다루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상황을 담으려는 제작진의 신념 덕분이다.

모 작가는 좋은 프로그램, 가치 있는 프로그램은 어떻게든 조명을 받는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이지 않더라도 가치가 있다면 시청자들이 충분히 알아보리라는 강한 확신이 전달됐다. "'언포게터블 듀엣'의 재미는 한 사람의 인생사와 스토리가 음악과 엮여 있다는 점입니다. 출연자들 모두 의미가 있는 사연들이 있어요. 회차마다 주인공이 정해지면 그 사연과 룩에 맞는 가수를 고민해요. 홍지민씨는 딸의 마음을 가장 잘 대변해줄 양희은 선생님이 맞겠다고 느꼈고, 철가방 셰프의 할머니는 어린시절 배달원 생활을 했던 임창정씨가 손자 같은 이미지라 좋겠다고 판단했어요. 음악쇼라는 정체성에 맞춰 무대를 완성해줄 가수를 섭외합니다."
'우리들의 발라드'와 '흑백요리사'의 공통점
모 작가의 또 다른 히트작 SBS '우리들의 발라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흑백요리사'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잘 되는 예능이 좋은 예능"이라고 힘주어 말한 모 작가는 "예능은 결국 사람들이 많이 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개인의 역량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출연자와 수십, 수백명의 스태프, 많은 인력과 비용이 들어가서 프로그램 하나가 탄생을 한다. 시청자들이 많이 본다는 것, 화제가 됐다는 것은 사람들의 시청 욕구 를 만족시켰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모 작가의 작품들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사람이 중심이라는 것이다. 최근 가구 시청률 5.3%(닐슨코리아 수도권 2부 기준), 9주 연속 화요 예능 전체 1위를 차지한 '우리들의 발라드' 역시 심사나 경쟁보다는 무대 위의 참가자를 전면으로 내세우면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어루어만졌다. 여타 서바이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빌런이나 '악마의 편집'은 모작가의 프로그램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모 작가는 '우리들의 발라드'를 언급하면서 "시작할 때 어린 10대 친구들이 발라드의 서사와 감수성을 소화할 수 있냐는 주변의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그 나이만의 해석이 주는 의미가 있다고 확신했다. 나이로 재단하는 건 기성세대 기준의 시선일 뿐이다. 30대인 아이유가 70대인 최백호 노래를 부르듯, 10대가 발라드를 부르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다"라면서 의미를 되짚었다. 실제로 아이돌 서바이벌이나 트롯 서바이벌을 보지 않는다고 말한 모 작가는 "제가 보고 싶지 않으면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이 시점엔 발라드를 해야겠다고 판단했다. 발라드만 부르면 처지지 않겠냐는 반대도 많았지만, 저는 확신이 있었다. 결과에 대한 불안감은 있었지만 새로운 키워드를 던질 수 있겠다고 봤다"라면서 '우리들의 발라드'를 기획하게 된 계기를 전했다.
작가의 책임감?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 보여주고파
많은 프로그램들이 모 작가의 이름을 걸고 있다. 이에 모 작가는 "책임감은 계속 커진다. 제가 하는 프로그램은 다 잘 돼야 한다(웃음)"라고 유쾌하게 답했다. 그러면서도 "저는 "늘 '어떻게 다르게 할까'를 고민한다. 남들이 했던 걸 그대로 할 순 없다. 시청자들이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라며 소신을 드러냈다.
토크쇼와 음악 위주의 프로그램을 했던 모 작가에게 '요리'는 언젠가 도전해보고 싶었던 키워드다. 스스로를 제한하지 않으려는 신념 때문에 창작의 폭은 한없이 넓어졌고 그렇게 '흑백요리사'가 탄생했다. 모 작가는 "저는 그 순간 사람들이 뭘 보고 싶어할지, 나라면 뭘 보고 싶을지를 기준으로 프로그램을 만든다. '흑백요리사'는 우리가 본 적 없는 서바이벌을 만들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셰프들의 업이 걸린 만큼 모든 출연자를 소중하게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참가자들이 출연한 것을 후회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제작에 임했다"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모 작가의 영감은 어디서 올까. 이에 모 작가는 "많이 보고, 생각을 끊임없이 열어두려고 한다. 레이더를 늘 켜 놓고 생각나면 바로 메모해 둔다. 콘텐츠도 보고, 기사, 댓글도 보고 외국 쇼도 본다. 전시·맛집 등 모든 경험을 방송과 연결해 본다. '우리들의 발라드' 곡 리스트도 그렇게 쌓였다"라면서 기획의 원천을 전했다.
긴 시간 수많은 프로그램을 세상에 꺼내보인 모 작가에게 가장 만족도를 준 프로그램은 '흑백요리사'다. "20년 넘게 KBS에서 레귤러 프로그램만 하다가 처음으로 시즌제를 했고 준비 기간만 1년이 걸렸어요. 음악쇼 경험을 살려 세트 디자인까지도 아이디어를 내며 제가 했던 모든 노하우를 집약해 만들었어요. 글로벌 성공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글로벌까지 인정받았어요. 그 만족감이 남다르더라고요."
우다빈 기자 ekqls064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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