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폼 美친 박지현, '은중과 상연'이 남긴 또렷한 이름 [인터뷰]
작성자 정보
- 작성자 토도사연예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조회 3
본문
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10대의 질투와 동경, 20대의 오해와 단절, 30대의 불편한 재회, 그리고 40대의 화해와 포용까지. 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은 평생에 걸친 두 여자의 얽히고설킨 관계의 굴곡을 따라간다. 그 끝에서 상연(박지현)은 암에 걸린 몸으로 은중(김고은)을 찾아가 조력 사망을 함께해 달라고 청한다. 박지현은 "삶과 죽음의 경계까지 이어진 서사를 연기하는 건 배우로서 큰 축복이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상연은 박지현의 몸을 빌려 쉬이 여운이 가시지 않는 애틋한 인물로 살아났다. 박지현이 아니라면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그는 상연의 결핍과 아픔을 오롯이 품어냈다. 끝내 말하지 못한 말과 억눌러 삼킨 감정들이 눈빛과 호흡을 통해 번져 나왔고, 그 밀도는 시청자의 마음을 오래도록 붙잡았다. '은중과 상연'은 박지현이라는 배우의 깊이를 확인하게 만든 작품이자, 그의 연기를 더 많이 오래 지켜보고 싶도록 했다.
박지현이 '은중과 상연'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했다. 배우로서 늘 갈망해 온 "서사가 풍부한 캐릭터"였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이미 한 차례 호흡을 맞췄던 조영민 감독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무엇보다 평소 존경하던 김고은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은 그에게 결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서사가 풍요로운 캐릭터에 대한 갈증이 늘 있었어요. 게다가 대본 자체가 정말 재밌었고 감독님과의 작업 경험도 있었죠. 존경하고 선망하던 김고은 선배가 출연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안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 순간 '이 작품은 어쩔 수가 없다, 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상연은 선악의 잣대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인물이다. 겉으로는 날카롭고 삐딱하지만, 내면에는 어린 시절부터 채워지지 못한 결핍과 애정의 갈망이 깊숙이 자리한다. 박지현은 어떤 행동에도 그만의 이유가 있다고 믿으며 이해를 통해 상연을 입체적으로 구축해 나갔다.
"저는 인물이나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선과 악으로 나눈다면 악에 속하는 선택일지라도 그 사람에겐 최선일 수 있잖아요. 상연도 겉으로는 솔직하지 못했지만, 속으로는 늘 사랑을 갈구하는 친구였어요. 그래서 상연에 행동에 '왜 이럴까'라는 의문보다는 이해의 마음을 다가갔어요."
상연의 40대 서사는 조력 사망이라는 무거운 주제와 맞닿아 있다. 박지현에게도 이는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없는 주제였다. 그는 작품을 준비하며 관련 자료를 찾아 읽고, 상연의 마음을 최대한 이해하기 위해 치열하게 몰입했다. 그 과정에서 죽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배우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고민이 깊어졌다.
"이 대본을 읽고 처음으로 조력 사망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관련된 책이나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자세히 들여다보려 했죠. 관련해 제 입장을 쉽게 드러낼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상연의 마음을 따라가다 보니 삶의 벼랑에 선 사람에게 죽음을 선택할 자유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촬영 과정은 쉽지 않았다. 특히 40대 상연을 연기할 때는 감정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일부러 울고 촬영을 이어간 적도 있었다. 죽음을 앞둔 인물이 가진 초연함과는 달리 자신은 눈물이 멈추지 않아 감정을 눌러 담는 것이 더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몇 년 치 눈물을 한 작품 안에서 다 쏟아냈다는 고백도 이어졌다.
"촬영 전에는 일부러 울고 들어가기도 했어요. 죽음을 앞둔 초연한 모습과 달리 감정이 계속 북받쳐서 참는 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제 바스트 샷을 마지막에 찍을 수밖에 없었죠. 이 작품을 하면서 몇 년 치 눈물을 다 흘린 것 같아요."
특히 박지현은 현장에서 김고은이 만들어준 안정감 덕분에 마음껏 상연으로 살아낼 수 있었다고 했다. 김고은이 흔들림 없이 중심을 잡아준 덕에 극한까지 몰입할 수 있었고, 그것이 곧 상연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힘이 됐다고. 그는 "김고은이라는 배우가 있었기에 지금의 연기를 보여줄 수 있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고은 언니가 있어서 저는 정말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제가 어디로 무너지든 다 받아내 주셨거든요. 그래서 상연을 더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었죠. 그래서 한편으로 언니에게 미안해요. 연기 호평도 제가 받으면 안 되는 거고, 또 많은 칭찬을 받고 있는데 그 칭찬도 김고은 언니의 것이라고 생각해요."
박지현은 김고은과의 호흡을 떠올리며 인터뷰 도중 많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상연이의 결핍을 오롯이 받아내는 은중의 존재는 그에게도 버팀목이었고, 현장에서의 교감은 애틋한 경험으로 남았다. 그는 김고은 덕분에 자신이 한계까지 몰입할 수 있었음을 고백하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김고은 언니가 없었다면 저는 이렇게 연기하지 못했을 거예요. 언니처럼 되고 싶어서 현장에서 계속 따라했어요. 그런데 촬영 후 완성본을 보고 '김고은을 못 이긴다, 난 절대 저렇게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감히 도달할 수 없는 경지라고 느꼈고 왜 다들 선배와 작품을 하고 싶어하는지 뼈저리게 알았어요. 나와는 다른 힘을 가진 분이고 그래서 제 길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박지현은 이 작품을 통해 친구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다시 고민하게 됐다. 과거에는 100% 신뢰할 수 있는 사람만을 친구라 여겼지만, 지금은 그 관계의 이름보다 서로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작품에서 은중과 상연의 관계 역시 가족, 연인, 동반자 등 여러 의미가 겹쳐지는 특별한 존재였다.
"예전에 예능에서 친구가 없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땐 100% 믿을 수 있는 사람만을 친구라고 생각했거든요. 어찌 보면 짧은 생각으로 설명 없이 안일하게 말한 것 같아요. 그래서 당시에 많은 오해를 산 것 같아서 반성했죠. 작품을 하면서 보니 친구라는 정의가 꼭 고정돼야 할 필요는 없더라고요. 은중과 상연도 누가 보면 친구일 수 있고, 연인일 수 있고, 가족일 수도 있는 관계였어요."
'은중과 상연'은 박지현에게 삶의 태도를 바꾸는 계기를 가져다줬다. 이전까지는 죽음을 멀리 있는 개념으로만 여겼지만, 상연을 연기하면서 죽음이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는 죽음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던 시선에서 벗어나 잘 죽는 것이 곧 잘 사는 것과 연결될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을 얻었다.
"'은중과 상연'은 저의 가치관을 변화시켰어요. 이 작품을 하기 전까지 죽음은 제게 아주 먼 이야기였어요. 그런데 상연을 살다 보니 죽음이 우리 삶과 굉장히 가까이 있다는 걸 느꼈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잘 죽는다는 게 결국 후회 없이 잘 사는 것과 같은 말이구나, 그런 가치관이 생겼습니다."
관련자료
-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