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박찬욱이 '어쩔수가없다'를 꽉 채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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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토도사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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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우울하다고 비극이 강해지는 건 아니죠."
이미 잘 알려진대로 박찬욱 감독 새 영화 '어쩔수가없다'(9월24일 공개)는 원작이 있다. 미국 작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Donald E. Westlake)가 1997년에 내놓은 소설 '액스'(The Ax)다. 중산층 남성이 회사에서 정리해고 당한 뒤 다시 취업하기 위해 잠재적 경쟁자들을 살해하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박 감독 영화와 원작은 이야기 얼개가 유사하나 형식은 상반된다. 소설은 상대적으로 미니멀하고 차갑다. 버크 데보레라는 남성의 살인 행각과 그의 심리 상태에 온통 초점이 맞춰져 있고, 미국 교외 주택가의 황량함이 더해져 대체로 텅 비어있다는 인상을 준다. 영화는 상대적으로 맥시멀하고 뜨겁다. 만수의 연쇄 살인은 그것대로 그려지는 것과 함께 소설이 거의 다루지 않는 아내의 처지를 구체화하고 피해자 사정에 귀기울인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 모두에 의미를 부여한 연출, 말과 행동을 총동원한 유머도 더해졌다.
"소설엔 은근히 풍겨 나오는 코미디가 있는데 그게 좋았죠. 공장 시스템에서 소외된 노동자를 다룬다는 점에서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가 생각 나기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까 더 코믹한 쪽으로 가게 됐습니다. 물론 이건 굉장히 슬픈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슬픈 이야기라고 해서 시종일관 우울하게 묘사하면 그 비극성이 더 강해지는 건 아니라고 본 겁니다. 반대로 웃길수록 연민이 더 커지고 이 비극성이 더 잘 드러난다고 봤어요. 자기 직업 세계에선 프로페셔널인 만수가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는 데는 매우 초보라서 허둥지둥하는 사람이 된 거죠. 이때 만들어지는 코미디, 이건 정말 슬픈 겁니다."
박 감독은 빈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꽉 채운 연출이 전작인 '헤어질 결심'(2022)에 의식적·무의식적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했다. 그는 "내 영화는 언제나 전작과 달라지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헤어질 결심'과 정반대 방향으로 뛰어가겠다는 의도는 명확해 보인다. '헤어질 결심'이 시적이고 정적이라면 '어쩔수가없다'는 산문적이고 동적이다. '헤어질 결심'이 비어 있다면 '어쩔수가없다'는 차있다. '헤어질 결심'이 여성 서래에 관한 영화라면, '어쩔수가없다'는 남성 만수에 관한 영화다. '헤어질 결심'이 평가절하 당한 여성을 구원하는 이야기였다면, '어쩔수가없다'는 추어올려질 뻔한 남성을 나락으로 밀어넣는 이야기다.
"반복은 지루해요. 나 스스로도 일하는 재미를 위해서라도 반복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 영화 중에 미니멀하다고 한 다면 '복수는 나의 것'이 가장 그럴 겁니다. 그것만큼은 아니지만 '헤어질 결심'도 그렇고요. 맥시멀하다고 한다면 '올드보이'나 '친절한 금자씨'가 있을 거고요. '어쩔수가없다'는 뒤에 두 편처럼 절제 없이, 한 장면에 필요한 게 있다면 그것을 주저하지 않고 다 넣어서 표현하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박 감독이 수 차례 말했던 것처럼 그는 이 원작을 읽자마자 영화화를 생각했다. 그게 16년 전 일이다. 한 예능프로그램에 나온 박 감독은 "판권을 사기 전부터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액스'에 단번에 매혹됐다는 얘기였다. 해고당한 노동자 이야기는 언뜻 직장인이었던 적이 없는 영화감독, 거장으로 불리는 박 감독과 접점이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는 실직의 공포를 너무 잘 이해한다며 경력 초창기 얘기를 했다. 박 감독은 "'JSA' 전 까지는 나도 너무나 어려운 시절을 겪었다"고 했다. 그가 첫 두 편의 영화를 속된 말로 말아먹었다는 건 영화 팬이라면 다 아는 얘기다.
"어떻게든 영화를 해보려고 시나리오 들고 영화사를 찾아다닌 시간이 7~8년 되죠. 당시엔 감독이 자신이 만들 영화 제목이 들어간 명함을 받으면 마음을 놓고 영화가 나온다는 걸 대체로 확신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당시에 휴지조각이 됐던 명함이 여러 개였죠.(웃음) 그때 그 시간의 공포가 아직도 제 마음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어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에 제 영화가 수익을 내지 못하면, 아마 한 두 편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세 편 네 편 된다면 아무도 제 영화에 투자하지 않을 거예요."
'어쩔수가없다'는 올해 베니치아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해 만장일치에 가까운 극찬을 이끌어냈다.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선 압도적인 관객 지지를 이끌어내 국제관객상을 받았다. 다소 이른감이 있긴 하나 미국 일부 매체는 '어쩔수가없다'가 내년 3월에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주요 부문 후보에 오를 거라고 내다보고 있다. 박 감독은 흥행도 중요하고 오스카 후보가 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겠지만, 한국영화 재부흥에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관객이 이 영화를 보고 한국영화를 또 보고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흥행했으면 좋겠냐, 수치를 제 입으로 말하는 건 좀 그렇고…(웃음) 업계에서 혹은 언론에서 한국영화 혹은 영화관의 기운이 되살아난다고 느낄 정도로 혹은 그런 기사가 나올 수 있을 정도의 흥행이 되면 좋겠습니다. 심지어는 꼭 한국영화가 아니어도 좋으니까 극장에서 영화 보는 경험이 해볼 만한 경험이었다는 걸 다시 느낄 수 있게 해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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