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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정은 "역할을 향한 극한의 의심이 35년차 배우로 저를 이끌어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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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토도사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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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정은 ⓒNEW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조정석 배우는 코미디에 있어서 천재과였고 최유리 배우의 리액션은 최고였어요."

영화 '기생충'과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낮과 밤이 다른 그녀' 등에서 스릴러와 시대극, 코믹을 오가며 진폭이 넓은 연기력을 선보여온 배우 이정은이 영화 '좀비딸'로 대표작을 추가했다. 550만 관객을 돌파하며 올여름 최고 흥행작에 오른 '좀비딸'은 글로벌 누적 조회수 5억 뷰를 기록한 웹툰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이 세상 마지막 남은 좀비가 된 딸을 지키기 위해 극비 훈련에 돌입한 딸바보 아빠의 이야기를 그린 코믹 드라마다. 

배우 이정은을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작품 속에서도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그녀였지만 실제 만나 대면해보니 1시간이 짧을 정도로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하다. 특히 인터뷰 내내 오랜 시간 배우로서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며 쌓아온 인생의 지혜와 혜안들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모습에서 연기 내공 뿐만 아니라 현자의 면모까지 느껴진다. 

이정은이 '좀비딸'에서 연기한 밤순 캐릭터는 흥과 정이 넘치고 음주가무는 물론 케이팝까지 빠삭한 은봉리의 힙한 할머니다. 밤순은 어느 날 몹쓸 바이러스에 걸려 은봉리로 돌아온 손녀 딸 수아와 아들 정환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이다.

"작은 체구에 외적으로는 귀여워 보이지만 평소 음주가무에도 능한 할머니로 설정했었죠. 와이어 액션도 예정돼 있어서 체중 감량도 조금 했어요. 감독님의 제안으로 랩도 만들고 춤도 추시며 지내시는 칠곡 할머니들의 다큐멘터리도 참고 했어요. 어머님들의 삶 안에 자식을 잃었다거나 또 다른 슬픔들도 있었는데 그걸 랩이나 춤으로 녹여내시더라고요. 그런 지점에서 밤순에게도 큰 래퍼런스가 됐죠."

배우 이정은 ⓒNEW

이정은은 '좀비딸'에서 일반적인 노인 캐릭터와는 달리 톡톡 튀는 에너지와 인생의 연륜을 지닌 밤순을 다채롭게 표현해내며 관객들에게 더욱 큰 호응을 얻었다. 아들 역 조정석과 불과 10살 차이지만 이번 밤순 캐릭터를 제안 받고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나문희 선생님이나 김수미 선생님이 제 나이 때 이미 노인 역할들을 하셨잖아요? 제가 틈새를 노려서 이런 저런 역할들을 해봤지만 이번에 밤순 캐릭터를 제안받은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동안 제 나이대의 역할들을 잘 해오다가 '낮과 밤이 다른 그녀'에서 갑자기 20대와 제 나이대를 오가는 역할을 했더니 지치더라고요. 50대 중반의 나이에 할머니 역을 연기하고 나서 '우리들의 블루스' 때도 못들어 본 귀엽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어요. 실제로 할머니가 됐을 때 밤순처럼 올림 머리 헤어를 하고 다녀야 겠어요."(웃음)

연출을 맡은 필감성 감독은 장르적 긴장과 리듬을 유지하면서도 웃음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데뷔작 영화 '인질'과 드라마 '운수 오진 날' 등에서 관객과 시청자들을 살 떨리는 긴장감으로 몰아넣는데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던 필 감독은 '좀비딸'에서는 웃음과 눈물 구간을 조화롭게 배치하며 연출자로서의 내공을 발휘했다.  

"필 감독님 별명이 '피감성'이에요. 그런 별명이 나올 정도로 장르물을 잘 찍으시죠. '인질' 초반의 긴박감이 장난 아니었죠. 이번에 코미디 장르이긴 하지만 쫀쫀하고 긴박한 상황에서 나오는 코미디가 있어요. 개인적으로도 코미디에 관심도 많고 상황이 딱 떨어지는 코미디를 추구하시더라고요. 이번 영화에서 필 감독님이 컷을 안주시면 애드리브를 했을 때 끝까지 해보려고 했어요. 함께 한 조정석 배우는 코미디에 있어서 천재과였어요. 그에게는 진지함을 뚫고 나오는 코미디가 있죠. 정석 씨가 유리와 같이 좀비 흉내를 내는 장면만 봐도 온몸에 코믹 감각이 있잖아요." 

배우 이정은 ⓒNEW

극중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좀비가 된 손녀딸 수아에게 적당히 순화된 욕도 섞어가며 혼내곤 하는 밤순의 모습은 사투리 녹취 선생님을 5명이나 두고 훈련한 이정은의 노력 속에서 탄생했다. 이정은은 예전 같으면 사투리 연기의 어려움이나 노력에 대해 숨기곤 했지만 이제는 솔직히 털어놓아야 할 때인 것 같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번 사투리를 녹취할 때 총 5명의 선생님을 만나뵜어요. 사투리 선생님을 붙여서 연습했죠. 예전에는 제 자랑 같아서 이런 이야기를 안했는데 이번에 노력을 많이 했어요. 밖에서 혹시 결과만 보시고 '천부적 재능이다, 손쉽게 얻었다'라고 생각하실까봐 솔직히 노력했다는 이야기를 드리는 게 맞을 것 같더라고요. 어떨 땐 사투리 연기에 번아웃이 온 적도 있었어요. 사투리는 배우의 연기에 리얼한 느낌을 가지게 해주는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하는데 열심히 연습해도 잘 도달하지 못할 때가 있었죠. 지금은 그것도 용서가 되는데 한참 연기할 때는 '왜 이렇게 열심히 해도 그 지역 사람처럼 안 보일까'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너무 욕심이 컸죠. 마치 지방 친구들이 서울 말을 잘 쓰다가 감정이 올라가면 자기 지방 말이 나오는 것처럼 저도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예전에는 결과에 많이 매달렸다면 지금은 과정을 중요시하고 있어요. 제가 너무 결과에만 집착하지 않고 과정에 집중한다면 이 시간을 좀 더 즐겁게 가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병헌 씨가 매번 영어 인터뷰 하시는 걸 눈여겨 보는데 몇년 전 인터뷰와 올해 인터뷰는 선택하는 어휘나 어순이 다 달라지셨더라고요. 역시 언어하는 사람의 노력이 느껴졌어요. 정말 훌륭한 분이죠. "

이정은은 영화 '좀비딸'이 지닌 기존 할리우드 좀비물과의 차이점과 매력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무조건 죽여야 하고 피해야만 하는 미국식 좀비와는 다른 기억력을 지닌 좀비라는 설정이'좀비딸'을 좀 더 특별한 영화로 만들어줬다는 것. 

"우리 영화는 기존 좀비물들과는 좀 달랐죠. 좀비를 훈련시킬 수 있다고 설정했고 웹툰에서도 그랬지만 좀비가 기억의 일부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걸 알아내는 부성애까지 이야기하고 있어요. 원작에서는 정환이 동물 사육사가 아닌 번역가의 직업이었을 거예요. 필 감독님은 동물도 사람과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뇌구조를 지닌 정환이라는 인물을 통해 기존 좀비 장르와는 차별화를 이루실 수 있었죠. 좀비 장르가 태생이 미국산이고 거기서는 사람을 해하거나 혹은 사람이 피해야 하는 존재라면 '좀비는 정말 악한 존재인가, 이것을 왜 우리는 공포스럽게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써 이 영화만의 색다른 매력을 탄생시킨 것 같아요."

배우 이정은 ⓒNEW

배우 최유리가 연기한 손녀 수아 역에 대해서는 가장 긴 시간을 할애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실제 최유리는 이정은과 30년도 훌쩍 뛰어 넘는 나이차가 존재하지만 이정은은 그녀를 아역 배우로 인식하기보다 동등한 상대 배우라고 생각하며 호흡을 이뤄나갔다. 

"최유리는 굉장히 독특한 배우에요. 나뭇가지에 걸린 곤충을 놓고 관찰을 하고, 소설을 엄청 읽고 글도 쓴다. 보통 또래와 다른 감성을 가졌어요. 예술가적 기질이 있었죠. 또 현장에서 모든 스태프분들에게 항상 감사하다는 표현을 잘 했어요. 10대라고 해서 어리다고만 볼 수 없었고 존중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어요. 사실 좀비 분장이 여러 번의 터치가 필요하고 쉬운 분장이 아니었을 텐데 제가 영화를 보다가 유리 배우의 뛰어난 리액션 때문에 정말 여러번 놀랐어요. 유리 배우가 리액션을 잘 받아줬기에 밤순과 수아 사이의 뛰어난 케미가 나왔던 것 같아요. 좀비가 된 후 밤순 할머니에게 혼나거나 핀잔 듣는 장면에서도 단계별로 진화해나가며 잘 리액션해줬어요."

이정은은 한양대학교 연극과 재학당시인 1991년 연극 '한여름밤의 꿈'으로 데뷔했다. 35년 연기 인생 중 그가 최고의 대표작으로 꼽는 세 작품은 영화 '기생충'(봉준호 감독/2019),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극본 김은숙, 연출 이응복/2018) 그리고 영화 '좀비딸'이다. 마니아 팬들 사이에서는 손꼽히는 미스터리 드라마인 OCN '타인은 지옥이다'(극본 정이도, 연출 이창희/2019)에서 희대의 악녀 엄복순을 연기하며 악역에서도 발군의 연기력을 보였던 에피소드를 설명하던 중 이정은은 오랜 시간 연기해오며 자신만이 지녔던 연기 원칙 하나를 슬며시 꺼내놨다.   

"'타인은 지옥이다' 때 저도 악역을 안해봐서 처음에는 부담됐어요. 그때 이창희 감독님이 '멋있게 최후에 죽여드릴 테니 극중 사람을 죽이는 장면에서 죄의식을 가지지 말고 즐겁게 죽여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인물은 그 방법 밖에 없다고요. 그렇게 최후를 약속 받고 찍었죠. 그런데 제가 놀 수 있는 공간을 감독님이 열어주셨기에 그렇게 연기를 할 수 있었어요. '좀비딸'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사실 자식도 잃어보고 슬픔을 간직한 인물인데 좀비가 된 손녀딸에게 어떨 땐 따끔할 정도로 엄하고 또 어떨땐 자애롭잖아요? 필 감독님이 '시골에는 이런 어머니들이 많다'고 문을 열어주셨죠. 연출자가 그런 말씀을 해주시니 접근하는데 두려움이 없었어요. 저는 병적으로 의심이 많아요. 연기라는 건 믿음이 가장 중요한데 어딘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최대한 제 몸에 붙여보고 싶어요. 제가 완벽하거나 완숙한 배우가 아니여서 자꾸 의심이 들어요. 일상에서는 말썽부리는 10대 같은 성격이라면 연기에서는 정말 열심히 해서 꼭 도달해보고 싶어요. 모든 작품에서 제가 찾고 담으려한 걸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열심히 동아줄을 붙들고 제 몸에 맞을 때까지 도달해보고 싶어요."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msj@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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