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담 야설

불행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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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아니 이제 어제군요) 마누라 비슷한 처자가 퇴근하자마자 서방님이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소설 처녀작을 보여드리고 지도편달을 부탁드렸습니다. 이 분께서 그래도 나름 고등학교 문예창작반 지도교사이신지라.
 
대뜸 쳐다보지도 않고 내뱉으시는 말씀.
 
"지랄~ 백수가 놀다 놀다 이젠 별짓을 다."
 
"어허, 서방님께 지랄이라니...읽어도 안보냐?"
 
말은 그리 해도 나름 진지하게 읽어주시더군요. 귀에는 아이팟 꼽으시고-.-;;
 
다 읽으시더니만 절 째려보시는 그 분의 단순호치에서 나직한 말씀이 흘러나오시더이다.
 
"이거 아저씨 얘기잖아요"
 
천연포커페이스에 욕설부터 존대말까지 참으로 다양한 버라이어티 랭귀지를 구사하십니다.
 
"내가 얘기 지어낼 상상력도 안되고, 어디까지나 모티브, 모티브"
 
"글쎄, 와이프한테 첫사랑뇬이랑 붙어먹었던 얘기를 디테일하게 글로 들이미는 이건, 혹 댁의 브랜드뉴 변태플레이?"
 
"무신 말도 안되는 모함을....리뷰해달라니까"
 
"흠...첫경험 묘사 부분은 묘하게 리얼리티가 살아있는데...연속 다섯번씩이나...나한테는 언제쯤이나 이런 숨겨진 정력을 보여주실라나?, 우리 서방님"
 
"야야, 중학생때랑 반칠십때랑 같냐...아니 이게 아니고.. 모티브만 땄다니까, 모티브만. 장난 그만하고 진지하게 리뷰 좀 해줘봐봐"
 
"이게 지금 장난하는 걸로 보여? 나 지금 진지하게 질투중인데."
 
...어쨌든 애초에 리뷰나 좀 해달랬던 의도는 온데 간데 없고, 다섯번 연속이라는 쓸데없이 디테일한 부분에만 집착하시는 마나님과 합궁하는 걸로 대충 상황 종료.
 
마나님께선 여전히 '다섯번!'만 외치고 계십니다만...-.-;; 어째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거사를 마치고 침대에 나란히 엎드려 누워 바닥에 놓인 사과를 집어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도란도란(이라 쓰고 가시돋힌이라 읽는...) 나누다가 재밌는 놀이 하나 하게됐네요.
 
가칭 '불행놀이'. 예전에 노팅힐에서 보고 힌트를 얻은건데, 서로 누가 더 불행한가 얘기하는 거죠.
 
일단 저 먼저 늘어놓자면,
 
-첫사랑이 동네선배한테 강간당해서 쫑났다
 
-첫사랑의 상처가 인자 좀 아무나 싶었더니만 애인이 친구놈과 붙어먹는 현장 발견
 
-남들 다 멀쩡히 제대하는 군대가서 발가락 병신됨. 것도 제대 3주 남기고
 
-애새끼까지 논 마누라는 유학가서 코쟁이랑 바람나가꼬 국제우편으로 이혼서류 송달
 
-바람난 건 마누란데 애꿎은 남편이 애새끼랑 생이별
 
-스타워즈 찍는 것도 아니고 난데없이 작은 아버지가 "아임유어파더"하고 앉아있질 않나...
 
-기타 자질구레한 악운들. 예를 몇 개 들자면 반칠십평생 조변피폭횟수 세자리 초과. 공중화장실에서 자동분출방향제 뒤집어쓰기. 교차로에서 멀쩡히 신호받고 직진하고 있는데 신호위반차량에 옆구리 받히기(...까지는 그나마 흔하겠지만 저의 경우엔 4년간 3번이나 당함...-.-). 공사장이나 오프로드 간 적도 없는데 타이어펑크만 15년간 스무차례 이상(아마 반백번쯤 될지도 모름. 그 후로 안 세봤음). 꼬맨지가 언젠데 감히 엉뚱한 색퀴 씨 배고는 나한테 사기치려다 딱 걸린 개념없는 처자가 한 명도 아니고 무려 두 명-.-;;. etc.
 
쓰면서도 괴롭군요 -.-;;;
 
마나님도 처음엔 진지하게 유희에 임하시더니 어느새 본인의 악운을 놀리는 재미에 푹 빠져버리시고....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냐?!!!
 
 
 
 
 
 
 
 
여태까지 우리 서로 참 나쁜 일만 잔뜩이었네, 그지? 우리 이렇게 생각하자. 남들 평생 걸릴 불행, 우린 벌써 다 받은 거라고. 그러니까 이제부턴 우리한테 계속 좋은 일만 생길거라고.
 
우린 축복받은 커플일지도 몰라. 아프게 자라지 않은 사람들은 작은 일에도 쉽게 무너지곤 하잖아. 예를 들면 금새 후회하고 만 잠깐의 바람같은 걸로 많은 부부들이, 연인들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고 헤어지곤 하지. 근데 우리가 서로 엔간한 일 벌어져봐야 끄떡이나 하겠냐? 우린 예방주사 단단히 맞은거나 다름없으니까. 게다가 최소한 우린 서로의 과거때문에 헤어질 일은 없잖아?
 
...라는 매우 감동직스러운 닭살멘트를 불행놀이 피날레로 준비하고 있었단 말입니다!!!!
 
그런데....마나님께서는 제 불행에 저리도 배꼽을 이리저리 흘리고 계시니...흑.
 
진지한 멘트 날릴 기회도 안주면서 맨날 나보고 사람이 무게가 없네 경박하네,라고? 쳇-.- 서방님의 불행한 인생사에 그리도 신나게 웃는 당신, 너무해-.-
 
 
 
 
 
 
 
 
 
 
피에쑤.
이걸 어디서 들었는지 제가 그냥 지어낸건지 가물가물하지만, 우연히 발견한 옛날 다이어리에 이런 글귀를 제가 써놨었더라구요.
 
-악마가 매력적인 이유는 그들 스스로 결코 이길 수 없는 운명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이어리가 아마도 10대 후반 때 썼던거 같은데...요런 말을 지가 지어냈든 어디서 주서 들었든지간에 어린 놈이 제법이었더라구요. 그 시절의 나 자신, 굉장히 무식하고 거칠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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