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몇년전 겨울이었습니다.

친구들과 만나 시내에서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 집으로 들어가려고

택시를 잡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이미 새벽 2시를 넘기고 있었고

집이 제일 멀다는 이유로 친구들이 나부터 택시를 잡아 주었습니다.

친구들이 잡아준 택시에 비몽사몽, 아니 취몽사몽간에 올라타고 창문을 내려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옆을 보니 기사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택시 기사가 단지 여자였다는 이유로 추근댔다거나

또는 수작을 부려보려 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아마도 여자기사가 운전하는 택시를 타신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여자가 옆에 앉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응큼한 생각이 나는 것은 아니지요.

오히려 그런 생각을 했다가는 주위에서 ‘변태’소리를 듣습니다.



술에 제법 많이 취해있어서 등을 시트에 깊게

기댄 채 잠자듯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꽤 오래 걸리는 길이어서 그랬는지

기사(편의상 일명 운전녀)가 몇 마디 말을 건넸고

그저 예의상 묻는 말이려니 하며 눈은 아예 뜨지도 않은 채

묻는 말에 성의없이 대꾸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몇 마디 대화가 오간 어느 순간 운전녀는

갑자기 솔깃한 얘기를 던졌습니다.


운전녀 : 결혼 했나요?

일산마루 : 아니요. 아직 총각입니다.

운전녀 : 한번 갔다 온거유?

일산마루 : 순수 만땅 총각이라구요!




하도 그 질문을 많이 들어서 왜 결혼 안하냐고 묻는 질문엔

아예 귀찮은 듯 대답하곤 합니다.

여기까지 대화만 해도 귀가 솔깃한 부분은 딱히 없는,

아주 일상적이고 건전한 대화였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운전녀는 또 다시 물었습니다.




2.

“총각이면 여자 생각날 땐 어떻게 해요?”



아주 묘한 질문이었습니다.

질문하는 타이밍도 그랬고 목소리의 느낌도 묘한 뉘앙스를

풍기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거기에 술까지 마셔서 제정신도 아니니 얼마나 에로틱한

상상이 되었겠습니까? 그리고는 갑자기 정신이 들었습니다.

비싸게 마신 술이 한순간에 다 깨어버렸습니다.

술자리에서 2차를 못하고 헤어진 아쉬움이 은근히 남아 있어서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기를 근거없이 기대하고 있어서 그랬는지

운전녀의 질문이 매우 야릇했습니다.

대답을 하기전에 얼른 잔머리를 굴려 보았습니다.

이 말이 나오기 전까지 운전녀와의 대화를 다시 복기해보고

그중에 문제되는 대화가 없었는지 점검했습니다.

매우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것을 뒤돌아보는 나의 순발력에 스스로도 감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운전녀의 나이가 39살이라고 말한 사실이 기억났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면 그런줄 알아야지

그런거 따지고 들면 아무 역사도 이루어지지

않는게 남녀의 묘한 심리입니다.

당시 나보다 2살 연상이었으니 한방에 들어가는데는

그리 어려울 것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짧은 시간동안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고는 곧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만 생기면 빠짐없이 해야지요”



내가 생각해도 절묘한 대답이었습니다.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는 듯하면서 혹시나 상대가 맘에 없는 질문에 대한

나만의 오해였더라도 전혀 가문의 명예에 손상을 입히지 않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리고 얼핏 운전녀의 표정 및 분위기를 보니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찬스에 강하고 순간포착이 강한 장점을 잘 알고 있는 내가

직설적인 말로 의중을 물으려 했습니다.

아니면 그냥 집에 가면 되니 별 문제 없었습니다.

잠깐 쪽팔리면 됩니다.

이 넓은 서울 땅에 또 그 택시를 타기란 더욱 힘든 일이니까요.



하늘이 도우려는지 마침 택시는 호텔 캘리XXX라는

지역의 명소를 지나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의중을 묻고 행동의 결정을 지어야 하는 결정적인

말문이 트였습니다.



“U턴!”



3.

별로 이쁘거나 특별히 섹시해 보이지도 않은 운전녀와

굳이 인연을 맺으려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선 술이 이미 적당히 올라 당연히 여자가 생각나는

상황이었고 또 하나는 이 얼마나 해괴망측하고

황당무계한 경험을 실제로 겪게 되는가 하는

기대감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매일 목놓아 기다리는 친구 빛나리를 생각해서라도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naver3 이라는 사이트를 알았어도 한가지 이유가

더 추가되었겠지만 당시엔 그 두가지 이유로도

반드시 가야 하는 이유는 충분했습니다.

호텔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룹 Eagles의 노래 호텔 XX포니아가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조 윌시가 치는 화려한 키타 애드립이 생각났습니다.

그룹 Eagles가 백밴드를 했던 눈이 커다란 Linda Rondstat도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오고 싶어도 올 사람이 없어 못온다는

친구 빛나리의 넓은 이마도 생각났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중에 머리 숱 없는 남자 좋아하는

여인 있으면 내게 메일 주세요.

이 불쌍한 친구를 한번 도와줘야 합니다.



4.

호텔비는 5만원이었습니다.

주머니에 총 6만원이 있었는데 결국 택시비는 1만원만 준 셈이죠.

그건 중요한 일은 아니고 아무튼 순서대로 작업은 진행되었습니다.

제 정신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며

알콜이 가져다 주는 도전정신의 극대화에 대한 논문을 써보려고

생각도 했습니다.



운전녀는 많이 굶주려(?) 있었습니다.

이미 술이 취해 제기능을 못하는 특정신체 부위를 여러번 농락했습니다.

살살해도 되는 일을 뭐가 그리 급한지 매우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아쉬워서 그랬는지 상황에 비해 서비스는 매우 뛰어났고

술기운과 어울려 꽤 괜찮은 밤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운전녀는 새벽 6시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하고 호텔을 나섰습니다.

그걸 곧이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았던 나는 매너있게 인사하고

술과 떡에 취해 잠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운전녀는 정말 6시에 다시 왔습니다.

안 올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다시 왔음에 한번 놀라고 또 다시 시작되는

몇 시간전의 반복상황에 또 놀라고 있었습니다.

상황의 특이함이 주제이므로 상세한 묘사는 생략하겠습니다.

그냥 남들하는 것처럼 했습니다.

빨고 넣고 가끔 돌리고 뒤집고.....아무튼 남들처럼 했습니다.

그리고 믿어지지 않고 쉽게 믿기도 힘든 그일은 별탈없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5.

다음날 아침 친구 빛나리에게 전화해서 간밤의 일을 상세히 말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뻥치지 말라며 웃던 빛나리도 내가 자신에게 뻥을 쳐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곧 깨닫고

매우 부러운 듯 한숨만 계속 내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뒤로 며칠간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고 택시를

이용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만

무슨 사건이 있었는지는 알려진 바 없습니다.

아직도 택시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지는 나도 모릅니다.



이곳에서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다들 진위와 허풍, 그리고 지나친 과장은

구별하실 줄 아시는 분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어느 특정 직업에 대한

비하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계시리라고 믿습니다.




가끔씩, 아주 가끔씩 그런 일이 생깁니다만

당시 나이 서른 일곱에 처음 생긴 일이었으니

앞으로 또 그런 일이 생길 거라는 상상은 아예 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오늘도 일산의 밤은 또 이렇게 저물어 갑니다.







-일산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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