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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어린 그녀 3편

토도사 0 421 0

#내겐 너무 어린 그녀 3편 

토도사-한번쯤 경험 해본 나의 성경험 이야기 토도사에서 즐겨보세요 https://www.tdosa.net


오후 3시 경.

단비와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로 향합니다.

경찰서로 말이죠.

도중에 일이 생기는 바람에 10분 정도 늦는다고 문자는 넣어둔 상태였고 그렇게 차를 몰고가는데 그녀로부터 전화가 걸려옵니다.


"오빠, 경찰서 오늘 민원 접수 안 한대요 ㅜㅜ"


저보다 일찍 도착한 그녀가 경찰서 안에 들어갔다가 휴일이란 사실을 확인한 모양이네요.

당연한 소리에 놀랄 건덕지도 없었습니다만 그래도 모르는 척, 놀라는 척은 해줘야겠죠.


"아, 오늘 광복절이라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구나..."


이정도면 오리발도 선수급.


"어쩌죠 오빠... ㅜㅜ"

"음... 그럼 오늘은 오빠랑 그냥 놀까? 너 병원에 있으면서 계속 따분해했잖아. 간만에 바람이나 좀 쐴래?"

"앗 넵! 좋아요!! 놀아주세요! ^ㅁ^"


놀아주길 바라는 건 정작 저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침 뚝 떼고 인심까지 쓰는 척하는 저란 인간은 정말이지...

멋지네요. (코 쓰윽)


***


경찰서 앞에 도착하자 커피 두 잔을 들고 서있는 그녀가 보입니다.

흰색 블라우스, 흰색 짧은 데님 스커트에 흰색 힐.

하얗게 도배한 그녀의 의상은 칠흑색 머리카락과 구릿빛 피부에 의해 흑백룩으로 거듭납니다.


"미안, 일이 생겨서 좀 늦었네. 많이 기다렸지?"

"괜찮아욤! 케케."

"어디 가고 싶은데 있어?"

"음~. 시내 구경 하고 싶어요!"

"시내 구경하다가 이따 저녁에 배고파지면 오빠가 밥 사줄게 ^^"

"저도 돈 있어요! 저번엔 제가 얻어먹었으니까 이번엔 제가 사드릴게요!!"

"음... 네 나이대는 사준다는 사람있으면 얻어먹는 것도 추억이야. 나중에 너 나이들고 경제력 생기면 그때 오빠 해주는 것처럼 다른 어린 친구들 사주면 돼. 그러니까 지금 당장은 오빠한테 얻어먹자 ㅎㅎ"


저 스무 살 때는 항상 형, 누나들에게 얻어먹다보니 돈 한 푼 없이도 몇 달을 살았는데 지금 와서는 사주는 입장이라니.

뿌듯하기도 하고 스스로가 조금은 멋져 보였네요.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와 번화가를 걸어 다니는데 유독 신경쓰이는 게 있었으니...

다름아닌 그녀의 신발.

힐을 신고 있는 모습에 자꾸 눈이 갔습니다.

저만의 연애규칙이지만 걷는 데이트를 할 때는 여자친구가 편한 신발을 신어줬으면 했습니다.

여자친구가 힐을 신으면 같이 걸을 때 여자친구 발이 아플까 봐 자꾸 신경쓰이지 않나요?

뭐 비록 단비가 제 여자친구는 아니지만서도요.

게다가 하얀 인조가죽이 군데군데 벗겨져 헤져있는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혔습니다.


"단비야, 오빠가 신발 하나 사줄까?"

"앗! 괜찮아요!"

"내가 오늘 약속시간 늦은 벌로 하나 사줄게."

"괜찮아요 ㅎㅎ"

"그럼 아까 커피 얻어마신 보답으로 신발 사줄게."

"정말 괜찮아요~."


어떻게하면 이 녀석을 설득시켜서 신발을 사줄 수 있으려나...

사실 신발에 유독 집착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습니다.

예전에 제가 정말 동경하는 선배에게서 항상 신발만은 깨끗이 하고 다니라며, 신발이 사람의 첫 인상을 좌우하고 그걸로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더랬죠.

어릴 적 우상이었던 선배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여태 기억에 남고 마치 미신처럼 믿게 되더라고요.

항상 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신발이 더러워졌는지 확인부터 하는 버릇이 생겼을 정도.


"단비야, 네가 만약 계속 거절하면 오빠는 어떤 빌미나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너한테 무조건 신발 사줄 거야. 그냥 돌려 말하지 않고 대놓고 물어볼게. 네가 오빠 부탁 절대 거절할 수 없게하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할까?"


무시무시한 고집.

눈을 땡그랗게 떠서는 그녀를 바라봅니다.

그런 제 모습에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몰랐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결국 마지못해 져주네요.


"앜ㅋㅋㅋㅋㅋ 아, 알겠어요. 그럼 싼 거 하나 사주세요. 정말 특이한 오빠 ㅎㅎㅎ"


그렇게 반강제로 신발 한 켤레 사주는 데 성공합니다.

비록 39,000원짜리 운동화지만 그녀가 꽃길만 걸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으면서요.

신규 회원가입하면 5천원 할인해준다는 말에 단비가 잽싸게 가입하고는 할인까지 척척받는 모습을 보니 경제관념까지 있는 야무진 아이로 보이더군요.

그리고 제 손으로 그 애 앞에 무릎꿇고 신발끈을 예쁘게 매듭지으며 신겨주었습니다.

로맨스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장면을 따라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어릴 적 디즈니의 신데렐라, 백설공주처럼 남자가 여자를 아껴주는 모습들을 동경하며 자라왔던지라 그런 판타지가 있거든요.


"근데 신발 사주면 멀리 도망간다고 하지 않아요?"


느닷없는 그녀의 말.

저와의 관계에 어떤 이상 기류를 암시하는 말은 아니었던 것 같고 그냥 의미없이 뱉어본 말 같습니다.


"그런 미신은 믿지 않지만, 예쁜 신발을 신으면 그 신발이 신발 주인을 예쁜 곳으로 데려가 준다는 미신은 믿고 싶어하는 편이야."


듣기 좋은 미신은 믿는 편이고 듣기 안 좋은 미신은 믿지 않는 긍정적인 마인드.


"오빠, 참 특이해요."

"뭐가?"

"저 살아오면서 오빠처럼 특이한 사람 처음 봤어요."

"푸하하하! 야~, 네가 살면 얼마나 살았다고 ㅋㅋㅋㅋ"

"아니, 어쨌건! 20년동안 오빠같은 사람은 처음이에요!"

"어떤 부분에서?"

"예를 들면 아까 운전하다가 옆에 버스가 끼어들었잖아요? 그거 보통 사람이면 막 화내고 짜증내야 정상 아니에요? 오빠는 짜증 하나 안 내고 양보했잖아요."

"양보하면 좋잖아. 버스가 제 시각에 도착하려고 얼마나 고생하는데... 대중교통 이용하는 사람들도 제 시각에 탑승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그니까요! 그니까 오빠 특이한 사람! 쓰레기같은 거 바닥에 함부로 안 버리고!"

"쓰레기 버리는 사람이 비정상이야...;;"

"앜ㅋㅋㅋㅋㅋㅋ 죄송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비정상이었구낰ㅋㅋㅋㅋㅋ"

"너 쓰레기 함부로 버리다가 오빠한테 걸리면 귀에 피나도록 잔소리할 거니까 각오해ㅋㅋㅋ"

"앜ㅋㅋㅋ네 조심할게요.ㅎㅎㅎ"


그렇게 얘기하고는 잠시 좋은 말을 해주고 싶었달까요.

아니면 나이가 들면서 괜히 추억얘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음... 오빠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인가? 오빠네 친형은 중학생이었고... 언제나처럼 형 뒤를 쫄레쫄레 따라서 학교를 가는 길이었는데, 형이 갑자기 바닥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더라고. 그걸 보고는 내가 형에게 '형이 버린 것도 아닌데 그런 걸 왜 줍냐'고 물었었어. 그때 형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뭐랬는데요?"

"그냥 주웠대 ㅋㅋㅋ 그냥 버려졌길래 주웠다는 거야. 자기가 주워도 되는 거 아니냐며. 그 말이 이해는 전혀 안 갔는데도 그걸 본 이후로는 절대 쓰레기 안 버리게 되더라고. 근데 이런 행동들이 나중에는 세상에 이롭다는 걸 알게 되니까 더더욱 실천하게 되더라."

"와... 대단... 난 주변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만 있어서 못된 것만 배웠나 봐요..."


저 나이에 사회규범과 준법정신을 갖춘 사람이 주변에 과연 있을까 싶긴 하네요.

어릴 때는 꽤 자유분방하다가 나이가 들면서 철이 드는 법이니까요.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난 믿거든? 너도 오빠같은 사람 옆에 있으면 오빠한테 차츰 물들면서 좋은 쪽으로 바뀌지 않을까?"

"오빠한텐 배울 점들이 참 많은 거 같아요."


신기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절 보는 그녀.

그녀가 살아온 세계는 저와 같은 사람이 없었는지 마치 미지의 생물을 영접하는 듯한 눈빛이었습니다.

사실 제 행동양식은 지극히 평범할 뿐인데 이렇게 우러러 봐주니 멋쩍었달까요.

코 밑을 살짝 긁고는 그녀에게 고개를 까딱거리며 말합니다.


"자, 새 신발도 신었겠다. 우리 맛있는거 먹으러 갈래?"

"네!!"


***


"음... 자리가 없네..."


김밥으로 맛집이라는 곳을 왔으나 자리가 꽉 찬데다가 줄까지 서있는 상황.

포장해서 차에서 먹는 게 차라리 나으려나라고 생각하는 찰나, 그녀가 옆에서 제안을 합니다.


"오빠, 우리 집 가서 먹을래요? 여기서 가까워요."


저도 생각을 아예 안 했던 것은 아니지만 제 입으로 차마 그녀의 집에 가서 먹자고는 얘기하기 힘들어서 말을 안했는데 먼저 제안해주다니 잘 됐네요.


"그래도 돼?"

"그럼요~!"


무슨 수작을 부릴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진짜요.

맹세코.

정말로 편하게 먹을 장소가 필요로 했어요.

조그마한 경차에서 테이블도 없이 밥풀 흘려가며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렇게 장소가 정해지자 네비를 켜고 그녀의 원룸으로 향합니다.

도착한 그녀의 집 내부는 정말 휑했더랬죠.

처음 기본적으로 셋팅된 원룸 기본값 그 자체에 가까웠습니다.

옷걸이도 제대로 없어서 옷도 우체국 박스 안에 차곡 차곡 쌓인 상태.

이곳에 온지 아직 한달도 안 됐고 터도 제대로 못 잡은 상황이었으니 그럴만도 하죠.

침대에 앉고선 바닥에 대충 신문지를 깐 후 TV를 켠 채 음식들을 셋팅하는데 냉장고에서 소주도 함께 꺼내는 그녀.


"술 마시게?"

"네 ㅎㅎ 아, 오빠는 안 마셔도 돼요. 저만 조금 마실게요."

"혼자 자주 마셔?"

"외롭다보니까... 이렇게 되더라고요. 헤헤..."


이 웃음이 밝아 보이지 않는 것은 제 기분탓은 아닐 겁니다.

가뜩이나 어린 것이 타지생활하면서 사기나 당하고 의지할 곳도 없다보면 가끔 저런 안 좋은 술버릇이 붙는 경우를 보긴 했는게 이 녀석도 그렇네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더욱이 저도 타지생활을 10년 넘게 해봤기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더랬죠.


"단비야... 저번에도 말했지만 여기 있는 동안 오빠한테 자주 연락해도 돼. 너 심심하고 외로우면 오빠 불러. 같이 놀아주고 맛있는 것도 사줄게."


그녀는 대답대신 미소를 지으며 나무젓가락으로 김밥을 하나 집더니 제게 먹여줍니다.

그녀딴에는 친한 사이라서 대수롭지 않게 행동했을지 몰라도 제겐 여파가 좀 컸네요.

설레기도 하고 얘도 나한테 관심있는 건 아닐까 확대 해석하게 되더군요.


"아... 안 그래도 돼... 오빠 최근에 여자애랑 이런 적 없어서 내성이 없거든... 설레버리니까 그러지 마..."

"네, 알겠어요. ㅎㅎㅎ"


말은 그렇게 하더니 옆에 있는 단무지도 하나 집어서 먹여줍니다.

내 말을 들은 체 하는 거야 뭐야...

아님 놀리는 재미가 있다는 건가...

기분이 나쁠리야 없지만 문득 대현이 얼굴이 떠오르며 괜한 마음 안 생기도록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TV의 잡음과 함께 얘기를 나누며 포장해 온 음식들을 다 먹어갈 즈음 전화가 울립니다.

다름아닌 대현이 녀석.


"어, 대현아."

"뭐하냐?"

"단비랑 저녁 먹는다."

"뭐 먹는데?"

"김밥."

"그러냐. 근데... 너 지금 어디냐?"

"......"


약 5초간의 긴 침묵.

단비네 집이라고 하자니 대현이가 오해를 할까봐 선뜻 대답을 못 합니다.

그렇다고 밖이라고 하기엔 웅성거림도 없을 뿐더러 전화기에 들어가는 실내 특유의 울림때문에 금방이라도 거짓말일 게 들통날 것만 같고.

나쁜 짓을 한 게 아님에도 등 뒤에 식은 땀이 흐르는 기분.


"어디냐고?"


화라도 난듯한 어조로 재차 물어오는 녀석.

아니, 화를 내는 뉘앙스로 들리는 건 제 착각인지도 모릅니다.

스스로 켕기는 게 있어서 그렇게 들리는 건지도 몰라요.


"다... 단비네 집..."

"......"


이번엔 대현이가 침묵합니다.

당연히 오해사기 좋은 상황.

단비가 저에게 이성으로서든 그냥 친한 오빠로든 간에 친근감을 계속 표현했던 건 대현이 녀석도 인지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저에게 질투심도 살짝 내비쳤었으니까요.

이거 자칫 잘못하면 대현이 녀석과 트러블이 생길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고, 침묵이 이 상태로 더 오래가다가는 오해만 커질 것만 같아 제가 입을 엽니다.


"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냐."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고 아무 일도 없잖아요?

가슴 졸이며 녀석이 오해를 풀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누가 뭐라든 ㅡㅡ 병원엔 언제 올라고?"

"밥먹고 안 늦게 갈게."

"그래라."


그리곤 통화가 끊어집니다.

이 녀석과의 대화가 이렇게 어색하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네요.


"후우..."


긴장감에 한숨이 나왔고 침대에 엎드려버립니다.


"왜 그래요? 대현 오빠가 뭐랬는데요?"

"하아... 너네 집에 왔다고 했는데 우리 사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내가 변명하느라 혼났어..."

"변명하고 말 게 있어요?"

"있지... 있고 말고..."


태평한 모습의 그녀.

저는 친구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호감을 갖고있다는 것만으로도 미안해 가슴 졸이는데 말이죠.

잠시 침대에 엎드린 채 시름시름 앓습니다.

친구한테 몹쓸 짓을 저지른 것 같은 기분.

조금은 죄책감을 덜고자 단비에게 말을 걸어 봅니다.


"단비야, 오빠 뭐 하나 물어봐도 돼?"

"어떤 거요?"

"대현이랑 너랑 무슨 사이야?"

"친한 오빠 동생 사이죠."

"내가 보기엔 대현이가 너 좋아하는 거 같은데 넌 그런 거 안 느껴져?"

"전혀요? 저한텐 그냥 친한 오빠인데..."

"대현이가 혹시나 고백해 온다면 너 어쩔 거야?"

"으악ㅋㅋㅋㅋㅋㅋ 질색!! 바로 뻐큐날릴 거 같아요ㅋㅋㅋㅋ"

"어어?? 말버릇 봐? 한참 오빠한테 그런 상스러운 말이나 하고!!"

"아, 죄송... 바로 싫다고 정색할 거 같아요ㅋㅋㅋㅋㅋ"

"그래... 그럼 그나마 덜 미안해해도 되겠다..."

"뭐가요?"

"아냐, 아무 것도..."


친구가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호감을 가진 게 미안했는데 둘의 사이가 전혀 가망이 없어보였기에 죄책감이 덜어진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서로 좋아하는 두 사람을 갈라놓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안 될 두 사람인게 눈에 뚜렷했는데 제가 호감을 가진다한들 문제가 되겠어요.

그렇게나마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단비야, 오빠 이따 또 운전해야니까 침대에 20분만 누워 있을게..."


방금의 전화로 인해 오늘 움직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듯 했습니다.

그렇게 조용히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잠시 뒤 침대가 뒤뚱하며 누군가의 체중이 한 차례 실리는 게 느껴집니다.

살짝 눈을 떠보니 제 오른 팔 바로 아래 그녀가 등을 돌려 누워있네요.

그녀의 정수리가 제 팔에 닿았을 만큼 밀착한 거리.

등을 돌려있기에 그녀가 자는지, 아니면 TV를 보는지는 알 수 없지만 뭔가 어정쩡해보이는 자세랄까요.

그 이유가 아마 하나 뿐인 베개를 제가 베고 있어서 그런가 싶었는데 가만히 관찰해보자니 조금은 다른 느낌을 받습니다.

촉이란 건 이런 때 발휘되는 거겠죠.


"너 혹시 오빠 팔베개 하고 싶은 거야?"


제 물음에 딱히 대답은 없는 그녀.

하지만 이내 곧 제 팔 하박(팔꿈치부터 손목까지의 부분) 위에 그녀의 머리가 얹혀집니다.

역시... 방금의 어정쩡한 자세는 그녀의 망설임이 반영되었던 게 맞네요.

가족들의 정이 고팠던 걸까요.

그래서 나라는 존재에서 아늑함을 느끼고 싶었던 걸까요.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만 그보다 중요한 건 이 상태로라면 제 팔에 피가 안 통할거라는 점.

그녀의 자세를 조금 고쳐 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단비야, 그렇게 머리 얹으면 안 되고... 베개를 위에 하나 깔고 오빠 팔은 그 아래에 살짝 집어 넣는 거야. 고개 살짝 들어볼래?"


그렇게 말하고는 쿠션을 하나 그녀의 고개 밑으로 넣어 주자 그녀가 방금의 제 말을 따라서 안정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전달되는 그녀의 체온.

저 역시 간만에 느껴지는 타인의 체온에 기분이 살짝 붕 뜹니다.

딱 여기까지만 거리를 유지한 채 선잠을 자고나서 함께 대현이가 있는 병원으로 가면 될 테죠.

...라고 생각하였으나 저는 곧 난관에 봉착합니다.

방금까지 등을 돌려있던 그녀가 제 쪽을 향해 돌아누운 것이었죠.

지긋이 눈을 감고 있는 그녀.

추측해볼 수 있는 건 두 가지였습니다.

정말로 술기운에 잠이 들어 몸을 뒤척인 거거나 그게 아니라면 자는 척하며 저를 유혹하는 것.

아... 이 상황을 어쩐다...




(4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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