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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방심

저주받은하체 1 563 0


1.

요즘은 떡 한번 치기도 힘듭니다.
이미 나이도 잘 나가던 때가 지나 오로지 금전적 우위를 무기로 삼아야 하는 때가 되었는데
이것도 경제적 지원이 따라주지 않으니 점점 더 힘들어집니다.
여자를 만나도 분위기 좋은 집에서 술한잔 하는거랑 떡복이 먹는 거랑은 상당히 다릅니다.
좋은 차를 몰고 모텔에 가는거랑 길을 걷다 후미진 여관에 가는 것은
상대의 반응에 확연히 다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핸디캡을 극복하고자 일찌감치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
저개발 아시아권으로 주 활동무대를 옮긴 친구 빛나리의 선견지명에
감탄의 혀를 내두르고 지내는 요즘입니다.

2.

한때 잘 나가던 때였습니다.
집근처에 있는 까페에 자주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집 주인하고 친해졌습니다.
단지 친해졌다고 해서 둘이서 인생을 논하거나 국제 정세를 걱정하진 않았습니다.
조금 친하다는 인간적 관계를 바탕으로 언제 한번 신체 사이즈를 맞춰봐야 하는지
머릿속엔 온통 그 생각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술 적당히 하고 까페 문을 닫을 만한 시간에
분위기가 제법 잘 맞아 떨어진 순간이 있었습니다.
이런 순간을 놓치면 이후 3개월간 후회를 하게 되고
또 앞으로 3개월간은 다시 기회를 찾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영악하게도 파악한 나는
내친김에 뽕을 뽑고자 작정을 합니다.
그런데 까페 주인은 일산의 명소 호텔 캘리포XX의 동행을 거절하고
그냥 카페 안에서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주변의 지형지물과 엄폐 은폐의 틈에서 스릴과 생소함을 신선함으로 즐기는 성적결합은
별로 흥미가 없었습니다. 제대로 된 장소에서 갖출 것 갖추고 시작해야 하는 것이
떡의 올바른 정도요, 품위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사고의 탄력성을 최대한 발휘하여 상대의 제안에 응하기로 했습니다.

"일하는 아가씨는?"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갑자기 일하는 아가씨가 생각났습니다.
조금전까지 있었던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부터 안보인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응. 룸에서 잔다 그랬어. 걱정 마."

가게 한 구석에 마련된 룸에서 잠을 자는 지 안자는지 누군가가 있는 상황에서
시끄러운 모터 소리를 내며 실내를 따뜩하게 해주는 석유난로 옆에서 떡을 쳐야 한다니
조금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현재 상황에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카페 여주인은 소파 등받이에 손을 짚은 채 치마 속 팬티를 벗어 던졌습니다.
그리고 치마를 들어올려 엉덩이가 보이도록 자세를 잡았습니다.
나도 얼른 바지와 팬티를 한번에 잡고 무릎 밑으로 내렸습니다.
벗어버려도 상관없었지만 왠지 이런 분위기에서는 바지를 반쯤 내린 채 해야
제맛이 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주인의 신체 구조가 다른 여자들에 비해 조금 특이했는지
뒤에서 공격하니 매우 성공률이 높았습니다.
별로 크지도 않은 나의 '그것'이 몸 안쪽으로 깊게 들어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여러번 허리와 하체를 이용한 왕복운동을 하니 영화의 한장면 같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기분이 좋아지니까 몇번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그냥 끝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안에다 싸도 돼냐는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해도 되니까 이 상황까지 왔겠지요.
아직까지 아빠라고 부르며 찾아오는 어린 아이가 없는 걸로 보아 큰 문제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절정의 순간을 맞이하는데 내가 준비해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없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항상 문제는 그런 절정의 순간에 생깁니다.
이제 막 신체의 온 신경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내장되어 있던 욕망덩어리가
힘찬 폭발을 할 즈음 카페 안 구석의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잠이 덜 깬듯 여종업원이 눈을 비비며 나타났습니다.

"음... 뭐해?"

아, 이 순간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만 그 고민의 내용은 매우 단순했습니다.

'그냥 쌀까, 일단 뺄까?'

이왕 시작한 거, 그리고 다시 세우려면 또 한참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냥 싸자'로 결론 내렸습니다.
그래서 마무리 몸부림에 들어갔는데 아무래도 종업원이 신경쓰였습니다.
종업원은 문을 열고 나와 상황을 본 후 얼른 문을 닫고 들어갔지만
이미 신경에 거슬린 상태였습니다.
결국 '그냥 싸자'와 '일단 빼자'가 한번에 실행되어 싸는 동시에 빼는 동작이 이루어졌으며
쌌을 때 나오는 흔적들이 무릎 아래에 걸쳐진 바지로 뚝뚝 떨어졌습니다.
아, 아름다운 사랑의 행위를 이렇게 엽기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그 상황이 얄밉습니다.

다음날. 술독이 풀리지 않아 늦은 잠을 자는데 어머니가 깨우듯 물었습니다.

"야, 너 바지에 이게 뭐냐?"

술도 덜깨고 잠도 덜 깼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잠에서 깨기 귀찮아 대충 대답했습니다.

"떠먹는 요구르트 먹다 흘린 거야!"

그리고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만 잠은 쉽게 다시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그 흔적의 추적을 통해 간밤의 행적을 의심하게 될까 걱정되었던 것은 절대 아니고,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도 그런 뛰어난 응답을 날릴 수 있는
내 자신에 스스로 감동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쩌면 별 것 아닌 이 사건이 훗날 다시 내 기억에 떠오른 것은
이후에 벌어진 몇몇 변변치 못한 주변 친구들의 어이없는 순간대처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3.

이 시대 최고의 변태인 친구 빛나리를 만났습니다.
전날 만난 다른 친구들 얘기를 꺼내다 문득 재미있는 화제가 생각났습니다.

"야, 어떤 친구들은 말이야. 장난한다면서 친구 양복 주머니에 콘돔 한개를 슬쩍 넣어둔다네?
그것도 포장을 반쯤 찢은 채로 넣는다 그러더라."

빛나리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표정으로 담담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런 씹쌔끼들은 자지를 다 잘라야 해!"
"......"

웃자고 한 얘기는 돌아오는 응답이 조금 과격했습니다.
머쓱해진 나는 은근히 시비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너 조심해라. 내가 오늘 니 옷에 콤돔 한개 슬쩍 넣을 지 모른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표정 변화가 없던 빛나리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그땐 니가 죽나 내가 죽나 한번 보는 거지. 음...."
"그래. 누가 죽나 보자..."

이 대화는 이날의 주요 대화가 아니었고 잠깐 지나가는 말로 오갔던 내용이었습니다.

그날밤 빛나리가 집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을 때였습니다.
양복 주머니에서 콘돔 하나가 뚝 떨어졌습니다.
갑자기 오후에 나와 나눈 대화가 생각난 빛나리는 매우 당황했습니다.
옆에 마누라도 있었으니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바닥에 떨어진 문제의 콘돔을 향해 빛나리는 몸을 날렸습니다.
마치 야구선수 이종범이 2루 도루를 하는 것 처럼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바닥에 미끌어지며 두팔을 뻗어 문제를 콘돔을 잡기 0.5초전,
그것이 콘돔이 아니고 집에서 쓰는 전자 모기향의 카트리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즘 집에 모기가 많다며 사무실에서 예전에 쓰다 남은 몇개를 주머니에 챙겨둔 것이었습니다.
빛나리의 마누라는 한심한 얼굴로 빛나리의 그런 행동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당황해진 빛나리는 묻지도 않은 그 행동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원래 아이들이 이런 걸 좋아한다구. 음하하하하..."

그러나 빛나리의 아이들도 소 닭쳐다 보듯 관심없게 아빠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한번 하고 안하면 더 이상할 까봐 빛나리는 그자리에서 비슷한 행동을 몇번 더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누라는 물론 우군이 될 줄 알았던 아이들도
점점 더 딱한 표정으로 아빠를 쳐다보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작은 놈은 아빠가 미친 것 같다며 울먹이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빛나리는 자신의 행동이 오해를 불러 일으킬까봐 제발이 저린 나머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집에 오는대로 아무 물건이나 던지고 슬라이딩을 하며
바닥에 엎드려 손을 뻗어 물건을 낚아 채는 놀이 아닌 놀이를 계속해야 했습니다.
나중엔 아이들이 재미로 던져주는 물것도 할 수 없이 슬라이딩 캣치를 했습니다.
비참한 생활이었습니다.
그렇게 비참한 빛나리의 가정 생활을 무려 3개월이나 계속 되었다고 합니다.
순간의 판단착오와 상황 대처 능력의 부족이 가져온 재앙이었습니다.

4.

선배 Y형은 화류계의 거장입니다.
빛나리가 채팅, 전화방 등 비주류 문화권을 두루 섭렵했다면
Y형은 술문화를 기반으로 한 떡문화에 매우 능력을 발휘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래서 빛나리를 만나면 그냥 빈둥거리지만 Y형을 만나면 꼭 술집에 갑니다.
술집도 가다보면 호프집도 가게 되고 삼겹살 집도 가게 되며 단란 주점도 가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날은 장소가 어느 단란주점이었습니다.
룸에 자리잡고 나름대로 놀만큼 놀았다는 때였습니다.
Y형이 화려한 마무리를 하려는지 옆에 앉아있던 자신의 파트너를 터프하게 끌어 안았습니다.
그거까지야 괜찮은데 문제는 그 아가씨 입술 자욱이
Y형의 하얀 와이셔츠에 선명하게 찍힌 것이었습니다.
왼쪽 어깨부분에 선명히 찍힌 입술 자욱은 초등학교 4학년 이상이면
그것이 여자 입술 자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고 명확했습니다.
단란주점 입장 초기라면 빨아오라고 벗어던지고,
나도 벗었으니 너도 벗으라며 술자리를 질펀하게 만들었겠지만
나갈 때쯤 되어 생긴 일이니 그러기도 곤란했습니다. 분위기가 썰렁해졌습니다.
비싼 돈주고 먹은 술이 다 깰 것 같았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란한 상황이었습니다. 문득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형. 있잖아. 집에 들어갈 때 양복을 입지 말고 한손으로 들어 어깨에 걸치고 들어가라고.
이 시간에 형수가 잠을 안자겠어? 졸린 눈으로 문 열어 주겠지.
그러면 얼른 화장실부터 가는 거야. 그리고 대충 벗어던지고 샤워를 하는거야.
그리고 그 틈에 화장품 묻은데만 비벼 빨면 괜찮아져."

".....!"

스스로 생각해도 대단한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는 Y형도 만족했는지 금방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자꾸만 신경 쓰며 왼쪽 어깨를 쳐다보던 눈길도 점차 횟수가 줄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기분이 좋았는지 왼쪽 어깨의 입술 자국을 자랑하듯 보이며 노래를 몇 곡 더 불렀습니다.
자리를 마치고 나와 다시 한번 Y형에게
집에 들어갈 때의 자세와 행동을 주지시키고 헤어졌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는 듯 했습니다.

이후 뒷 얘기를 들으니 Y형집에서 난리가 났었던 모양입니다.
대충 상황을 전해들은 나는 간단하지만 나름대로 완벽한 시나리오가
왜 실패했는지 매우 궁금해졌습니다.
하지만 사건의 진상을 알고난 나는 허무함과 더불어 세상의 덧없음을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왼쪽 어깨에 묻은 입술 자욱을 가리려던 Y형은
벗은 양복을 오른쪽 어깨 위에 걸치고 당당하게 집으로 들어갔던 것이었습니다.








글을 마치는 일산마루의 한마디 -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힘들고, 손발이 말을 안들으면 머리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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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토도사 2023.02.27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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