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담 야설

이유있는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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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번 <라이브콘서트>라는 글을 쓰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전해드리려 했는데
도무지 이 이야기는 지루하고 장황한데다 별로 재미도 없어 고민만 했습니다.
그러다 이것이 마음의 짐이 계속되는 한
나도 견디기 힘들어 대충대충 사건만 요약하려 합니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지금으로부터 무려 10여년이 지나간 시절로 돌아가야 합니다.
당시 나는 20대 후반의 피끓는 청춘이었습니다.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시도 때도 안가리고 가운데가 벌떡벌떡 잘 서던 그때였습니다.
내가 다니던 회사에는 숙직이라는 시스템이 있어
주말이면 남직원들이 돌아가며 회사에서 숙직을 했습니다.
일요일 낮에는 여직원이 와서 당직을 섭니다.
토요일 일과 이후부터 일요일 오전까지가 숙직시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추석이나 설날 등 연휴가 줄지어 있을 때는 남직원 한사람이
하루를 포기하고 24시간 숙직을 해야 했습니다.
여직원들에게 휴식을 주는 이른바 기사도 정신입니다.
더욱이 서울에 집이 있는 총각들은
그런 연휴때는 빠짐없이 숙직에 걸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거야 할 수 없는 일입니다.

2.

그때는 추석연휴였습니다. 당연히 숙직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고맙게도 추석 당일은 아니었고 추석 다음날이 내 숙직날이었습니다.
별로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회사에 들어가니
전날 교대자만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회사 산악회 회원들인데 추석 지내고 다음날인 그날,
모두들 가까운 산으로 등산가기로 했었던 모양이었습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모두들 출발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문득 귀에 반가운 이름이 들려왔습니다.

"미스박은 아직 연락없나?"

미스박-
지방에 고향이 있고 서울에서 혼자 자취하고 있는 이 아가씨는
얼마전부터 내가 맘에 들었는지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하던 여직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지방에서 올라와 혼자사는 것이 안스럽기도 해서
동생처럼 잘 대해줬는데 이 여자의 단점은 상당히 외로움을 타며,
그 외로움을 못견뎌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키는 적당하고 몸매는 아주 날씬한 편이며 약간 멍청해 보이는 외모지만
살결이 뽀얗고 피부가 깨끗한 점이 눈에 띄던 여직원이었습니다.
그러다 둘이 친해져 꽤 가까와질 무렵이었습니다.
미스박 얘기를 들으니 그들의 대화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안올 모양인데 그냥 우리끼리 가지 뭐."

미스박은 지방에서 추석을 쇠고 다음날 같이 산행에 참여할 예정이었습니다.
당시 핸드폰은커녕 삐삐도 없었으니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연락을 취할 방법도 없었을 때였습니다.
일행은 미스박을 포기한 채 산행을 위해 회사문을 나섰고
그 뒤로 약 30분이 지났을 무렵에 사무실에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저, 미스박인데요?"
"어라? 다들 출발했는데? 왜 이제 전화했어?"
"아, 네.... 근데 지금 회사 가도 되나요?"
"출발했다니깐! 그리고 집에서 쉬지 뭐하러 올려구. 지금 어딘데?"

미스박의 대답은 매우 황당했습니다.

"사무실 앞인데요."
".....!"

3.

미스박은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나를 찾아왔습니다.
등산복장을 하고 온 것으로보아 등산을 목적으로 온 것 같지만
사실 등산은 애당초 계획에 없었고 나를 보러 온 것이었습니다. 잠시 긴장했습니다.
아침부터 텅빈 회사에서 둘이 뭘 하겠습니까?
소파가 있는 곳에서 TV보다가 문연 중국집 찾아 자장면 시켜먹었습니다.
그렇게 서너시간은 잘 넘겼는데 더 이상은 무리였습니다.
미스박은 내가 앉아있는소파옆에 다가와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밤늦게 지방에서 올라왔다고 피곤하다며 내게 기댔습니다.
자리가 불편한 듯하여 밀착되어 있는 팔을 뺐더니
그틈을 이용해 가슴으로 파고들어 기댔습니다. 당연히 가운데가 불끈 섰습니다.
그때는 시도 때도 없이 잘 섰습니다.
친하게 지내기는 했지만 스킨쉽은 처음이었습니다.
슬쩍 팔로 감싸안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었습니다.
가운데가 조금 더 커졌습니다.
진한 여자의 향기가 피어올랐고 피부가 서로 스쳐갈 때는
소름이 돋을 듯한 부드러움에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야 했습니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에서 굳이 정신을 차려야 했던 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장소가 회사고 상대가 동료 여직원이었다는 평범한 이유였고,
다른 하나는 이 여직원이 가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다른 남자직원을 유혹한 적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회사에 소문나 회사를 못다니거나
이 여자를 데리고 살아야 하는 최악의 사태가 생길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여자였습니다.
화장실 간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아직도 성질을 죽이지 못하고 벌떡 서있는 놈을 몇번 건드렸더니
그만 '찍-' 싸고 말았습니다.
화장실에서 딸딸이 쳐보기는 중학교 3학년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그래도 기분이 조금 나아졌습니다.
이제 조금 가라앉았으니 잘 견딜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습니다.
다시 소파에 앉아 TV를 보다 어느덧 자세가 조금전과 동일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또 섰습니다.
분명히 내가 알기론 당시에도 일회 방사하면 6시간 이후에 재가동이 되는줄 알았는데
6분만에 다시 섰습니다. 신비로왔습니다.
또 약간의 혼미함에 빠져들면서 스킨쉽이 점점 진해지고 있었습니다.
빠져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발사 이후 6분만에 다시 섰다는 감격에 겨워
어쩔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사무실로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정말 구원의 전화벨이었습니다.

4.

"어? 니가 웬일이냐?"

전화를 건 사람은 친구 마징가였습니다.
연휴시작때 빛나리네 집에서 고스톱 치다가
이날이 숙직이라며 투덜거린 내 얘기를 기억했던 것이었습니다.
장하다 마징가.
벨소리만 구원해준 것이 아니라 사람도 구해줄 수 있는 마징가였습니다.

"너 바쁘냐?"
"아니?"
"이유는 묻지 말고 당장 여기로 올래?"
"?"

약 30분뒤 마징가가 회사로 찾아왔습니다.
숙직이라고 하고선 어떤 여직원과 둘이 있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대충 서로 인사시키고 나니 이제 그 여직원의 저돌적 공격은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한시름 놓았습니다.
여기서 중단하면 그래도 명분이 생깁니다만 조금 더 스킨쉽이 진행되면
상당히 곤란한 일이 생길 거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셋이서 아까 낮에 시켰던 중국집에서 음식을 시켜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집 음식 더럽게 맛없습니다. 그래도 먹었습니다.
셋이서 수다 좀 떨고 TV 좀 보고 있자니 시간이 훌쩍 10시를 넘기고 있었습니다.
미스박이 피곤한 표정으로 잠시 쉬겠다고 누울 곳이 있는 숙직실로 향했습니다.
미스박이 자리를 비우자 기다렸다는 듯이 마징가가 물었습니다.

"뭐야?"
"몰라"
"니가 모르면 누가 알아?"
"여직원인데..."
"근데 왜 이 시간에 집에 안가?"
"나도 모른다니깐!"

녀석은 알듯말듯한 애매한 표정으로
자신이 가지고 다니던 장남감으로 혼자놀기 시작했습니다.
녀석의 장난감이란 펜처럼 생긴 탈착식 와이어레스 마이크인데
라디오 주파수에 맞추면 소리가 들린다고 재미있어 하고 있는중이었습니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녀석은 내게 이상한 제안을 했습니다.

"야, 너 이거 옷속에 살짝 꽂아봐."
"이렇게?"
"그리고 문밖에 나가서 아무 얘기나 해봐."
"혼자서?"
"그래 씹쌔야!"

문을 열고 나가 밖에서 혼자 미친놈처럼 속삭였습니다. 다시 들어왔습니다.

"와, 들린다 들려!"

마징가는 마치 전화를 처음 발명한 과학자 벨처럼 흥분에 들떠 있었습니다.

"그게 재밌냐?"
"그럼, 임마. 앞으로 더 재미있는 일이 생길텐데..."
"....?"

그때만 해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녀석은 그 재미있는 일에 대해 내게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너 있잖아. 그거 옷속에 숨기고 아까 그 여직원 있는데로 가."
"그래서?"
"거기서 응응응 하는거야. 오케?"
"그러면?"
"너는 응응응하고 나는 여기서 중계를 들으면 죽이잖아. 오케?"
"야, 임마. 그래도 그렇지 그걸 어떻게 하냐. 씨발놈아!"

말도 안되는 제안에 한마디로 거절했더니
녀석의 눈빛은 매우 음흉하게 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회심의 일격을 날렸습니다.

"너, 작년에 있었던 라이브 콘서트 기억안나?"
"......!"

5.

라이브 콘서트 -
지난번 글에 밝힌 바 있듯, 마징가는 자신의 떡치는 장면을
소형녹음기를 통해 생생히 녹음해서 들려준,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소형녹음기에 들어있는 어떤 가수의 라이브콘서트 테잎에서 비롯되어
그 사건을 지칭하게 된 프로젝트명 라이브콘서트는
우리사이에서 우정의 돈독정도를 확인하는 키워드였습니다.
친구를 즐겁게 하기 위해 몸을 바치는 살신성인의 정신이 바탕이 되어야만
할 수 있다는 라이브콘서트. 이것은 거역할 수없는 무서운 지시요 명령이었습니다.

라이브 콘서트란 말에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지탱하며 미스박이 있는 숙직실로 갔습니다.
벽에 기대서 멍하게 앉아 있던 미스박이 내가 들어오니 화색이 돌았습니다.

"친구는요?"
"원래 혼자 잘 놀아..."

팔을 어깨에 얹자 기다렸다는 듯 품에 안겨왔습니다.
밖에서 듣고 있을 마징가를 생각하니 뭐라도 했어야 했습니다.
일단 말을 꺼냈습니다.

"사실, 나 너 많이 좋아했어..."

그리고 진하게 키스를 했습니다.
미스박은 거의 감격에 겨워 눈가에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큰 반응에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혹시나 이런 살신성인의 현장을 녀석이 제대로 듣고 있는지 걱정되었습니다.

"잠깐만... 친구 뭐하나 보고 올께..."

야릇한 상황이었지만 일단 빠져나왔습니다. 얼른 친구가 있는 응접실로 갔습니다.

"들었냐? 헥헥~~"

녀석은 헤드폰만 낀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습니다.

"잘 안되네...."
"....헉, 내가 숙직실에서 한말 하나도 못들었단 말야?"
"그런 셈이라고 할까... 아! 이제 들린다. 얼른 가봐..."

녀석의 지시에 나는 또 숙직실로 향했습니다.
조금 전에 한 대사와 상황을 다시 연출했습니다.
나는 조금 민망했는데 상대의 반응은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웠습니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니 또 걱정이 들었습니다. 다시 응접실로 달려갔습니다.

"이번엔 들었어? 헥헥~~"
"아니, 잘 안들리네..."
"헉! 뭣이라고라고라고야!!!!!!!!!!!!!!!!!!!!!!"

결국 녀석에게 중계방송을 한 나의 노력은 아무런 소득도 없었고
한 여자에게 오해만 잔뜩 사게 행동만 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주 당황스럽고 생각하기도 싫은 밤이었습니다. 그놈의 라이브 콘서트 때문이었습니다.

6.

이후 미스박은 자신이 나의 애인이라도 되는양 매일매일 퇴근후에 나를 기다렸습니다.
회사 체에 소문은 이미 다 퍼졌고 나는 나대로 그나마 떡은 안쳤다는 사실로
행동에 자연스러움을 유지하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근데 사실 떡만 안쳤다 뿐이지 같이 다니다보니 으슥한데도 가게 되고
한적한 곳도 가게 되니 떡을 제외한 다양한 스킨쉽은
나도 모르게 진도가 나가고 있었습니다.
급기야 미스박이 자취하는 자취방까지 가서 하루 잔적도 있습니다.
다행히 방안의 방음상태가 상당히 불량하여 아무 일 없이 지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매일 만나는 것도 지겨워 미스박 친구를 마징가에게 소개시켜주기도 하고
넷이서 놀러 가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지내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원래 내키지 않는 마음은 미스박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내키지 않았고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조금은 매몰차다 싶게 이별을 고했습니다.
미스박은 적잖은 충격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미스박도 천성적으로 외로움을 타는 성격이어서 그렇지
나를 정말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결국 두사람 사이는 냉랭하다 못해 얼음장이 되었고
이후 미스박은 회사를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뭐 오해를 풀거나 변명을 할 상황도 아니었으니 그냥 벌어지는 상황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상당히 안타까왔습니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그새를 못참고 미스박은
회사 동료와 눈이 맞아 둘이 동거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위안거리였습니다.
하지만 행실이 나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했던 일들에 대한 값을 치르기엔 아직도 모자랐습니다.

그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기억속에서 흐려지긴 했지만
잊혀지지 않고 나를 미안한 감정에 시달리게 했습니다.
그 생각을 다시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금은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생각날 때마다 나를 괴롭히는 기억이었습니다.

7.

그 사건이 이후 10년이 더 지난 얼마전이었습니다.
아직도 친구라는 이름으로 얼굴 마주보고 수다떠는 마징가를 만났습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특히 빛나리로부터 전수받은
인근 동남아 국가 진출계획 등 앞으로의 찬란한 미래와
지난온 아름다운 추억들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문득 예전에 다니던 회사 얘기를 꺼내는데 마징가가 이외의 소리를 했습니다.

"너 미스박 기억나냐?"

마징가도 당시 미스박을 몇번 만나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당연하지. 말마라 그때 그일로 얼마나 고생했냐?"
"그래서 그때 안먹었냐?"
"안먹었다 그랬잖아!"

마징가는 상당히 어려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음... 이런 얘기 해도 될 지 모르겠다만... 나 사실 그때 미스박하고 하루 잤다."
"...........!!!!!!!!!!!!!!!!!"

마징가의 얘기인 즉,
내가 미스박에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고하고 냉랭해져 찬바람이 휭휭 불던 그 당시.
녀석은 내게 회사로 전화를 했답니다.
나는 자리에 없었고 마침 그 전화를 미스박이 받았답니다.

"일산마루님은 자리에 안계시구요.... 혹시 마징가님?"
"네 맞는데요. 아 미스박이세요?"
"어머 정말 반가와요. 호호호"
".....?"

적어도 마징가가 알기로도 상황이 냉랭한 걸로 알고 있는데
뜻밖의 환대에 매우 당황스러웠답니다.
그래서 인사차 말이 좀 길어졌는데 미스박이 저녁을 사달라 그랬다네요.
뭔가 이상하다 싶은 마징가는 무슨 일일지 예상할 수가 없어
일단 내게는 말하지 않고 두사람이 저녁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상밖으로 미스박은 별 얘기나 감정의 변화도 없었고 그냥 잘 놀더랍니다.
그러더니 집에 갈 때쯤 오늘 집에 가기 싫다고 하더라네요.
일단 마징가는 나처럼 같은 회사 동료도 아니고 데리고 살만큼 책임질 일도 없었으니
별 부담없이 '접수'를 했다는 것이 마징가 얘기의 핵심 포인트였습니다.

얘기를 듣고 나니 좀 화가 났습니다.
미스박하고 잔거야 두사람 문제니 상관없지만 그 얘기를 왜 이제야 하는지 화가 났습니다.

"야, 근데 왜 이제 얘기해!씹새야!"
"그럼 씨발 그게 자랑할 얘기냐!!!"

마징가 생각엔 당시에는 어째 그 얘기를 꺼낸 다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이미 주인공이 사라져버린 상황이니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다 시간이 10년도 더 지나고 이제는 하나의 추억거리로 여길 상황이라 생각하여
10여년간 참았던 얘기를 꺼내게 되었나봅니다.

하지만 그 사건은 내게 아주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녀석이 그 사건이 있었을 때 바로 내게 얘기라도 해주었다면
그나마 나의 미안한 감정은 상당히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미스박이라는 여자 자체가 워낙 외로움에 굶주려있었고
자신의 행동이 내가 부담가질 만큼 생각하지 않았었던 모양입니다.
나보다 훨씬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야 알게 된 사실이고
무려 10년도 넘게 미안한 마음에 고민하며 지내오게 되었습니다.
녀석이 그때 그 사실만 말해주었어도 10년간 고생한 맘고생을 줄일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야 임마, 그럼 그 때 말을 했어야 ...."

흥분한 상태로 말을 하려다 잠시 멈추었습니다.
어쩌면 그 10년이란 시간은 본의가 아니었든, 악의가 없었든,
한 여자에게 조금이라도 상처를 준 내가 고통을 치뤄야할 댓가로
적당한 시간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했더니 오히려 더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이제 안좋은 일을 다 잊고 새로운 작업에 들어갈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어쩌면 아직도 나는 정신을 덜 차린 모양입니다.
그래도 기분은 좋습니다.



세상의 모든 침묵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산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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