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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이혼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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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밀한 이혼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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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이혼녀 5


베란다로 햇살이 비쳤다. 순간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잠깐 혼동스러웠지만 이내 처한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 그녀의 집이군.'
빛은 순식간에 사람을 무력화 시키는 힘이 있나보다. 간밤에 떳떳하게 이 곳에서 잠을 청했지만 막상 밝은 아침이 되고보니 내가 뭔가 잘못한것만 같은 생각에 주눅이 들었다.
도대체 그녀 얼굴을 어떻게 볼 것이며, 그녀는 나를 어떻게 대할까 하는 생각에 이 곳에서 밤을 보낸 게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서로의 합의 하에 같이 밤을 지새면 모를까 그녀의 동의도 없이 그녀의 집에서 묵었다는게 이리 부담스러울지 미처 몰랐다.
그냥 잠만 얌전하게 잤으면 모를까 그녀가 정신없이 자는 틈을 타서 손장난까지 한 내가 아닌가. 막판에 이성을 차려 방에서 나와 거실 소파에서 잠을 잤다고는 하여도 못할 짓을 한건 분명했다.
'과연 그녀가 눈치챌까..'하는 걱정부터 시작해서
'그녀의 옷차림에 대해 뭐라 둘러댈까..'에 이르기까지 짧은 순간에 온갖 생각이 맴돌았다.
바로 그때 침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아마 그녀가 일어난 모양이었다. 나는 자는 척을 했다. 그때는 그 수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후 그녀가 침실문을 여는 소리가 났다. 구조상 문을 열면 소파는 자연스럽게 보일 수 밖에 없다.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멈추었다. 아마 소파에서 자는 나를 보고 혼란스러웠나 보다. 그러길 조금 있다 어디론가 걸어갔다. 냉장고 여는 소리를 봐서 부엌으로 갔나보다. 뭔가 마시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렸는데 그 소리를 들으니 내 목도 괜시리 말라왔다. 하지만 참을 수 밖에 다른 도리는 없었다.
그런데 얼마 않있어 그녀가 내 쪽으로 다가오는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계속 웅크리고 자는 척을 하자 그녀가 살며시 나를 흔들어 깨웠다.
"저, 그만 일어나."
더 자는 시늉을 할 필요가 없다고 느긴 나는 부시시 일어났다. 그녀의 눈과 순간 마주쳐서 시선을 돌렸는데 그녀 손에 물그릇이 들려있었다.
"이것 좀 마셔."
나는 말없이 받아서 입에 댔다. 꿀물이었다.
다 마신 후 그녀에게 물었다.
"속은 괜찮아? 어제보니 술 많이 취하셨던데.."
"머리가 아직도 아프네. 내가 어제 많이 취했나봐."
"응, 여기까지 와서도 깨질 않더라구. 그냥 갈려니 열쇠를 잠글 수도 없고 차도 끊겨서 나도 여기서 신세를 졌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이 이해가 간다는 뜻인지는 모르지만..
그쯤되자 그녀의 모습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헐렁한 박스티에 레깅스 차림으로 부시시한 머리 모양을 하고 있었다. 떠보이는 얼굴은 그녀가 숙취로 간밤에 고생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내가 자신의 얼굴을 유심히 본다고 느끼자 그녀는 뭘 보냐며 얼굴을 외면했다. 아마 그녀 속 마음도 한참이나 혼란스러운 상태일 것이다.
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이만 가보겠다고 말했다. 더 있을 이유도 없었고 사실 몸도 피곤했었던 탓이다.
그런데 그녀가 아침을 먹고 가라고 말을 하였다. 어차피 출근할거 아니니까 식사는 하고 가라는 의미였다.
잠깐 망설였으나 그러기로 하였다. 이왕 이렇게 된건데 여기서 허겁지겁 그녀와 헤어지면 추후에 그녀를 다시 보기에 문제가 있을것 같았다. 차라리 밥이라도 같이 먹으면서 같이 있는 편이 나중을 위해 좋을 성 싶었다.
그냥 있는대로 차리겠다는 말과 함께 그녀는 이것저것을 준비했다.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일부러 실없는 농담을 던져가며 분위기를 띄우려 애썼다.
그렇게 몇 마디를 주고 받으며 식사를 시작한지 얼마 안돼 불쑥 그녀가 말을 꺼냈다.
"그런데 내 옷 혹시 네가 손댔니?"
순간 밥이 목구멍에 콱 막히는것 같았다. 하지만 곧 침착하게 대답했다.
"응 외출복 입은채 땀 흘리면서 자길래 겉옥 벗겨줬어."
그녀는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은 더 묻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 브레지어랑 스타킹은 왜 벗겼냐고. 하지만 아무래도 거기까지 묻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내가 침실에서 안자고 거실에서 잤다는 사실이다. 그 덕에 그녀에게 나의 도덕성(?)에 대해 무언의 과시를 할 수 있었으니까.
더 이상 질문이 없자 나는 속히 그릇을 비웠다. 그리고는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그녀에게 설겆이를 해주겠다고 하였다. 그녀는 강하게 거부했지만 나는 빈 그릇을 씻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이없는듯 웃었다.
하기사 어이없기도 할것이다. 나도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그녀야 오죽하랴.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금 제대로된 잠을 잤다. 깨어보니 벌써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황금같은 주말을 그냥 공쳤다.

일요일 밤에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친정으로 갔다가 8시쯤 왔다고 한다. 의도적으로 그날의 일은 꺼내지 않았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일상 얘기만을 늘어놓았다. 난 그녀가 그날의 일을 어떻게 생각 하는지 궁금하였고 그녀도 그날의 일에 대해 내게 궁금한게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궁금한 채로 끝날 수 밖에 없었다. 적어도 맨정신엔 말이다. 다음에 술이라도 한잔 걸치면 혹시 모르겠지.
아무튼 그날 그렇게 그녀와 통화를 하며 다시 만나자고 인사한 후 전화를 끊었다. 끊을때 그녀의 말이 귀청을 때렸다.
"다음에 만날땐 술 안마실거야."

본의 아니게 그 다음주 주중에는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대부분의 회사가 그러하듯 연말에는 업무량이 많았던 이유에서였다. 밤에 전화통화 하는걸로 아쉬움을 달랠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약인지 며칠이 지나자 우리는 그날의 혼란함과 어색함을 잊고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더 나아가서 그날을 소재로 농담까지 하게 되었다.
"너희 집 좋던데 또 자자."
"잘려면 돈내고 자."
"돈 내면 침대에서 재워주나?"
"그러면 따블야."
뭐 내용이 이런 식이었다.
그녀의 회사도 바쁘다고 하였다. 그 주는 토요일도 바빠서 친정에 못갈것 같다고 말을 하였다.
난 그 말을 듣자마자 토요일 밤에 보자고 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회사에서 10시 이후에나 끝날것 같다며 어렵다는 투로 말을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굳었다. 늦더라도 봐야한다고. 어차피 밤에 드라이브 하는 셈 치고 그 동네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바쁜 한 주가 끝나고 토요일이 되었다. 퇴근 후 집에서 내내 쉬다가 무작정 차를 몰고 산본으로 갔다. 집 근처까지 가서 만나자고 하면 차마 거절하진 않으리라 생각했다.
운전 중 내내 그녀를 생각했다. 좀더 엄밀히 말하면 그녀와의 섹스를 생각했다. 어찌됐건 그녀의 은밀한 곳까지 손맛을 본 이후 인지라 전과 달리 그녀를 생각하면 자연스레 그녀와의 섹스가 연상 되었다.
그러면서 그녀의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하니 10시 30분 정도가 되었다.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30분 전에 집에 들어 왔단다. 내가 집앞에 왔다고 하자 그녀는 깜짝 놀라며 내려가겠다고 말하였다.
나는 거짓으로 이미 층계까지 왔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추운데 어디 나가지 말고 집에서 차나 한잔 마시자고 말하였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그러라고 허락했고, 나는 승락이 떨어지자 무섭게 엘리베이터를 타고서는 그녀의 집 앞으로 달려갔다.
벨을 눌렀다. 안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뭉를 열어주었다.
열린 문 틈으로 눈이 마주치자 나는 가볍게 미소짓고는 집으로 들어갔다.

또 다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드는 시작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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