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혹시 꿈인가? 꿈속에서 지금 내가 다른 김동현인가? 그런 생각 했습니다."

지난 9일 오후 처음 방송된 ENA 예능 '눈떠보니 OOO' 속 한 장면이다. 정신을 잃었던 이종격투기 선수 김동현이 베트남의 인력거 위에서 정신을 차린 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김동현은 이런 자기 모습을 스튜디오에서 MC들과 지켜보며 그때의 소감을 설명한다.

이 프로그램은 제목처럼 출연자가 어느 날 전혀 다른 곳에서 눈을 떠 생경한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관찰한다. 첫 방송에선 김동현이 베트남 인력거꾼으로, 가수 권은비가 대만의 예술 고등학교 학생으로 눈을 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모습을 다뤘다.

눈에 띄는 부분은 초반부 두 출연자가 프로그램의 설정에 맞게 짜인 각본에 맞춰 연기하는 장면이다.

김동현은 체육관에서 격투기 시범을 보이던 중 목을 졸려 정신을 잃는데, 눈을 떠 보니 운동복 차림 그대로 베트남 인력거에 누워 있다.

권은비는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자동차 안에서 대만의 드라마 '상견니' 삽입곡 '라스트 댄스'를 들으며 잠에 빠지는데, 깨고 보니 대만의 고등학교였다.

이 모두가 연출된 장면이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김동현과 권은비는 능청스럽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지만, 이들이 미리 계획된 대로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시청자는 없다.

MC 조세호는 권은비가 다소 어색하게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은비씨는 평소 톤이 약간 연기 톤"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다만 각본대로 전개되는 초반부의 연출이 이후 펼쳐지는 내용과 얽혀 혼란스럽다. 김동현은 베트남에서 실제 인력거를 운전하고 권은비는 대만에서 고교생들과 수업을 듣는데, 어디까지가 연기이고 어디부터 실제 상황인지 명확한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

제작진이 의도한 것이 '눈 떠보니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설정과 각본에 기반한 콩트인지, 두 출연자가 아무런 준비 없이 현지인의 삶을 살면서 좌충우돌하는 모습에서 재미를 찾는 리얼리티인지 불분명하다.

시청자들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연출된 상황이 너무 티가 나서 재미가 없다는 악평과 몰입해서 재미있게 봤다는 호평이 동시에 나온다.

몇몇 시청자는 '눈떠보니 OOO' 첫 방송 후 네이버 오픈톡에 "리얼리티도 아니고 드라마도 아니고 재미가 없어서 아쉽다", "연출된 티가 너무 난다"는 등 불만을 털어놨다.

반면 일부 시청자는 "김동현, 권은비 각 출연자에 어울리는 'N차 인생'인 것 같다", "(권은비 이야기가) 대만 예술고등학교 배경의 판타지 드라마 같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드라마와 리얼리티를 혼합한 예능은 이전에도 있었다. 작년 8월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좀비버스'(Zombieverse)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출연자들이 좀비로 뒤덮인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제작진이 마련한 여러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을 다룬다.

'좀비버스'는 방송인, 배우 등 출연자들이 예능 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한 카페에 있다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좀비로 변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연출된 장면이라는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출연자들은 실제 상황인 것처럼 연기한다.

이 프로그램 역시 평가가 엇갈렸다. 왓챠피디아와 키노라이츠 등 리뷰 사이트에서 일부 시청자는 좀비로 분장한 단역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고 생동감이 있다며 호평했지만, 한편에서는 출연자들이 연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어 몰입하기 어렵다며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눈떠보니 OOO'이나 '좀비버스'처럼 드라마의 성격을 가미한 리얼리티 예능은 당분간 계속 제작될 것으로 보인다. 참신한 콘텐츠가 절실한 상황에서 일부 시청자에게 호응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좀비버스' 시즌1은 지난해 공개 직후 넷플릭스 비영어권 콘텐츠 가운데 주간 시청 수(Views·시청 시간을 재생 시간으로 나눈 값) 세계 5위를 기록했다. 이에 넷플릭스는 시즌2를 제작해 올해 공개하기로 했다.

시즌2에는 가수 태연과 권은비, 육성재, 방송인 조세호, 가수 데프콘, 음악 프로듀서 코드 쿤스트, 충주시 공무원 김선태, 백악관 셰프 출신 유튜버 안드레 러시가 출연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