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토도사|먹튀검증정보커뮤니티

감기 - 마지막회- 토도사 야설

Todosa 1 150 0

 

약속대로 결말을 올립니다. 결말까지 올린다고 약속했으니 결말만 올려드리지요.
전 약속 지켰습니다. 비겁하다고 하시던 말던 상관없습니다. 이것이 제 나름의 최선입니다. 직장이
라면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겠지만, 이곳은 제가 스트레스 풀러 오는 곳입니다. 놀러와서 감정만 상
한다면 미친짓이지요. 접으면 그만입니다. 글을 함부로 타인에게 공개하면 어떤 것을 받게 되는지
값진 교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소설은 선우영과 심유경의 부부의 이야기외에 윤희와의 불륜, 그리고 회사내의 암투를 내용으
로 한 기업소설에 가까운 이야기였습니다. 홍보부장과 경영지원부장, 그리고 기획실장과 남해무역
전무와의 갈등에 선우영 때문에 예전 부산으로 밀려났었던 여인과의 갈등이 불거져 개입하게 되면
서 문제가 서로 얽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여인의 과거는 레드썬에 의해 밝혀지고 그때 이 여인이
개구리를 찾아와서 선우영을 옥죄이게 됩니다. 그렇게 등장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과거와 비밀들이
양파껍질처럼 하나 둘씩 벗겨질 때 마다, 오래전의 과거가 현재가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끝을 내게 되었네요.

 이곳 게시판에 올린 제 소설은 다 지웠습니다. 무협의 결말을 마저 올린 후 탈퇴하겠습니다. 그동안
어줍짢은 제 글을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감기 - 마지막회

 기획실장과 경영지원부장과의 줄다리기는 내가 구치소에 수감되는 것으로 그렇게 끝이 났다. 어
차피 경영지원부장도 나에게 큰 도움을 준 적이 있으니, 나 하나 옷을 벗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1심에서 2년의 실형을 받았던 나는, 홍보부장이 소개해준 변호사 덕
분에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몇 개월간의 지옥같았던 수감생활을 벗어날 수 있었다.

 서울구치소에서 나오는 날. 결국 이혼한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조금은 기대를 했었지만, 그녀를
만난다고 해서 내가 과연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죄인이라는 말은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인데, 그
저 미안하다는 말을 다시 해주고 싶었었다. 하지만 그런 알량한 사과를 할 기회조차 잡지 못한 내
신세가 그저 안타깝고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그동안 구치소에 있으면서 피고 싶었던 담배 생각이
간절해졌다. 출소하며 받은 소지품을 뒤지다가, 주머니에서 구겨진 몇 장의 지폐와 동전이 손에 느
껴졌다.

 한동안 구치소 앞에서 손에 쥐어진 지폐를 보며 실없는 웃음을 흘리고 있는데, 내 발 그림자 사이
로 또다른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어깨가 유난히 넓어 보이는 익숙한 그림자. 웃음이 나왔
다. 이 사람을 내가 얼마나 원망을 했었던가. 그러나 그는 오히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획실장의
암수로 부터 날 보호해주던 사람이었다. 미안했다. 내가 오해하고 죄를 지은 몇 사람들 중에 하나인
홍보부장. 그는 지난 날의 내 잘못에도 이렇게 찾아와 주었다.

"벌써 나왔네 그려. 요즘 공무원들 부지런해. 큭큭" 
"후훗, 오셨어요? 부장님."
"두부를 사올까 하다가 너무 흔한거 같아서 두유를 사왔네. 이젠 이런 것도 달라져야지. 안그래?."
"하하하하하. 우울했는데 웃겼습니다. 부장님. "

 홍보부장 특유의 넉살과 위트가 우울했던 내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단지 고등학교 후배라
는 이유만으로 날 돌봐주던 사람.  그가 건내 준 두유를 마시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여름에 수감
된 것 같은데 벌써 짙은 가을 정취가 진한 쪽빛의 하늘에서 느낄 수 있었다. 짧은 기간, 집사람으로
남아 있던 그녀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너무나 보고 싶었다.

"밥이 좋았던 모양이야. 살이 쪘어."
"예, 잡곡밥이 잘 나오더군요. 덕분에 웰빙식단으로 배 채우고 나오는 길입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갈 곳은 있고?"
"큭큭. 사내 자식이 이 정도에 무너질 것 같습니까?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아, 결국 그걸로 콩밥도
먹었지요. 뭐 덕분에 법리에 대해 좀 배우게 되었으니, 좀 더 이 길로 파고들어가 볼까 생각도 들구
요. 후훗.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행여나 복수할 생각이라면.. 하지 말게. 그냥 잊어버리라는 말 하고 싶어서 자넬 찾아온 거니까."
"담배 있습니까? 선배님."

 이제는 부장님이 아니라 선배였다. 이렇게 내 주위에 남은 것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고쳐나가야 할
테지. 새로 다시 출발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연연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번 일을 통해 배웠에 더욱
그랬다. 내가 바꿔 부른 호칭의 의미를 눈치를 챈 듯 홍보부장은 노련한 특유의 웃음을 흘리며 주머
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내게 건내주었다. 몇 달 만에 피는 담배연기가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가 입
과 코를 통해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연기들 속에 지난날의 내 시간도 함께 날려버렸다.

"잊으라고 하셨지요? 잊어야지요. 뭐가 잘났다고 복수랍시고 설치겠습니까. 그저 미안한 마음뿐인
데요. 선배님에게도, 유경이에게도, 그리고 윤희에게도.. 다들 미안합니다. 그것 뿐인걸요."
"약해졌구만. 자네.."

 벌써 반이상 타버린 담배의 마지막 연기를 입안 가득 머금었다가 한숨과 함께 흘려보냈다. 약해졌
다라. 어쩌면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내 생각은 약해졌다기 보단 오히려 홀가분
해 진 느낌이었다.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걷다가 마침내 내 발밑이 꺼져버렸을 때의 기
분이라고 할까. 온 몸을 차갑게 얼려버리는 얼음물 속에서 죽음만을 기다리다가 간신히 살아났을
때의 안도감이라고 할까. 그런 묘한 복잡함이 내 가슴속에 혼재되어 있었다. 약해진 것은 마음이 아
니라 바닥을 드러낸 내 감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홍보부장의 차를 타고, 이혼하기 전 그녀에게 집을 주고 구했던 상도동 오피스텔로 향했다. 거의
반년만에 찾아온 오피스텔에는 언제 주인이 떠났는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게 정
리되어 있었다. 누가 청소를 했는지는 깊게 생각을 하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었다. 현과 앞 쓰레기
통에 들어가 있는 하얀 공같이 뭉쳐진 아기 귀저기. 여동생의 둘째가 이제 돍을 지났으니, 달리 생
각할 것도 없었다. 가족이라는 테두리사 세삼스럽게 느껴졌다. 일이 커져 무너질 것 같았을 땐 어김
없이 찾아와서 쉬어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는 존재. 그 존재를 난 너무 쉽게 생각을 했었다. 그
리고 그 결과가 놓쳐버린 그녀였다. 언제나 함께 한다고 했던 내 말들이 그저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
리게 만들었던 내 실수. 그 지난날의 잘못이 마치 벗어던지지 못한 족쇄처럼 무겁게 다가왔다.

 충전기에 연결한 핸드폰에서 메세지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벨소리가 들렸다.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쥐었을 때 손가락에 걸리는 빨간 데이지꽃이 눈에 들어왔다. 눈물이 났다. 왜인지 알 수 없지만 얼
마만에 흐르는 눈물인지도 모를 만큼의 시간을 지나 뜨거운 물줄기가 내 뺨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
다. 그렇게 소리없이 그저 눈물만 흘리다 애써 가슴을 진정시켰다. 거칠게 서랍을 열고, 한 구석에
숨겨져 있던 캔디 박스를 꺼냈다. 담배를 피는 것을 싫어하던 유경이 몰래 숨겨두었던 담배. 집 떠
나 살아가는 공간에 들어왔지만, 난 아직도 그녀가 남겨두고 간 흔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담배를 하나 물고 불을 붙이고, 머리를 풀고 하늘을 날아가는 듯한 푸른색 담배 연기를 하염없이 바
라보았다. 두번째 담배를 입에 물었을 때야 난 핸드폰을 열고 확인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항상 당신이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발신번호제한으로 보내진 짧은 문자 한통. 누가 보냈을까. 유경이가 아니면 윤희. 아마 둘 중에 한
명일 거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 삭막한 도심의 어느 곳에서 날 기억하고 그리워
해주는 이가 있다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 조금전 흘렸던 내 눈물의 값은 이미 지불된 것 같았다. 모
처럼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딱딱하고 냄새나던 구치소의 이불만 덮어오다가 오
랜만에 느껴보는 가볍고 따뜻한 이불에 그간 알게 모르게 몸에 축적되었던 피곤함이 한꺼번에 밀
려오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걱정하던 나는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구치
소에서 출소한 첫날밤을 그렇게 혼자 보내고 있었다.

 


 2009년 6월. 서울을 떠나 대구에 내려온지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가진 것 하나 없는 빈몸
으로 내려와 생판 모르는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쳤던 그 시간이 이제는 희미한 추억이라는
단어로 기억되어 가고있었다. 남해무역에 있었을 때와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자리지만, 이
제는 어엿한 부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는, 작은 광고회사의 실무책임자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지
난 주 지하철 광고를 설치 한 후 모처럼 찾아온 휴식에 사무실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하
나 밖에 없는 여직원이 그런 날 보며 놀리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왜? 너 자꾸 그렇게 쳐다보면 데이트 신청한다니까!"
"부장님은 제가 신청할때는 싫다고 하면서.. 꼭 말만 저렇게 하시더라."

 그때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뚱뚱한 몸집의 한 사내가 땀을 흘리며 들어왔다. 그는 여직원과 나의
이런 장난에 익숙한 듯 너스레를 떨며 내가 할 대답을 대신해서 그녀에게 말을 했다.

"부장님은 눈이 높아서 너한테 관심없다니까. 대신 난 어때?"
"나도 눈 높다구요. 왜 이래요? 췟."

 20명이 조금 넘는 회사에서 3명의 부하직원을 두고 있지만, 예전에는 느껴볼 수 없었던 끈끈한 정
을 이곳에선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전쟁같았던 서울의 직장이 화려함을 느끼게 한다면, 이곳은 소박
하면서 단란함을 느끼게 한다고 할까. 현장에 갔다가 사무실에 돌아온 류계장과 여직원이 서로 아
웅다웅 하는 것을 웃으며 지켜보고 있는데, 책상 한곳에 던져 놓은 핸드폰에서 벨소리가 울리기 시
작했다. 액정으로 뜨는 이름은 예린. 마담으로 알게 된 후, 친한 친구 사이가 된 그녀에게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였다.

"이모, 어쩐 일이세요?"
"후훗, 옆에 직원들 있나 봐?"
"큭큭 그렇죠. 뭐.."

 옆에 직원들이나 대화하기 곤란할 때를 말하는 그녀와 나의 암호, 이모.

"그럼 전화 끊을까? 나중에 시간나면 걸던지.."
"아뇨, 이모 괜찮아요. 모처럼 전화주셨는데.. 어쩐 일이세요?"
"아, 갑자기 얼굴이나 볼까 해서, 생각난 김에 전화했지."
"여기서 서울이 얼마나 먼데 밥이라뇨. 나중에 놀러와서 그런 말이나 하세요."
"어머, 그럼 대구에 있으면 사줄려고? 나 지금 대구야."

 말이나 하지 말걸 하는 장난스러운 후회가 잠깐 들었지만, 그래도 반가운 그녀였다.

"어딘데요?"
"나 여기 크라운 호텔이야. 어서 와서 밥사줘."
"거기 지나가는 남자 아무나 잡아서 밥 사달라고 하세요. 이모 얼굴이면 아무나 사줄건데."
"어머, 무섭게 어떻게 나보고.. 나 낮가리잖아. 몰랐어?"

 이 사람이 점점. 술집 마담이 길가는 남자에게 밥사달라는 말이 무섭다고 하고 낮을 가린다면, 그
험한 물장사는 어떻게 했을려고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직원들
만 없었으면 실컷 놀려먹을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러지 못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입이 근질거
렸지만 일단은 약속이나 잡아야 했다.

"1시간 후에 퇴근이니까 그때까지 지나가는 사람 얼굴이나 보던가, 문자 날리기 놀이나 하고 있어
요. 됐죠?"
"자기 얼굴보러 여기까지 왔는데, 너무 삭막하다. 내가 싫어? "
"아 정말! 이모 왜 그래? 대낮에 술마셨어? 내가 갈때까지 꼼짝말고 기다려!"

 전화를 끊을려는데 수화기 넘어로 그녀 특유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만 보면 장난일 치지 못해
서 안달난 것 같은 그녀. 다른때는 몰라도 이모라고 부를 때는 그렇게 조심하라고 일렀지만, 그때일
수록 더 장난을 치는 그녀에게 가끔 곤혹스러움을 느끼곤 했다.

"부장님, 멀리서 친척이 오셨나 봐요. 여긴 거의 마무리니까 먼저 나가보시는 것이.."
"예, 부장님. 저랑 민지가 마무리하겠습니다."
"나 보내고 단둘이 뭘 할려고?"
"어머, 왜 그러세요. 전 정말 순수한 의도였어요."
"나도!"

 아무래도 저렇게 싸우다가 저 둘이 결혼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울리지 않는 듯 하면서, 장난
칠 때는 죽이 잘 맞는다고 할까. 류계장의 눈치를 보니, 내가 자리를 비워주면 여직원에게 뭔가 작
업을 걸고 싶어하는 투라, 이왕 이렇게 된 것 한번 도와주기로 결심했다.

"뭐 정 그렇다면.. 나 먼저 퇴근할테니까 잘 부탁할께. 그럼 먼저 간다. 고마워."
"예, 부장님 먼저 들어가세요."

 사무실 입구까지 나와서 날 배웅해주는 류계장의 웃음이 좀 너무 진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
지만, 어차피 날 위해 웃어주는 것도 아니고, 나머지는 둘이서 알아서 할 일이었다. 차를 끌고 크라
운호텔로 향했다. 초여름의 날씨가 벌써 아스팔트를 뜨겁게 만들고, 열어 놓은 차창을 통해 들어오
는 바람의 뜨거움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마 올해 여름에도 더위로 고생을 해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든
다. 호텔 1층에서 그녀를 찾다가, 창가 한쪽에서 가느다란 다리를 포게고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는 예린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를 향해 걸어가자, 내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는지 고개를 돌려
큰 소리로 아는 척을 해온다.

"어머, 자기 오랜만이야."

 나만 보면 놀려먹지 못해서 안달이 난 듯한 예린이의 저 능청스러운 연기가 오늘따라 오버하는 듯
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마치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 분장한 가면을 쓰고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녀와 친하게 지내는 동안 나도 알게 모르게 눈치가 많이 늘었는지, 가끔 예민하다는 말을 들을 때
가 있었다. 예전의 나라면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을 칭찬이지만. 어차피 그것도 지나간 과거일 뿐이다.

"그렇게 말해도 이젠 전 솔로거든요. 누님 오버하진 마슈."
"후훗, 제법 두꺼워졌어. 전에는 이러면 당황하더니.."
"이혼남 가지고 놀아서 뭐 건질게 있다고, 누님도 참네.."
"나 배고파. 밥사줘."

 벌떡 일어나서 양 허리에 손을 올리고 밥을 사달라고 조르는 그녀의 모습이 마치 소녀처럼 느껴졌
다. 하지만 나보다 많은 그녀의 나이를 생각하면, 저런 행동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신
기할 따름이다. 그녀와 함께 차를 가지러 가면서 어떤게 먹고 싶은기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국수만 사줄 수는 없고.. 뭐 먹고 싶은거 있어요?"
"더워, 좀 시원한데서 먹었으면 좋겠는데..그냥 자기가 알아서 가."
"흐음, 그럼 동촌에 장어를 잘 하는 곳이 있으니까 그곳으로 가죠. 여기서 금방 가거든요."   
"그래 그래, 어서 나 더워."

 그녀와 내가 차에 타고, 더워하는 예린이를 위해 에어콘을 틀자, 그녀는 하얀 쉬폰원피스의 끝자락
을 잡고 펄럭이며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더운 날씨에도 그녀의 다리를 감싸고 있는, 올이 빤짝거리
는 스타킹을 보자 섹시하다는 느낌보단 예쁘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에어콘을 틀고 그녀
의 다리를 보고 있는 내 눈과 그녀의 눈이 공중에서 얽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묘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가 내 어깨를 팔로 살짝 때린다.

"후훗, 좋아? 이 변태야."
"뭐, 누님 다리가 못생긴 건 아니잖수. 보라고 이렇게 신고 오면 당연히 예뻐서 보는건데.."
"변태가 말은 잘해."

 직원들과 가끔 찾아가던 동촌동의 한 가든에 도착한 우리는, 창가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는 방에
마주보고 앉아 그동안 밀렸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탁자 밑으로 스타킹을 신은 그녀의 발이
내 곁으로 다가와 내 무릎을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손바닥으로 그녀의 발등을 때리면서 짐짓 화내
는 표정을 만들어 보였다.

"누님! 좀 하지마요. 독수공방하는 홀애비에게 뭐하는 짓이야?"
"큭큭, 속으로는 좋으면서. 내가 오늘 허락하면.. 생각있어?"

 예전에도 저런 말로 날 도발시킨 적이 있었지만, 난 아직 예린이와 이런 관계에 만족한다는 말로
정중히 거절을 한 적이 있다. 내 딴에는 가식없이 친구로 지내는 이 정도가 좋다고 생각한 말이었는
데, 그 말을 듣고 그녀가 어찌나 큰 소리로 웃던지 한동안 부끄러워서 그녀를 피하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말 한 거 벌써 두번째요. 똑같은 대답 두번 듣고싶소? 머리가 나쁜 건지, 벌써 치메인지.."
"어머, 여자한테 너무 한거 아냐? 고집은 쎄가지구 말야. 남들은 감사합니다~하고 낼름 먹을 건데."
"그러면 그 남들에게 가서 말해보던가.. "
"자기가 바람을 안피는 것도 아니고, 여자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자기는 정말 신기해. 우리가 이렇
게 된 것도 말야."

 예린이와 그렇게 장난치며 떠드는 동안 탁자에는 주문한 음식들이 나열되고, 음식을 가져 온 여자
분이 나간 후 조용히 문이 닫힌다. 차가운 물한잔을 그녀에게 내어준 후, 나도 말 없이 물을 마시며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묘한 웃음. 마치 내가 눈치채주기를 바라는 듯한 느낌이 예린이의
얼굴에 가득 물들어 있었다. 그녀는 늘 이런 식이었다. 내 마음을 열어본 듯이 행동을 하고, 늘 나보
다 한발 앞서서 날 이끌고 가는 여자. 내 생각과 마음을 고스란히 훔쳐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무
척 불편하다. 특히 상대방이 여자라면 더욱 그런 것 같다. 마치 옷을 입은 그녀앞에 나 홀로 발가벗
겨진 느낌이라고 하면 정확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와 서로 믿을 수 있는 친구가 되고 난 후에는
그런 느낌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녀에게 맞받아 칠 정도로 나도 이젠 많이 두꺼워진 편이다.

"고만하죠? 유경이나 윤희 때문에 온거 다 아니까."
"딩동뎅~ 자기 정말 많이 늘었구나. 대단해. 큭큭.."

 그녀의 그런 유치한 장난에 창밖을 보며 한숨을 쉬고 있으니, 그녀가 내 팔을 톡톡 친다. 고개를 돌
려보니 그녀의 한 손에 내가 좋아하는 담배와 라이터가 들려있는 것이 보였다. 완전히 나의 패배였
다. 부처님 손바닥안에서 놀아나던 손오공도 이런 참담함은 느끼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
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녀가 건내주는 담배를 입에 물고 긴 담배 연기를 창밖으로 날려버렸다.

"누님, 나 뭐하나 궁금한게 있는데.."
"뭐? 자기가 나한테 궁금한 것도 있고. 후훗. 이제 슬슬 내 매력에 눈이 가는 거야?"
"장난은 그만하고.. 다른 마담들도 누님처럼 눈치가 빠른 편이오? 사람 마음 가지고 놀 정도로?"
"글쎄? 그럼 이렇게 대답해 볼까? 미대 나오면 다 그림 잘 그리는거야? 자기처럼."
"정답이네.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했어요. 역시 누님이오."
"후훗.."

 그녀와 조용히 밥을 다 먹은 후, 조용히 창가에 기대어 담배를 피고 있었다. 하늘거리는 물결을 그
리며 창밖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담배 연기를 보자, 지금까지의 지나간 시간들도 저렇게 덧없이 사
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창가에 올린 팔을 간지럽히는 바
람을 느끼고 있을 때, 예린이가 다가와 내 무릎에 그녀의 두 다리를 곱게 올리고 날 쳐다본다.

"다리 아파. 주물러줘."
"하아.. 누님은 정말 귀신이오. 귀신."
"큭큭, 그러니까 나랑 사귀자니까. 왜 싫어?"

 그녀를 만났을 때 부터 한번 만져보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을 귀신같이 알아내서, 내가 무안할까봐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말하는 예린이. 가끔 그늘져 보이는 그녀의 모습을 볼 때 안스럽다는 감정이
들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욕심을 낸다는 것은 지금의 좋은 관계를 산산히 조각내버릴 것 같은 욕심
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의 가느다란 다리를 주무르자, 손바닥 가득 매끄러운 스타킹의 감촉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그녀의 부드러운 다리 근육의 하나 하나가 마치 갓 잡은 활어의 탄력처럼 내
손안에서 살아 숨쉬는 느낌이다.

"피부가 이 정도 느껴지면 20 Denier인거 같은데, 원사는 Microfiber방식으로 직조된 것일 테고.."
"후훗 역시 변태야. 어디 건지 상표도 맞춰봐."

 눈을 감고 스타킹의 감촉을 좀 더 느껴보았다. 부드럽고 작은 그녀의 발등을 흐르고 있는 정맥과
뼈를 지지하고 있는 인대를 훑으며 지나가자, 메이커마다 차별화된 미묘한 감촉이 손가락 끝으로
전해져 오기 시작한다. 무언가 그려질 듯한데 손에 잡히지 않는 그 무엇을 느낄 때의 간질거림이 내
몸을 괴롭혀 온다. 그 간질거리는 괴로움에 한쪽 눈을 잔뜩 찡그린 채 그녀의 종아리와 발등을 타고
만지고 있자 불현듯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프랑스 Dore Dore아니면, 일본 Louisan! 이렇게 오래 만지고 있는데도 지금 내 손바닥에 땀이 없
는 것을 보면, 단순 폴리에스테르 혼방은 아닐 테니까 이 둘 중에 하나일 수 밖에 없네요."
"우와~ 자기는 정말 변태야! 큭큭. 루이앙께 맞아. 정말 대단해. 눈을 감고 맞추다니..큭큭"
"칭찬받고도 이렇게 쪽팔리기는 처음이오."

 내 무릎위의 다리를 옆으로 내려 놓은 후 가지런히 한 예린이가 내 귀에 입을 가져다 대고 봄바람
이 간지럽히듯 말을 한다.

"잘했으니까 상줄께. 궁금한거 있으면 하나만 물어봐. 자기야."
"누님의 그 말, 상당히 잔인한 주문이라는 거 알고 있죠? 하나만 물어보라는 것. 결국 다른 쪽은 포
기하라는 말이잖아요."
"그러니까. 어차피 자기가 이렇게 된 것도 둘 다 잡으려고 해서 일어난 일이잖아. 난 언제든 자기 편
이야. 그러니 하나만 물어봐. 이런 기회는 잘 오지 않아." 
"둘 중에 하나라.. 괴로운데."
"후훗.. 천천히 생각해. 난 누워서 좀 잘래."

 내 무릎에 얼굴을 올리고 이내 잠에 빠져드는 예린이. 흘러내린 그녀의 앞머리를 손으로 가지런히
정리를 해주자 그 느낌이 좋은지 입가에 묘한 미소가 그려진다. 갑자기 장난이 생각나, 탁자위에 있
는 상추를 하나 조심스럽게 가져와 그녀의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상추를 입에 그녀의 입에 문질렀
다. 그때 그녀의 눈이 조심스럽게 떠지며 내 뺨을 쎄게 꼬집는다.

"왜요! 누님 상추 좀 먹으라고. 큭큭."
"아이 정말 못됐어."
"뭘? 큭큭"
"잔뜩 기대했더니 상추에게 내 입술을 뺏겼잖아. 기대한 놈은 엉뚱한 짓이나 하고.."
"그 기대한 놈은 누군데요?"
"몰라. 그런 놈이 있어. 잠 다 깼다. 나 집에 갈래."

 그녀를 태우고 대구공항에 도착한 나는, 발권을 하고 있는 그녀를 뒤에서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
다. 몇년 전 그녀의 생일을 기념해서 내가 사준 작은 지갑을 아직도 가지고 다니는 그녀. 비싼 것도
아닌데 늘 가지고 다니는 그 마음이 늘 고맙고 또 미안했다. 이혼을 할 때 가장 먼저 달려와서 도와
준 사람도 예린이였고, 구치소에 수감되었을 때 가끔 찾아온 사람도 그녀였다. 그녀와 나의 특별한
관계. 이 모습이 늘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가져 본다. 발권을 한 그녀가
소풍가는 아이처럼 깡총거리며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후훗, 자기야 나 지금 들어가야 하네~ 이렇게 자기 놔두고 가서 어쩌지?"
"큭큭, 누가 보면 누님이랑 나랑 연애하는 줄 알겠네. 어여 들어가요."

 곧 비행할 예정인 그녀의 항공기 때문에 그녀는 게이트로 향해 걸어가다 몸을 돌려 날 쳐다본다.
허리에 손을 올리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녀 특유의 표정. 왜 아직 물어보지 않는지에 대한 무언의
압박처럼 느껴졌다. 그녀에게 다가서 그녀의 뺨에 손을 올리고 쓰다듬어 보았다. 부드러우면서 따
뜻한 느낌. 그녀의 고개가 한쪽으로 흐리기 시작하고, 내 손바닥에 그녀의 뺨이 온전히 내려앉았다.

"만날 수 있을까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지만, 원래의 조건은 단 하나의 질문이었다. 누구를 만날지 모르지만
그녀가 안배한 것이 있다면 만날 사람이 누구이든 간에 만나게 될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질문이 잔
인하게도 딱 하나만 할 수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질문은 둘 중에 한명을 만날 수 있는지에
대한 것 뿐이었다. 내 질문에 묘한 웃음 짓던 그녀가 고개를 애써 돌리며 나지막히 말을 했다.

"많이 늘었어. 대답은... 노 코멘트."

 노 코멘트는 그녀의 버릇이다. 진실은 대답하지 않고, 거짓은 진실처럼 대답하는 그녀의 버릇. 그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그녀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그것을 스스로
말해주었었다. 자신이 언제 진심을 말하는지 알아달라는 뜻으로. 그리고 그날, 그녀는 나에게 처음
으로 도발이라는 것을 했었었다. 미안했다. 아무것도 아닌 이런 나를 생각해 주는 그녀의 마음을 받
을 수 없다는 것이, 그녀도 나도 뻔히 알면서도 그저 미안해 할 수 밖에 없어 더욱 미안했다. 

"예린아. 미안해..."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내가 부른 이름 탓인지, 돌려진 고개 넘어로 그녀의 한쪽 팔
이 올라갔다가 한참 후 내려온다. 내려오는 그녀의 손등에 번진 마스카라의 검은색이 살짝 물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돌아보지도 않고 그녀는 그렇게 게이트를 향해 걸어갔다. 공항 직원에게 탑승권
을 보인 후 자동문을 통해 사라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난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가 걸어
가기 전 내게 해주고 간 말이 아직도 내 온 몸을 얼어붙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친구라 착각
을 했던 그녀. 난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서있고, 그리고 선택한 후 난 한참후에야 후회하게 된다.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난 그렇게 공항에서 물끄런미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녀가 떠나며 내게 한 마지막 말이 내 가슴에 비수처럼 박혀버렸다.

"자기가 얼마나 잔인한지 알아?"

 가슴을 찌르는 듯한 통증에 주차장으로 돌아오자 마자 담배를 입에 물었다. 반쯤 타버린 담배를 발
로 비벼끄고 있을 무렵. 주머니에서 희미하게 핸드폰 문자 수신음이 울리고 있었다. 사무실인가 싶
어 열어보았을 때, 난 기쁨과 슬픔, 그리고 놀라움과 미안함 등의 복잡한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었
다.

[내일 윤희가 내려갈꺼야. 잘 해줘. 자기 딸한테도.. 사랑해.]

 그때, 공기를 울리는 듯한 굉음과 함께 그녀가 탄 푸른색 대한항공 비행기가 서울을 향해 이륙하는
것이 공항 건물뒤로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하늘을 향해 곧장 날아가는 듯하던 비행기는 서서히 방
향을 바꾸더니 북쪽을 향해 기수를 돌리기 시작했다. 저 비행기 안에는 지금 내 모습처럼, 어딘가에
자신을 보고 있을 날 찾고 있을 그녀가 있을 것이다. 철로 만들어진 날개를 단 예린이는 그렇게 내
곁을 떠나고 있었다. 그녀와 나의 아이가 기다리고 있는 그곳으로.

 

, , , , , , , , , , , , , , , , , , , , , , , , ,

1 Comments
토도사 2023.05.04 04:04  

토도사 공식제휴업체 소개입니다.

무제재 가입첫충 100% 벳위즈 바로가기

무제재 가입첫충 100% 벳위즈

주간 인기순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