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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모르는 일 - 상

토도사 0 930 0

난 모르는 일 - 상

난 모르는 일 - 상


최근들어 미스 박의 얼굴이 푸석푸석 붓는 것이 몸에 큰 탈이 난 것 같았다. 아무리 얼굴이 바쳐주지 않는 처녀라 해도 남들 눈에 띌 정도로 부시시한 얼굴을 하고 출근한다는 것은 직장에 대한 예의도 아닐뿐더러 주변사람들을 너무 불편하게 한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
"과장님, 저 낼부터 일주일쯤 휴가를 냈으면 해요." 미스 박이 못마땅해 하는 내 앞자리에 와서 휴가를 허락해 달라며 다소곳한 목소리로 휴가원을 내민다.
"어디 아파?" 반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며 불쑥 내 뱉은 말이었다.
"임신 칠월째에요."
"아빠는 누구?"
"그런 사람 있어요."
"부쩍 푸석하던데 그럼 임신 탓이었어?"
"네."
미스 박은 휴가 허락 여부에 관심이 없는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이층 계단을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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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김, 미스 박이 언제부터 저랬어?"
"상심이 큰가봐요."
"왜?"
"아빠될 사람이 모르는 일이라고 시치미를 떼는 바람에 중절 시기를 놓쳤데요."
"무책임한 놈이 도대체 누구야?"
"거래처 남잔데 절대 인정할 수 없다며 도망 다닌데요."
"도망 다닐 일이 아니잖아?"
"미스 박이 너무 쉽게 줬데요.
아무한테나 주는 년이 밴 아이를 자기 애라고 우기면 누가 믿겠냐며 약도 올렸데요."
"미스 박이 그렇게 해펐어?"
"그 언닌 얼굴이 안 바쳐 주잖아요.
장난삼아 한번 할까? 했다나봐요.
딱 한번 한 걸 갖고 평생을 책임지라 쫒아 다니면 어떻하냐고 오리발이래요."
"저런..." 미스 박이 안쓰럽게 됐구나 싶다.
미스 박은 심성이 착한 편이지만 얼굴이 안 따라줘서 내면 세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말 한번 걸 일도 없겠다 싶다. 안팍의 일들을 어찌나 꼼꼼하게 처리하는지 사람은 진국인 것은 알겠는데 여자로서 배필을 정해야 할 때는 겉모습만 보고 누구나 사람을 평가할텐데 그때는 애좀 먹겠다 싶기도 했다.
사실 요즘처럼 성형수술이 잘 발달된 시대에 살면서 맘만 먹으면 요모조모 틀을 바꿔서라도 예뻐질 기회는 많겠지만 미스 박의 경우는 견적이 안나올 정도로 손봐야 할 곳이 많기도 하다. 저렇게 얼굴 관리를 안하다가는 흔히 하는 사내 결혼은커녕 미팅, 소개팅도 한번 못하고 늙겠다 싶은 그녀에게 누군가가 사귀자고 속삭였다면 솔깃한 마음도 생겼을 것이다. 여자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그냥 좆대가리 쑤셔넣는 도구로만 생각하는 요즘 사내놈들이야 그런 미스박의 박색 때문에 혹시라도 천연기념물 보다 더 희귀한 숫처녀가 아닐까 싶은 마음에 장난삼아 농을 건넸을 지도 모른다.
그런 놈팽이의 속도 모르고 뱃속에 아이를 무럭무럭 키웠을테니 지금 그녀의 속이 얼마나 쓰리고 아플까.
"미스 김은 그런 사실을 언제 알았어?"
"첨부터 알았어요. 창피한 일인지도 모르고 어찌나 자랑을 하는지 여자휴게실에선 언니가 곧 시집가게 됐다며 수근수근이 한창이었거든요."
"애 아빠가 누군지는 알아?"
"길건너 대기업체 경리과 직원이에요."
"아, 그 얼굴 반반한 놈?"
"맞아요. 언니가 걸려들지 않았다면 저도 그 사람에게 넘어갈뻔 했는걸요."
"왜? 미스 김도 시집 못갈까봐 걱정이었나?"
"그사람 눈 빛이 은근해서 쳐다만 보면 가슴이 싸늘해지거든요."
"내 눈은 어때?" 장난삼아 눈을 살짝 작게 해서 미스 김을 쳐다 봤다.
"아휴, 과장님 눈은 동태눈 같아요. 역겨워..." 미스 김이 진저리를 치듯 뒤로 한걸음 물러난다.
"미스 김은 따르는 남자들이 많지않아?"
"많긴하죠. 걔들은 제가 처녀라는 걸 바라지도 않는 눈친걸요."
"왜?"
"요즘 처녀가 어딨어요? 얼굴만 좀 바쳐주면 날라리가 안 될 수가 없다니까요."
"미스김은 그렇지 않단 말이지?"
"속상해 죽겠어요. 얼굴도 안따라주는 미스 박 언니는 처년줄 알고 사고치면서 멀쩡한 처녀인 저한텐 장난치는 애들은 많아도 진지한 애들이 없다니까요."
"순진한 표정 연습을 해봐. 총각들이 겁먹고 미스 김은 결혼 상대자에서 빼버리는 걸꺼야."
"과장님도 장가갈 때 얼굴 좀 바쳐주는 여잔 빼고 골랐어요?"
"글세, 난 오래된 일이라서 기억도 안나는걸."
"제 나이도 벌써 스물여섯인데 이쯤에선 진지한 남자친구 한명쯤은 있어야 되지 않나요?"
"곧 나타나겠지. 급할것도 없잖아?"
"아휴, 미스박 언니가 안되기도 했지만 내겐 왜 그런 일조차 안생기는지 신경질 나요."
"성질머리 죽이고 다소곳해봐. 표정 연기로 순진하게 보여보고도 하고..."
"흥, 지깟것들이 진국을 몰라본다면 혼자 살죠 뭐."
여자들이란 알 수가 없다.
한 여자는 책임질 수 없다는 애를 뱃속에 넣고 고민 중이고, 한 여자는 얼굴이 바쳐주는데도 불구하고 외면당하고 있다며 질투하고.
미스 박이 외출복으로 갈아 입고 다시 계단을 내려온다.
남모르게 부풀대로 부풀은 아랫배를 꽁꽁 동여맷을 시간들이 무척이나 안쓰러워 보인다.
"과장님, 죄송해요. 일주일만 고민하다 올께요."
"그래, 몸 조리 잘해라."
미스박이 문을 나서자 마자 미스 김이 돌아서며 조잘대기 위해 내 책상 앞으로 온다. 무슨 일이 또 남았을까 의구심이 일었지만 모른 척 다른 일꺼리를 찾으며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과장님, 저 언닌 어떻한데요?"
"뭘?"
"그냥요. 일주일이면 뭔가 해결된데요?"
"궁금해?"
"아뇨, 대책도 없이 덩컹 휴가만 축낼까봐서요."
"미스 김은 당사자가 아니라서 몰라. 얼마나 망측한 일로 본인은 피 눈물을 흘리겠어?"
"피눈물을 왜 흘려요?"
"임자없는 애를 낳고 키운다고 생각해봐. 미스 김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겠어?"
"과장님이 왜 흥분해요?"
"미스김이 너무 남의 일이라고 촐랑대니까 그렇지."
"촐랑요?" 미스김은 얼굴을 붉히더니 이내 눈물을 줄줄 짜며 뛰쳐 나간다.
"이봐, 최과장. 어린애한테 어떻게 했길래 울고불고 난리야?" 위층 박과장이 전화로 나를 질책한다.
"뭐? 누가 울어?" 나는 의아한 목소리로 박과장에게 물었다.
"지금 미스김이 억울하다며 이층에 올라와서 징징 거리구 난리란 말야."
"웃기는 일이군. 아무일도 아냐." 실소가 터지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 정말 아무일도 아니지?" 박과장이 염려스러워 재차 물어온다.
"그렇대두. 아까 미스박일 때문에 촐랑거리길래 좀 나무라긴 했지만 별거 아냐."
"알았어. 여자들 함부로 울리면 안되는거 잊지마..." 박과장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나서야 겨우 전화를 끊었다.
해가 서산에 걸쳐졌다.
직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며 퇴근후 술판을 벌일 공모를 하는 듯 하더니 하나 둘 사라지고 빈 책상들만 덩그러니 놓여진다. 또 평범했던 하루가 끝나고 나는 지하철에 몸을 싣기만 하면 포근한 가정의 품에 안기게 될 것이다.
보안담당 직원이 마지막으로 퇴청하며 어서 나가 달라며 재촉을 하기 시작했다.
잔 업무가 있는 사람들 보다는 상사의 눈치밥을 먹는 사람들 몇 명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어물어물거리며 퇴근 눈치를 보다 떠밀리듯 문을 벗어난다.
아직 겨울 추위가 봄기운을 억누를 듯 하늘은 낮게 깔리고 제법 차가운 날씨덕에 옷깃을 한층 올리게 한다. 비록 거리는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지만 짝지은 연인들은 추위에도 불구하고 퇴근 거리를 온통 메우고 있다. 정말 이런 날은 지하철로 직행할 것이 아니라 따끈한 오뎅 국물에 소주 한잔 걸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었다. 아까 술판을 공모하던 직원들은 어느 따뜻한 선술집에 모여 나를 안주삼아 씹어 먹고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하니 실없이 미소짓게 된다. 직장인의 낙이란게 사실 대단한 것도 아닌 셈이다. 안주거리로 직장 상사를 씹는 맛이 최고일 때가 내게도 한 때는 있었으니까.
지하철 입구에 막 들어서는데 핸드폰 벨이 울렸다.
"누구지? 전화 올데가 없을텐데..." 낯선 전화번호를 받고 싶지 않아서 모른 척 다시 주머니 속에 핸드폰을 쑤셔 넣으며 진동모드로 바꿨다.
지하철표를 한 장 사서 막 개찰구를 통과하려는 순간 전화진동이 온 몸을 부르르 떨게 한다. 귀찮은 듯 전화를 꺼내 보니 아까 그 전화번호다. 낯선 전화라서 받지 않았는데 재차 걸려오니 일단 수화기를 열었다.
"과장님, 저에요. 미스 김."
"어, 웬일이야?"
"아까 저 화나게 하고 사과도 없이 그냥 갈꺼에요?"
"사과? 웬?"
"촐랑거린다면서요."
"아하, 미안하게 됐어. 사과할게."
"말로만?"
"그럼?"
"지금 어디에요?"
"지하철 개찰구 막 통과 중이야."
"전 지하철 3번 출구에 있어요. 차 한잔하고 감정 풀어야 잠을 잘 것 같아서 전화했어요."
"그래? 그게 그 정도로 가슴 아픈 말이었어?"
"말한 사람은 모르지만 듣는 사람에겐 비수라는 걸 설마 모른다 하진 않겠죠?"
"알았어. 그렇게 속상했었다면 차한잔 하면서 풀어 버리자."
나는 미스 김이 기다리고 있다는 3번 출구 쪽으로 다시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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