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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파즈(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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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파즈(1-1) 

야설-14/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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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와 스치는 순간 내 몸 속의 내장 하나가 폭발해 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 나는 그 자리에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

토요일 오후, 하기 싫은 손님과 일을 막 끝내고 나온 다음이라 기분이 몹시 가라앉아 있었다. 사무실에 들리고 싶은 마음조차 없어 쇼핑으로 기분 전환이라도 하려고 그 남자 생각을 하며 야오야마 거리를 걷고 있었는데, 바로 그 남자를 만난 것이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그 남자를 좋아했다. 지금은 마흔이 넘었을 그 남자는 작곡가이자 가수이고, 영화도 만들며 가끔 소설도 쓰는 예술가다. 그 남자는 나의 내장 한 곳을 폭파시킨 후 스포츠카를 타고 사라졌다. 나는 그 빨간 스포트카가 완전히 사라져 버릴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며, 그 남자가 남긴 향을 음미하면서 즐거워했다. 내가 우리 엄마 나이만 됐어도 그 남자가 가 버린 곳을 향해 두 손을 모아 합장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괜스레 우스워지기도 했다.

그 남자가 나온 이탈리아 레스토랑 옆에는 보석상점이 있었다. 내가 얼른 그 보석상점 안으로 들어가자, 쓰리 피스를 입고 수염을 기른 상점 주인이 미소지으며 내 손가락을 쳐다보더니, 토파즈( Topaz, 보석의 하나인 황옥)가 어울리는 손이라고 말했다.

보석상점에서도 나는 계속 그 남자를 생각하고 있었다. 머리 속엔 온통 그 남자의 얼굴과 그의 음악과 그림으로 가득했기 때문에, 상점 주인이 토파즈가 어울리는 손이라고 말하는 것이 마치 그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어 오는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 호텔 방에서 땀과 타액, 그 밖의 끈끈한 액체로 뒤범벅이 된 채, 내가 싫어하는 타입의 손님과 놀아 준 대가로 받은 만 엔짜리 지폐를 내밀고, 그 반지를 손가락에 껴 보았다. 마치 마흔을 넘긴 그 예술가의 정부라도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당신이 권해 줘서 샀아요.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려 보았다. 샤워를 한지 30분이나 지났는데, 그곳이 젖어 오는 것을 느꼈다.

정액에 찌든 만 엔 권3장으로 선금을 치르고 나는 반지를 샀다. 아침부터 몸이 안 좋아서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았는데, 알몸으로 묶인 채 바이브레이터를 그곳에 넣는 손님의 악취를 맡고 있을 때는 계속 구역질이 났었다. 하지만 그 예술가가 나온 이탈리아 레스토랑의 입구와 간판, 메뉴를 보고 있자니, 그 곳은 레스토랑이 아니라 마치 성당 같은 느낌이 들어 기도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키가 큰 웨이터가 가장 구석진 테이블로 안내해 주었다.

웨이터에게 그 예술가의 이름을 대며 여기 자주 오는 게 사실이냐고 물어 보았다. 그러자 실은 오늘 2개월만에 오신 거라고 키 큰웨이터는 너무나도 상냥하게 웃으면서 답했다.

그 웨이터가 권해 준 작은 생선 초절임과 맥주를 마시고 있으려니, 다시금 그 예술가의 정부가 된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어젯밤 누가 더 짐승 같았냐는 등 은밀한 대화를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사람들 눈을 피하기 위해 유명한 그가먼저 가게를 나간 것이다. 여러 가지 상상을 혼자 만끽하고 있는데, 삐삐가 울렸다.

단절적인 소리가 가게 안에 크게 울려 퍼지면서 가위로 종이를 잘라내듯이 내 꿈은 갈기갈기 찢겨 버렸다. 순간 내 얼굴은 냉동이라도 된 듯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너, 뭐하고 있는 거야?"

전화는 계산대의 바로 옆에 있었다. 아까부터 계속 나에게 친절히 대해 주던 웨이터가 긴 종이에 뭔가를 적어 넣으며 바쁘시네요, 하고 말을 거는 것 같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나는 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마담 언니의 느끼한 목소리가 마치 섹스를 하고있는 우리 엄마의 모습을 보여 주기라도 하는 양 창피해서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아키코, 오늘 토요일이라 그런지 전화가 끊이질 않네."

마담 언니의 걸걸하고 무거운 목소리는 식충 식물의 끈적끈적한 액체투성이 촉수처럼 산산조각 난 내 꿈을 어두운 구멍 속으로 빨아들이는 느낌이었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죄송하다고 했다.

"지금, 어디 있는 거야? 아오야마? 어, 그래? 밥 먹고 있어? 교토에, 왜 있잖아. 요시에 손님, 의사라는 사람, 알고 있지? 그래, 야마기시 씨 말야, 오늘 요시에가 생리라 쉬니까, 아키코 니가 갔으면 해. 응, 2시간인테, 니가 잘 해 주면 그 의사 선생님은 얼마든지 연장하니까, 요시에도 언제나 두 세 시간씩 연장해서 10만이고 20만이고 받아 오거든, 빨리 호텔로 가. 그 선생님은 관장하는 걸 좋아하니까, 너무 많이 먹으면 나중에 속이 안 좋을 거야."

전화를 끊었을 때, 키 큰웨이터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들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가게를 나올 때 내 검정색 큰 가방 안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SM섹스 도구가 탁탁 부딪혀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마치 그것을 할 때 손님들이 억지로 시키는 수치스런 말처럼 들렸다. 나는 그 예술가가 전해 준 꿈의 잔해를 필사적으로 되찾으려 했지만,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야마기시라는 손님은 30대 초반으로 키도 크고 근육도 단단해서 싫은 타입은 아니었다. 얼굴도 아주 예쁘장하고 손가락도 긴 것이 꼭 피아니스트의 손 같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맡아 본 적 없는 향수를 뿌리고 있어서, 나는 야마기시 앞에서 옷을 벗는 것이 좀 쑥스러웠다.

내가 불 좀 꺼 달라고 부탁하자, 야마기시는 웃으면서 불을 껐다. 그 대신 커튼을 전부 젖히더니 내게 뉴오타니 타워의 살짝 커브진 창에서 비춰 오는 석양 한가운데에 서 보라고 했다. 수도고속도로에 잔뜩 밀려 있는 자동차와 트럭의 행렬이 마치 송충이나 애벌레 같은 징그러운 것들처럼 보였다.

야마기시는 서류가방에서 은색 수영모자를 꺼내면서 내게 쓰라고 했다.

"뭐야, 넌 얼굴이 크잖아."

야마기시는 은색 민둥머리가 된 내게 그렇게 말하고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한 모금 마셨다. 하이힐과 팬티, 브래지어, 수영모자만을 걸치고 있는 나를 향해 섹스하고 싶어서 미칠 것 같은, 부끄러움을 타는 OL(사무직 여사원)처럼 엉덩이를 흔들면서 팬티를 내려 보라고 명령했다.

나는 석양빛에 조금 달궈진 엉덩이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건 체조 아냐? 하고 야마기시가 말했다. 내가 빙긋 웃자, 쾅 소리가 날 정도로 맥주를 테이블 위에 놓고는 웃지 말라고 소리치면서 무서워하는 내게 다가와 브래지어를 밑으로 내리고 젖꼭지를 세게 잡아 비틀었다. 넌 말야, 여기하고! 그러면서 내 그곳의 살을 잡았다.

"바보 같은 년, 웃는 년이 어딨어. 너한테는 인격 같은 것 없어, 알아? 아무리 대가리 속에 똥만 차 있어도 인격이란 말 정도는 알고 있겠지? 니 년한테 인격이란 거 없어, 이 년아, 그런 년이 쪽팔리다고 웃어?"

야마기시는 내 젖꼭지와 그곳 살을 잡고 마구 흔들었다. 나는 너무 아파서 오줌이 나올 것 같았지만, 혼나는 게 무서워서 고개를 숙여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거듭 말하며 참았다.

"그러니까, 니 년은 여기하고, 여기만으로 사리 판단을 해, 알았어? 알았으면 한 번 인사해 봐."

야마기시가 그 곳에서 손을 뗐지만, 아픔이 가시질 않아 엉덩이 살이 떨렸다. 나는 소파에 깊숙이 앉아 있는 야마기시를 향해 무릎을 꿇고, 그의 발가락을 한 개씩 입에 넣으며 용서해 달라고 애원했다. 야마기시는 다른 쪽 발끝으로 수영모자를 쓴 내 머리를 차며 TV의 일기예보에서나 나올 듯한 맑은 소리로 웃었다.

머리 속엔 똥만 차 있다고 말하면서 거울에 비친 수영모자를 보았다. 정말 그런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젖꼭지와 그곳의 살밖엔 내 속에 살아 있는 건 없다고 나 자신에게 말했다. 커다란 빙산이 해면에 일부만 빼곰이 드러내듯이, 내 몸의 일부 중 표면에 나와 있는 부분은 유두와 그곳의 음순뿐이라고 느껴졌다. 그러자 야한 생각들이 차례로 끓어올라, 두 달 전까지 사귀고 있던 중고 컴퓨터 세일즈맨과 섹스할 때도 몸 전체가 그곳이 되어 버렸다고 생각했을 땐 무척 기분이 좋았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은색 민둥머리로 석양을 반사시키며 천천히 엉덩이를 돌렸다. 야마기시의 마음에 들 때까지 몇 번씩이나 다시 하면서 겨우 팬티를 내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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