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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레이브 1(들어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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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14/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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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뉴욕시, 가을

창 밑의 거리에서 차 소리가 올라와 환기시키려고 열어둔 호텔 창문을 통해 밀려들어 왔다.도시는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고 이제 주말의 활기가 넘쳐나고 있었다.신혼부부를 태운 리무진이 신혼부부의 탄생을 알리기 위해 요란스럽게 경적을 울렸다.그러자 아까 로비에서 그들 곁을 지나쳤던 진한 밤색 머리의 여자가 깜짝놀라는 표정을 지었다.그러나 그녀는 훈련을 통해 습득한 긴장을 풀지 않으며 꼿꼿한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등받이가 높은 의자에 앉아있는 남자는 시끄러운 경적 소리에도 전혀 동요되지 않는 것 같았다.그런 점은 여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남자는 앞에 놓인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서류를 한 장한장 꼼꼼히 들춰보고 있는 그의 태도에는 몸에 밴 냉정함이 깃들여 있는 것 같았다.갑자기 로빈에게 어떤 충동이 엄습해 왔다.말하고 싶고,기침하고 싶고,좀더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싶고,룸 서비스 트레이 위의 물방울이 맺혀 있는 주전자에서 물을 한잔 따라 마시고 싶었다.로빈은 남자에게 서류를 건네준 뒤 그 자리에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그러나 남자는 그녀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 것 같았다.로빈은 은근히 화가 났지만 이내 그 모든 생각을 지워버렸다.

'참아야지.난 인내하는 인간이야.'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좀 편안하게 있지, 그러나?"

남자의 목소리는 거친 테너였다.힘든 콘서트를 마친 가수처럼.새벽 4시에 일어난 학생처럼.또한 그의 목소리는 컸다.침묵이 깨지면서 입을 다물고 있으려는 로빈의 노력 또한 무너졌다.

"저......."

로빈은 입을 열었다.로빈의 목소리는 들릴 듯 말 듯 떨고 있었다.남자가 올려다보자 로빈은 침을 꿀꺽 삼키고 말을 이었다.

"결례를 범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잘 모르겠습니다.선생님."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훌륭하군.저쪽 의자에 가서 않지 그래?긴 밤도 지냈고 하니."

로빈은 고개를 숙였다.그리고 스커트를 무릎 아래로 가지런히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았다.자리에 앉으니 공손한 자세를 취하는 게 좀더 용이했다.로빈은 남자를 그윽이 바라보았다.남자는 로빈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지만 원체 나이를 알아내기 힘든 얼굴을 하고 있었다.검은 머리카락은 숱이 많고 약간은 곱슬이 었는데 짧게 치고 있었다.아주 짧게 다듬은 것으로 봐서 로빈은 그가 금방 머리털을 다시 자를 거라는 걸 알수 있었다.성긴 수염과 오후 다섯시의 엷은 빛 덕분에 그는 학자처럼 보였다.아니 지난밤 바의 희미한 불빛 속에서처럼 테러리스트같이 보이기도 했다.남자는 안경알이 약간 착색된 무거운 철테 안경을 쓰고 있었고,빳빳하게 다린 깨끗한 긴소매 셔츠에 타이를 매고 있었다.상의는 거실 의자의 팔걸이에 걸쳐져 있었다. 간밤에 입고 있던 가죽 재킷은 보이지 않았다.

서류를 다읽은 남자는 그것을 서류철에 도로 깨끗하게 넣어 두더니 이번엔 아무 말없이 앉아 있었다.로빈은 시계의 초침이 재깍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 침묵은 그때까지 경험했던 그 어떤 무거운 손보다 그녀를 짓눌렀다.그녀는 그 앞에 엎드리고 싶었다.짧은 순간,부끄러움과 전율이 그녀를 휩쓸고 지나갔다.로빈의 심문자는 그것을 저 아래의 택시가 내는 시끄러운 경적 소리만큼 분명하게 알아차렸다.그는 입 한 귀틍이를 끌어당겨서 웃었다.

"아주 훌륭하군.너의 본능이 무엇을 하고 싶어했는지를 말해봐라."

로빈은 입이 마르기 시작했다.로빈은 입술을 핥고 목을 가다듬기 위해 찬기침을 몇 번 하더니 이내 속삭였다.

"전 무릎 꿇고 싶었습니다."

"알고 있다.하지만 그것 말고 다른 것이 더 있었어."

그는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탁하고 열었다.

"전 선생님의 발에 경의를 바치고 싶었습니다."

로빈은 여전히 속삭였다.그녀의 얼굴에 홍조가 번졌다.

"네가 훈련받은 대로 해봐라."

남자는 말하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로빈은 재빨리 일어섰다.그녀의 동작엔 흠잡을 데가 없었다.로빈은 두 걸음을 떼어 그의 앞에 섰다.아직 팔이 미치지 않는 거리였다.그녀는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카펫에 엎드렸다.이마가 바닥에 닿았다.그녀는 세제의 화공약품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세제냄새는 손은 내밀면 닿을 거리에 있는 가죽 부츠의 냄새와 뒤섞여 있었다.오래 신은 가죽 부츠는 반짝거렸다.로빈은 꼼짝않고 엎드려 있었다.

"허락한다."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말은 희미하게 울렸다.그것은 로빈의 귀에서 들리는 쿵쿵거리는 이명과 겹쳐지고 있었다.그녀는 머리를 약간들고 양쪽부츠에 키스했다.조심스럽고 부드러운 키스-자신의 존재를 느끼게 해줄 만큼 강하게,그러나 그녀는 다시 바닥에 머리를 댔다.

"아주 훌륭하군.네 자리로 돌아가기 바란다."

남자가 말했다.로빈은 무릎으로 일어서서 그를 바라보았다.두 사람의 눈길이 마주쳤다.

'감사합니다."

"아,천만에."

로빈이 다시 의자에 앉자 그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 피우나?"

"아닙니다. 선생님."

"훌륭해.담배를 피우고 있다면 끊어야 할 테니까."

로빈은 고개를 숙였다.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 말은 저를 받아들이신다는 뜻입니까?"

"그렇다.네 기록은 괜찮다.중개인도 내가 잘 아는 사람이고.지금까지 관찰한 바로는 네 행동에도 흠잡을 데가 없군.음...... . 아니.......,좀 전의 내 말은 그저 네가 마켓플레이스에 들어온 이상 어떤 중독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 주려고 했던 것이다."

그는 말을 끊더니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 단 하나의 예외는 있지."

마음 속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로빈 또한 미소를 지었다.

"순종자에게 허용되는 중독이 있다는 겁니까?"

"그렇다.소유 당하는 것에 대한 중독 말이지.그것이 전제니까.간밤에 우린 정식으로 인사하지 않았지?난 크리스 파커라고 한다."

"감사합니다.저에 대해서는 모든 걸 다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로빈은 공손하게 말했다.그는 서류철을 가리키며 말했다.

"뭐,이거?아니,이건 별거 아니다.이건 네가 몇 가지 서비스를 할 줄 안다는 걸 이야기하고 있지.물론 그것도 도움이 되긴 해.하지만 너의 헌신이 정말 진심인지,앞으로 네가 정말 진지하게 몸을 바치려 하는 지,또는 이런 생활에 대한 욕구가 얼마나 깊은 것인지는 이걸 보고는 알 수 없다.그런 것들은 너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거지.난 너를 좀더 테스트해 보고 싶다.그리고 특별한 행동과 서비스 면에서 널 훈련시키고 싶다.난 내 고객을 시장에 내놓기 전에 언제나 적절한 훈련을 시키곤 하지."

고객이라고!로빈은 침을 꿀꺽 삼켰다.그들이 날 노예라고 불렀을 때 난 노예가 아니었어.하지만 지금 난 노예가 됐는데 지금 그들은 날 노예라고 부르지 않는군.로빈은 킥킥 웃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그러자 힘이 잔뜩 들어간 어깨에서 약간 힘이 풀렸고 눈길마저 흔들렸다.

"전 선생님에게 봉사하고 싶습니다.이런 것은 제가 오랫동안 생각해 오던 것입니다.아니,그저 생각만 한 것이 아니라 꿈꿔오고 있었습니다.이것은 제가 평생 바라오던 생활입니다."

"평생?그것 참 인상적인 말이군.말해 봐라."

크리스는 옆의 유리 재떨이에 재를 털었다.

"모든 걸 다요?처음부터 말입니까?"

"얘기를 시작할 때는 처음부터 하는 게 보통이지."

로빈은 잠시 얼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어디서부터 시작하지?그녀는 마음속으로 물었다.이런 이야기에서 진짜 시작이란 무엇일까?내가 어렸을 때부터?아니면 환상이 가진 힘을 처음 깨달았을 때부터?아니면 마리아와 만난 일부터?아니면 트로이와?

"죄송합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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