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건

그 악몽같았던 날로부터 3일이 지났지만 유키히로는 그 날 이후 미호에게 전혀 손을 댈 기색이 없었다. 당연히 미호와 유키히로의 관계는 어색한 상태로 계속 유지되었다. 미호는 사진을 되찾을 방법을 이것저것 생각해 보았지만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과감하게 이쪽에서 접근해볼까····)

미호는 수업자료를 만들면서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유키히로와 둘이서만 있을 필요가 있고, 그것만 생각하면 미호의 기분은 움츠려들었다.

(위험해… 단둘이만 있게 된다면····또 이상한 일이라도 생기면…)

미호는 두려웠다. 그것은 단지 유키히로의 희롱에 대한 공포만은 아니었다. 유키히로에 희롱되는 자신의 몸이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 생각하면 무서웠다. 그 비품 창고 때처럼 넋을 잃고 쾌락에 빠져버릴 것 같은 예감이 미호에게는 있었다. 실은 그런 자신의 몸을 더 무서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빨리 어떻게 하지않는다면… )

미호는 턱을 괴고서 골똘히 생각했다. 오늘 벌써 몇번인지 모를 큰 한숨이 흘러넘쳤다····


기회는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점심시간에 기분전환삼아 학교 동쪽에 있는 공원에 나온 미호는 벤치에 앉아 뭔가 생각에 깊이 잠겨있는 유키히로를 발견한 것이다.

학교 부지 안에 있는 작은 공원은 학생들 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지만 이 공원을 이용하기 위해 일부러 긴 비탈길을 올라올만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아서 실제로 잔디 위에 둘러앉아 담소하고 있는 사람도, 원반던지기를 하며 놀고 있는 사람도 모두 학생들뿐이었다.

유키히로는 공원구석에 있는 벤치에 앉아 턱을 괴는 행동을 하며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호는 유키히로를 찾아낸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너무 잘 어울려 마치 그림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유키히로의 옆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듯해 미호의 가슴도 괜히 두근거렸다.

(싫어…왜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는거지?)

내심의 동요를 숨기면서 다가가는 미호를 유키히로는 전혀 깨닫지 못한 채 여전히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 저, 유키히로선생님····」

미호가 주저주저하며 말을 걸자 간신히 미호를 알아차린 모습으로 유키히로는 얼굴을 들고 어두운 눈으로 미호를 올려보았다.

「아, 미호선생님」

미호는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이야기를 꺼냈다.

「저, 사진이요····」

「사진?」

「예, 저의 그····옛 사진입니다. 그것을 제게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미호는 용기를 내서 과감하게 말했다. 유키히로는 미호의 이야기를 아무 말없이 들으며 생각에 다시 빠져들었다.

「아, 저····」

미호가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며 말을 걸자,

「알았습니다. 그러지요····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유키히로는 간신히 그렇게 말했다.

「조건····?」

역시라고 미호는 생각했다. 유키히로가 뭔가 교환조건을 낼 것이라는 것은 예측하였지만 유키히로가 어떤 조건을 내세울지 미호는 불안을 감출 수 없었다.

「지금, 바로 지금부터 내일 아침까지 나의 명령은 모두 따르기 바랍니다.」

「내일 ····아침까지····」

「어떻습니까?」

유키히로가 재촉하는 듯한 말에 미호는 단호히 잘라 말했다.

「내일 아침까지만 참는다면… 좋아요····알았습니다.」

과연 유키히로가 약속을 제대로 지켜줄지 조금 불안하긴했지만 지금은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 아, 오늘 6교시에 2학년 PC 실습 수업이 있습니다. 좀 도와줄 수 있습니까?」

그러면서 미호를 바라보는 유키히로의 눈은 3일전에 열람실에서 보았던 그 능욕자의 눈으로 변해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듯한 표정은 이제 어디에도 남지 않았다.

(아, 왜 하필 수업시간을 ····)

미호는 마음 속에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알았습니다.」



컴퓨터 실습실, 통칭 「PC 룸」은 교사의 3층, 서쪽구석에 위치하고 있었다. 방안에는 20대의 PC 탁자가 죽 줄지어 있다. 앞줄에 10대를 더 놓으면 학생 1명에 1대의 PC를 확보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재정적인 이유보다는 공간상의 이유가 더 컸다. 시청각실을 개조해 만들어진 방에는 20대를 설치하는 것이 겨우였다.

PC실습은 2학년부터 행해져 각 교과목마다 각각 2주에 1회씩 수업이 할당되어 있었다. 사회과에서도 PC를 사용한 수업 외에도 2인1조로 보고서를 작성시키는 실습도 있었다.

교실바닥 보다 높게 위치한 교단에는 마스터 콘솔이 놓여져서 학생들의 컴퓨터를 일괄제어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 마스터 콘솔 앞에 앉은 미호는 유키히로가 어떤 요구를 할지 조마조마해 하며 옆에 선 유키히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기계치인 나를 보충하기 위해 미호선생님에게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여러분 잘 부탁드립니다.」

유키히로가 말을 끝낸 순간,

「선생님,  PC 정도는 왠만큼 하셔야지요…」

「유키히로선생님, 그저 어떻게든 쉬려고 하고 있어―」

「자신의 취미대로 미호선생님을 선택했을거야….」

학생들 사이에서 놀리는 소리가 높아져서 미호를 놀라게 했다. 우등생만 모이는 료우에이중학에서는 학생들이 선생님의 말에 농담으로 받아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것은 유키히로가 얼마나 학생들과 친밀하게 지내고 있는지를 여실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아, 조용조용····웅성거리지 말고… 수업 시작한다.」

소리치지않고 학생들을 다루는 유키히로를 미호는 존경의 시선으로 올려보았다. 비열한 능욕자이긴 하지만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키히로가 설명하면 미호가 단말기를 조작하는 방법으로 수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 수업시간은 어쩌면 그냥 지나가겠구나…)

수업시간이 절반정도 경과한 무렵 미호는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학생들 앞에서는 유키히로도 엉뚱한 짓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유키히로는 세밀한 부분까지 수업을 진행하고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그럼 나머지 시간엔 지금까지 한 것을 정리해서 리포트로 제출하세요. 다음 PC 실습시간에도 리포트작성을 할 테니까 잘 준비해주세요. 특별한 양식은 없지만 리포트를 일일이 읽어야하는 내 입장도 고려해서 읽기 쉽게 정리해주세요. 특히 쿠보군은 제대로 된 일본어로 써주세요.」

라고 말하며 학생들을 웃기기도 했다.

유키히로는 무심코 미소지은 미호의 곁에 가까이 다가와서 귓전에 속삭였다.

「교실 뒤로 가서 속옷을 전부 벗는다.」

방심하고 있던 미호는 유키히로의 말에 얼굴이 굳어지며 당황해서 유키히로를 바라보았다.

「질문은 기본적으로 받지 않습니다. 전부 자신들의 힘으로 해 보세요.」

유키히로는 학생들을 향해 그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미호는 일순간 자신이 헛들었다고 생각했지만 다음순간 키보드 위에 그 꺼림칙한 사진이 놓이자 현실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미호는 재빠르게 사진을 상의 포켓에 넣고 일어섰다. 미호와 시선이 마주치자 유키히로는 힐쭉 웃어보였다. 미호는 그 어두운 미소에서 바닥을 알수없는 공포를 느껴 시선을 피하고 도망치듯이 교실 뒤로 움직였다.

학생들은 2인1조가 되어 리포트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서로 상의하고 있는 조도 있고 벌써 키보드를 치기 시작한 조도 있었다. 미호는 그런 학생들의 사이를 빠져나가 교실  뒤로 걸어 갔다.

교실 뒷편 벽에는 미호의 허리 높이정도의 락커가 놓여져 있었다. 미호는 락카를 등지고 교실안을 바라보며 몸을 돌렸다. 지금부터 여기서 속옷을 모두 벗지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생각하자 미호의 몸은 움츠려들었다. 표현할 수 없는 긴장감이 미호의 몸을 꿰뚫고 지나갔다. 미호는 암녹색의 슈트에 싸인 자신의 몸을 내려다 보았다.

(먼저 빨리 브래지어를 벗자.)

슈트 상의 아래에는 슈트와 같은 색의 캐미숄을 입고 있었다. 어깨선이 가늘고 작았기 때문에 미호는 끈없는 브래지어를 입고 있었다. 벗는 것은 비교적으로 용이했다. 태연한 표정으로 윗도리를 벗고 로커 위에 두었다. 어깨 근처의 맨살이 노출된 것이 중학생에게는 조금 강한 자극이 될지 모르지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므로 외관상 이상하지 않았다.

미호는 주의깊게 학생들을 골고루 주시하면서 팔을 등뒤로 돌렸다. 캐미숄 안에 손을 집어넣고 손가락 끝이 브래지어의 호크를 찾자 재빠르게 풀었다. 조금이라도 주저하면 학생에게 발견되어 버릴 우려가 있다.

가슴을 단단히 조이고있던 압박감이 없어지자 미호의 가슴엔 졸지에 불안함이 솟구쳤다. 미호는 등뒤로 돌렸던 손을 빨리 움직여 캐미숄 아래로부터 손을 미끄러져 들어가게 해서 재빠르게 브래지어를 빼냈다. 벗은 엷은 블루의 하프겁브라를 미호는 일단 상의아래에 숨기기로 했다. 캐미숄에 유두의 형태가 비쳐보이지 않을지 조금 걱정되었지만 별로 눈에 띄지않는 것 같아 미호는 안심했다.

문제는 아래쪽이었다. 브래지어보다 훨씬 더 벗기 힘들고 학생들에게 발견될 위험성도 훨씬 높았다. 양손으로 살그머니 스커트의 옷자락을 잡았지만 거기에서 더 진행시킬 용기가 솟아 나지 않았다. 미호는 스커트의 옷자락을 꽉 쥔 채 한동안 그냥 서 있었다.

주저하는 미호의 눈에 문득 학생들이 사용하지 않은 빈 PC의 화면이 들어왔다. 거기에는 화면 가득 글이 써 있었다.

「하지 않는다면··！」

놀란 미호는 얼굴을 올려 유키히로를 보았다. 유키히로는 마스터 단말기에 앉은채 어두운 시선으로 가만히 미호를 응시하고 있었다. 미호와 시선이 마주치자 기분나쁜 미소를 띄우며 뭐가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미호는 방금까지 글이 써있던 PC 화면에 시선을 옮기고는 아연실색했다. 거기엔 화면 가득 교사답지 않은 미호의 부끄러운 모습이 빛나고 있었다.

(안 돼!)

미호는 떨렸다. 그것은 유키히로의 조작 하나로 학생들이 리포트를 만들며 보고 있는 화면에 그 사진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아… 벗지 않으면 학생들에게 보이겠다 이거군요····)

미호는 절망적인 기분으로 스커트의 옷자락을 다시 잡았다. 우물쭈물 틈이 없었다. 팬티를 벗고 있는 동안에 30명의 학생 중 한 명이라도 뒤돌아보면 모든 것이 끝나 버린다. 재빠르게 팬티스타킹과 팬티를 벗어서 정리할 필요가 있다.

미호는 학생들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신고 있던 힐을 신중하게 벗었다. 다행히 모든 학생도 리포트 만들기에 몰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미호의 가슴은 부풀어 터질만큼 격렬하게 고동쳤다. 스커트를 잡은 손이 서서히 땀에 젖어가는 것을 느꼈다.

「후~····」

미호는 작게 심호흡하고는 결심하고 스커트를 들어올렸다. 팬티스타킹 그 너머로 희미한 블루의 하이레그 팬티가 보였지만 그걸 신경 쓸 틈은 없었다. 미호는 팬티스타킹 밴드에 손가락을 걸고, 단번에 끌어 내렸다. 팬티의 사이드에 손가락 끝이 맞닿자 그것도 함께 끌어 내렸다.

너무 큰 동작으로 학생들이 알아차리지 않도록 신중하게 신속히 팬티스타킹을 벗지 않으면 안 된다. 미호는 초조해지는 기분을 억누르면서 팬티와 팬티스타킹을 끌어 내렸다.

마치 얇은 막을 벗기듯이 미호는 팬티스타킹을 늘씬한 다리로부터 벗겨갔다. 노출된 피부에 닿는 바깥공기가 미호의 치욕감을 부추겼다. 간신히 발끝으로 팬티와 팬티스타킹을 빼내자 미호는 그것을 둥글게 말아 브래지어와 같이 상의 아래 숨겼다. 재빠르게 교실안을 둘러보았지만 눈치챈 학생은 한명도 없는 것 같았다.

(휴~ 다행이다. 아무도 모르게 끝났다…)

안도의 한숨을 흘리면서 미호는 맨발에 다시 힐을 신었다. 긴장이 풀렸는지 온 몸에 땀이 베어나왔다. 하지만 미호에게 안심하고 있을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PC 화면에는 새로운 글자가 마치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스커트를 걷어 올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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