⑽ 후최면암시

응 ……, 나, 의식을 잃고 있었나? 여기는 ……, 내 방인가? 내가 왜 의식을 잃었지? 맞아! 뿌옅게 흐려져 있던 머리가 점차 맑아지면서 나는 그대로 벌떡 일어섰다. 목걸이를 영희에게 시험한다면서 내가 그 애에게 한 짓이 생각났다.

맙소사, 내가 오빠 때문에 머리가 어떻게 됐나? 어떻게 영희에게 그런 짓을 ……. 황급히 영희를 돌아보니 그 애는 그대로 눈을 감은 채로 누워 있었다. 우리 둘 다 땀과 애액으로 범벅이 된 모습이었다.

혹시 그새 최면이 풀린 것은 ……. 나는 조심스럽게 영희를 흔들어 보았다.

“영희야, 영희야 …….”

“……, 응.”

그 애가 눈을 감은 채로 대답을 했다. 졸음에 겨운 목소리 ……. 혹시?

“영희야, 지금 깨어 있니?”

“아니 …….”

“그럼 어떤 상태야?”

“최면 상태 …….”

그래, 내가 분명 영희가 최면에 걸렸다는 것을 이 애에게 가르쳐 주었지. 다행이다. 그럼 수습할 수 있겠어.

“영희야, 그대로 일어나 봐.”

나는 영희를 일으켜 세운 뒤 욕실로 향했다. 우리는 몸을 깨끗이 닦은 뒤 옷을 갈아 입었다. 그리고 영희를 다시 내 방으로 데려와 또렷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잘 들어, 영희야. 셋을 세면 너는 완전히 깨어난다. 하지만 최면 중에 있었던 일은 하나도 기억할 수 없어. 네가 부모님 소식을 내게 전한 뒤에 우리는 그냥 평범한 이야기를 나눈 거야. 학교나 뭐 그런 이야기 …….”

“하지만 최면 중에 겪은 그 쾌락은 네 무의식 중에 남아 있어. 넌 무의식 중에 최면술에 걸리는 것을 바라게 돼. 이후로 내가 ‘환상 속의 공주’라고 하면 너는 바로 지금과 같은 깊은 최면 상태에 빠지게 될 거야, 알았지?”

⑾ 망각

어디까지나 우리는 자매지간이고, 또한 레즈가 아니니까 ……. 정상적인 여인으로써 이런 기억이 남아있다면, 앞으로 영희와의 관계는 ……,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내가 영희의 기억을 지운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굳이 키워드를 남긴 것은 ……, 글쎄, 뜻밖에 최면술에 재미를 붙인 것이 아닐까 ……. 앞으로도 혹시 모르니까 만약을 위해 ……. 아니 그렇다고 영희에게 또 다시 이런 음란한 일을 시킬 의도는 아니고 ……, 험험, 그냥 영희가 너무 귀여워서 …….

과연 깨어난 영희는 최면 상태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날 저녁은 그렇게 지나갔다. 뒤늦게 돌아온 부모님도 ‘그 일’에 대해 전혀 눈치채지 못하셨다. 그리고 그 뒤 사흘 동안, 나는 일부러 오빠와의 연락을 끊었다.

솔직히 하루라도 오빠를 안 보는 것은 괴롭지만,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를 영원히 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잠깐의 고통 쯤은 ……. 그래, 사실 그동안 나름대로 최면술 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도서관이나, 인터넷을 검색하는 등 …….

단지 목걸이의 힘만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것은 내게 있어서 어쩌면 내 목숨보다 중요한 일이니만큼, 완벽을 기하고 싶었다.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기자 나는 오빠에게 전화했다.

“오빠? 나야, 정희.”

‘야, 어떻게 된 거야. 그 동안 전화도 없고, 만날려고 해도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내 쪽에서 전화해도 받지도 않고 ……. 무슨 일 있었어?’

“응, 조금 생각할 것이 있어서 ……. 할 말이 있는데 ……, 내일 만날 수 있겠어?”

‘내일? 아, 그래 ……. 나는 상관없어.’

“좋아, 그럼 오후 6시에 보자. 신촌의 ○○카폐 알지? 그래, 그래.”

드디어 ……, 내일이다. 나는 새삼 각오를 다졌다. 절대로 그를 다른 여자에게 빼앗길 수는 없어. 십여 년이 넘게 키워온 감정이다. 포기는 절대 안해! 새삼 주먹에 힘이 가해졌다. 아울러 묘한 흥분과 두려움도 느껴졌다.

⑿ 그에게 최면을 …….

다음 날,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언제나처럼 그의 모습이 멋져 보였다. 아 ……, 드디어 오빠의 마음을 얻을 수 있어! 한편으로 약간의 죄책감도 느꼈다. 이건 자연스러운 게 아니야.

결국 비겁한 수단으로 그를 강제로 빼앗는 거 잖아? 건성건성 오빠의 말에 대꾸하며 복잡한 갈등에 쌓여있는데 순간 오빠가 하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희야, 예전에 내가 말한 여자 기억해?”

“응? 으응 ……. 그 약사인가 ……, 하는 아가씨?”

“그동안 쭉 생각해 봤는 데 ……. 내일 정식으로 그녀에게 프로포즈할거야. 언제까지 이렇게 숨어서 지켜보는 것은 사내 대장부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해.”

“!!!”

뭐, 내일! 그럼 시간이 없잖아! 아무리 내가 말하지 않아도 그렇지, 어떻게 십여 년이 넘게 지켜보기만한 나를 놔두고 다른 여자와 ……. 절! 대! 로! 안돼! 그 때까지 가지고 있던 망설임과 죄책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말인데 ……, 역시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좋겠지? 어떤 게 좋을 것 같아? 너는 같은 여자이니까 잘 알거 아냐?”

“음 ……, 글쎄 ……. 이런 목걸이는 어때?”

“응?”

나는 미리 목에 걸고 나온 목걸이를 꺼내 그에게 보여 주었다. 그는 무심결에 그 목걸이를 쳐다 보았고 나는 자연스럽게 목걸이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내 입에서 암시의 말이 나왔다.

“자, 이 목걸이의 가운데 보석을 잘 봐. 반짝거리지?”

“응 ……, 이건 …….”

“쉬이 ……, 조용히 ……. 가만히 보석을 봐봐 ……. 계속해서 보석을 봐. 이제 보석에서 눈을 뗄 수가 없어. 그 섬광이 점점 눈 앞을 가득 채운다. 보고 있자면 기분이 좋아져. 온 몸의 긴장이 풀리고 ……, 점점 편안해진다 …….”

처음에 미약하게 뭐라고 웅얼거리며 희미한 저항기를 보인 그는 내가 암시를 계속하자 차츰 눈에 힘이 빠졌다. 나는 더욱 더 암시를 계속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