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토도사|먹튀검증정보커뮤니티

등록된 글이 없습니다.

德厚の野望 22- 토도사 야설

바쿠리 1 530 0

금보옥을 중심으로 반경 2장의 거리를 두고 세명은 천천히 원을 그리며 포위망을 좁혔다. 협기 넘치는 무림인이라면 아녀자 하나를 두고 셋이 공격한다고 비난하겠지만, 이들은 사자도 토끼를 잡을 때는 전력을 다하는 법이라고 대꾸할 족속들이었다.

금보옥은 기감을 최대한 고조시키며 양 주먹을 가슴으로 모았다. 육신을 넘어 확장된 기감의 영역에 한 구석이 허물어졌다. 그와 함께 금보옥은 상체를 던지듯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금보옥이 서 있던 자리에 겸이 훑어지나갔다. 겸이 금보옥의 등이 있던 공간을 자르고, 금보옥의 주먹이 신지의 안면으로 쏘아진 것은 거의 동시였다.

이장 거리에서 다섯 자로 줄어들자 신지는 화들짝 놀라 마라천인혈정으로 쳐냈다. 그와 함께 내밀어졌던 오른 주먹이 금나수처럼 변해 신지의 손목을 덮쳤다. 사영권, 상대의 주공을 흘려보내고 뱀의 독아로 급소를 제압하는 2식이었다.  아무리 열풍권이 천하제일권공이라해도 마라천인혈정을 맨손으로 쳐내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에서 였다.

금보옥이 신지의 손목을 제압하려는 순간, 옆구리로 음한장이 엄습해왔다. 의숙의 얼굴을 쓴 지목민이었다. 금보옥의 자유로운 왼팔이 흐릿해지더니 세 개의 권영이 나타나 음한장과 충돌하였다. 팡!팡!팡! 가죽북을 치는 소리와 함께 양 공력의 충돌로 서로의 몸이 흔들렸다. 그 틈을 타 신지는 급히 몸을 뒤로 뺐고, 인력에 당기는 것처럼 쌍겸을 든 하승구의 신형이 금보옥의 배후로 접근하였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한가락 하는 것 같다만, 이쯤에서 항복하시지. 의매의 목 달아가는 꼴을 보기 싫으면."

신지는 턱짓으로 배후의 심주혜를 가리켰다. 용악천이 심주혜의 머리채를 휘어잡으며 턱 밑에 칼날을 세웠다. 목에 날이 파고들어 핏물이 은은히 맺혔다. 투지를 불태우던 금보옥은 찬물을 뒤집어 쓴 기분이었다. 그때, 혼이 빠진 것처럼 있던 심주혜의 눈에 독기가 피어오르더니 악을 쓰기 시작했다.

"언니! 소매는 신경쓰지 말아요! 이들을 다 죽여주세요!"
"주혜야..."
"이자들 때문에 아버님은 비명횡사하셨고, 저도 욕을 당했어요. 우리 부녀의 원수를 갚아주면 심가장의 모든 건 언니 것이에요!"

목청이 터져나갈 듯이 그 처절한 절규는 단상을 넘어 비무대와 관중석의 몇몇의 귀에까지 닿았다.

"이 계집년이!"
"악!"

노한 용악천이 심주혜의 허리를 꺾으며 그녀의 목 위로 칼을 대었다. 마치 도수부가 가축의 목을 써는 것과 같은 동작이었다. 그러나 땅에 뺨을 붙인 채로 용악천을 올려보는 심주혜의 시선은 새파란 증오가 흐르고 있었다. 금보옥도 입술을 깨물더니 호흡을 하였다. 심주혜의 생사를 돌보지 않는 각오가 금보옥의 마지막 망설임을 날려보냈다.

운룡보를 밟으며 다시 사영권을 전개하는 금보옥, 신지도 마주 대적해나갔다. 그녀가 자신보다 한 수 위의 고수라는 것은 깨닫고 있지만, 마라천인혈정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정면 대결에서 꿇릴 일은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점을 이용하여 자신을 미끼로 전면에 내세우고 하승구와 지목민이 결정타를 먹일 기회를 주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금보옥과 승부를 오래 끄는 것은 심가장을 장악하는 데 좋지 못했다. 방금처럼 심가년이 악을 쓴 상황에서라면.

죽여도 상관없다는 일념으로 찌른 신지의 검. 심장을 향해 쪼개져오는 듯한 검을 막듯이 금보옥의 팔뚝이 움직였다. 칼이 팔뚝을 양단할 찰나, 금보옥의 팔이 묘하게 틀어지며 날을 비껴가 검면을 밖으로 흘려친다. 팍! 쇠는 피륙을 완전히 가르지 못하고 대신 뼈를 쳐가며 궤도가 빗겨갔다. 팔이 부러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빗장뼈와 어깨에 동시에 화끈한 느낌을 받았다.

-기회!

금보옥이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를 선택한 덕분에 둘의 거리는 석자로 가까워졌다. 금보옥의 주먹이 신지의 안면을 그대로 강타였다. 상처를 입는 바람에 불완전하지만 질풍권은 코뼈와 윗니를 박살내는데 충분했다.

"크아아악! 컥!"
 
나가 떨어지는 신지의 손에는 여전히 마라천인혈정이 들려있었다. 생명줄이니 쉽게 놓을 리가 없다. 금보옥이 그 팔을 꺾어버리려 하는 순간 좌우에서 합격의 기운을 느꼈다. 금보옥은 옆으로 한 보 이동했다. 음한장을 날리는 지목민을 향해 정면으로 선 것이다. 기습하던 상대가 갑자기 솟아나듯 정면으로 나타나자 지목민은 저도 모르게 움찔하였다. 순식간에 기선을 제압당한 것이다. 지목민의 장심에 금보옥의 진공권이 작렬하였다. 체내에 음한지기를 침투시키는 묘를 담고 있는 음한장도 나름대로 절기이기는 하나, 거석도 분쇄시키는 진공권에는 무용지물이었다.

"크아아악!"

지목민의 손은 육괴덩어리로 처참하게 으깨졌다. 그리고 고통으로 울부짖는 지목민의 사지에 한팔로 펼쳐지는 나찰열풍권의 2식 일환삼비권이 단전 부위를 가격하였다.  지목민은 복부를 중심으로 사지에서 힘이 쑥 빠져나가는 고통을 느끼며 의식을 잃어갔다.

-츠칵!

신지와 지목민을 무력화 시켰지만, 방어를 도외시하고 공격일변도로 나간 대가는 금새 찾아왔다. 배후로 짓쳐온 쌍겸이 금보옥의 허리 한웅큼의 살을 발라낸 것이다. 그나마 탁월한 보신경 덕분에 허리의 근맥은 아슬아슬하게 베이진 않았다.

"윽!"

금보옥은 베인 충격으로 앞으로 나가려는 몸을 뒤로 뉘였다. 좌우나 앞으로 피할 것으로 생각하던 하승구로서는 허를 찔린 셈이었다. 쌍겸을 다시 휘두르기에는 너무 붙은 상태였다. 코 앞에 금보옥의 뒤통수가 낙하하듯 스치며 사라지더니, 허공에서 발끝이 철퇴처럼 정수리를 노리고 꽂혔다. 양 팔을 교차시키며 급히 막은 하승구는 양 팔을 울리는 충격이 가시기 전에 양 무릎이 끊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위에 발 공격은 허수였고, 한 팔을 짚은 상태로 남은 팔로 양 무릎에다 번갈아 단타를 날린 것이었다. 일성의 공력이었으나 관절부의 연골 부위를 가루로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하승구의 의지와 다르게 몸은 무너졌다. 무릎을 꿇는 하승구의 배후로 뒤돌아넘기를 한 금보옥의 수도가 천령개를 강타했다. 그렇게 하승구는 칠공에 피를 뿜으며 죽었다.

"으음...."

셋이 단숨에 무력화되는 광경을 보던 용악천은 저도 모르게 신음하였다. 방금전까지 손속을 겨룬 상대 같지 않았다. 전신에 피칠을 한 채 겨우 서 있는 금보옥에게 용악천은 한기를 느꼈다. 그러나 용악천은 화끈거리는 얼굴을 다스리기 위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더 이상 움직이면 이 계집을 죽이겠다!"

말을 해놓고 용악천은 다소 여유를 찾았다. 수중에는 인질이 있고, 눈 앞에 있는 금보옥의 상태도 위중해보였다. 겸에 베인 상태에서 무리한 철판교로 허리춤에서 피가 뭉클뭉클 솟아나고 있었고, 한쪽 팔은 덜렁거렸다. 호흡이 거칠었고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죽여라."
"뭣이?"
"죽이라고 했다. 치욕을 당할 바에 죽겠다고 했으니 질질 끌지 말고 죽여라. 대신 너희 일당은 내 손으로 죽지 못해 사는 신세로 만들어 줄 것이다."
"훗, 그 몸으로 가능할까?"
"적어도 주먹 하나는 온전히 남아있지."

금보옥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미녀의 단순호치였지만, 지금만은 맹수의 이빨처럼 섬뜩하게 비쳤다. 용악천은 쓰러진 셋에게 힐끗 시선을 던졌다. 한 명은 즉사고 두 명은 전투불능, 그나마 사지가 성한 신지가 가장 낫다.

"음....이대로 우리들을 놓아준다면 이 계집은 물론이고 저들을 고이 물러나게 하겠다."

용악천은 서둘러 말했다. 금보옥의 입가에 떠오른 것은 비웃음이었다.

"왜? 풀어주면 내가 마라천인혈정에 잠식 당한 뒤에 돌아오려고?"
"그, 그걸 어떻게?"

속셈을 들키자 용악천은 물론이고, 안면이 뭉개진 아픔에 얼굴을 감싸쥐던 신지조차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신지는 퍼득 깨닫는게 있는지 외쳤다.

"부용, 이년!"
"....이 지경이 되서까지 도구에 의지해서 남을 탓하다니. 내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실패할 무리들이군."
"닥쳐! 죽여버린다!"

신지의 울부짖음에 보옥은 동요없이 흘려보냈다. 껍질을 깨고 나오지 못한 채 비뚤어진 아이, "어른애"들이 일으키는 감정의 폭주를 그녀가 받아줄 이유가 없었다. 아니, 금보옥도 얼마 전까지 신지 일당과 비슷한 사고 틀을 갖추지 않았던가.

"다들 와서 저년을 죽여버려!"

마라천인혈정을 움켜쥐며 신지가 외쳤다. 그러자 관중석을 공격하던 복면인들이 우르르 단상을 목표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치를 포기하고 전방을 최우선으로 하였기에 절반 이상이 측면과 배후의 공격을 받고 무너졌다. 비무대에 올라온 이들도 결선 진출자들의 무위에 막혀 온전히 통과하기 어려웠고 개중에 1/3 정도만 단상위로 올라서는 데 성공했다. 그래도 얼추 50명은 되었다.

신지의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불길한 예감을 받은 금보옥은 신지를 제압하기 위해 나섰으나, 용악천이 주혜를 신지에게 던지고 대도를 내지르며 달려갔다. 내상을 다스리는 것을 포기하고 가전절기 용가도의 후삼초를 필생의 힘을 다해 전개하였다. 중상을 입은 금보옥은 피하기에 급급했다. 거칠게 몰아치던 도풍이 이윽고 한계에 달해 느슨해졌다. 용악천의 얼굴에 핏기가 급격히 사라지고, 금보옥이 반격의 실마리를 찾는 찰나, 사방에서 복면인들이 솟아나 금보옥의 주위를 에워쌌다. 그 틈을 타 용악천은 무사히 몸을 빼낼 수 있었다.

"괜찮나, 신지? 도망쳐야한다."
"저 계집을 죽여버리고!"
"젠장, 밖에 있는 놈들은 다 장식물이냐? 다음 기회를 노려! 어차피 마라천인혈정이 있음 저 년도 우리 손에 들어온다!"

용악천의 고함에 심주혜의 목을 쥐고 있던 신지는 흥분된 감정을 가라앉혔다. 마라천인혈정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살아난 것이었다. 시간이 있으면 금보옥은 자신에게 종속이 될 것이고 마라천인혈정은 완성되면 초절정고수 부럽지 않는 힘을 지니게 될 것이다.

신지는 용악천의 부축을 받으며 단상을 빠져나가 내원쪽으로 달박음질 쳤다.

"비켜라!"

두 눈을 뜨고 신지 일당을 노칠 수 밖에 없던 금보옥은 애가 타서 복면인들을 공격했지만, 한 명이 쓰러지면 그 자리를 세로운 복면인이 대신하였다. 슬슬 체력이 바닥을 보인 금보옥으로서는 무리하게 뚫고 나갈 수 가 없었다. 포위망을 뚫고 나간다해도 추격할 기운도 없으면 낭패다. 차라리 밖에 있는 사람들이 에워쌓인 자신을 구하기 위해 올 동안 기력을 보존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금보옥이 발이 묶인 동안 용악천과 신지는 주혜를 데리고 심우진의 거처로 달려갔다. 보통 심가장 정도면 유사시를 대비하여 비밀 통로가 여러 개 있기 마련이다. 산윤길은 수십 년간 집사를 하면서 하나를 알고 있었고, 그것을 신지 일당을 심우진 장주와 직접 대면할 수 있도록 은밀히 안내하는 데 써먹었다. 지금 둘은 청운의 꿈(?)을 안고 들어왔을 때 처럼, 빈 손으로 빠져나가는 신세였다.

"헉헉헉!"
"하악, 하아, 학!"

거친 호흡과 불규칙적인 발소리가 통로를 울렸다. 지상으로 통하는 출구를 향해 도망치듯 달리던 둘의 걸음이 추를 단 것처럼 느려지더니 뚝 그쳤다.

"헉, 좀, 조옴, 쉬었다 가자. 허억!"
"후욱, 안돼. 훅! 쉬는 건 지상으로 통과하고 나서다."
"쌍! 더 이상은 못간다니까!"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는 신지의 짜증에 용악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새끼....그냥 안면 뭉개진 놈이랑, 내상 입고 계집 들쳐 매는 놈 둘 중에 누가 더 힘들겠냐. 

그러나 아직은 신지의 기분을 거스릴 필요는 없으므로, 용악천은 계집을 바닥으로 팽개치는 것으로 대신 응했다. 일단 급한 대로 운기요상을 하려던 용악천은 가부좌를 틀려다가 벌떡 일어났다. 용악천의 경계태세에 신지도 마라천인혈정을 굳게 쥐었다.

"어라? 벌써 왔나?"

어둠의 저편에서 의아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벅저벅 걸어오는 소리에 둘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출구로 이어진 통로를 주시하였다.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듯이 한 남자가 모습을 보였다. 그 남자를 보는 순간, 신지와 용악천은 경악했다.

"하?"

그것은 두 사람에게 있어서 있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비척비척 걸어오는 사람의 몰골은 끔찍했다. 전신은 흙투성이에 의복은 말라붙어 검은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축 늘어진 양손은 썩어들어갔다. 갈라진 가슴 틈으로 거의 정지한 듯한 심장이 보였다. 그러나 그 위에 있는 창백한 얼굴은 웃음기를 머금은 채 용악천과 신지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너, 너는....?"
"암매장 시켰을 텐데?"

심장에 마라천인혈정을 꽂아 고사시켜버린 덕후였다. 덕후는 팔을 들어 머리를 긁적였다.   뼈마디에 엉킨 심줄이 도드라져 보였다.
 
"땅에 파묻히는 건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더군. 며칠 뿐인데도 지저에 온갓 벌레들이 내 몸을 갉작대더라구. 나 죽을 때는 반드시 좋은 관짝을 주문해야겠어."

꾹 누르자 손가락 마디 뼈가 똑 탈골되었다. 딴에는 웃기는 행동이지만, 둘은 꼼짝할 수 없었다.

"그건 그렇고, 슬슬 왔던 길로 돌아가는 게 어때?"
"뭐라?"
"이 각본의 클라이맥스는 도주가 아니야. 악당들이 정의의 응징에 으악! 하는 것이지."

그렇게 말한 덕후는 끌끌 웃었다. 퍼득 무슨 생각을 했는지 신지가 추궁하듯 물었다.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지만, 이 사태는 네 놈이 주동한 것이냐?"
"온전히 살아있는 것은 아니지. 일이 이 지경으로 돌아갈지는 나도 잘 몰랐다고."

분명 의외였다. 덕후가 기대한 것은 금보옥이 패자의 조건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재색과 배경을 충분히 갖춘 금보옥에게 부족한 것은 추진력이었다. 어설프게 난 년이라면 저 극동의 반도 남쪽 나라에 있는 저용량처럼 무대포로 밀어붙이기라도 하지만, 현실과 자신의 한계를 과신하지 않기에 오히려 소극적인 금보옥에게 충격 요법을 실행한 것이다. 그러나 금보옥은 덕후의 예상을 넘어 3공자를 협력 관계가 아니라 주종관계로 이끌었다. 급박한 상황에도 대상련에 손을 벌리기 보다는 자체적으로 낭인 무사들을 고용하여 세를 보완했다. 당장이 아니라 훗날을 염두에 둔 포석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죽음을 각오하고 나서 신지 일당의 음모를 분쇄하는데 성공했다.

일이 이렇게 흐르게 되자 덕후는 암매장 당하는 순간까지 어떻게 나타나면 남들의 주목을 받지 않고 금보옥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구상한 것을 전부 날려버렸다. 덕후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이 통로에서 신지 일당이 언젠가 나타나지 않을까 기다린 것이 전부였다.

"웃기는 소리! 네 놈이 설령 주동자 아니라면 지시한 자는 따로 있을 것이다."

용악천이 부정했다. 덕후는 곤란한데, 하는 표정을 지었다. 상식적으로는 용악천의 견해가 옳았다. 인간이라면 홀로 만사를 처리할 수 없다. 눈과 귀가 되어줄 첩보원과 수족이 되어줄 행동원은 필수다. 신지 일당의 계획을 송두리째 수포로 돌리게 하려면 그만큼 은밀하고 실력이 확실한 정예 세력이 움직여야 한다. 신지와 용악천의 입장에서는 덕후가 시치미 뗀다고 볼만했다. 

-이거 참....

공략본은 둘째치고, 반쯤 죽어버린 상태에서 벌어진 징조는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육체와 연결고리가 약해지고 혼이 대부분 일탈하는 지경에 이르자, 덕후의 의식은 심가장 근방을 전부 지배했던 것이다. 마치 심가장에 수백대의 CCTV를 설치하고 24시간 내내 감시한 것처럼 모든 것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수 백개의 영상과 상념이 엉켜들어와서 미치는 줄 알았지만, 카메라들을 방에서 디스플레이 한다는 기분으로 관조해가자 순차적으로 분별해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덕후로서는 본의 아니게 숨은 능력을 하나 발견한 셈이었다. 거의 죽음에 이르러서 탈인간화되어야 한다는 조건만 빼고는. 그것까지 적에게 밝혀줄 정도로 친절한 성격은 아니기에 이들이 멋대로 생각하도록 냅뒀다.

"일을 주동한 것이 나는 아니지만, 배후자를 가리키는 거라면 내가 맞네. 그쪽은 상관 세가에서 보냈나?"

신지의 얼굴에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세가, 세가 그놈의 세가! 세가 타령이 지긋지긋해서 밖으로 나와서 거사를 도모했건만 이 놈이나 저 놈이나 자신을 신지로 보지 않고 상관 씨와 연계를 한다.

"상관 세가랑 이 몸과는 아무 사이도 아니다!"
"저런, 따까리 취급해서 마음이 상했나? 하지만 사회의 급소를 누르고 앉은 것은 자네와 같이 혈기방장한 애송이가 아니지. 겁이 많을 정도로 신중하며 탐욕스러울 정도로 현상 유지를 바라는 어르신네들이야."

비꼬는 듯한 덕후는 이내 즐거운 얼굴을하며 말을 이었다.

"자, 이런 흐름은 어떨까. 상관 세가에서 숙적인 대상련 흔들기 일환으로 너희들을 보냈었다. 성공해도 좋고 실패해도 본전인 사석들을 골라서. 진실이 어떻든, 결말이 어떻게 나든 양 파에 전쟁은 확실히 보장되지. 마라천인혈정의 완성도 훨씬 앞당겨질테고."

신지의 얼굴이 반사적으로 용악천에게 향했다. 세가 내에서 울분을 삼키고 있을 때 가장 먼저 접근한 이가 용악천이었다. 자신의 불만에 동조하면서 일을 도모했던 첫번째 동료였다. 그는 절세의 마병인 마라천인혈정의 완성을 바란다고 했다. 도객으로 그런 무기를 손에 쥐어보고 싶노라고 소망을 밝혔다. 그 뒤로 용악천은 신지의 계획을 보충해두고 일선에서 대신 휘둘러주는 칼이 되어주었다. 이 자리까지 신지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보다 자신의 불만을 해소하고 욕망을 닥치는 데로 발산하는데 휘둘려 살펴볼 겨를이 없었으나, 지금 덕후의 말을 듣고보니 미혹이 생겼다.

용악천을 바라보던 신지의 얼굴이 곧 일그러졌다. 용악천은 무표정했다. 부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 자식! 뭐라고 말 좀 해봐라!"
"할 말 없다."

조금 전까지 비위를 맞춰주는 음성이 아닌 칼로 자른 듯이 차가운 음색이었다. 신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용악천의 어조는 신지에게 낯설지 않았다. 자신의 능력이 세가의 어른들의 기대에 못미쳤을 때, 소용을 다한 물건을 대하듯 취급할 때 겪었던 어조였다.

"이 새끼가..."

분노한 신지가 용악천을 향해 마라천인혈정을 휘둘렀으나 용악천은 칼등으로 간단히 신지의 안면을 가격하는 동시에 복부를 발로 걷어찼다. 볼썽 사납게 땅바닥을 뒹구는 신지는 두 손으로 안면을 감싸쥐며 상처입은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마라천인혈정은 어느새 용악천의 손에 들려 있었다.

"쓰레기 나름대로 좀 더 써먹을 곳이 있을 거 같았는데, 여기까지인 것 같군."

한 단계 다른 무위로 신지를 폐물 취급한 용악천은 덕후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얼개는 비슷하다. 갈수록 정체가 궁금해지는군."

덕후는 고개를 설레절레 저었다.

"꼭 거울을 봐야 아는 것은 아니지."

촛불 시위에 참가한 10대 아이들한테 자발적인 동기나 그렇게 행동시킨 원인을 성찰하기는 커녕, 음모의 배후를 캐묻는 마인드를 가지는 인간들이 현대에도 버젓히 살아있다. 설사 신지가 순전히 자의로 그런 짓을 한다 해도 배후를 의심할 것이고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납득할 것이다. 사람들은, 그리고 가진 자들에게 진실을 편의에 따라 왜곡하는 것은 껌도 아니니까.

"전쟁이라면 이쪽도 원하는 바다. 너희가 바라는 결과의 정반대이겠지만."

염미홍과 금보옥이 덕후의 바램대로 수장 자리를 차지한다해도 세력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내부의 알력을 외부와 분쟁으로 해소하는 전쟁만큼, 고전적이며 효과적인 수단은 없었다. 모 아니면 도의 부담을 안고 있지만, 덕후로서는 다른 십패들이 본격적으로 견제에 들어가기 전에 짧은 기한 내에 지지기반을 확실히 다져둘 필요가 있었다. 신지 일당은 마침 그 좋은 단초가 되어준 셈이다. 용악천과 상관 세가의 의도가 그러하듯이.

"말 다했나? 그럼 죽어주셔야겠어."
 
용악천이 마라천일혈정과 대도를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강시 같은 모습에 섬뜩하기는 했지만, 강호에 왕왕 기상천외한 무공이 있을 수 있고, 그 중에 하나라고 판단하였다. 견식한 바 무위는 별것 아니었으므로 사지를 자르고 목을 날려버리면 될 것이다.  덕후는 피하지 않았다. 용악천의 공격은 덕후의 양 어깻죽지부터 배꼽 위까지 죽 갈라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애당초 혈류의 흐름조자 미미한 수준이라 피 분수는 일어나지 않았다. 점액성 피가 뭉클뭉클 흘러나와 기괴함을 더했다.

"이익...!"

용악천이 손목을 비틀며 칼날을 빼내려고 하자, 덕후의 양 손이 용악천의 손을 덮썩 잡았다. 분명 방금 공격으로 팔 근육이 갈려졌을 텐데도 보이지 않는 실에 조종당하는 것처럼 꽉 잡고 놓지 않는다. 썩어문드러진 살점이 손목을 잡는 감촉은 살인 경험이 적지 않은 용악천도 진저리칠만큼 꺼림칙한 기분이었다.

"그럼, 사양치 않고."

미소녀 소꿉친구가 와서 아침을 차려주는 식탁에 앉은 것처럼, 있을리 없는 시츄에이션의 주인공처럼 지껄인 덕후는 그대로 용악천에게 달라붙었다.

"뭐, 뭐냐!"

용악천은 미친 듯이  덕후를 떨궈내려했지만 덕후의 몸은 오뚝이처럼 흔들릴 뿐, 손에 쥐어진 악력은 더욱 강해졌다. 이러다가 손목이 끊어지는 게 아닌가 싶을 무렵, 기현상이 벌어졌다. 덕후의 손이 용악천의 손목으로 녹아들어갔다. 정확히는 살과 살이 뼈와 뼈가 신경과 신경이 납땜질하는 것처럼 융합해가는 것이다. 침식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맞댄 피부로 부터도 마찬가지였다. 샴 쌍둥이처럼 변해가는 모습에 신지는 물론이고 세뇌되었던 주혜마저 공포에 짓눌려 덜덜 떨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샴쌍둥이 형상을 하던 그것은 이내 격렬한 흔들림과 함께 하나 엉켰다. 쌍을 이루던 오관이 제 자리를 일탈하며 요동치다가 저마다 겹을 이루더니 하나로 융합되기 시작했다. 갈라진 틈새로 보이던 심장은 새로운 심장이 감싸안고 곧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 심장 위로 뼈가 재생하며 근섬유들이 촘촘히 심장을 감추어 갔다.그 위로 물감을 붓는 것처럼 피부 조직이 덮여갔다.

"끄어어어어....오오오오....."

입가의 한쪽 끝은 절규를 토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부조화가 신지와 주혜를 가위에 눌리듯이 만들었다. 잠시 후 울부짖던 오관이 미소짓는 오관과 하나로 합쳐졌다. 고개를 든 모습은 용악천의 옷을 걸치고 양 손에 대도와 마라천인혈정을 쥔 덕후였다.

"휘휴~이제야 좀 살 거 같군."

덕후는 휘파람을 불며 오랫 동안 잠든 사람처럼 사지를 우두둑 꺾었다. 몸을 푸는 과정을 기가막힌 듯 보는 신지와 주혜. 덕후는 그들의 기색을 눈치채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렇게 떨거 없어. 잡아먹지는 않을테니까."
"이, 인간 맞아?"

신지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사공이나 마공으로 치부할 레벨이 아니었다. 근원적으로 다른 종이 아니고서야. 덕후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방금 전까지는 인간의 범주에 벗어나 있었지만, 지금은 인간이 맞다. 사혈과 부족한 피만이 아니라, 썩어들어가거나 죽은 내장과 뼈, 피부, 근육, 신경 조직까지 전부 갈이한 것만 빼고는. 용악천이라는 존재가 덕후에게 삼켜진 대가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의심할 나위없는 인간인 것이다.

"흠, 이 모습을 봤으니 살려줄 수는 없겠군."

덕후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툭툭 치며 말했다. 인간으로서 온전한 뇌와 심장을 가진 육신을 회복하니 사고가 이전처럼 원활하게 가동됐다. 본래 성격이라면 용악천을 대놓고 잡아먹는 광경을 둘에게 보여줄 리가 없다. 한시라도 인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집념을  최우선한 결과였다.

"계획대로 하라구."

손가락을 튕기자, 신지는 등에서 가슴을 직통하는 아픔을 느꼈다.

"우욱!"

분홍빛 피를 한 사발 토하며 앞으로 털썩 쓰러진 신지는 가까스로 고개를 돌렸다. 양손에 피묻은 단도를 쥔 주혜가 있었다. 주혜는 신지와 마주치자 흠칫 놀라더니 눈빛을 독하게 빛냈다.

"이런....씨이펄...."

인질의 손에 죽자 신지는 상황이 엿같다고 생각했다. 호흡이 부족해 헐떡이는데도 정작 들어오는 공기는 없었다. 체온이 급격히 빠져나가며 눈 앞이 흐려졌다. 차갑고 어두운 동굴이 의식을 삼키는 것 같았다. 추운 여기보다는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따뜻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더....더....."

긴 한숨과 함께 팔로 땅을 긁던 신지의 손이 멈췄다. 그게 신지의 마지막이었다. 덕후는 허리를 굽혀 신지의 동공과 목, 심장을 짚어보는 확실히 숨이 끊어졌다는 것을 확인했다. 허리를 편 덕후는 주혜를 보았다. 주혜는 멍하니 덕후의 눈길을 보다가 물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좀 낯익네요."

신지를 찌른 소도로 천천히 자신의 목으로 가져가며 주혜가 물었다. 덕후는 싱긋 웃었다. 주혜는 자신이 자살하려는 것에 아무런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세뇌가 일정 수준을 넘기 어려운 것은 생존 본능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생존본능을 억누르고 죽음도 두려워하지않으면 죽음에 대한 위협을 느낄 수 있는인식, 이지를 마비시켜야 하기 때문에 강시와 같은 꼭두각시가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덕후가 심주혜에게 조작한 마무리는 생존 욕구를 최대한 억제하고 죽음에 대한 갈망을 최대한 증폭시킨 것이었다. 삶에 대한 애착의 뒷면에는 죽음, 최후에 대한 본능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위에 폭군처럼 군림했던 용악천과 신지의 시체를 눈에 담던 심주혜는 덕후를 보았다.

"이 모든 건...그대가 꾸민 건가요? 죽고 싶어하는 제 마음까지?"

덕후는 고개를 끄떡였다. 눈 앞에서 부친이 죽임을 당하고 집단 윤간을 당한 심주혜로부터는 죽고 싶은 동기는 차고도 넘친다. 덕후는 그 리미트를 해체시킨 것이다. 이미 원수들은 눈 앞에서 죽었으니 삶을 지탱하고자하는 원조차 소멸했다.

"그대는 악마로군요...."

심주혜의 한숨은 비난이 아니라 의미 그대로를 담고 있었다. 뜻밖에도 덕후의 고개가 가로로 저어진다.

"인간이오, 남들처럼 희노애락을 품고 미련의 끝을 보고자하는 사람이지."
"....그렇군요. 그대나 저나, 그리고 이들도 인간이죠."

주검이 된 가해자들을 보며 심주혜는 어쩌면 자신이 끔찍하게 느꼈던 절망의 끝에서, 죽음으로 벗어나려고 한 결말을 고르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설핏 들었다. 그러나 이미 칼은 목의 살을 찢고 혈관을 쪼개고 있었다.

"시신은 고이 남을 것이오. 화장이 좋소? 무덤이 좋소?"
"화장이 좋을 것 같....."

심주혜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신의 목을 완전히 찔렀다. 피 분수가 솟아나더니 심주혜의 몸은 벽에 기댄채 스르르 무너졌다. 아픔으로 얼굴을 찡그린 채 초점을 잃은 눈을 한 심주혜를 잠시 응시하던 덕후는 가만히 그녀의 눈을 감겼다. 덕후의 손이 쓸고간 자리에는 모든 것을 놓아버린 평온함이 대신했다.  

덕후는 현장을 점검했다. 용악천은 실종처리가 될 것이고, 주모자 신지는 피살. 주혜는 자살. 완전범죄의 장소였다. 몸을 돌린 덕후의 귓가로 희미하게 통로로 접근하는 인기척이 들렸다. 그 기척이 크고 분명해짐에 따라 덕후의 등은 반대편 어둠 속으로 서서히 잠겨갔다.

 

 

 

 

 

엄청난 졸필입니다. 진행상 억지로 넣은 느낌이 강하군요. 다음 편이 대망의 엣찌. 대강 part 2의 마무리가 될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우리 덕후의 정체는 사실 스미스 요원 겸 르-뤼에의 쥔장....(어이) 그렇다고 후반에 신선이나 마족 나와서 같이 깽판치는 것은 아닙니다. 판타지로 날아가지도 않고요. 혼노지 반전 이후에 부각될 것이라 복선삼아 깔아놓...(그만!)

케릭터 프로파일 #1

오덕후 : 무공 78 지모 255 정치 122
모티브 : 아마고 츠네히사, 마쓰나가 히사히데
내   력  : 전지전능.

, , , , , , , , , , , , , , , , , , , , , , , , ,

1 Comments
토도사 2023.04.19 04:08  

토도사 공식제휴업체 소개입니다.

추가입금 보너스 3+1 ~ 50+10 등 순도 높은 혜택 가득한 타이거 바로가기

타이거 바로가기

주간 인기순위
포토 제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