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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판타지] 세자르씨의 유쾌한 전원생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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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클로에 덕에 뒤늦게 진지 외곽에 도착한 세자르는 곧바로 조장들을 불러 회의내용을 설명하고 단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덕분에 회색늑대단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서둘러 저녁을 마치고 각자 배낭을 풀어 무기와 갑옷들을 정비하기에 바빴다. 그렇게 정신없는 순간들이 지나고 세자르는 간신히 시간에 맞춰 전 병사들을 진지 바깥에 집합시킬 수 있었다.

 이미 그곳에는 이자벨라 백작의 군대가 대열을 맞추고 준비를 끝내놓고 있었다. 그 옆에서 서둘러 진열을 맞추는 용병단의 모습을 쳐다보는 도미노와 병사들의 눈초리에는 불신감이 가득했지만, 세자르는 일부러 모르는 척 용병단을 정비하기에 집중했다. 그렇게 잠시 동안의 소란이 끝나고 정렬을 마치자 얼마 후에 그들 앞에 산비탈에서처럼 말과 가마들을 탄 세 여자와 브루노 일행이 도착했다.

 그 중 가마에서 내린 아이린에게 도미노가 미리 받아 놓은 종이들을 건넸다. 아이린이 그 내용확인을 끝내자, 도미노는 병사들 쪽으로 돌아서 큰소리로 말했다.

 

 “자, 너희들이 알다시피 이제부터 ‘침묵의 서약’을 시작할 것이다. 여기에 적힌 너희들의 친필 이름과 사인은 이 서약마법에 동의한 것과 같은 효력을 지닐 것이며, 지금 이후부터 탐험이 끝날 때까지 너희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함부로 외부로 발설할 경우 그 즉시 너희들의 영혼은 이 계약에 따라 지옥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이 효력은 평생 동안 계속될 것이며, 어떠한 예외도 없다. 여기에 동의치 않는 자는 지금 이 자리에서 즉시 떠나라.”

 

 도미노의 말에 잠시 병사들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대다수는 일을 시작하기 계약조건을 들은 터라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그리고 다른 자들도 거액의 성공보수에 비하면 그 정도는 충분히 감안할 수 있다는 생각이여서 곧 주변의 소란은 조용해졌다.

 그런 분위기를 확인한 도미노는 아이린을 돌아봤고, 아이린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종이 위에 손바닥을 대고 뭔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붉은 연기가 위로 품어 오르더니 횃불을 든 병사들 머리위로 커다란 둥근 덩어리를 형성했다. 그렇게 사람들 머리 위로 둥둥 떠 있던 그 연기 덩어리는 아이린이 주문을 끝마치자 갑자기 그 속에서 해골형상이 떠오르더니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것을 지켜보던 병사들은 모두 놀람과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뒤로 별다른 일이 없자 다들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도미노는 다시 한 번 병사들 앞에서 ‘침묵의 서약’을 지키기만 하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고서 조장들에게 지시를 내려 각 소대별로 부대를 이동하게 했다. 먼저 이동하는 본진 뒤로 따라붙기 위해 용병단을 출발 대기시키고 있던 세자르는 낮처럼 자신 앞으로 지나가는 본진 속에서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움직이는 말과 가마들에 타고 있는 여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자벨라는 여전히 갑옷차림이었고, 아이린은 보다 마법사처럼 보이는 여러 가지 도형이 새겨진 후드가 달린 망토로 온 몸을 덮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아까 전과는 또 다른 색과 모양의 드레스 차림인 클로에가 여전히 수많은 시종들을 대동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생각보다 느린 병력이동에 가마 위에서 따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는 곧 용병단과 함께 서있던 세자르를 발견하고는 가볍게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으며 윙크를 날렸다.

 그 윙크를 본 세자르는 좀 전에 클로에와 의도치 않게 엮이게 된 것이 떠올라 답답한 마음에 절로 한숨이 터져 나올 듯 했지만, 그 뒤로 서있던 용병단원들은 그런 것도 모르고 높은 신분의 아름다운 여성이 남긴 미소와 윙크에 완전 패닉상태였다. 모두가 자기만의 상상에 빠져 휘파람과 고함을 지르며 기뻐하는 단원들을 단속하느라 덕분에 여기저기서 조장들의 고함과 함께 정강이 까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출발한 행렬이 향한 곳은 바로 ‘소피아 호수’가 시작되는 지역으로 출발지로부터 약 반시간 정도 떨어진 지점이었다. 북쪽에서 흘러온 지류가 이곳에서부터 서서히 넓어지면서 완만하게 호수 쪽으로 흘러들어가는 그 주변은 오랜 세월동안 흐르는 물줄기에 깎이고 다듬어진 골자기 위로 무성하게 들어선 아름드리 아카시아 나무들이 이젠 봄이 다가오는 것을 알리듯이 향긋한 꽃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일행은 그 계곡 아래로 잔잔하게 흐르는 강가 바로 옆으로 난 길을 지나 ‘소피아 호수’의 시작점을 알리는 곳에 이르렀다. 그곳을 ‘호수의 시작점’이라 부르는 이유는 계곡을 따라 흘러온 강물이 그즈음부터 호수로 유입되는데다가 그 가운데 마치 이곳부터 ‘소피아 호수’라고 확인시켜주는 듯이 커다란 암석이 하늘을 향해 기둥처럼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암석 주변은 꽤 넓은 모래사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골짜기를 타고 흘러온 물줄기가 이곳부터 갑자기 경사가 완만해지며 폭이 넓어지는 바람에 수심이 얕은 암석 주변으로 흙과 모래가 퇴적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아무튼 그 주변은 강의 흐름도 조용하고 수심이 깊지 않아 누구라도 손쉽게 암석이 자리한 모래사장에 접근할 수 있어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브루노가 앞장서는 일행도 마치 자신들이 관광객이 된 것처럼 왠지 모르는 들뜬 기분으로 강을 건너 그곳 모래사장에 올라서게 되었다. 모래사장은 그 많은 인원이 다 들어가기에 충분한 넓이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암석을 등지고 호수 쪽을 향해 줄지어선 일행은 모두 눈에 들어오는 광경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곳이 인기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시야에 아무런 장애물 없이 호수 전체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계곡에 둘러싸인 둥근 모양이라는 소피아 호수의 특징 때문이긴 했지만, 이곳부터 확 넓어지며 한눈에 들어오는 호수의 광경은 엄청난 개방감과 함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도 비록 밤중임에도 호수 전체가 마치 거울처럼 잔잔한 수면에 밤하늘의 달과 별자리들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고,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완만한 구릉들엔 화려하게 핀 희고 노란 봄꽃들이 마치 호수를 담는 예쁜 그릇의 테두리 장식처럼 그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었다.

 마치 하늘을 담고 있는 호수의 모습에 다들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을 때, 세자르는 일행 앞 쪽에 있던 브루노가 이자벨라 백작과 도미노에게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는 제자와 함께 암석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문뜩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어느새 호수만큼 둥근 보름달이 북극성 근처에서 환한 빛을 비추고 있었다.

 암석에 다가간 브루노가 호수 쪽을 바라보고 암석 앞에 서서 뭔가를 준비하기 시작하자 주변에 있던 병사들은 뭔 일이 일어날지 궁금한 표정으로 브루노를 바라보며 웅성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리에 순식간에 모든 병사들의 시선이 브루노에게 쏠렸다. 그것을 아는지 횃불과 달빛에 비치는 브루노의 얼굴은 흥분과 긴장으로 붉게 달아오른 것을 세자르는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브루노는 제자가 건네 준 자료들을 검토하더니 이내 고개를 들고 암석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한손에 든 막대기로 암석 주변 바닥에 땅을 긁어 파면서 둥글게 복잡한 도형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도형이 그려지는 주변에 서있던 병사들은 급하게 뒤로 물러나며 걱정 반 기대 반의 표정으로 브루노의 작업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잠시 후 일을 끝낸 브루노가 신음과 함께 힘겹게 허리를 들자 암석 주변에는 암석을 중심으로 원과 다각형,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뒤섞인 마법진이 완성되어 있었다.

 그는 다들 신기함에 그것을 쳐다보는 병사들을 지나 다시 한 번 암석의 상류 쪽에서 암석과 호수를 바라보고 섰다. 병사들이 각자 다음에 벌어질 일들을 상상하며 브루노를 쳐다보고 있을 때, 갑자기 도미노의 명령이 그들에게 떨어졌다.

 

 “전군 행군 준비! 대열을 다시 맞춰라! 이건 실전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명령에 충실해라! 알았나!”

 “옛!”

 

 도미노의 명령에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대열을 맞춘 병사들은 이젠 바짝 긴장한 채로 다음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을 흐르는 강물소리가 들릴 정도로 다들 조용히 대기하고 있을 때, 고개를 들어 하늘을 관찰하던 브루노가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두 팔을 앞으로 내밀어 암석에 대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위대하고 자애로우신 현자시여! 이곳에 당신에게 세상에 대한 의문을 묻고자 방문한 자들이 있소이다! 부디 박정하게 거절하지 말고, 진실로 답을 구하는 자들에게 당신과 마주할 기회를 주시오!”

 

 왠지 주문이라기 보단 웃기게도 청유에 가깝다고 느끼는 세자르와는 달리 브루노의 얼굴은 더없이 진지했다. 하지만 그의 말이 호수 저편에서 메아리가 되어 사라질 때까지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자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다들 어떻게 된 건지, 의식이 올바르게 된 건지 의아해 하며 하나둘씩 모래사장 주변과 브루노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 시선에 브루노는 창피함과 무안함에 가뜩이나 붉은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그가 당황해서 황급히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는 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차던 세자르는 그러나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호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어느새 하얀 한줄기 빛이 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수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반딧불 마냥 희미하기만 하던 빛줄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그 밝기와 굵기가 커져만 갔다. 순간 또 다른 함성에 고개를 돌린 세자르는 호수 다른 쪽에서도 색깔이 다르지만 똑같은 빛기둥이 올라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형형색색의 빛줄기들은 점점 늘어만 가면서 뭔가 대열을 갖추기 시작했다. 일행이 서있는 모래사장에서부터 길게 두 줄로 늘어선 빛줄기들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호수 어느 지점에서 둥글게 원을 그리고 있었다. 그 형태로 빛줄기가 점점 크고 강해지자 일행의 주변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횃불 없이도 병사들이 서로의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병사들 속에서 세자르는 빛줄기에 의해 환히 밝아진 호수 밑으로부터 뭔가가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건 다리였다. 그것도 마치 왕도, 그것도 왕궁 근처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하고 화려한 다리였다. 동시에 여러 대의 마차가 줄지어서 건너가도 될 만큼 폭이 넓고 커다란 그 다리 끝에는 둥근 기반 위로 네 귀퉁이의 거대한 종탑이 인상적인 건물이 있었다. 그리고 그 건물 앞에는 지금 일행이 서있는 곳에 있는 암석보다도 더 커 보이는 높다란 아치형 문이 위치하고 있었다.

 완전하게 호수 위로 올라온 다리와 건물은 마치 호수 위에 지어진 왕들의 여름별장 같았다. 모두가 이제까지 본적이 없는 정말 화려한 조각과 장식으로 꾸며진 그 구조물들은 호수에서 올라오는 빛줄기들로 그 아름다움을 더욱 환하고 아름답게 치장하고 있었다.

 모두가 한동안 넋을 놓고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있을 때, 갑자기 첫 번째 종소리가 울리면서 건물의 문이 양쪽으로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도미노가 다급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전군 모두 진격! 저 문을 향해 달려라! 4번의 종소리가 모두 끝날 때까지 저 곳에 도착해야 한다! 서둘러라!”

 

 역시 모인 사람들이 군인들은 맞는지, 갑자기 떨어진 명령에도 모든 병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면서 다리를 뛰어 건너가기 시작했다. 그런 본대를 뒤따라 용병단에 진격명령을 내린 세자르는 앞서가는 병사들 사이로 제자의 도움으로 간신히 말에 올라 탄 브루노가 황급히 말을 몰아 3마녀 뒤를 죽기 살기로 쫓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 브루노의 얼굴은 왠지 모르게 긴장으로 잔뜩 굳어있었다. 그 표정에 세자르는 의문이 들었지만, 깊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상황을 보건대 종소리가 모두 울리고 건물이 다시 모두 호수 밑으로 잠기기 전에 건물 입구에 도착해야만 했다. 그는 용병단원들과 함께 죽어라 달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종소리의 메아리가 끝나고, 연이어 두 번째 종소리가 울릴 무렵, 대다수의 병사들은 이미 다리의 절반을 건너고 있었다. 폭이 어마어마하게 넓은 다리 덕에 동시에 수십 명의 병사들은 전속력으로 달리면서도 서로 부딪히거나 걸리는 것 없이 마음껏 잘 포장된 다리 위를 넘어가고 있었다. 다들 이런 상황이라면 세 번째 종소리를 들을 때엔 모두가 무사히 입구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 갑자기 왼쪽 난간 쪽에서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린 세자르는 곧 비명을 지른 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병사는 황당하게도 공중에 매달린 채로 버둥거리며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그러다 곧 뭔가에 끌려가는 듯이 다리 밑 호수 속으로 떨어졌다. 세자르는 처음엔 그 상황이 이해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이 이번엔 자신의 오른쪽 가까운 곳에서 또 다른 병사가 위로 들어 올려 졌을 때 뭔가가 눈에 들어왔다.         

 그건 문어발 같이 생긴 거대한 촉수였다. 반투명한 몸통 안쪽으로 빨판이 달린 그것은 병사의 허리를 감고 마치 깃털처럼 가볍게 위로 들어 올렸다가 그와 함께 물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광경을 본 병사들은 모두 공포에 질려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몇 명의 병사가 순식간에 그들의 눈앞에서 호수 속으로 끌려들어가 사라졌다.

 상황은 너무 안 좋았다. 병사들은 모두 밝은 빛으로 환한 다리 위에 서있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괴물은 그 외곽 호수의 어둠 속에 웅크린 채로 병사들의 혼란을 틈타 잘 보이지도 않는 여러 개의 촉수로 다리 곳곳에 서있던 사람들에게 날카로운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그건 병사들 쪽에 너무나 불리한 상황이었다. 어떠한 적인지 정확히 확인도 안 되는 상황에서 무조건 상대한다는 것도 무모했다. 게다가 그 시각, 막 세 번째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모두 뛰어라. 살고 싶으면 전력으로 저 문까지 달려라.”

 

 세자르의 고함에 병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다리 위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죽어라 다리 위를 달리는 세자르의 눈에 비교적 가벼운 군장의 사수들이 다리 너머에 먼저 도착한 것이 보였다.

 

 “노만! 화살로 병사들을 엄호해! 빨리!”

 

 세자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만은 이미 사수들에게 진영을 갖추게 하고 화살을 준비시키고 있었다. 곧 첫 번째 화살들이 달리는 병사들 뒤쪽으로 떨어졌다. 두 번째는 불화살이었다. 오랜 경험에서 이미 상황을 파악한 듯 노만은 얼른 2열의 사수들에게 횃불과 화살을 준비시켜놓고 있었다.

 불화살이 주위를 밝히며 허공을 가르고 날아갔다. 그 중에 몇 개는 괴물의 촉수들을 맞췄는지 공중에서 ‘틱’하는 소리와 함께 아래로 떨어졌다. 갑자기 떨어진 화살들로 촉수의 위치를 감 잡은 노만과 사수들은 그 부근을 집중적으로 노려 활을 쏘아댔다. 이 방법이 통했는지 이번엔 꽤 많은 수의 불화살들이 촉수를 맞췄다. 하지만 물에 젖은 촉수의 표면이 의외로 매끄럽고 단단했는지 꽂힌 화살이 단 하나도 없이 불이 꺼지면서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그러나 이 공격이 괴물을 짜증나게 만든 것은 틀림없었다. 갑자기 다리 밑으로부터 그냥 듣기에도 공포스러운 괴성이 들려왔다. 사방을 저렁저렁하게 울리는 그 소리가 다 끝나기도 전에 다리 옆쪽에서 마치 화산이 터지듯이 물기둥이 치솟으며 뭔가 커다란 물체가 다리 위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건 마치 거대한 해파리 같았다. 우산같이 둥근 괴물의 머리 아래로 여러 개의 촉수가 달린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 몸통 중앙부에는 소용돌이 모양의 사방에 날카로운 이빨들이 톱니같이 붙어있는 보기에도 끔찍한 형상의 입이 붙어있었다. 온 몸이 반투명인 그 괴물의 몸은 다리 주변 빛기둥의 빛을 받아 몸 전체가 얼룩덜룩한 형광 빛을 내고 있었다.

 보기에도 괴기한 모습의 그 괴물은 물 밖으로 반쯤 몸을 드러낸 채로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동시에 뻗어오는 여러 개의 촉수들이 순식간에 다리 위를 달리는 병사들 중 뒤로 쳐진 자들을 싹 쓸어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전혀 다른 방향에서 두 개의 긴 촉수가 날아오더니 입구 앞에 대열을 갖추고 있던 사수들을 덮쳤다. 번개 같은 촉수들의 공격에 제일 앞줄에 서 있던 사수들 중 한명의 목이 날아가고 다른 한명의 몸통이 둘로 찢겼다.

 갑작스런 기습에 사수들의 진영은 급격히 흐트러졌다. 겁에 질린 사수들은 줄줄이 유일한 퇴로인 건물 입구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들을 붙잡고 다시 대열을 가다듬으려 했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는 것을 직감한 노만은 그나마 남아있는 몇 명과 함께 다리 위의 병사들이 도착할 때까지 열심히 활을 쏘고 엄호하는 것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다행히 대다수의 병사들이 죽기 살기로 달린 덕에 무사히 입구까지 당도할 수 있었다. 그 뒤로 뒤쳐진 용병들을 챙기느라 거의 마지막으로 달려오던 세자르가 위아래 할 것 없이 사방에서 공격하는 촉수들과 그것들에 의해 파괴된 난간이며 바닥들을 재주껏 장애물 넘듯이 피하며 바쁘게 뛰어오고 있었다. 뒤에서 머리를 노리고 채찍처럼 날아오는 촉수를 거의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여 피한 세자르가 앞으로 구르다시피 건물입구에 도착했을 땐 숨이 거의 턱까지 차오른 모습이었다.

 

 “살아서 도착한 것 축하하네. 아직 명줄이 튼튼하구먼, 그래.”

 “다시 만난 첫마디가 참 상큼하군, 그려. 자 이젠 됐어. 들어가세.”

 “아직 이야. 마무리는 짓고 가야지.”

 

 노만은 화살 통에서 다른 것들과는 달리 깃털이 검은색인 화살 하나를 꺼냈다. 세자르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았다. 검은 깃털의 화살은 바로 독화살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독 중 하나인 붉은색 독개구리에서 뽑아낸 독으로 화살촉을 적신 이 화살은 노만이 평상시엔 몬스터 퇴치에 사용하곤 했었다. 하지만 이번 상대는 평소 접하던 몬스터들과는 그 크기나 성질이 전혀 달랐다.

 

 “노만, 이건 무리야. 저 괴물은 화살도 안 박힐뿐더러 맞는다고 해도 저 덩치엔 모기 물린 것만도 못할 거야.”

 “걱정 말아. 이건 평소보다 20배 더 농축한 특제야. 효과가 있을지는 이럴 때 한 번 써보지 않고 어떻게 알겠나. 그리고 과녁은 내가 알아 고를 테니 말할 시간 있으면 안에 들어가 보게나. 마지막 종 칠 시간이 다됐어.”

 

 그 말과 함께 노만은 이제 다리 위로 반쯤 올라오고 있는 괴물을 조준했다. 노만의 표정에서 더 이상 설득이 어렵다는 것을 확인한 세자르는 잠자고 노만 옆에서 과연 그의 비장의 패가 통할지 지켜보기로 했다. 노만은 여기저기서 날아다니며 다리도 모자라 건물 외부까지 박살내고 있는 촉수 공격에도 조금의 움직임도 없었다. 주변에 떨어지는 파편과 자욱한 먼지 사이로 날카롭게 괴물을 노려보던 노만은 목표한 곳을 찾자 망설임 없이 활을 쏘았다. 명쾌한 소리와 함께 곧장 날아간 화살은 요란하게 소란을 피우던 괴물의 입 속에 정확히 명중했다.

 예상외의 공격에 괴물의 움직임이 갑자기 멈췄다. 하지만 잠시 후 무시무시한 괴성과 함께 광분한 괴물이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아픔에 몸부림치듯이 괴물은 자신의 촉수들을 사방으로 휘두르며 주변의 모든 것을 가차 없이 박살내고 있었다. 근처 다리 위 장식들과 조각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리 난간들도 여기저기 부셔져 가루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주변이 폐허로 변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직까지 건물 입구에 서있는 두 사람을 발견한 괴물은 무서운 속도로 건물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이미 충분히 독화살의 효과를 목격한 두 사람은 괴물이 도달하기 전에 서둘러 건물 안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동시에 마지막 종소리가 울리면서 커다란 문이 열릴 때처럼 부드럽게 닫혔다.

 

 두 사람이 쓰러지듯이 들어온 건물 안은 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방이었다. 역시 외관만큼 화려하게 꾸며진 그 방은 들어온 곳 이외에는 별다른 통로가 보이지 않는 막힌 공간이었지만 사방에 붙어있는 크고 높은 창문들 덕에 전혀 답답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문 쪽에 있는 창문 너머로 아직까지 분노의 연타를 날리고 있는 괴물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일 정도로 엄청난 개방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괴물의 난동에도 방 안에선 어떠한 소리나 진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횃불이 필요 없을 정도로 밝은 조명과 방안의 따뜻한 분위기는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꽉 막힌 곳을 싫어하는 말들조차 차분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을 정도였다. 덕분에 사람들은 마치 우리 안의 맹수를 관람하는 것처럼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괴물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 때 갑자기 허공에서 귀여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이름 없는 마법사의 누추한 저택을 방문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잠시 후 저택의 정문에 도착할 예정이오니 모두 잠시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일상과는 전혀 다른 상황들이 연달아 일어나는 것에 방안의 사람들은 모두가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일단은 밖에서 서성이고 있는 무시무시한 놈과는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모두 안도하고 있었다.

 세자르는 문뜩 느껴지는 가벼운 진동에 밖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속으로 감탄을 연발했다. 건물 전체가 천천히 물속으로 잠기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수면이 창문 위로 올라가고 외부를 밝히고 있던 빛줄기들이 가늘어지자 세자르는 가만히 서서 호수 속 풍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건 평소에는 접할 수 없었던 신기한 체험이었다.

 밤하늘에 떠있는 밝은 보름달에 비춰진 물속은 지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출렁이는 수면에 따라 흔들리는 달빛 사이로 작은 물고기 떼가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움직이고 있었다. 천천히 움직이며 먹잇감을 찾고 있는 잉어 같은 큰 물고기도 볼 수 있었다. 근처에 있던 누군가가 낚시 경험이 많았던지 창문 너머의 물고기들을 가리키며 흥분한 목소리로 줄줄이 생선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신의 낚시 지식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자기 자랑하고 싶은 어린애의 모습과 똑같다는 생각에 피식 웃던 세자르는 갑자기 앞에 나있는 창문을 지나가는 커다란 그림자에 왠지 모르게 등이 싸늘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천천히 창가로 다가간 세자르의 눈에 비친 것은 아까 전과는 달리 물속에서 빠르고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는 해파리 괴물이었다. 모든 촉수들을 뒤로 뻗은 채로 둥근 머리를 펄럭이며 유유히 건물 주변을 한 바퀴 돌던 그것은 세자르 앞에서 멈춰서더니 형광색으로 빛나던 몸의 색깔을 바꾸기 시작했다. 온 몸을 밝은 붉은 빛으로 물들인 괴물은 다음에 두고 보자는 뜻인지 긴 촉수로 창문을 한 번 갈기더니 빠르게 먼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화가 단단히 났나 보네요.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노만이 한 번 당해보라고 독화살을 날렸어. 입안이 좀 얼얼했나봐.”

 “그럼 다시 올라올 때 조심해야겠군요. 물론 그때까지 살아있으면요.”

 “물론 그때까지 살아 있을 거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근데 루이, 저 괴물하고 이 건물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거야? 뭐 아는 거 없냐?”

 “어느 정도 짐작은 갑니다. 한데 그 규모가 제 생각보다 훨씬 커요. 때문에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왜? 겁이 나서?”

 “장난하십니까? 이 건물만 봐도 모르시겠어요? 제가 이렇게 흥분되는 것은 제 인생 처음입니다. 용병 생활 최초로 대장에게 감사드리고 싶을 정도라고요.”

 “그렇게나 고맙다면 이제 감상은 그만두고 알아듣게 설명 좀 해봐.”

 “나 원, 감수성이라곤...... 알았습니다. 설명합죠. 우선 이 방은 ‘움직이는 방’입니다.”

 “잠깐, 너 한 번 비오는 날 제대로 먼지 털릴 때까지 맞을 때가 된 것 같다.”

 “아아, 잠시 만요. 말을 끝까지 들으시라고요. 이 방은 바로 마법으로 움직이는 겁니다. 세자르는 다른 유적들에서 이런 것 본 적 있습니까?”

 “아니, 나도 이런 건 처음이야. 본 적이 없어.”

 “그렇지요? 이건 대마법시대에 건물 사이를 이동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기록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기껏 발견해도 다들 높은 곳에서 추락을 했는지 박살이 난 상태였어요. 크기도 기껏해야 자크의 화장실 크기 정도였고요.”

 “그렇다는 것은?”

 “맞아요. 말은 저렇게 하지만, 이 유적의 주인은 실제론 어마어마한 대마법사였다는 겁니다. 적어도 안토니요 발키리우스, 아니 알베르토 세르지오 급 정도로요. 게다가 중요한 것은 유적 내 모든 마법이 마치 어제 만든 것처럼 아주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거예요. 저 문지기를 보세요.”

 “문지기라니?”

 “저 거대 해파리가 바로 문지기예요. 보통은 유적의 주인들이 사자만한 스핑크스나 키메라를 갖다 놓는단 말입니다. 유적 안에는 저것보다 더한 것들이 득실거릴게 뻔해요. 각종 고대의 비법이 담긴 마법과 트릭, 엄청난 괴물들, 그리고 가장 깊숙한 곳에 있을 대마법사의 최고의 보물들. 이런데도 흥분이 안 되겠습니까?”

 

 세자르의 뒷골이 당기기 시작했다. 루이가 말한 마법사들이 얼마나 위대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의 말이 맞는다면, 세자르와 다른 사람들은 생애 최초로 모든 장치가 완벽하게 작동하는 대마법사의 유적을 탐사하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곳일수록 위험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세자르는 이제야 세 마녀들이 굳이 왜 이렇게 많은 인원을 데리고 왔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예상할 순 있겠나?”

 “전혀요. 마법사란 존재들은 워낙 패쇄적인 성격에 개성들이 강해서 그 취향에 따라 집 꾸미는 게 천차만별이에요.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확실하게 연구하던가 아님 몸으로 직접 하나하나 부딪쳐 깨부수는 방법밖엔 없어요. 저기 브루노씨가 자진해서 정보를 공유해 주시지 않는 이상 말이죠.”  

     

 그 브루노씨는 여전히 능글맞은 표정으로 방 가운데에서 언제나처럼 세 여자 옆에 찰싹 붙어서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저런 사람이 본인이 공들여 연구한 자료들을 친절하게 자신들에게 공개해줄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세자르가 알고 있는 것도 그 마법사의 이름 뿐, 그에 대한 자세한 지식이나 정보가 전혀 없었다. 잘못하면 그나마 믿을만한 전문가인 루이가 어설픈 세자르의 말에 상황판단을 잘못할 수도 있었다.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세자르는 천천히 방안을 둘러보았다.

 대다수의 병사들은 아까 전 다리에서의 일로 많이 지쳐있는 모습이었다. 해파리 괴물의 공격으로 많은 수의 병사들이 팔, 다리, 어깨 등에 부상을 입고 있었다. 피해는 용병들 보다는 오히려 본대가 더 커보였다. 무거운 금속 갑옷차림으로 전력질주 하는 것은 전장에서도 잘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생각지도 못한 거대괴물을 접한 정신적 충격이 더 커보였다. 병사들이 전투가 아닌 유적탐사는 거의 처음이란 것이 확연히 드러나 보였다. 그런 병사들을 확인하고 기운을 북돋아주느라 각 조장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세자르도 점검해 본 결과, 생각 외로 용병들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진지에서 필요한 장비만 챙겨와 몸이 가벼운 용병들은 나이가 들어 뛰는 데 뒤쳐진 노인들과 활 쏘다 죽은 사수들 합쳐 사망자가 대여섯 명, 그것도 거의 잉여에 가까운 자들이었다. 반면 정예병인 본대는 열댓 명 가까이가 죽거나 중상이었다.

 도미노를 만나 상황을 보고하고 다음 일을 논의하던 세자르는 용병들보다 본진 병사들의 피해가 크자 도미노의 표정이 전보다 굳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떨리는 손을 본 세자르는 다시 한 번 ‘돈과 생명의 가치비교’에 대해 고민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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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토도사 2023.05.19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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