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德厚の野望 63.

TODOSA 1 115 0

조정안은 순조롭게 이행되었다. 포로로 잡힌 이들 중에서 백삼동과 연이 있는 이를 구워삶아 밀지와 함께 보낸 것이다. 받아든 백삼동은 밀봉 상태를 세심하게 살펴보더니, 열어보지도 않고 가지고 온 이를 객관에 편히 쉬도록 하였다.

나흘 뒤, 광협은 마침내 출관을 하였다. 북망의 싸움에서 얻은 심득으로 절정의 성취를 이루어낸 것이다. 더 이상 성난 표정이 아니라 근엄한 얼굴을 한 광협은 꼬박 하루를 소비하여 관일청을 승복시켰다. 사로잡힌 이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던 관일청이 승복하자 포로들도 눈치 보더니 하나 둘 전향했다.
 
남 가락은 장로들의 협력과 포로들을 전령 삼아 하남 전역의 신협파와 중립파를 자기 편으로 끌어안았다. 막대한 금품이 소비되었지만 한 달이 지나자 속속히 성과를 보였다. 이를 견딜 수 없는 신협은 백삼동의 권유로 영호 세가로 원군을 청하러가기로 했다. 백삼동은 자식 뻘 영호 운비와 상담을 자청해서 아주 깊게 하였다.

개봉을 떠나는 안장 위에서 신협은 비장한 표정으로 후일을 기약했다. 그러나 관도를 얼마 달리기 전에 말고삐와 안장이 끊어졌고, 이상하게 무공을 펼칠 수 없을 만큼, 몸이 무거워진 터라 그대로 낙마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낙마하는 순간 하필이면 뒤통수에 뾰족한 돌이 휙 날아왔다. 그 자리에서 재기를 꿈꾸던 신협은 어이없이 즉사하고 말았다.

신협의 급사는 약간의 동정을 샀을 뿐 크게 이슈화되지는 못했다. 광협이 수를 쓴 것이다, 라고 수군거리는 이가 없진 않았으나, 천협의 급서와 같이 오리무중으로 빠졌다. 그보다는 떠오르는 태양과 같은 광협의 이력을 논하고 환심을 사는 것이 중요했다. 결정적인 것은 단혼도가 사실은 신도 세가의 인물이었으며, 정통성으로 따지면 광협과 신협보다는 가주 자리에 가깝다는 점이 화제가 되었다. 대외적으로 단혼도의 성별을 알고 있는 이는 드물었다. 애당초 남장하고 키워진데다가, 그나마 진상을 알고 있는 이들은 류 원종이 나서서 입단속을 시켰다.

“절대적으로 숨길 비밀은 아니지만, 공공연히 떠들 필요는 없을 것이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여가주가 아니오. 하남이 위기에 빠졌을 때 여차하면 조력을 받을 수 있는 절정고수, 단혼도 라는 것을 기억하시오. 단혼도의 빈자리를 대신할 자신이 있다면 공표하고 다녀도 좋소.”

저승사자의 안색을 한 류 원종 앞에 다짐을 못하겠다는 이들은 없었다. 류 원종은 그들에게 적당한 보상을 챙겨줌으로서, 으르는 것뿐만 아니라 다독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신협이 개봉을 나선지 1 주일 지난 때, 광협은 혁련 소가주와 단혼도 등과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측근들을 이끌며 개봉의 신도 세가에 입성할 수 있었다. 세가의 정문에는 백삼동이 딸 백예궁과 함께 가장 앞에 나와 공손히 맞이하였다. 한 때 그를 추격했던 백삼동은 언제 그랬냐는 듯, 광협을 지극정성으로 맞이하였다. 광협도 윗사람을 대하는 예의로 받아주었다. 그가 백예궁을 슬쩍 눈 담더니 대문을 건너는 동안 백삼동에게 은근히 물었다. 

“따님이 미인이시군요.”
“덧없는 명성입니다만, 신주오협의 한 자리를 차지하였더군요.”

백삼동은 겸손해하면서도 백예궁의 미모를 자신하였다. 백예궁은 둘 사이에 어느 말이 오가는지 모른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광협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례하다 탓하지 않는다면 감히 청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맹주님의 청이라면 제가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혹여, 따님의 사주를 알 수 있겠습니까?”

사주는 중요하게 취급되었기 때문에 이 말은 청혼이나 마찬가지였다. 백삼동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금방 미소를 지었다. 사실 이런 효과를 노리려고 자기 방에 놔둬야할 백예궁을 곱게 단장해서 데리고 나온 것이 아닌가.

“아비라고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없으니...한 번 딸아이의 의사를 물어봐야겠습니다.”

백삼동은 떨림을 누르며 일단 튕겼다. 광협은 잘 부탁한다는 말로 대화를 끝맺었다. 불문의 무공과 수양을 해온, 그것도 절정에 이른 광협이 백예궁에게 한 눈에 반한다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떠나오면서 남가락의 조언 때문이었다. 백삼동에게 형식적인 복종이 아니라, 자발적인 충성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신주오협의 정보에 대해 빠삭하던 남가락은, 백삼동과 달리 백예궁이 자기주장이 별로 없는 여인이라 분규를 만들 일이 없을 거니 꼭 잡아야한다고 강변하였다. 정략혼을 한다면 류 원종의 딸인 류 산산과 하지 않겠는가 싶었지만, 왈가닥과 수줍음의 극단을 오가는 지라 정숙을 좋아하는 광협과 어울리지 않았다. 오히려 말재간이 빼어나 심심할 틈이 없고 장난쳐도 부담이 없는 남 가락과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가주전에 이른 광협은 가중의 유력자들이 모인 가운데 단혼도를 소개하였고, 바로 추천하였다. 사전에 언약이 있던 지라 일족은 만장일치로 단혼도의 가주 임명을 승인했다. 그리고 그 날부터 사흘 간 혁련 소가주를 귀빈으로 삼고 맹주와 가주가 의자를 나란히 한 채 서로 의가 좋다는 퍼포먼스를 하며 하객들을 상대하였다.

영호 세가와는 조정안을 논할 때 우는 소리를 하였던 남가락의 예상과 달리 순조롭게 화의를 맺일 수 있었다. 영호 운비는 하남맹과 신도 세가에서 보낸 막대한 예물과 이권 양도 서를 챙겨들고 흡족하게 떠날 수 있었다. 영호 운비가 떠나고 광협은 재정 담당자를 불러 보고를 받았다. 경청하고 난 광협은 한숨을 쉬고 말았다. 선대가 구축한 자금이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채우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혁련 가에 하남 전역의 마시를 내주기로 하면서 그들에게 일률적으로 중개비를 받아내기로 했으니까요. 원래는 제각기로 나눠서 받아서 복잡한 편인데, 그보다는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영호 세가에 이권 양도서를 내주기는 했지만, 현지인 고용 원칙을 내세웠기 때문에 무슨 수작을 부리려 들면 이쪽에서 대처하기 쉽습니다. 5년, 아니 3년만 참고 힘을 비축하십시오. 그 뒤는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고 떳떳하게 자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 가락은 그렇게 웃는 얼굴로 광협을 위로해주었다. 광협은 물끄러미 자신의 군사를 보다가 얇은 책자를 주었다.

“포대소공이네. 일반 무학과 달리 설법과 탁발을 하는 객승을 위한 심공心功에서 출발한 것이지. 자네도 하남제일군사가 되었으니, 마냥 웃기만 할 게 아니라 성을 내고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보고 모르는 게 있으면 어느 때든 가리지 말고 물어보게.”
“맹주님...”

남 가락은 평소의 구변을 잊고 멍하니 광협을 보았다. 그도 남 가락과 성질은 달랐으나, 희노애락이 뜻대로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입장은 동일했다. 원래 남 가락은 형욱에게 마음을 둔 지라 광협을 위해 그렇게 헌신할 필요도 없었고, 광협도 남 가락의 진언을 모두 다 받아줄 필요는 없었다. 개 중에는 자기 목숨을 날릴 수 있는 도박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둘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를 위해 그 이상을 해주었다. 본능적으로 서로에게 남이 아니라는 동일감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 날, 남 가락은 웃는 얼굴로 눈물을 흘리는 추태를 부리고 말았다. 

양지에서 광협과 남 가락이 군신의 우의를 다지는 동안, 음지에서는 덕후와 주 노인이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고 있었다. 안력을 돋우지 않으면 윤곽조차 보기 힘든 어둠의 공간에서였다.

“화끈하게 죽이셨더군요.”

어쩐지 질책하는 듯한 음성에 덕후는 태연했다.

“그 반대의 경우보다는 낫지 않은가. 봐달라고 해서 통할만큼 녹록찮은 상대고.”
“주구가 당했으니 바싹 경계를 할지도 모릅니다.”
“에이, 슬슬 기지개를 펴고 싶어 할 텐데 도로 숨을라고?”

덕후는 손까지 휘휘 저었다. 주 노인은 곤란하다는 듯 설득하려 하였다.

“명하신 대로 작성은 하겠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섣불리 건드려서 곤란하다는 것은 왕야께서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황법이 통할 상대가 아닙니다.”
“주 노야!”

어둠 속에 덕후가 정색을 했다고 할 만큼 어조가 확 달라졌다.

“태조황제를 어떻게 생각하오?”
“천명을 받으신 분이지요. 그 분이 아니었으면 저나 왕야께서 이 자리에 있겠습니까.”

두 번 생각할 것 없다는 듯한 답변. 덕후는 그래, 하고 맞장구를 치며 열변을 토했다.

“주씨 일족이 만대를 이룰 수 있도록 그 어느 왕조보다 절대적인 황권을 구축하셨지. 공신이라는 탈을 쓴 호랑이도 지주라는 승냥이들도 그 분의 어명에 주살 당했네. 하루에 천 건이나 넘는 정사를 소화하실 만큼 투철하셨고...헌데 지금은 어떤가?”
“왕야께서 지존의 자리에 오르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찬탈로 해석할 수 있는 이야기를 주 노인은 덕후가 황태자의 자리를 양보한 것을 알기에 심기 쓸 일 없이 바로 대꾸 하였다.
 
“아냐...황제의 권력으로 할 수 없는 일도 있네. 아무리 대명률로 명시하고 육조체제를 고수한다한 들 황제 또한 한계를 가진 개인.....그 증거로 주 노야가 있지 않는가?”
“그야 그렇지요.”

주 노인의 목소리에 의무를 확인 받은 듯한 결의가 담겨 있는 듯 했다. 약간의 회환과 함께. 덕후는 주 노인의 밑바닥의 감정을 일깨우기 위해 짐짓 어조를 고치며 한탄식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일전에 태조본기를 은밀히 열람할 때 참람함을 금할 수 없었던 기사가 있었소. 홍무 18년조에 일어난 일을 아오?”
“곽환의 건 말이군요. 어찌 잊을 수 있습니까.”

주 노인은 금방 떠올렸다. 주원장은 탁발승 출신으로 관료와 지주의 행패에 오래전부터 염증을 느껴왔다. 그래서 내놓은 대안이 경중을 논하지 않고 비리가 있다면 무조건 잡아 죽이기였다. 사실 관료의 순수 녹봉은 입에 풀칠하기 힘들 정도로 박 편이라 이중에는 생계형 범죄도 적지 않았다. 후일 청의 옹정제가 양렴은과 모선제를 실시하면서 어느 정도 해소하려 시도했지만, 이는 예외적인 경우고 명나라가 관리에게 주는 급료는 지독하게 야박한 편이었다. 그러나 관직에 있다는 이점으로 각종 면세와 특권을 가졌음에도 각종 청탁을 받아들이고, 대가를 폭리 수준으로 갈취하는 것도 변명의 여지가 될 순 없기는 매한가지.

호람의 옥으로 공신들을 수 만 명이나 숙청하고 자신만만하였던 주원장은 관료-지주 충의 전국적인 반발로 백기를 드는데 계기가 호부에 요직을 차지하던 곽환의 비리였다. 곽환의 착복은 그 해 양곡소출 전체와 맞먹을 정도였고, 6부가 모두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초유의 스캔들이었다. 주원장은 화끈하게 6부의 좌우시랑부터 관리, 그리고 연루된 강남의 부호들도 몰아쳐 사형했고 이때 죽임을 당한 이들의 수효가 호람의 옥에 사망한 이들 못지않았다.

이런 과격한 처벌은 전국의 관리와 지주들의 불만을 사게 되었다. 일단 탐관오리를 처분한다는 명분 때문에 주원장에게 직접 대거리를 못했지만, 처형을 실시하였던 관료들을 타깃으로 삼아 공격했고, 황제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여론을 형성해갔다. 워낙 흉흉한 기류였기에 주원장은 당황하여 황제 대신 처형하였던 관료들을 처형하고 천하에 용서를 하겠다는 두루뭉술한 조칙으로 곽환의 비리를 덮고자 했다.

물론 주원장의 성질머리에 순순히 물러날 리가 없고, 그 뒤에 대고를 지어 탐관오리를 경계하고 걸리는 관리들은 혹형으로 다스렸지만, 지엽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는 수준에 그쳤다. 곽환의 비리는 주원장이 자기 전공(?)인 숙청을 하면서 드물게 좌절을 겪은 사건이었고, 이들에 의해 자신의 핏줄이 위협받으리라는 의심을 품게 되었다. 음지에서 주 노인 같은 존재가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참으로 발칙하지 않소? 관리니 지주니 해도...제국의 신민임은 변함없지. 저기 돼지치기를 하는 천민과 근본이 다를 건 없다 이 말이오. 돼지는...저들끼리 물어뜯는 것은 상관없지만 주인을 향해 악다구니를 쓰면 안 되오. 주는 대로 배부르게 먹고, 주인이 필요하면 얌전히 도축을 당해야 본분이요 순리이거늘...”

실로 음험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었으나 듣는 주 노인의 육감은 희열에 젖었다. 타고난 권력자만이 지닐 수 있는 폭압적인 오만에 차게 식은 피가 맥동치고 주름진 살이 다 떨려왔다.

“물론 그 뒤로 제법 많은 노력을 기울이긴 했소. 금의위만 부족해서 동창도 만들고 밀고를 장려하였지. 허나, 두려움으로 다스리는 데는 한도가 있소. 고가 원하는 것은....일족의 손에 모든 신민의 육신부터 의식까지 모두 좌지우지되어야 하는 미래요. 헌데 말이야....토목의 변 이후에 주인의 자리를 감히 엿보는 돼지가 열 마리 씩이나 있소. 천하에 사죄한다고 어둠으로 숨어서 열 마리 양을 전면에 내세우고 주인처럼 양육하려 들고 있소. 자기들은 아니라고 꿀꿀 거리지만, 도축하려 들면 곽환보다 더 거세게 들고 일어날 부류들이란 말이지....주 노야라면 이들을 어떻게 해야겠소?”

주 노인은 말이 없다. 그러나 두 눈은 어둠속에서 형형히 빛나기 시작했다. 덕후는 음험한 미소를 지었다.

“돼지猪 치기를 하는 것은 주朱 씨가 당연하지 않겠소?(朱와 猪는 중국어로 발음이 같음. 이 때문에 한 때는 돼지고기 금지령이 떨어짐.)”
“과연, 그러합니다. 노부는 왕야의 뜻을 알 것 같습니다.”

주 노인도 덕후와 같은 온도의 미소를 지었다.

“다행히도 노부가 품었던 뜻도 왕야와 같은 것이군요. 노부는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부귀영화에 한 톨의 관심도 없습니다만.....태조께서 이루고자 했던 대업을 이루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무덤덤한 주 노인의 속 잿더미에 불씨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덕후는 손에 쥔 땀을 느끼며 그것을 반겼다. 곁에 가까이 두고 있음에도, 가장 의중에 넣기 어려웠던 인물에게 이정표가 될 야망을 심어준 것이다.

어둠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둘은 미소는 짙어져 웃음으로 번졌다. 이 순간, 주 노인은 덕후의 모습이 가면 뒤에 있는 실체라고 믿었다. 그 안쪽에 더 깊이 있는 본심은 아마도 영원히 모른 채.
 
둘은 아무도 모르게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논하고 헤어졌다.
 
하남의 중심이 세가에서 맹으로 옮겨가고 세력을 정비하는 동안, 마시에 일대 변화가 찾아왔다. 혁련 가의 지원으로 5년간 마시를 과점할 권한이 그것이었다. 하남의 마상들은 이에 반발했지만, 하남맹이 묵인하는데다가 무력을 동원하여 치면 관아로 끌려가 자신들까지 처벌을 받는 터라 순식간에 수세에 몰렸다. 대책이 시급해지자 마상들은 남 가락의 지원 하에 모처럼 한 자리에 모였고, 관복을 잘 차려 입은 덕후가 나섰다.

“강남의 위소에 말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소. 여러 산지의 말을 추천했지만 본인이 특별히 중원의 말이 싸고! 멋있는! 이라고 주청하여 선점하였소이다. 그래서 본관이 말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아 이리로 온 것이오.”

객관적으로는 영예스러운 일이었으나 현실적으로 강남까지 말을 팔러 가야하는 마상들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일이었다. 상인들 중에서 가장 서러운 것이 객상이다. 언제 도적을 만날지 모르고, 풍토병과 역병의 위협에 시달렸다. 그 처지가 되었으니 덕후가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대표로 보이는 한 마상이 나서 물었다.

“예로 차마고도라고 서역의 말이 가장 질이 좋습니다. 그곳에서 직수입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하, 거기서부터 강남까지 오가기는 너무 멀지 않소? 다 유통마진과 인건비를 줄이려는 조정과 왕부의 심모원려요. 하남이 곧 중원이라 서역뿐만 아니라 산서 이북에도 오니 거기서 오는 것도 구하면 저렴하오. 하지만 중원의 마상들을 한 꺼 번에 부르면 시세에 영향이 갔을 터이니, 빼간 만큼 서역상들로 대신 갈음시켰소. 이 공평무사한 선견지명을 어떻게 생각하시오들?”
“뭐, 임마?”

자리에 앉아있던 마상들 중 누군가 화가 꼭지까지 돌아 불식간에 욕을 하고 말았다. 아무리 탁상행정에도 정도가 있지, 당사자 의견들을 한 톨도 듣지도 않고 억지 강행이라니!

“누가 욕했소? 당장 나오시오! 공무방해와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소!”

덕후가 눈초리를 더럽게 꾸미며 노려보았으나 누군지 알 도리가 없었다. 당장 욕설한 놈을 데려오라고 방방 뛰자 남 가락이 좋은 말로 달래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마상들을 향해 바락바락 악을 쓰던 덕후는 진정한 뒤에 엄포를 놓았다.

“이는 황상 뿐만 아니라 덕왕 전하의 지엄하신 명이오! 이의가 있으신 분은 나서시오! 직접 알현토록 해 줄 터이니!”

마상들도 덕왕이 얼마나 또라이인지 들은 귀가 있으니 안다. 까다롭고 예민한 말을 수시로 다루면서 북방의 거친 유목민과 마적들도 상대해온 이력이 있는, 거칠기 짝이 없는 호한들도 덕왕은 찜찜한 존재였다. 그나마 비빈들 덕분에 제어가 가능하고, 그녀들이 없었으면 강남은 지옥이 될 거라는 풍문도 들었다. 다들 우거지상이 된 체 있다가 화살을 남 가락을 향해 돌렸다.

“우리들에게 사전에 알려주지 않고 멋대로 정하면 어떻게 하오?”
“다른 경우라면 알렸겠지요. 허나, 황명이 걸린 일을 맹이 어찌 수작을 부릴 수가 있겠습니까? 무엇보다....세가라면 모를까 맹과 피차 은의가 있던가요?”

마지막에 중얼거리듯이 반문하자 마상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번 내란에 마상들은  대다수가 신협 편을 들었다. 대세가 장로들에게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광협이 이겼다는 것을 알고 부랴부랴 노선을 갈아탔지만 광협은 이들을 형식적으로 응대했을 뿐, 선물을 받지 않았다. 개개인별로 목록대장까지 만들어 돌려주기까지 하였다. 불안한 심정으로 나날을 보내는 가운데 이런 일이 터진 것이다. 서로 끼리끼리 소리를 죽여 의사를 교환하고 있는데, 한 구석에서 편한 기색으로 있는 무리들이 있었다. 마상들은 저들이 내란 이전부터 광협을 지지한 쪽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마상들의 반발이 반쯤 자포자기로 돌아가자 남 가락은 적당한 시기를 끊어 모임을 해산시켰다. 이들이 뭉쳐서 대책을 세울 기미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앉아서 그대로 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나마 빠져나갈 구멍이라도 있긴 했다. 하지만 구멍을 마련한 장본인인 덕왕과 그의 화신인 덕후는 수명연장의 꿈을 엄청나게 누리게 되었을 것이다.
 
마상 회동이 원하는 방향으로 일 단락 되자, 덕후는 형욱과 세휘를 데리고 하남을 떠났다.

“꼭 연락해라!”

떠나면서 등짝 치는데 은근히 맛이 들린 양옥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머무는 동안 덕후로 부터 브래지어나 팬티는 물론 화장품 등을 잔뜩 받았기 때문이다. 사용법은 세휘가 알려주었지만.

셋은 북경 쪽으로 향하다가, 중도에 변복을 하고 강남으로 향하는 배에 승선하여 덕왕부로 귀환하였다. 햇살이 점점 따가워지는 어느 날이었다.

광협과 같은 요란한 입장은 없었다. 덕후가 나간 것은 비공식이고, 마누라들이 한가하게 규방에 앉아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사 체면보다 하던 업무가 먼저라는 덕후의 견해를 반영한 것이다. 덕후는 급히 나온 탕에 먼지와 땀을 느긋하게 씻고 난 뒤에 새 옷으로 갈아입어 긴 의자에 잠깐 누워 개운함을 만끽하였다.

그렇게 깜빡 잠이 들었는데, 서늘한 것이 이마 위에 올랐다. 반사적으로 잡고 매만지자, 덕후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떠올랐다.

“이건...큰 마노라님의 손이군.”
“여독에 피곤하실 텐데...깨웠네요. 좀 더 눈 붙이세요.”
“아니, 깨어나면 누나를 찾으러 가려 했어.”

일어서려는 우희선의 허리를 억지로 끌어안은 채 덕후는 그녀의 체취를 흠뻑 맡았다. 우희선은 덕후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다가 조용히 물었다.

“형욱을 취하셨다면서요? 덤으로 가주에 오르게 하고.”
“가주 자리까지는 내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어. 남 가락이라고 꽤 머리가 돌아가는 이가 꾸며낸 거지.”
“본인은 달가워하지 않은 것 같더군요. 자신의 호위에게 메일 거리가 생기는 건 상공도 원치 않나요?”
“언제까지 나를 지켜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니까. 곧 한 축을 담당할 테니까 그 정도 자율성이 있는 편이 좋아.”

머리를 쓰다듬는 우희선의 손이 잠깐 멈칫했지만 다시 평소처럼 정리를 반복했다. 덕후가 몸을 틀자 자신의 무릎 위로 머리를 편히 뉘일 수 있게 해주었다. 어머니의 약손처럼 상냥한 감촉에 덕후는 팔짱을 낀 채 기분 좋게 눈을 감았다. 입은 하남에 있던 경과를 보고하고 있었지만.

우희선은 천협의 죽음과 그 이후에 벌어진 내란에 대해서는 별 다른 말이 없었다. 그러나 마상들의 이전에 대해서는 한 마디 안할 수 가 없었다.

“그래선 상공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꼴이 되지 않습니까.”
“이럴 때 욕먹으라고 있는 건데....슬슬 강동의 마상들이 가격을 올리려 하잖아? 이번에 중원의 마상들이 대거로 들어오면 지들 꼴리는 대로 담합하기가 어려워지지. 이 기회에 원가로 딱딱 후려쳐 받으란 이야기는 아냐. 뭐든 적당하게, 평균 시세대로 사는 게 좋단 말이지.”

위소의 전력 보강으로 말과 무기를 대량 구입한다는 풍문이 저자거리에 퍼지지 않았으나 대목을 가진 거상들 사이에게는 이 이야기가 은밀히 돌고 있었다. 아무리 단속을 철저히 한다 해도 정경유착은 쉬이 사라지기 어려운 풍토였다. 이 시기 대상으로 성장하는 조건 중에 하나로, 자식이나 친척을 관직에 몸담게 해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예산의 낭비를 줄이기 위해 금보옥과 우희선이 머리를 맞대어도 쉽게 풀리지 않았는데, 덕후가 뜻밖의 선물을 한 셈이 되었다. 본인도 사재기에 가까운 방법이라는 걸 알았는지 적당히니 뭐니 주워섬기긴 했지만 편법은 편법이다.

“한동안 비빈 전에 로비...아니, 인사하러 올 이들이 많아질 테니까 잘 단속하라고.”

어때, 잘 했지? 하고 묻는 듯한 뉘앙스에 우희선은 고마움과 함께 일말의 얄미움을 느꼈다. 이렇게 신경 써줄 마음이 있다면, 정무도 걷어차지 말고, 체면을 세울 만큼 세워주었으면 했다. 덕후는 우희선의 눈치를 한 차례 살피고는 조심스럽게 혁련 양옥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우희선은 초인적인 인내로 평정을 유지했다. 그래도 잔 떨림을 숨기지 못해 다른 뜻이 있는 척 완곡하게 입을 열었다.

“한 번 만나보고 싶군요. 상공더러 부르면 바로 오라니....”
“내 정체는 아직은 모르니까 말이야. 어쨌든 혁련 가를 한 편으로 만들면 차후가 편해지는 건 확실하지.”

마누라들의 마음은 그만큼 더 불편해지겠지요, 라고 쏘아붙이려는 것을 속으로 삭였다. 우희선의 동요를 모를 리가 없는 덕후는 팔을 붙잡아 가볍게 흔들었다.

“참........우리 아들 이름은 무엇으로 지을까?”
“네?”
“뭘 그렇게 놀라? 저기 내란이 일어난 걸 보니 역시 적자가 없으면 안 되겠구나, 싶더라고.”

우희선은 저도 모르게 숨을 크게 삼켰다. 머리 속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남편의 발언을 문자 그대로 순진하게 받아들이기에는 함께 지내온 시간이 당장 부정했다.

“네, 그러네요.....딸은 어때요?”
“좋지만, 이름이 안어울리잖아?”
“이름까지 생각해두셨어요?”
“응, 오면서....외자로 겸謙은 어때? 우 겸. 개인적으로 참 존경하는 이름이거든.”

우희선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표정으로 덕후를 내려보았다. 우겸. 토목보의 변으로 황제가 북적에게 사로잡히자 경태제를 내세우고 북경에 결사 항전을 펼쳐, 국난을 극복한 명장이자 충신. 탈문의 복벽으로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지만, 조야가 그의 죽음을 애석해하였고 사후 복권 움직임이 있었다. 우희선은 어려운 시절에도 그의 후손이라는 것에 긍지로 삼아 자라왔다. 하지만 정작 덕후의 입으로부터 아들 이름을 그렇게 짓자는 소리를 듣자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훗날-. 무언가 중대한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억측이 들 정도로.

원래는 겸손하다의 겸이지만, 읽기에 따라서는 혐의를 두는 뜻도 포함한다. 자꾸만 나쁜 생각이 들자 우희선은 스스로를 꾸짖었다. 억측에도 정도가 있지. 하지만 여전히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덕후가 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아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그도 좋은 이름이에요.”
“따로 생각해둔 이름이라도 있어?”
“외자로 하시겠다면, 종從은 어때요?”

덕후는 잠시 생각하다가 미간을 좁혔다.

“에이~ 그건 너무 순하군. 남아스러움이 없잖아? 여아에게 어울리겠는 걸.”

덕후는 팔을 뻗어 우희선을 껴안았다. 가슴 사이에 얼굴을 꼭 묻고는 입김이 서로 닿을 만큼 바싹 얼굴을 가져가며 유쾌하게 말했다.

“자식들을 위해 최고의 가문들을 만들어 주는 건 어때? 몇 개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명문세족이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나요? 설령 그렇게 지어주셔도 풍상에 견디지 못하고 도태되는 경우가 많아요.”

우희선은 바로 덕후의 망상에 제동을 걸었다. 덕후는 오히려 탄력을 받아 목소리를 키웠다.

“그럼 더욱 해볼 가치가 있는 거 아니오? 재물과 작위만 주면 몇 십 년 못가 사그라지겠지만, 한 세상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을 준다면 어떻게든 명맥은 유지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우리들의 자손이 수 백 년 후에도 존속한다고 봐봐. 왕조가 바뀐 뒤에도 말이야.”
“상공!”

나라의 존속을 무시하는 발언에 우희선은 급히 나무랐다.

“이 땅의 왕조가 천년만년 가나? 기껏해야 300년을 못 넘겼잖아. 지금은 100년 지난 정도이니 앞으로 200년 간은 괜찮을 거야. 우리 세대에 고민할 일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그보다 가문 만들기 재미있지 않겠어? 몇 개면 좋을 것 같아? 응?”

아이 같은 남편의 채근에 우희선은 골치가 아팠다. 질책하기도 민감한 사안이고 대는 근거가 터무니 없어 깊이 따지면 피곤해질 것 같아 못 들은 척했다. 대신 적당히 맞장구 쳐주기로 했다. 방금 전에 불길한 예감을 지우려는 듯 평소보다 진지하게 골몰한다.

“숫자는 사방에서 따오는 것은 어떨까요?”

친왕이 직접 맞이할 수 있는 1비3빈의 체제를 염두에 두고 한 것이지만 덕후는 달랐다.

“흠, 천문역법에 사방을 12방위를 나누어 형상화시키니까....12家 정도면 어떨까?”

3배 뻥튀기가 되자 우희선은 어이가 없어졌다. 순간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혹시 12명이나 맞이할 생각인가요?”
“무슨 소리! 지금도 감당하기 힘들어. 그러니까 장자상속만이 아니라 차녀가 이을 수도 있고...사위가 받을 수 있고. 그런 맥락에서 한 말이야.”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질겁하는 덕후를 한동안 의심하는 눈초리로 흘겼다.

“네네, 그렇게 믿어주겠어요.”
“이거 영 못 믿는 눈치인데....내 단심丹心을 증명해보일 수 없는 게 억울하기 그지없군.”
“괜찮아요. 상공의 마음은 흑심黑心이라는 것을 먼 옛날부터 알아왔으니까.”

우희선이 방긋 웃으며 덕후의 항변을 확실히 격침 시켰다. 좌절한 덕후는 쓰러지는 시늉으로 우희선을 안았다. 우희선은 짐짓 앙탈을 부렸으나 성숙한 여인의 본능이 안겨온 남자를 거부하진 않았다.
 
상냥하면서 격렬한 애무와 밀려오는 정사의 환희에 표류하면서, 우희선은 이 종착점이 자신이 꿈꾸었던 미래상과 닮기를, 의식이 환희를 넘어 잠드는 그 순간까지 기원하였다.

 

 


파트 5가 끝났습니다. 좀 서두르다보니 미흡한 전개가 되었습니다만, 2부의 서장을 끊은 셈 치겠습니다. 독립적으로 구성된 이번 파트와 달리 파트 6부터는 2부 종결까지 연속성을 가지므로 쉬는 김에 신경도 써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도 한 해 마무리를 잘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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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토도사 2023.05.19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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