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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예찬 3부 - 여자후배 그리고....

TODOSA 1 101 0

3부-여자후배 그리고....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빛. 약간은 오래되어 보이는 싱글침대에 천천히 빛이 비추어 지기 시작한다.그리고 쥐죽은

듯이 조용히 눈을 감고 자던 한 여학생이 천천히 눈을 떴다.단발머리에 도도한 얼굴.잠을 자다가 일어날때에도

전혀 흐트러짐없는 몸짓으로 채윤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머!"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한쪽에서 마치 서울역 노숙자처럼 새우잠을 자고 있는 승민의 모

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내가...저 선배 집에서잤다고?'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 이불을 들쳐 자신의 몸을 살폈다.옷은 어제 그대로였다.하지만 그것이 다시 입힌 것인

지,아니면 원래 입고 있던 것인지는 단정할수 없다. 채윤은 살짝 승민쪽을 살피고는 스키니 진의 후크를 끌러

바지를 살짝 내리고는 자신의 아랫도리를 확인했다.

'휴...아니구나...'

전혀 남자가 범한 흔적이나 통증이 느껴지지 않아 안심했다.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세로 찌그러져 있는

승민을 잠시나마 의심했던 것이 미안하게 느껴진다.

"저기...선배..."

"아우우음..."

살짝 불러봐도 승민은 몸을 살짝 뒤척일 뿐이었다.채윤은 살짝 헝크러진 머리를 바로하고는 한번더 승민을 깨웠

다.

"선배."

"아으음....그게 아냐...아으음...물리화학적 방법으로 접근하면...아음...그건 유체역학이라고..."

채윤은 자기도 모르게 푹 하고 한숨이 나왔다.

'꿈에서 까지 연구실에 있는 사람이네.'

채윤은 약간 용기를 내어 승민의 몸을 잡고 거세게 흔들기 시작했다.

"선배!"

"으음...헉!"

눈을 뜬 승민이 자신을 보자마자 못볼것을 봤다는듯 파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구석으로 붙는것을 보며 채윤은

이마에 손을 얹으며 한숨을 쉬었다.

"뭐해요."

"아..으음...채윤아..잘잤어?"

"네.잘잤어요.제가 왜 여기서 잘 잤냐는 말을 듣고 있는지 설명좀 해주실래요?"

승민은 황급히 두눈을 비벼 눈곱을 떼어내고는 이리저리 붕붕 떠있는 머리를 손으로 정리했다.

"그게 말이지...."

약간은 두서 없지만 그는 어제 채윤이 '굉장히'취했다는 말과 함께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강조하며 설명을

했다. 승민의 말을 듣는동안 그녀의 표정은 점점 돌처럼 굳어졌다.

"혹시 선배....제가 ...실수했나요?"

"실수?뭐 별로 그런건..."

승민의 말에 채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리고 무언가를 곰곰히 생각하는듯 고개를 숙이고는 아무런 말이 없

었다.

"저기...채윤아?"

기다리던 승민이 조심스레 말을 걸자 마치 졸다가 깬 사람처럼 채윤이 고개를 들었다.

"너 수업이 몇시야?"

"아...10시 수업이요."

"어라?나랑 똑같네."

"선배 혹시 물리역학 수업들어요?"

"아..응."

"고학년도 듣는 수업이구나..."

"아..응.수강신청이 그렇게 되어버려서....엥?너도 첫수업이 그거야?"

채윤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반사적으로 시계를 보니 8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이..일단 좀 씻어.나는 나름 준비하고 있을게."

"아...네.."

"아참.그리고 화장실안에 장같은거 있는데 그 안에 일회용칫솔하나 있을거야."

"고마워요."

채윤은 살짝 어두워진 표정으로 화장실로 향했다.아까 술먹고 실수한거 물어본 이후로 안그래도 차가웠던 그녀의

표정이 더더욱 굳은거 같아 승민은 살짝 신경이 쓰였다.

"아차차..아침밥 아침밤."

자신의 집에 처음 방문한 여자 손님인데, 밥을 하지 않으면 안될거 같았다.다행히 밥통엔 2인분정도는 될 법한

밥이 남아있었다. 냉장고를 열어본 승민은 한숨이 나왔다.자잘한 밑반찬 몇개를 빼고는 아예 반찬거리라는 게

존재하지 않아 보였다.

'뭐라도 해야겠다'

승민은 뻗쳐 올린 머리를 꾹꾹 눌러가며 김치를 꺼내 볶기 시작했다. 워낙 자취를 오래한 승민인지라 김치찌게를

비롯한 간단한 요리는 가능했다.승민은 비상식량으로 남겨두었던 참치를 비롯해서 찬장안에 있는 재료들을 총동

원하기 시작했다.

쏴아아.

찌게를 끓이고,계란이 익는 동안에 물소리가 들려 승민은 살짝 뒤를 바라보았다.반투명 유리안에 살색 인영이 비

춰온다. 그녀가 샤워를 하고 있는 듯했다.

'뜨아....여자가 우리집에서 샤워한다...'

물론 채윤에게 다른의도는 없을것이다.저렇게 깔끔해 보이는 여자애가 그냥 하루를 입던옷을 입고잤으니 찝찝

했을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형태조차 보이지 않는 반투명유리 너머의 살색인영이 왠지 자극적이었다.승민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상한 기분에 앞을 쳐다보았다.

"으윽!"

생애 처음으로 검정색 계란 후라이를 구경하게 된 승민은 당황해 하며 접시에 후라이를 담았다.

'에휴...내가 왜이러지 요새...진짜 돈내고 어디라도 가야 하나...'

탄 계란을 채윤에게 줄순 없는 노릇이기에 승민은 자신의 밥그릇 쪽으로 타버린 후라이를 밀어넣은 승민은 다시

한계의 계란을 후라이팬에 둘렀다. 점점 남자냄새로 가득했던 집에 맛있는 향이 퍼지기 시작했다.평소 같았으면

어머니가 보내주신 밑반찬통 그대로 꺼내어 먹는승민이지만 왠지 이쁜 채윤에게는 그것이 안어울릴것만 같아

생전 처음으로 조그만 접시여러개를 꺼내어 가지런히 밑반찬을 담는 그였다.

"선배 뭐하세요?"

승민이 살짝 돌아보니 샤워까지 한 채윤이 젖은 머리칼을 수건으로 비벼대며 욕실문을 나오고 있었다.물론 옷은

다 갖춰 입고 있었지만 여자를 처음 집에 재워보는 승민으로써는 어디다 시선을 둬야 할지 모르는 아주 부끄러운

장면이었다.정작 그녀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지만...

"아 이거?아침 준비하고 있었지."

"아침이요?"

채윤은 잠시 멍한 눈으로 승민을 바라보았다.계속해서 채윤의 눈빛을 받는 승민으로써는 곤욕이 아닐수 없었지만

이내 그는 씩 웃으며 말했다.

"아침이 얼마나 중요한건데.난 아침안먹으면 힘이 아예 안날 정도야.일단 먹자."

채윤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희미하게 웃었다.그리고는 자기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렸다.

"고마워요...."

"응?뭐라구?"

"아니에요.일단 잘 먹을게요."

"아..그래."

승민은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그녀가 어제보다,아니 방금 전보다 표정이 약간 밝아진거 같아서 였다.

-

"우승민."

"네!"

승민은 겨우겨우 뛰어서 강의실에 도착한 나머지 헉헉거리는 소리를 내며 교수의 출석에 대답했다.

"어머.선배.안녕하세요."

"아..응 안녕."

윤서도 같은 강의를 듣는 모양이었다.난생처음 받아보는 여자후배의 인사에 승민은 조용히 답해주고 앉으려던 찰

나 그녀의 옆에 있는 형준을 보고 눈이 커졌다.

"어이~"

"야..너 이 수업 안듣잖아."

"얌마.다 이 엉아의 연구에 필요한 부분이라 듣는거라고."

형준이 조용히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승민은 속으로 콧웃음을 쳤다.

'지 전공수업도 가끔 빼먹는 주제에...윤서 때문이겠지.'

같이 앉은 둘이 굉장히 사이가 좋아보인다. 둘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연신 속닥거리며 이야기를 나눴다.자동적으

로 승민의 눈이 윤서를 향했다.오늘도 어김없이 깔끔한 포니테일 머리.옷 역시 어제처럼 귀여운 스타일이었다.그

리고 하얀 얼굴과 대조되는 크고 귀여운 눈망울....

"한채윤."

"네."

또다시 고운 목소리가 강의실에 울리자 남탕이었던 공대 학생들의 시선이 채윤에게 꽂힌다. 이미 윤서에게 한번

꽂혔다가 다시 돌아온 듯한 뉘앙스.그리고는 수근대기 시작한다.어째서 우승민의 옆에 그녀가 앉아 있는 걸까

그녀의 정체는 무엇일까에 대해 속삭이는 토론이 승민의 귀에도 들려왔다.학원에서 슬기나와 앉았을때와 같은 반

응이었지만, 승민은 그때와는 달리 조금 우쭐해 지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채윤이야 그냥 별 생각없이 승민의

옆자리에 앉았겠지만.

"야..한채윤.근데 너 왜 옷이 그대로야?"

윤서가 속삭이듯 채윤에게 물었다. 순간 채윤과 승민의 표정이 굳어지며 움찔했다.저 쪽 뒤에서는 음흉한 미소를

띈 형준이 알겠다는 표정으로 승민을 바라보았다.

"급히...나오느라고...앞에봐.강의 시작하잖아."

윤서는 채윤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또 형준과 장난을 치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왜...거짓말을 하지.'

채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했다.솔직히 승민이라는 선배네서 자고왔다 한들 윤서가 오해할리 없다.그냥

술에 취해서 잤겠거니 할것이다. 그만큼 형준에 비해 승민은 매력적인 남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외향이었다.하

지만 본능적으로 거짓말을 한 자신이 조금 웃기다.

'휴..신경쓰지말자.복학했으니 학점이나 잘 따야겠지.'

살짝 옆을 보니 승민이 엄청난 집중력으로 교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한손으로는 복잡한 물리공식을 연

산하는 모습까지도 눈에 들어왔다.

'그래..술취한 여자가 누워있어도 손끝하나 안건든 착한 선밴데....그것도 꿈속에서 조차 연구실에 쳐박혀있는..

이 선배를 위해서라도 거짓말을 해야해...'

애써 그렇게 위안하며 다시 열변을 토하는 교수를 바라보는 그녀였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두시간이나 물리학을 듣는것은 상당한 고역이었다.심지어 물리와는 밀접한관계를 맺고 있는

공대 학생들 마져 수업이 끝날때쯤에는 꽤나 여럿이 책상에 머리를 처박고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

지 교수의 말에 집중해서 강의를 들은 사람은 이 넓은 강의실에 단 두명 뿐인 모양이었다.

"선배.미안하지만...이 공식 다시 설명해 주실래요?아까 교수님이 대충 넘어간거 같아서요."

"아..이거?음...그러니까 다른공식으로 치환해서 보면 말야..."

수업이 끝나고 자신에게 질문한 채윤을 위해 승민은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멘사회원이라 밝힌 그녀역시 머리가

좋은 여자였다.복잡한 공식도 승민의 단 5분간의 설명에 그녀는 완전히 이해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이 거기 학구파들.점심먹으러 안갈래?"

형준의 목소리에 승민은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형준이 강의가 끝나고 졸음에 취해있지 않는 모습을 본것은

단연컨데 승민에게 있어서 처음이었다.그래도 늘상 고학점을 유지하는 형준을 보며 승민은 진정한 천재는 형준이

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아...난 됐어.아침을 먹고와서."

"채윤아.넌?나 형준오빠랑 밥먹으러 갈건데.같이갈래?"

채윤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원래의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아냐.난 별로 생각이 없어서."

나도 아침을 먹어서...라고 대답하려다가 이내 아까의 거짓말이 생각나 채윤은 대충 얼버무렸다.

"에엥?같이가지...그럼 두시 수업까지 뭐하려구?"

"아..그냥 도서관에 있지뭐."

"아...그럼 승민선배는요?"

"으응?나?"

윤서는 그냥 물었을 뿐인데 적잖이 당황하는 승민을 보며 채윤은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승민은 뭐라고 말을 할지

안절부절하는 모습이었다.

"아니.난 수업없어.고학년이라...그냥 연구실로 가야지 뭐."

"아 그러시구나.그럼 담에 뵈요~채윤이 너두 이따봐."

윤서가 웃는 얼굴로 싹싹하게 승민에게 인사를 하고는 강의실을 나갔다.그 뒤를 따라 형준이 나가며 승민에게

살짝 윙크를 해보였다. 책상위에 있는 필기도구를 가방에 갈무리해 넣는 승민을 가만히 지켜보던 채윤이 약간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

"저기.선배."

"응?"

"지금 바로 연구실가세요?"

"음..글쎄.갈곳도 없고.뭐 그래야지."

힘없이 대답하는 승민을 보며 채윤이 가방을 만지작 거린다.

"그럼 커피한잔 드실래요?"

"커피?"

"아.아침밥도 해주셨는데 그냥 가면 좀 그렇잖아요."

"아..난 괜찮은데."

"가요.저도 할일 없거든요."

"아..그래."

승민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채윤의 뒤를 따라나섰다.왠지 무표정이고 무뚝뚝했던 그녀지만 속마음은 꽤나 착한

여자라는 생각을 하면서.

둘은 학교내에 있는 커피판매점까지 가면서 별말을 하지 않았다.공대 건물안에서는 유명한 승민인지라 동기들을

비롯한 후배들이 슬쩍슬쩍 채윤과 함께 걷고 있는 승민에게 시선이 갔다.

'아..내생애 이렇게 이쁜아이와 캠퍼스를 걸을 날이 오다니..'

감격에 빠질때쯤 윤서와 함께 나간 형준이 생각났다. 연신 이쁜 미소를 띄고 형준과 장난을 치던 그녀.

'꽤나 사이 좋아보이던데..지금쯤 둘이 밥먹고 있겠구나...근데 내가 왜 신경을 쓰고 있지?'

승민은 피식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기...선배?"

"으..응?"

"왜 대답이 없으세요."

"아 미안..뭐좀 생각하느라...뭐 물어봤어?"

승민의 말에 채윤이 푹 하고 한숨을 쉬었다.이남자...분명 연구실생각을 하느라 얼이 빠져있었구나...하면서.

"무슨 커피 드실거냐구요."

정신차려보니 어느덧 커피판매점 앞이었다.사실 자판기 커피나 커피믹스에 익숙한 그로써는 메뉴판 빽빽히 적혀

있는 각기 다른 커피메뉴가 어지러울 따름이었다.그렇다고 해서 양촌리 스타일!이라고 당당히 외칠수도 없는거

아닌가.

"나..나는 카페라떼."

그나마 아는 커피이름이었다.채윤은 카페라떼와 헤이즐럿을 주문하고는 지갑을 꺼내 계산했다. 점원이 이상하다

는 눈빛으로 잠시 자신을 바라보는게 느껴졌다.분명 채윤이 선배~라고 불렀는데 계산은 선배라 불린 자신이 아

닌 채윤이 하니 이상하게 바라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쳇..나도 2학년때부터 이런 후배들있었으면 잘 사줬을 거라고..'

승민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채윤이 건내는 커피를 받아들었다.

"안에 자리가 없네..."

그러고 보니 커피판매점안에는 학생들이 꽉 차 있었다.통합건물이라 공대건물과는 달리 여자후배나 동기들과 이

야기 하는 남학생들이 꽤나 보였다.

"크윽..축복받은 것들..."

"네?"

"아..아냐.저기 밖에 벤치있는데 거기서 마시자."

"아..네."

날씨는 좋고,바람도 선선했다. 삼삼오오 무리지어 캠퍼스를 누비는 대학생들. 늘상 그들사이에서 혼자라는 외로

움을 느꼈던 승민이었다. 뜻밖에도 오늘은 예쁜후배와 커피를 마시고 있지만.

"잘 마실게 이거."

"아니에요.고작 커피일뿐인데요 뭘."

멀리 농구장에서 농구를 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둘은 나란히 벤치에 앉았다.

"근데..사실.대학생활 하면서 여자후배랑 벤치에 앉아서 커피마시는거 처음이야."

"네?왜요?"

"아..여자후배는 니들이 처음이고.있다 한들 나랑 커피를 마셔줄리는 없으니.."

채윤은 멀뚱히 뜬금없는 신세한탄을 하고있는 승민을 바라보더니 이내 빨대로 입을 가져갔다.

"저도 처음이에요."

"아..그렇구나...뭐.뭐?"

"저도 남자선배랑 벤치에 앉아서 커피마시는거 첨이라구요."

"에?왜? 너 인기 많았을거 같은데."

"전 사람사귀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아...."

승민은 처음봤을때의 무뚝뚝하고 무관심했던 그녀의 표정이 떠올렸다.물론 지금도 거의 변함은 없지만.

"친구들이야 있죠.대부분 고등학교 애들이고...그냥 전 공부하는게 좋았어요.윤서는 선배들하고 어울리고 싶어

했지만, 전 그냥 뭐랄까...등록금이 아깝더라구요."

"아..그거야 그렇긴 하지."

승민은 어설프게 맞장구를 쳐주었다.그녀의 말이 끝나자 승민은 커피를 한모금 들이켰다.

"나는...나도 너와 같은생각이었어.그치만 좀 후회된다."

"왜요?선배는 가장 촉망받는 사람이잖아요.공대에서."

"하하..그거야 좋은 일이겠지 물론.근데...가끔은 생각을 해.나도 여자친구란걸 사귀어 봤음 좋겠다고."

"한번도 안사귀어 봤어요?"

"아...응."

승민은 챙피했다.스물다섯먹도록 여자 못사귀어본거,지금까지 크게 쪽팔린적은 없었지만, 가까이서 봐도 맑고

이쁜 채윤의 눈이 자신을 향하자 왠지모르게 쪽팔렸다.

"그럼..지금이라도 만들면 되지 않아요?연구실에만 있지 말구요."

"솔직히 시간이 없어.연구실끝나면 토익학원에.."

"네?토익?"

"아..응.요새는 중요하더라고.좋은 토익점수 갖고 있으면 활용도도 높고.."

하지만 그녀는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왜 선배가 학원을 다녀요?사이언스지에 논문을 실을 정도인데..."

"아..그건 교수님이 실었어.나는 대부분의 연구나 실험자료. 이론정립.이런거나 했지."

"아...그렇군요.그래도 좋은 교수님이네요.선배 이름을 언급해서 실어주다니."

"휴우.글쎄다.그런거...예전엔 너무 좋았지만...지금은 잘 모르겠어.그냥 내가 모자란 놈같기도 하고."

채윤은 힘없이 중얼거리는 승민을 보고 뭐라 하려다가 그만두었다.그녀의 눈에 비친 승민은 정말 초절정 궁상

그 자체였다.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연구실 구경시켜 줄래요?"

"아..그러지뭐...으..응?"

"허락한거죠?지금 가요."

채윤이 승민의 팔을 잡아 끌었다.승민은 연신 버벅대며 엄마에게 소아과 끌려가는 아이처럼 당황하기 시작했다.

"야..거기...완전...지저분한데."

"괜찮아요.공대연구실이 다 그렇죠.안보여줄거에요?"

"아..아냐.가자.."

승민의 마음이 흔들린건 채윤의 미소때문이었다.비록 알게 된지는 이틀째지만 그녀가 저렇게 웃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원체 이쁜얼굴이 미소를 지으니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살짝 뛴다.

'웃으니까...이쁜데...왜 안웃는거지.'

채윤을 데리고 연구실에 들어간 승민은 순간적으로 시간을 멈추는 기계가 발명된건지 의심을 해야만 했다.모든

연구원들이 승민의 뒤에 따라들어온 채윤을 보고 그대로 석상처럼 굳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야..니들..."

"아...안녕하세요."

쭈뼛쭈뼛 마치 깡패를 만난 아이처럼 모두 벽으로 붙어버리는 대 장관이 연출되었다.더욱 놀라운것은 채윤이 그

들을 보고 살짝 웃었다는 사실이었다.

"여기야.내 연구실."

"아...저건가요?논문에 나왔던 신소재."

"아?응.저거."

공대생이 아니면 절대로 정체를 파악할수 없는 작은 구조물앞에 선 채윤은 신기한듯 여기저기 살펴보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벽에 붙어 있는 이들은 눈만 멀뚱히 뜨고 승민과 채윤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여자 기계공대생

답게 채윤의 시선은 흥미롭다는 듯 반짝이고 있었다.

"근데.탄소 나노튜브를 쓰는 편이 더 낫지 않나요?장력도 두배인데."

"아.그렇지 않아.사실 이건 그냥 비행물체에서 쓰는 선반이 아니라서...만약 이 소재가 채택되면 지금까지 들었

던 비행체 제작비용에 20퍼센트는 절감될걸?"

"아..."

채윤은 그가 다시 보인다는듯 승민을 바라봤고,승민은 자기도 모르게 신이나서 설명을 계속했다.승민은 자기도

모르고 있었다.설명을 듣는 동안 거의 웃지 않던 채연이 세번이나 미소를 띄웠다는 사실을.

-

'왜 항상 학원올때쯤 심하게 배가 고픈거지?'

아침을 채윤과 먹었고,그덕분에 점심을 거른 탓일것이다.토익학원으로 향하는 전철안에서 내내 승민의 배가 꼬르

륵 거렸다.

'으..그것보다 슬기나 누나는 오늘 학원 왔으려나.'

어차피 수업을 듣는것이니까 슬기나의 존재가 크게 상관없을지도 모르지만,왠지 첫날과 다르게 자신이 혼자 앉

거나,모르는 남자와 앉아 있게 되어버리면 조금 실망할것만 같았다.

시간을 보기위해 휴대폰을 열었던 승민의 표정이 갑작스레 흐뭇해진다.아까 연구실에서 나오면서 지하철을 처음

탔을때 보냈던 채윤의 문자메세지 때문이었다.

-연구실구경재밌었어요. 토익학원 잘다녀오시구 다음수업때 뵈요~-

물론 누가봐도 그냥 후배가 선배에게 보낸 예의문자였지만 승민의 입장에서는 난생처음 받는 여후배의 문자메세

지 아닌가.그것도 채윤처럼 이쁜아이가 보낸것이니 흐뭇하지 않을수 밖에 없었다.

'이 문자를 평생 간직하리라....으흐흐흐흣!'

자연스레 귀에 입이 걸릴듯이 미소가 떠올랐다. 문득 승민이 앉아있는 자리에 앞에 있던 여자가 승민의 미소를

보더니 못볼걸 봤다는듯 급히 자리를 뜨는 모습이 보이자 승민은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묻었다.

'아...이번역이다!'

순간 휴대폰을 보면서 음흉한 미소를 짓는 변태취급을 당한 승민은 문이 열리자마자 후다닥 내려버렸다.

꼬르르륵.

아마 전철소리가 아니었다면 주위에 쩌렁쩌렁 울렸을 법한 우렁찬 뱃고동에 승민은 아랫배를 움켜쥐었다.

'배고프다...으윽...'

여전히 학원근처엔 먹을것이 없었다.어쩔수 없이 선택한것은 지난번과 같은 페스트 푸드점이었다.

'윽...이거 먹기는 좀 그런데..'

사실 친구인 형준이 신입생 시절 페스트푸드에 관한 연구를 해서 승민에게 들려준적이 있었다.일주일이 지나도

썪지 않았던 감자튀김. 그 자료를 보면서 승민은 다시는 햄버거집에 얼씬도 않겠다고 다짐하곤 했었는데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쩔수 없었다. 그리고 왠지 슬기나가 있을거 같은 느낌도 한몫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늘은 없네.'

페스트푸드점 자체에 사람이 거의 없었고,슬기나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어서오십시오~"

오늘도 알바생 여자가 산뜻하게 웃는다.처음에 왔을때 이 알바생의 친절에 잠시 기분이 좋았었는데,오늘은 왠지

그렇지가 않다. 아마도 이쁜 윤서와 채윤을 만나서 면역이 생긴 모양이었다. 승민은 간단하게 햄버거와 음료를

주문했고,음식은 금방 나왔다. 오늘도 승민은 창가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몇분안남았으니 후딱 쑤셔넣고 가야겠다.'

승민은 거의 흡입 수준으로 입안에 햄버거를 밀어넣었다.그것은 맛을 느끼기 위함이 아닌, 어찌보면 살기위해 먹

는것만 같은 처절한 생존의 현장이었다.

따악!

"우웁!"

순간 매장안에 청명한 뒷통수 맞는 소리가 울려퍼진다.승민은 뒷통수에 가해지는 강한 충격에 입안에 햄버거를

가득 문채로 반사적으로 뒤를 바라보았다.

"어업!"

"야!유승민! 너왜 어제 결석했어?"

돌아보니 슬기나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노려보고 있다.역시나 짧은 치마지만 오늘은 긴팔의 티셔츠를 입고 있다.

그나마 노출이 적은 의상이었다. 알바생을 비롯한 매장내 모두의 시선이 커지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게 느껴졌

다.

"저은 유스인이 아이거 우스인 이데여..."(저는 유승민이 아니고 우승민인데요.)

억울한 표정을 짓는 승민을 보며 슬기나가 쿡쿡 거리며 웃기 시작하더니 이내 배꼽을 잡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왜 웃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승민은 연신 슬기나에게 맞은 뒤통수만 어루만질 뿐이었다.

-

"으하아암~오늘 수업 지겨웠어.그치?"

"....누나 내내 잤잖아요."

슬기나는 또 뭐가 웃긴지 깔깔 거린다.승민은 버스에서도 쭈욱~잤어요 라고 하려다가 그만두었다.오늘은 왠지

그녀의 기분이 좋아보인다.

"야 우승민.오늘 누나랑 술한잔하자."

"에?또 술마셔요?"

"오늘은 기분이 좋은것이 한잔 해야할거 같아서."

"그럼 기분나쁠때는요?"

"그때도 술마시지."

"그럼 그저 그럴때는요?"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 술마시지."

"매일 먹는거군요."

"죽을래?"

슬기나는 장난스럽게 웃더니 승민의 어깨에 어깨동무를했다. 키가 커서인지 남자인 승민에게도 어렵지 않게 어

깨동무를 한 것이겠지만, 정작 슬기나의 풍만한 가슴이 팔에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승민으로써는 죽을 맛이었다.

"마실꺼야 안마실꺼야?안마시면 헤드락한다."

"으윽.마실게요."

"좋아!오늘은 니네 집으로 가자!"

"에에?"

"왜? 사람이 한번 접대했으면 너도 감사의 의미로 접대해야 하는거 아냐?"

"....무슨 접대가 사람을 마룻바닥에 재워요."

"자꾸 따질래?"

승민이 뭐라하던 말던 그녀는 성큼성큼 또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안주가 없다는 승민의 말에 그녀는 이것저것 담

더니만 오늘역시 2인분이라 감히 생각할수 없는 양을 포장하고 있었다.

"자.접대니까 니가 쏴."

"으윽..."

이렇게 제멋대로인 접대가 처음인 승민은 인상을 쓰면서도 지갑을 열었고 슬기나는 그를 향해 혀를 삐죽 내밀더

니 나가버렸다.

"5만 4천원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편의점에서 5만원대를 써본 그였다. 슬기나가 빈손으로 나가버렸기 때문에 승민이 봉지 두개

를 다 들어야만 했다.

"같이가요!"

"당연히 같이 가야지.난 너희 집을 모르거든."

슬기나는 낑낑 거리며 봉지를 들고가는 승민의 옆에서 쉼없이 재잘거렸다.그 덕분에 금새 자신의 집에 도착했지

만 양손에 봉지를 들고 있는 탓에 승민은 열쇠를 꺼낼수 없었다.

"내려놓지마.내가 꺼내줄게.어딨는데?"

"아.바지 왼쪽 주머니요."

슬기나가 아무런 망설임없이 자신의 포켓안에 손을 쑤욱 집어넣더니 손을 이리저리 뒤적인다.순간 승민은 꼴릴

뻔한것을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아야만했다.

"으윽!"

승민이 슬기나를 노려보았다.슬기나가 손으로 자신의 허벅지 깊숙한 안쪽을 톡톡 건드렸기 때문이었다.그의 반응

에 슬기나는 또 꺄르르 웃어버렸다.

"와~~~"

"왜요?"

"남자방 같아서."

".....당연히 남자방이죠."

"아니 난 퀘퀘한 냄새 말한건데."

"...."

승민이 어떤 표정을 짓건 슬기나는 신경도 쓰지 않는듯 방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또다시 속옷을 그대로 보여

주는 자세에 승민은 기겁을 하며 담요를 가져다 주었고 슬기나는 피식 웃더니 자신의 무릎에 덮었다.

"자자.한잔 받아."

대부분의 안주거리도 즉석식품만을 사왔기에 술상 세팅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슬기나는 승민과 건배를

하더니 한입에 소주를 털어넣었다.

"크하~~~죽인다."

"...아저씨같으니까 그만둬요."

"풉.남이사.아 근데 너 편하게 입을 옷같은거 없어?"

"에?"

"불편하잖아.자고 갈건데."

"에?"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슬기나였지만 승민은 깜짝 놀라야만했다.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뭐...저번에도 아무일도 없었는데 뭐...'

승민은 또다시 착각에 빠지기 싫어서 두리번 거리면서 슬기나가 입을 만한것을 찾았다.마땅한 트레이닝 복이 없

어 승민이 내민것은 약간 핏이 길게 나온 티셔츠였다.

"일단 위엔 이거 입어요.밑에는 찾아볼게요."

"아냐.됐어 이거면."

"네?"

"갈아입게 돌아서있어."

"아.알겠어요."

승민이 뒤돌아서자 슬기나의 옷이 살결을 스치는 소리가 들려온다.왠지 보고싶어지는 승민이었다.너무나 자극적

인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마침 그때 슬기나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돌아봤다간 감방에서 권투나 배울줄 알아."

"....안봐요."

"자.다됐다.이제 술먹자."

뒤를 돌아본 승민의 안구가 얼굴밖으로 튀어나올정도로 커졌다.그녀는 그냥 '티셔츠만'입은 것이다.덕분에 한쪽

어깨가 살짝 드러났고,티셔츠의 끝자락 밑으로는 하얀다리가 뻗어있다.그리고는 그녀는 털썩 주저 앉더니 무릎쪽

에 이불을 덮었다.

'젠장....자꾸 딴맘들게 왜 저렇게 입는거야...'

속으로 울상을 짓는 승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슬기나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자자~학원친구이자 동네친구!건배~~"

"예입."

둘은 짠하고 건배하고는 술을 입속에 털어넣는다. 또다시 슬기나는 아저씨처럼 크으~하는 소리를 낸다. 승민은 왠

지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따라 슬기나가 한층 업되어 있다는 생각때문이었다.

'뭐..나쁘지 않네. 요새들어 내 생활.'

  4부-첫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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