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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알 유희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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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소라 

유리알 유희 3부


3부. 논쟁.


"은지랑 함께 옷을 벗고 그가 막 삽입을 하기 직전에 은지가 성기 속에서 탐폰을 꺼냈거든요. 물론 벌겋게 물든 것을 말이예요. 그는 거기에 질겁을 했죠. 아마 경험이 부족했던 모양이예요. 사실 우리 부부는 그런것이 별로 문제될 것이 없이 생활해 왔기 때문에 은지는 스스럼없는 행위였는데 그에게는 충격이었던가 봐요."

그 말을 듣자 수련에게도 충격이 왔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수련 역시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의 생각이 미쳐 정리되기도 전에 그의 말이 이어졌다.

"그는 우리가 일부러 그를 우롱한다고 생각하고 그의 성욕이 사라져 버린거죠. 그리고 옷을 추스려 입고 저의 방으로 왔을때는 마침 그의 부인이 저의 성기를 핥고 있을 때였어요. 물론 성행위를 마친 뒤였죠. 그러니 그는 그만 흥분해 버린거예요. 우리가 계획적으로 자기를 속인 것으로 알고서 말이예요."

수련은 자꾸만 빨개지려는 얼굴을 숙이면서 냉정을 되찾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수분이 지난 후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

"조성철씨 부인은 자의로 그렇게 쉽게 허락 하던가요? 어떤 강요도 없이 말이예요."

"그럼요 임소희 여사는 굉장히 풍만한 스타일이었는데 그 몸매 만큼이나 뜨거운 여자였어요. 그녀가 먼저 설치는 통에 저도 오래가지 못하고 금방 끝내버린 거예요. 생각해보면 무리도 아니죠. 어지간한 저도 남의 부인과 한다는 생각에 평소와 다른 흥분에 들떴는데 그녀도 그와 비슷한 상태에 빠졌겠죠."

그러자 수련은 은지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이번엔 그녀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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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은지씨는 그런 상태에서도 그와 성행위를 할 생각 이었나요?"

그러자 지금까지 마치 이 자리에 없는 듯이 앉아있던 은지는 고개를 들어 경남을 바라 보았다.

마치 자기가 대답해야 하는지 그에게 묻는듯한 태도였다.

그리고 나경남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역시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입을 열었다.

"예, 어차피 그것을 위해서 방에 들어간 것 아니겠어요?"

"생리 중인데도 말이예요?" 틈을 주지 않고 수련이 말했다.

"저이는 제가 생리 중이라 해서 특별히 꺼리거나 한 적이 없답니다."

"그럼 그에 대한 보상은 어떻게 해줄 생각입니까?"

수련이 다시 경남에게 말했다.

그러자 경남은 잠시 이마를 좁히며 생각하더니

"조성철씨는 조그만 건설업체를 경영하고있는 부자예요. 돈으로 그를 설득하기는 힘들 겁니다. 아마 그는 제 아내와 다시 한번 시도해 보고 싶을텐데요.... 그러나 이제는 그것도 좀 꺼려할지도 모르겠어요."

하고 약간 풀이 죽어서 대답을 했다.

수련은 이런 것은 필요 없는 질문인데 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궁금증 때문에 결국 묻고 말았다.

"그럼 그가 원한다면 은지씨를 그와 잠자리를 하게 할 겁니까?"

그러자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곧 대답했다.

"그럼요, 그건 조성철씨 뿐만 아니라 은지에게도 불공평한 결과였는걸요."

그 말을 듣자 수련은 또다시 자신의 생각이 빗나갔음을 알았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그가 우리 방으로 왔을 때 제 성기를 얼핏 보더니 순간적으로 표정이 흐려지는 것을 보았어요. 아마 그의 생각보다 제 성기가 더 컸을 거예요. 제것은 다른 사람보다 길이가 무척 긴 편이거든요. 그런데 은지가 본 그의 발기한 성기는 보통 보다도 오히려 짧았답니다. 그 때문에 그가 은지와 다시 시도하는 것을 찬성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대개의 남자들은 성기의 크기에 굉장히 민감 하거든요. 아마도 그래서 저에게 전화하지 않고 바로 고소를 했을겁니다. 임소희 여사와도 이혼할 생각을 하고요."

수련은 난감함을 느꼈다.

남편의 부탁만 아니었어도 벌써 포기 했을텐데 생각하며

"그럼 제가 어떻게 해 주기를 원하는 겁니까?"

하고 약간은 짜증을 섞어서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조성철씨에게 은지와는 언제든지 원하는 때에 원하는 장소에서 할 수있게 주선해 줄 테니 고소를 취하하게 설득을 좀 해주시지요. 더불어서 만약 그가 그것을 반대한다면 틀림없이 그 문제 일테니 성행위에서 성기의 크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도 얘기해 주시고요. 그 문제는 남자보다는 여자인 최변호사님이 말씀하시면 좀 더 쉽게 설득이 될 겁니다."

라고 정중하게 말했다.

수련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도데체 어쩌다 이런 추잡한 사건에 말려들었는지 이 사건이 끝나면 강교수에게 단단히 항의해야되겠다고 생각하면서 나경남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비윤리적이고 사회상규에 어긋나는 설득은 변호사로서도 곤란한데요"    

그러자 모처럼 나경남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면서 딱딱한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달리 착 가라앉은 마치 뱃속에서 나오는 듯한 목소리로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실어서 말했다.

"비윤리적이라고 하셨나요? 최변호사님이 알고있는 윤리, 도덕은 어느 시대, 어느 인종, 어떤 계층의 사람들의 윤리관입니까?"

그의 얼굴은 약간 분노한 기색이 보였다.

수련은 이제야 그가 자극을 받았구나 생각하고 틈을 주지 않고 말했다.

'당신이 사는 바로 이 시대에 우리들 보통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 아닌가요?"

"그래요? 수련씨는 무언가 이해할 줄 알았는데 결국 모두와 똑같은 그런 사람이군요."

"우리 함께 생각해 봅시다. 역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원시 수렵시대에는 여성우위시대가 있었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상식이니까 일처다부제가 일반적이었던 그 시대의 시각에서 본다면 우리의 현재의 살아가는 모습을 무어라고 평가할까요? 그리고 우리들의 역사에서 보더라도 그리 멀지도 않았던 시대에 일부다처제가 용인되던 때도 있었습니다. 또 이 시대의 관점에서 본다 하더라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떤 민족은 아직도 일처다부제를 유지하고 있기도 하고, 어느 곳은 일부다처제가 보편적인 사회도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볼까요? 반드시 우리의 제도가 옳은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또박또박 한 소절씩 끊듯이 얘기하는 그의 표정은 어느덧 평상상태로 돌아가 있었다.

"결국은 힘있는 자들의 논리, 그들의 생활방식을 따라가기를 종용받고 그것이 옳은 줄만 아는 다중들과 수련씨는 조금 다를 줄 알았는데 약간은 실망이 되는군요. 이 모두는 결국 이 시대를 주도하는 서구 기독사상의 지배가 낳은 결과물이 아닐까요?"

수련은 전혀 처음 접하는 그의 논리 전개에 신선한 충격과 더불어 반박할 말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 것이 곤혹스러웠다.

"그렇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이 따라가는 것은 결국 그 길이 옳기 때문이 아니겠어요, 그리고 현실적으로 실정법을 어기는 문제이기도 하구요."

"글쎄요, 그것은 옳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것이 편하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더 크지 않을까요? 당신이 좋아하는 법이라는 것도 결국은 문자화된 도덕률에 다름 아니니까요. 그러나 어느 시대에나 그러한 관념들을 깨뜨려 나가고, 그에 도전하는 그룹이 있게 마련이죠. 과학의 발달도 문화, 예술의 발전도, 그들에 의해 폭이 넓혀지게 된 것이 아니겠어요? 그들은 그만큼 풍요로운 정신을 가짐으로써 보답을 받은 셈이구요. 굳이 따지자면 성적인 부분에서는 나 같은 사람도 그 그룹에 넣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최변호사님의 생각은 어떠신지 알고싶군요?"

수련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의 말에 대해 곱씹어보고 있었다.

생각할수록 어쩐지 자기가 오히려 그에게 설득 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는 묘한 자신감을 가지고 그녀의 가슴을 파고 들고 있었다.

수련은 쉽게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보는 시각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어디까지나 그부분은 절대 자유니까요? 그런데 은지씨는 어때요? 저런 생각에 동의 합니까?"

수련은 어떻게든 빠져 나와 볼 생각으로 같은 여자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슬쩍 은지에게 질문의 화살을 슬쩍 돌렸다.                

은지는 그때까지 자세하나 흐트려 뜨리지 않고 단정하게 앉아 있다가 그녀쪽으로 시선을 주며 약간의 미소를 보여 주었다.

입가만 살짝 움직이는 그녀의 그 미소는 같은 여자인 수련이 보아도 아름답기 짝이 없었다.

그녀의새빨간 루즈 빛깔이 선명한 입술사이로 슬쩍 혓바닥이  나와 침을 적시더니 그녀가 말하기 시작했다.

"수련씨는 지금의 제도에 만족하십니까? 저는 너무나 여자의 성적 자유를 억압당하고 있다고 보는데요... 오히려 저이는 우리 여성들에게 관대한 편이 아닌가요? 막연히 반대해야 된다는 생각보다는 우리들의 편에선 남자라고 보는게 맞을것 같아요.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저희 집에서도 버린 자식이었어요. 그러나 저이를 만나서 안식을 찾았죠. 저이의 말대로 조성철씨를 설득해서 저와 관계를 가질 수 있게 해주세요. 그것이 그에게도 마음의 평화를 줄 수 있을 겁니다."

수련은 깊은 회의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최후의 반격이라고 생각하고 나경남에게 물었다.

"혼인의 순결은 지켜져야 하는것 아닌가요? 그렇게 산다면 부부관계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거예요?"

"수련씨 먼저 저희들의 부탁을 승낙해 주세요. 그러면 저희들에 대해서 좀 더 얘기할 수 있을 겁니다."

수련은 비로소 자기가 그들의 행위에 대해서 더 알고싶어 했기 때문에 면담일을 아무 약속도 없는 일요일 오전으로 잡았었구나 하는 자신의 무의식의 저 밑바닥에 흐르던 한 가닥을 잡을 수 있었다.

<그래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것을 기대 했던 거야. 내가 모르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그렇게 이끌었던 거야>        

그녀는 이런 일에 관여 했다는게 알려지면 자신의 경력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남게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승낙을 하고야 말았다.

그러면서도 한구석에서는 남편의 부탁이었으니까 이렇게 결정했다고 하는 핑계를 잊지 않고 생각해내는 영악함도 있었다.

그러자 나경남은 그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그녀의 손을 힘차게 쥐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그녀의 질문에 답하기 시작했다.

"혼인의 순결이라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이겠어요. 나를 위한 순결일까요? 아니면 배우자를 위한 순결? 그것도 아니면 우리 아닌 타인들을 위해 우리 모두가 지켜나가는 것일까요? 가장 타당한 것은 스스로 선택한 배우자를 위한 것일 꺼예요. 덧붙인다면 가정을 위한 것도 포함될 수 있겠죠. 그러나 그것은 결국 혼인이란 끈으로 서로의 육체에 대한 소유를 주장하는데 지나지 않는것과 같아요. 그것은 제도가 만들어낸 욕심이죠. 만약 부부가 서로 용인한다면 그리고 서로가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간직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로 인해 더욱 상대방에 대한 신뢰감을 쌓을 수 있다면 부부는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겠어요?"

그는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수련에게 말했다.

"어쩌다 보니 본의 아니게 제 가치관에 대한 강의 비슷하게 되어 버렸군요. 용서 하십시요. 감히 최변호사님 앞에서 주제넘는 말을 한것 같군요."  

수련은 금방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천만에요, 저로서도 태어나서 처음듣는 얘기였어요. 그런 생각도 가능하다고 보여지는 군요. "

그는 처음으로 크게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수련씨가 저희들 생각을 이해해 주시니 참으로 격려가 되는군요. 그럼 저희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물어 보세요."

수련은 그들과의 얘기에 빠져 점심을 하고도 저녁식사 시간이 거의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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