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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일지 17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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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4/ 604 



형사일지 17부


문득 눈을 떴다. 환한 햇살이 비쳐들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이미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등을 돌리고 자고 있었다. 그녀의 티하나 없는 깨끗한 벗은 등을 보자 내것이 춤을 춘다.  

나는 일어나서 그녀쪽으로 살며시 다가갔다.

그녀는 입을 약간 벌린채 아직 꿈나라를 헤메고 있었다.

시트위에 흐트러진 그녀의 머리칼을 한줌쥐고 살며시 쓰다듬었다.

새벽 네시가 다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으니 그녀는 아직도 한밤중이었다.

문득 들국화의 '매일 그대와'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매일 그대와 아침햇살 받으며

매일 그대와 눈을 뜨고파...

........

매일 그대와 밤의 품에 안겨서

매일 그대와 잠이 들고파...



그녀가 몸을 뒤척이더니 똑바로 누웠다. 그리곤 더운지 덮고있던 홑이불을 걷어내버렸다.

한달여 만에 다시보게된 그녀의 몸 전체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탄력있는 배와 잘록한 허리, 허리에서 동그란 골반으로 이어지는 선과 곧게 뻗은 두다리가 내겐 눈부시게 아름다왔다. 나는 그녀의 팬티로 손을 뻗었다.

그순간 나는 그녀가 이제 갓 스물이 됐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도 한국나이로.

나는 뻗어가던 손을 도로 거두었다.

그녀는 너무 어리다.

나에게 그런 고초를 격고, 무서운 살인사건에 휘말리고,

자신을 강간한 열살가까이 차이가 나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그녀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대학생활을 즐기면서 공부도 하고 그녀에 걸맞는 남자와 연애도 하고 청춘의 즐거운 때를 누려야할 나이였다 아직은.

서른이 다된 보잘것 없는 전직형사 나부랭이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그녀였다.


그녀는 나를 사랑하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의지할 대상을 찾은 것일까. 설혹 그녀가 날 사랑한다해도 내가 그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일까?

어찌됐건 난 그녀로 인해 세상을 다시 살고있는 듯한 느낌이었고 그녀가 날 사랑하건 하지 않건간에 그녀는 나의 메마른 인생을 생기있고 살아가고 싶도록 만든 여자였다.


복잡한 머리를 털고 일어나서 북어국이라도 끓일 요량으로 냉장고를 뒤졌다.

찬거리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옷을 대충 입고 동네수퍼에 갔다. 돌아왔을때 그녀는 깨어있었다.

그녀는 날 보자 생긋이 웃었다.

내심 그녀가 깨어나서 간밤에 있었던 일을 후회하는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웃음이 그렇게 반가울수 없었다.

나는 신이나서 국을 끓이고 밥을 지었다.

그녀가 내뒤로 다가 오더니 어깨너머로 열심히 아침준비하는 모양을 본다.


"오빠, 이런것두 할줄 알아요?"

"내가 자취인생 십년이다"

"부모님은 안계세요?"

"아버지만 계셔, 시골에..."

"...예.."

"참, 아버진 좀 괜찮으시니? 어머닌 건강하시고?"

"...아빤...그냥 그래요 여전히,..엄만 아직 건강하신것 같은데..."

"힘들어 하시지?"

"....."


동생들은 말썽 안피우냐고 물으려다 그만뒀다.  

쓸데없는걸 물어봤다 싶었다.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아서 늦은 아침을 먹었다.


"와~ 너무 맛있어요 오빠"


북어국을 한술뜬 그녀가 밝게 말했다.

그녀는 국만 한그릇을 비웠다. 나의 헐렁한 와이셔츠를 입은 그녀가 귀여워서 나는 숟가락을 든채 그녀의 밥먹는 모습을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그때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여보세요"

"아, 잘있었어? 나야 김형사"

"아, 곰~ 어쩐일이야?"


김형사였다. 나보다 한살위인데 우리는 같은해에 들어왔기 때문에 무척 친하게 지냈다. 김형사는 덩치가 크고 행동이 느릿해서 곰이라는 별명으로 많이들 불렀다.

일찍 결혼을 해서 초등학생인 큰놈과 유치원생 둘째가 있는 그는 성격이 곰이라기 보단 소같이 우직한데가 있고 사람이 순수해서 자기도 왜 형사를 하고있는지 모르겠다고 가끔씩 얘기할 때도 있었다.


"잘지내지? 어제냐 그제냐, 조사받았다며?"

"아~ 그거...어떻게 알았어?"

"그때 니 조서꾸민 애가 얘기해주더라. 그리고 지금 난리났다"

"무슨?"

"담당이 짱이야"

"그으래?"


짱은 장민호라는 이름의 검사를 지칭한 말인데 우리끼린 짱이라고 부르기도하고 '칼' 검사라고 부르기도 했다.

흔히 요즘 십대애들이 즐겨 사용하는 '짱' 이란 말의 의미와 동일했다.

서른 다섯살의 굉장히 엄격한 성격인 그는 워낙에 카리스마가 있고 보스기질이 있었기 때문에 검찰청의 부장검사나 검사장들 까지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뿐만 아니라 그의 지휘를 받아 같이 일을 해본 형사들 중에는 그를 존경하고 흠모하는 사람도 있었다.

주로 형사사건 그중에서도 연쇄살인사건이나 미궁에 빠진 강력사건을 맡았는데 대부분을 해결했다.

그런데 장검사는 아직 미혼이었다. 여자문제에 있어서 그는 마치 중세 수도승처럼 행동한다는 것이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에게도 대학때부터 연인관계인 여자가 있었는데 몇년전에 무슨 사고를 당했는지는 몰라도 정신병원에 있다는 것이었다.

미혼의 그가 워낙 일에만 빠져 살았기 때문에 그의 지휘를 받게된 형사들은 사건종결까지 죽었다고 복창해야 할 정도였다.


나도 그를 몇번 본적이 있었는데 큰키에 바싹마른 몸집 움푹들어간 눈빛이 날카롭다 못해 어떤 광기마저도 느껴지게했다.

검사가 아니라 배우가 됐으면 싸이코 킬러역을 해도 될정도로 전체적인 인상이 날카로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건수사때는 무섭게 부하들을 몰아치지만 평소의 그는 부하를 잘챙겨주고 따뜻한 인정을 가진 사람으로 정평이 나있었다.

그리고 검사라는 권력아닌 권력을 마구 휘두르고 자신의 영달에만 혈안이 된 보통의 검사들과는 달리 그는 출세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듯 했다.

더구나 사생활에 한점의 오점도 없는 그를 형사들은 다들 경외하고 존경했다.


아무튼 장검사가 그 사건을 맡았으면 김형사 표현대로 난리가 난거였다. 어쩌면 그는 우리를 다시 부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런 제길...또다시 불려가서 똑같은 말을 해야되나, 그것도 이제 검찰청에서...'


나는 그녀가 안쓰러워서 장검사가 부르지 않기를 몹시 바랐다.


"어때? 무슨 단서라도 찾았대?"

"단서는...아직 아무것도 없나봐...단지..."

"단지?"


나는 그 시체쌓는 특이한 방법을 생각했다.


"그게 말야, 너 혹시 그사건 기억하니? 왜 작년인가 그 수원에서 일어난 두명이 피살된 사건 있잖아 끔찍하게"


나는 순간적으로 그사건을 떠올렸다. 우리관할은 아니었으나 워낙 살해방법이 잔인했고 특이했기 때문에 형사들은 다들 알고 있었다.

한 호텔방에서 살해된 두 남자중 하나는 마약 상용자이면서 졸부집안의 망나니로 여자관계가 무척 복잡해서 초동수사는 치정에 얽힌쪽으로 진행되었었다. 그게 아직까지 끌어오고 있다.

또 한남자는 망나니에 빌붙어 노는 친구쯤 됐었는데 같이 살해당했다.

그런데 살해방법이 무척이나 특이하고 그야말로 엽기적인것이었다.

그 망나니는 호텔 스윗룸의 거실창문에 양팔을 묶인체로 달려있었는데, 사망원인은 과다출혈이었다.

목이 날카로운 흉기에 반쯤 잘려서 머리가 뒤로 90도로 꺽여져있었는데 옷을 다 입은채였다.

양팔을 끈으로 묶어 천장에 달릴정도로 높이 매달았는데 처음 발견한 사람은 마치 십자가에 달린 예수같은 형상이었다고 말했다한다.

그의 친구는 그 발아래 엎드린채로 죽어 있었는데 형사들이 들어가서 뒤집어보니 너무 가볍게 뒤집어져서 옷을 풀어보니 배가 갈라져있고 내용물이 없었다고 한다. 욕실에 들어간 한 신참 형사는 토악질을 너무해서 그날 조퇴를 했다고 하는데 그가 욕조에서 발견한 것은 수북히 쌓여있는 두사람의 내장이었다고 한다.


이 전무후무한 엽기적 사건에 대규모의 전담반이 투입됐으나 지금까지 수사는 안개속을 해매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과 혁재사건과 무슨관계란 말일까.


"그래 기억해, 그런데?"

"그런데, 그게, 그 별장주인 있잖아, 그 왜, 이름뭐지?"

"김혁재"


나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그 이름을 듣고 동작을 멈추었다. 나를 긴장한 눈으로 쳐다봤다.


"맞아, 나도 방금 들었는데, 머리가 다됐나봐 이거"

"너 원래 그랬어"


나는 그녀를 쳐다보며 일부러 웃으며 가볍게 말했다.


"짜식이~ 하튼 말야, 걔도 똑같이 죽어있었다네? 지 방 창문에 매달려서 뱃속이 텅빈채로 말야"

"!!"


그렇다면 연쇄살인인가? 그런식으로 사람을 죽이는 범인은 둘일수가 없었다. 그런데 왜?

살해된 인물들간의 공통점은 있었다. 부잣집 아들이고 망나니에다 여자관계가 복잡하다.

김혁재가 그런식으로 살해당했다면 범인의 목표는 분명 김혁재였다.

그런데 왜 별장에 있던 그 나머지 사람들도 다 죽인걸까.

그 당시 김혁재가 자기방에 있었다면 범인은 김혁재 하나만 죽일수 있었다. 더구나 그 많은 사람을 죽이려면 위험부담도 크다.

하지만 만약 김혁재가 거실에 같이 있었다면? 하나를 죽이기 위해 모두를 죽였을까?


"나머지 애들은 어떤 애들이래?"

"누구?"

"거실에서 죽은 애들 있잖아"

"아, 걔들? 걔네들은 마약전과도 없고 그냥 그만그만한 애들이래"

"그만그만 하다니?"

"뭐 특별히 과거가 있는게 아니라 그냥 김혁재를 따라다니며 좀 놀던 애들인가봐, 아참, 그러고 보니 한녀석은 강간치상 전과가 있네, 맞아"

"강간치상?"


나는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죽였다. 가슴이 뜨끔했다.

영선이 내목소리를 안들었기를 바랬다.


"근데 말야, 웃기는게 또하나 있어"

"뭔데?"

"여자애들 있잖아? 걔네들 그속에 뭘 박아 놨다네 글쎄"

"그속? 박아?"


뜻밖의 소리에 이번에는 내가 버벅거렸다.

그 속이라면 질속을 말하는 것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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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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