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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의 남자들(내편 남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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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소라 

시댁의 남자들(내편 남편)***(1)

내편 남편(시댁의 남자들)


윤정혜(26세)-------나(새며느리)

呂正大(53세)-------시아버님

河春花(50세)-------시어머님

呂淳弼(27세)-------남편

呂初姬(25세)-------큰 시누이(대전)

沈根石(32세)-------큰시누이의 남편

呂乙姬(23세)-------작은 시누이(광주)

趙大賢(34세)-------작은시누이의 신랑

呂淳喆(21세)-------시동생


추석이 가까워졌어요.

이번 추석은 내가 신랑을 만나 결혼식을 올린후 처음 맞는 명절이라서 어떻게 해야할지 조심스럽구요.

여(呂)씨 잡안의 장손 며느리로서 시댁의 대소사에 앞장을 서야하 내 처지가 힘들게 느껴져요.

물론 결혼식장에서 시대 어른들에게 폐백을 드릴때 그분들의 당부말씀을 잊지 않고 있어요.

신랑이 젊어서 실수한 이이 있어 마음에 들지않더라도 이제 장손며느리가 된 만큼 집안의 화목은 새며느리인 나에게 달려 있다는 말씀이었어요.

제가 신랑을 만나게된 동기는 둘째 치고 이제 여(呂)씨 집안의 맏며느리로서 시댁이 화목하게 살아가는 디딤돌이 되어야 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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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은 저를 만나고서부터 마음을 잡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 신랑이 나에게는 믿음이 되고 의지가 되어주고요.내가 애초부터 신랑 하나를 보고, 그의 사랑에 나의 모든 인생을 걸고 시집을 왔으니 이젠 신랑만을 믿고 따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처녀때 실수한 것을 아마도 신랑이 눈치 채고 있는지도 모르죠.

그러나 그런 일을 입에 올리지도 않는 신랑의 마음 씀씀이가 한편으로는 고맙기만 해요. 언제나 신랑하고 성관계를 하고나면 저의 과민한 반응이 후회스럽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랍니다.신랑은 처음부터 저의 약점을 낱낱이 알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어요.

저는 신랑앞에서 내숭을 부리고 경험이 없는 여자로 행세하고 싶었는데.

적어도 섹스에 관해서만은 순결을 인정받고 싶었어요.그러나 나의 그런 의도는 처음부터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어요.제가 너무 예민하게 발달한 탓이었을까?아니면 신랑의 여자 다루는 솜씨가 너무 능숙해서였을까?

이를 악물며 견뎌볼려고 애를 썼지만 그이의 애무에서부터 나의 성감대는 어이없게 노출되어 열광하고 말았어요.저는 그래도 숨기고 싶었는데...그러나 그이의 손길이 스쳐지나고 좆놀림이 격렬해질수록 뼈마디가 녹아내리는 절정의 쾌감을 이겨낼 방법이 도저히 없었어요.내 육신의 마디 마디가 제멋대로 반응하며 그이를 받아들일때 보여준 반응은 나로서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어요.그이는 저하고 너무도 속궁합이 잘맞는 찰떡궁합이었구요.


신랑과 저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하였어요.

궁합이 맞는 사람끼리 헤어질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나와 신랑은 결국 집안 어른들을 모시고 결혼식을 올렸구요.신랑의 집은 전라도 하고도 여수에서 가까운 해안가 70여 세대가 모여사는 작은 어촌이었어요.

시골 마을에서는 서울색씨를 며느리로 맞는다고 온동네가 소문이 요란했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어요.그래서 시댁 부모님이 아예 처음부터 저를 시집살이 시킬 생각조차 안하고, 다만 며느리로 들어와 준것만 고마워 할 정도였어요.

더구나 신랑의 학력이 겨우 시골 초등학교 졸업인데 며느리로 맞아들인 서울색씨가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이 시골에서 화제꺼리였던가봐요.(제가 2년제 전문대학 나온 것을 시골에선 대단하게 여기는 모양이었어요)

시골 촌놈이 대학나온 서울색씨를 며느리로 맞은 것만도 황송하고 집안의 경사라 여길 정도였나봐요.

저도 첨엔 몰랐는데 결혼식 올리고 제주도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시댁에 인사드리러 갔을때 부모님이 저에게 대하는 태도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저를 마치 대갓집 공주마마 대하듯 손에 물한방울 닿지 않게 할려고 배려하시는 시부모님과 집안 어른들을 대하면서 그분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되었어요.

서울에서 데려온 며느리라고 으시대며 동네방네 어른들에게 자랑하시는 아버님의 말씀을 제 귀로 들었으니까요.

제가 오히려 황송하고 민망할 정도로 서울색씨를 며느리로 맞은 것을 집안의 경사로 여기는 그런 눈치였어요.


저는 신랑을 지금도 사랑하고 있어요.그이가 없다면 저의 인생은 너무나 허무하고 보잘것 없다고 생각해요.

비록 신랑의 학력이 시골 초등학교 졸업에 그치지만 저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랍니다.

시댁은 집안을 모두 둘러봐도 고등학교 나온 사람이 손꼽을 정도로 어려웠어요.제일 큰아들인 제 남편이 초등학교 간신히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식당에서 온갖 궂은 일을 다하며 자랐고,나머지 여동생 둘은 겨우 중학교를 졸업한 후 시집을 갔다고 들었어요.시동생인 순철도련님이 겨우 겨우 고등학교를 마친 것이 이집안에서는 가장 자랑스러운 존재로 인정받고 있을 정도였구요.

그런 집안에서 그래도 하빠리 전문대학이나마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서울 색씨를 며느리로 맞는 것이 집안의 경사일 수 밖에요!


나는 신랑을 만나기전부터 이미 교제한 남자가 있었어요.

친정어머니의 정부였던 그남자는 내가 여중시절부터 우리집에 들어와 살았어요.나는 밤마다 어머니와 그남자의 잠자리하는 소리를 들으며 남녀관계의 즐거움을 배웠어요.어머니는 그남자와 관계를 하면서 온집안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댔어요.그남자가 엄마를 어떻게 해주는지 나는 소리만 들어도 모습이 떠오를 정도였어요.엄마의 어디를 빨아주는지 상상하며 나는 온갖 방법으로 자위행위를 즐겼어요.호기심을 키우며 상상하고 혼자서 즐기는 것은 차라리 직접 씹을 당하는 것만큼이나 아기자기하고 좋았어요.저의 성감대는 그렇게 발달하기 시작했구요.

자위를 즐기는 방법도 거의 자학에 가까울 정도로 심하게 해야만 좋았어요.

점점 더 그렇게 되더라구요.처음엔 저도 무척 조심하고 혹시 속살이 상처날까봐 그 언저리만 자극했어요.그런데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퇴폐적인 상상으로 자포자기하면서 그만 음핵을 자극하기 시작했어요.아아, 그런 느낌 처음이었어요. 자지러지는 절정을 맛보고부터 저는 점점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정확하게 제가 중학교 3학년 봄, 그러니까 사월초파일날 밤이었어요.엄마가 평소 다니던 절에 봉사하러 가고 집에는 저만 혼자 남았어요.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밤 엄마의 정부인 그남자가 술에 취해 집에 왔어요.너무 늦은 시간이었기에 저는 안방에 이불을 펴드리고 주무시게 했어요.

저는 아무일없이 제방으로 돌아와 버릇처럼 되어버린 자위행위를 즐기기 시작했어요.소리가 새나가지 못하게 이불을 덮어쓰고 한창 자위를 즐기는 중이었어요.술취한 그남자가 안방에서 잠이 든줄로 알고 안심하여 문을 잠그지 않은 것이 실수였어요.더구나 저는 이불을 쓰고 했으니까 밖에서 알턱이 없다고 생각했죠.

어떻게된 일인지 제방으로 들어온 그남자가 저의 이불속으로 들어와...한창 자위를 즐기고 있는 저의 손목을 붙잡았어요.너무도 놀라서 저는 기절할뻔 했어요.저의 손에서 열심히 움직이던 만년필이 떨어졌어요.저는 치마속에 팬티조차 안입고 있었구요.

이불속으로 들어온 그남자가 다짜고짜 저의 치마를 걷어올리고는 여지껏 자위를 즐기느라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저의 구멍을 입으로 애무하고 핥아댔어요.저는 너무나 기가막혀 소리도 못지르고 두다리를 올린채 안간힘을 쓰고 버텼어요.

"너 알고보니 재밌는 뇬이구나!"

욕설인지 칭찬인지 모를 말을 하며 그남자는 저를 짓이겼어요.

"아아! 아파!"

저는 온몸이 찢겨 나가는 고통을 견디고 참으며 신음을 삼켰어요.

이런 고통을 엄마는 왜 그렇게 흥겨워하며 환희와 열락에 울었을까?

저는 그남자의 무지막지한 침입을 참고 견디며 엄마를 원망했어요.

처음 한번이 어렵지 두번째부터는 차라리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어 버렸어요.엄마하고만 그러던 남자가 저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가슴 벅차도록 야릇했어요.전에는 저를 마치 어린애 취급하던 남자가 이제부터는 친구처럼 대해주는게 너무 좋았어요.제가 갑자기 어른이 된 느낌이었어요.엄마가 저더러 아버지라고 부르라던 남자하고 친해진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가슴 뿌듯했어요.엄마하고 하는 소리를 엿들으며 저혼자 온갖 방법으로 자위를 즐기던 비밀스런 죄책감에서 일시에 벗어나는 기분이었어요.

무엇보다 좋은 것은 그남자가 저를 어른으로 대해준다는 사실이었어요.

저는 언제나 어린애 취급을 받으며 멀리 떨어져 있어야 했거든요.

그런데 이제 이남자가 절 이처럼 소중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했구요.

그걸 생각하면 아픔 따위는 참을만 했고,오히려 차츰 야릇한 쾌감으로 느껴지기까지 했어요.

저와 같은 친구들이 우습게 보이고, 이제부터 제가 갑자기 높아진 기분이 들 었어요.더구나 그남자가 절 위해주고 보살펴주는 것이 너무 좋았어요.

남몰래 어른을 친하게 받아들이며 비밀을 간직한다는 것이 그처럼 가슴 떨리는 행복인줄 처음 알았어요.

그남자 말에 의하면 여자는 다 나이들기전부터 미리 미리 이러 쾌감을 알아야 한다고 했어요.제가 그남자의 성기를 오랄하면서 더욱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구요.

어른이 될려면 반드시 거쳐야하는 과정이라고 여겼어요.

그런 비밀스런 일들이 저자신을 엄마와 같은 위치로 끌어올려준다고 믿었어요.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응하고 받아들였구요.


아마도 어린나이에 철없이 어른들의 유혹을 받아 성관계를 맺는 심정은 저의 경우와 같을거라고 생각됩니다.

저도 처음에는 두려움에 반항하고 그랬지만,한번 그런일이 이루어지고부터는 갑자기 제가 똑같은 어른이 되어있는 느낌으로 우쭐해지기까지 했어요.

저또래들의 남자애들이 모두 유치하고 우습게만 보이고 저만 그런 어른들의 세계에 올라선듯한 뿌듯함을 느꼈어요.

어른들만이 소유하는 비밀스런 즐거움을 저도 함께 참가하게 된 즐거움에 몹시도 흥분되었어요.

내친구 또래들의 유치한 일들이 제겐 아무런 상관없는 것으로 보이고 이제부턴 아버지같은 어른들의 세계에 나도 동참하고 있다는 즐거움을 맛보았어요.


그래서 한번 어른들에게 섹스를 배운 여자는 그 야릇한 쾌감에 중독되나봐요.오빠또래가 아닌 아버지와 같은 나이의 어른을 경험하면서 말이예요.

성인으로 성장하기 전에 아버지같은 나이의 어른에게,그것도 엄마가 아버지로 부르라는 남자와 비밀스럽게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너무도 큰 죄악이면서 저에겐 온몸이 저려드는 즐거움이었어요.


그이는 그후부터 엄마몰래 저를 위해 마음을 많이 써주셨어요.

엄마가 절 나무랄때마다 그분이 제편을 들어주시고 절 위로해 줬어요.

엄마와 저의 관계가 계속 악화되었지만 전 그분의 따뜻한 위로를 받으면서 참아낼 수 있었어요.그분이 엄마와 부부관계를 맺고 살지만 실제로는 저에게 더 많은 배려를 해 주고 사랑을 쏟아줬어요.엄마가 아무리 절 미워해도 결국 엄마의 가장 소중한 남자가 제편인 것이 저에겐 마지막 복수였어요.

엄마하고 싸우고난 후에는 반드시 그남자를 밖에서 만나 맘껏 즐기고 내남자로 했어요.그런날은 엄마와 관계를 하지 못하도록 제가 독차지해야 분이 풀렸어요.

엄마를 미워하기 시작하면서 그남자를 아버지로 부르게 된 것을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거예요.

엄마는 제가 그남자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만 좋아서 기뻐하셨지만 실은 그때부터 제마음속엔 그분을 독차지하고 싶은 욕심이 불붙기 시작한거죠.

엄마가 그남자의 아기를 임신했을때 저도 지지않고 그분의 아기를 뱃속에 키웠어요.결국 엄마는 제 남동생을 낳았고 저는 아빠의 간곡한 설득에 못이겨 7개월만에 돌려낳기로 애를 뗐어요.

산월이 가까워진 애를 떼고난 후 저는 마치 출산을 겪은듯한 신체적 변화를 치렀어요. 제가 여고 3학년때였죠.

엄마가 낳은 남동생을 바라보며 저는 퉁퉁 불은 젖을 감당하지 못한채 화장실에 가서 젖을 짜내야 했어요.엄마가 남동생을 낳은 후부터 아빠는 더욱 더 저에게 집착하기 시작했구요.애를 떼고난 저의 육체가 겪은 변화는 저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컸어요.그런 저의 육체를 아빠는 좀더 집요하게 요구했고,그때마다 저는 새로운 쾌감으로 자지러졌어요.

여고를 졸업하고 직장을 가졌을때 아빠는 제가 다른 남자를 사귈까봐 염려하는 눈치였어요.엄마는 그런 아빠의 마음 씀씀이를 딸에 대한 관심과 애정표현으로 이해하며 고마워 했구요.

그러나 그런 아빠의 속셈을 알기때문에 더 어긋나갔어요.

어느땐 아빠가 저의 직장앞으로 찾아와 기다리다가 납치하듯 저를 여관으로 끌고가 유린하기도 했어요.그때마다 저는 극도의 수치감과 함께 죽어도 아빠를 떠날수 없으런지 모른다는 절망감을 느꼈어요.아빠가 가르쳐준 섹스는 마치 죽음처럼 깊고 깊은 늪으로 빠져들게 했어요.

물론 회사에서는 저의 친아빠인줄로 알았구요.

그러던 제가 시집을 가겠다고 했을때 아빠는 실망하는 눈치였어요.

아빠가 무슨 행동을 저질를지 몰라 두려운 나머지 저는 그때부터 마치 노예처럼 아빠의 요구에 응했어요.

시집을 가기위해서,정말로 좋아하는 남자와 사랑하며 가정을 꾸미기 위해서 저는 남모르는 희생을 치러야 했어요.

아빠의 요구는 거의 변태에 가까웠어요.

전에는 힘이 넘쳐 저의 여린 속살을 사정없이 짓이겨주던 아빠가 차츰 저의 속에 덜차는 느낌으로 허전함을 남겼어요.

물론 그것이 새로 만난 남자와의 느낌에서 비교되는 것이었구요.


시집을 오면서 자연스럽게 아빠와의 관계가 정리되는듯 싶었어요.

그러나 결혼식날 시댁 어른들에게 폐백을 올리던 장소에서 언뜻 눈맞춤한 사람이 왠지 마음에 걸렸어요.

가슴이 섬찍하도록 강하게 와닿는 강한 눈빛에서 저는 온몸이 저리도록 아픈 쾌감을 느꼈어요. 왠일일까? 여느 남자들과 다른 느낌이 무슨 연고일까?

그후로 서울에 올라와 한칸짜리 전세방에서 신랑과의 신혼살림에 재미를 붙이면서 시댁의 일들은 까맣게 잊었어요.


그해 추석은 결혼해서 처음 맞는 명절일 뿐만 아니라 집안의 장손으로서 추석성묘때는 각지에 흩어져 살던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이기 때문에 시골에 내려가서 부모님 모시고 지내야 할 처지였어요.

결혼한 후 처음 모이는 만큼 저도 신랑과 함께 시골부모님 집에 내려가기 위해 이것저것 준비를 했죠.

그런데 고속버스표를 미리 예약하지 못하고 신랑이 아는사람을 통해 추석당일날 표 한장을 겨우 구했는데, 추석당일에 함께 내려가지 못할 바에야 저더러 미리 내려가서 추석빔을 장만하시는 부모님을 거들어드리는 게 좋겠다는 신랑의 의견이었어요.추석연휴날 차편으로 함께 내려가지 못할바에야 집에서 놀고있는 제가 미리 내려가서 부모님의 음식장만을 도와드리는게 도리일 것 같았어요.

어차피 신랑은 직장일 때문에 나중에 내려와야 하지만 저는 집에서 살림만 하고 있는 처지이니 연휴를 피해 먼저 내려가기로 했죠.


추석연휴가 시작되기 이틀전의 고속버스는 좌석이 넉넉했어요.

제가 먼저 내려온 것을 보고 시어머님이 제일 반가워하셨어요.

자녀들이 모두 도시로 떠나고 시골에 홀로 남아서 농사일을 하고 계시는 부모님에게는 추석명절이 가장 중요한 행사였어요.

시아버님 연세가 아직 환갑전 50대이시지만 건강이 좋으셔서 아직도 정정해 보였어요.시어머님이 아버님하고 나이가 동갑이신데 제가 보기에는 아버님이 젊고 근력이 좋으셔서 걱정일 정도였구요.

어머님은 혼자서 음식을 장만하랴,내려온 자식들에게 줄 콩이며 참깨를 털어내랴 정신없이 바쁘시다가 제가 먼저 내려오니 그것만으로도 반가워서 어쩔줄 몰라 하셨어요.

남편의 형제로는 밑에 여동생 둘이 일찍 시집가서 대전과 광주에 살고,남동생 하나가 울산 현대자동차에 근무하는데 스물한살 총각이랍니다.


시골집은 모든 것이 다 좋은데 저에게는 아무래도 뒷물을 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불편하기 짝이 없었어요.

저는 하루만 뒷물을 못해도 그곳이 끈적거리고 흘러내려 개운치가 않았어요.

유난하게 분비물이 많은 저의 생리현상도 문제였지만 그날따라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오느라 저의 그곳은 이미 만땅으로 흥건해져 주체하기 어려울 지경이었어요.

서울에서 내려온 그날은 개운치않은 것을 참고 지냈지만 다음날은 분비물이 발효하면서 뭐가 스물스물 기어다니는 것처럼 공알이 근질 근질해 죽겠더라구요.어디 가서 좀 씻을 만한 장소가 없을까 저는 온통 정신이 그것에만 쏠려 있었어요.

시어머님 앞에서 함부로 행동하기도 어려워서 조심하느라 몸가짐을 긴장하고 지냈더니 더 그곳이 부풀어서 똥구멍까지 미끈거렸어요.

이럴줄 알았더면 팬티라도 몇장 더 가지고 올걸..다른 것 준비하고 장만해 오느라 미처 그런데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어요.

시골집이라 어디 마땅하게 숨어서 씻을 장소가 없는데 보지는 뭐가 잔뜩 끼여 남자에게 빨리다 만것처럼 근질 근질하고 끈적거렸어요.

자연히 저의 몸가짐이 거북해지고 불편해서 죽을 지경이었어요.

바가지에 물을 떠 담아가지고 뒤뜰로 가는데 눈치없는 아버님이 뒤따라오시며 제가 뒷뜰 배추밭에 물주러가는 줄 알고 말리는 거예요.

제가 알게 모르게 며느리인 제가 혹여나 어려운 일을 할까봐 염려하며 한시도 틈을 주지않고 주시하는 아버님 탓으로 저는 도무지 꼼짝도 할 수가 없었어요.


점심먹고 오후에 어머님이 송편만드는데 쓸 솔잎을 따러 산에 가시겠다고 나섰어요.

"어머님! 저도 따라 갈께요!"

제가 어머님에게서 광주리를 받아들며 따라 나설 채비를 했지만 어머님은 물론 아버님께서 더 적극 말리셨어요.

"아, 아서라! 아가야! 너 고운 손에 송진 묻을라.넌 걱정말고 집에서 쉬거라."

"저도 어머님 따라서 산에 오르고 싶어요.아버님!"

"가을 산길은 너처럼 곱게 자란 새아기에게 위험하기도 하지만, 아무튼 너의 깨끗한 살결에 송진때라도 묻을까 겁난다.아무걱정 말고 넌 집에서 좀 쉬거라."

"그래, 네 시애비 말씀이 맞다.공연히 너 그 희고 고운 손에 송진이라도 묻으면 어쩔라고 그러냐?가는 길에 산소도 둘러보고 쉬엄 쉬엄 따가지고 올테니 넌 집에서 좀 쉬고 있그라."

적극 말리시는 아버님과 어머님의 걱정 바람에 그렇게 어머님 혼자서 산에 오르셨어요.

어머님이 솔잎 따러 산에 가시고 안계시는 동안 저는 부엌에서 뒷물할 기회를 봤어요.세수대야에 물을 떠놓고 아버님이 자리를 비켜주기만을 기다리는데 아버님은 계속 마당을 맴돌며 저에게 관심을 주셨어요.

새며느리를 예뻐해주시는 아버님의 뜻은 고맙지만 저로서는 어제부터 씻어내지 못한 그곳이 신경쓰여져 견딜수가 없었어요.

어머님 아버님 눈을 피해 다른 방으로 갈라치면 서울에서 내려온 새아기라고 염려하시는 아버님의 눈길을 더욱 집요하게 받을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어요.

모처럼 새며느리를 신혼첫나들이로 맞은 아버님이나 어머님의 마음을 왜 제가 모르겠습니까 만은 저로서는 거북하기 그지없었어요.

어쩌다 제가 그곳이 너무 끈적끈적하고 개운치를 않아 서울집에서 하던 버릇으로 긁적긁적 하다가 아버님하고 눈이 마주치기도 하고,치마위로 근질근질한 그곳을 긁다가 아버님의 시선을 깨닫고는 민망스럽기 짝이 없었어요.

새로 맞은 새아기 며느리라고 끔찍하게도 신경쓰시는 아버님이 제겐 오히려 거북한 존재로 느껴질 정도였어요.시골집이 전체로 트여있기 때문에 저혼자 숨어서 뭣을 할만한 구석이 없어 더욱 그러했어요.

가만 있어도 저의 그곳이 속에 뭐가 기어다는 것처럼 근질근질해서 견딜수가 없었어요.어제 고속버스로 내려와서 오늘까지 그곳이 더러워지기만 하고 뒷물을 못하고 살자니 속살에 뭐가 잔뜩 끼여있는 느낌으로 개운치가 않았구요.이런 기분 여자가 아니면 정말 아무도 모를거예요.

추석이라지만 계절이 빨라서 일찍 찾아온 9월 초순의 날씨는 아직 여름이나 마찬가지였어요.

견디다 못해 건넌방으로 슬그머니 피하여 방한구석에 쪼그려 앉은 자세로 스커트속에 손을 넣어 손가락으로 팬티를 밀어넣으며 보지속을 후벼 닦아냈어요.무슨 헝겁이라도 보지속에 끼워넣을까하고 둘러보다가 그만 마루에서 들어오시는 아버님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어요.

너무 민망하고 부끄러워 빨갛게 물든 저를 바라보시는 아버님의 느끼한 시선에 의미있는 미소가 저의 속을 뒤집어 놓았어요.

(죽일넘!사내들이란 나이가 들어도 그버릇은...제 며느리를 보고 하는 저 눈빛 좀 봐! 개자식 같으니!)

저는 속으로 시아버지를 욕하며 속상해 했어요.한편으로는 이런 분위기에서 앞으로 며칠을 더 지내야 하는 것이 화났어요.아버님이 절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그 속마음을 알고나니까 더 화나고 속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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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토도사 2022.11.24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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