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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아도 눈 앞에 있잖아요 -14-

토도사 0 1558 0

#보이지 않아도 눈 앞에 있잖아요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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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

도란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
누가 이렇게 대화를 하나 싶어서, 고개만을 옆으로 돌렸다.
윤기나는 흑발…은 선배인가…
그리고 선배 앞에 서 있는 여자는…
"아, 용현군, 눈 떴어?"
쿄코씨다.
왠지 무작정 반갑다.
"쿄코씨, 어떻게…"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옆구리가 지끈거리는 바람에 신음만 내고 누워버렸다.
"아아, 아직 일어나면 안돼. 갈비뼈가 부서질 뻔 했대… 어유, 눈은 또 그게 뭐야, 퉁퉁 부어 가지고… 등은 어떻구… 집단 구타 당한 모양이네 어이구… 머리는 안 깨진게 신기하대… 찢어지긴 했지만."
"돌머리잖아요. 하하하."
"그래, 사실 말이야…"
"두 분 얘기 하세요, 저는 잠시…"
불쑥, 키즈나 선배가 끼어들었다. 그리고 내가 반응도 하기 전에 쿄코씨가 수다스럽게, 그녀를 보내었다.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난 후, 그녀가 나에게 얼굴을 바싹 들이대었다.
"장님…?"
"그래요."
"하…역시, 그런데, 정말로 지금까지…?"
쿄코씨는 잠시 감동한 기색이었다.
"무슨 말이에요?"
"나야 연락을 받고 왔다가 곧 가서 잘 모르겠지만, 저 아이-히메카와라고 했던가-는 내가 오기 전부터 네 옆에 있었어… 몇시간씩이나,아, 그럼 화장실 갔겠다. 참 소변이 마려울만도 하겠네…"
"…맞다, 누가 날 여기로…"
"수위라고 하던데. 그 사람이 너를 여기로 옮긴 모양이야. 기재실 문 단속 하러 돌아다니다가, 발견했다나. 그렇게 직장으로 전화가 와서, 나는 단지 그 사람이 일러준 병원으로 온 것 뿐이야. 그러고 보니 용현군이 침대에 뻗어있지 않겠어. 놀라는 나에게, '용현군은 제가 보고 있을게요'라고 그랬었지…' 덕분에 나는 다시 회사로 갔구. 그때부터 지금까지, 6시간도 넘겠는데�"
수위…?
우리 학교에 수위라는 아저씨가 있었나?
아니, 있긴 해도 내가 눈치를 못 챈 것 뿐이겠지.
정말 좋은 사람이군. 나중에 답례라도…
"아니, 그럼, 쿄코씨를 그 사람이 어떻게 알고 연락을? 혹시 내연…!"
"바보, 이 상황에서 잘도 농담이 나오니. 너는 항상 상의 주머니에다가 학생수첩 끼고 다니잖아. 빨래할때도 넣어놨을 지경이니."
"그건 그렇다치고, 그렇다고 아픈 사람 버려두고 회사로 가요?"
"뭐 어때? 나같은 아줌마보다야, 예쁜 애가 좋잖아?"
손가락을 세워, 이마를 쿡쿡 찌르는 쿄코씨.
"아, 근데, 왜 그렇게 다쳤어?"
…이제야 그런 걸 물어보는 심보는 뭐지.
"그건…"
찰칵, 하고 문이 열린다. 키즈나 선배다.
"히메카와씨, 고마워. 덕분에 우리 용현군은 잘 잔거 같아."
쿄코씨가, 들어오는 선배에게 그렇게 예를 갖춘다. 그녀는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틀어, 가볍게 목례를 한다.
"아니에요… 오히려 용현군이…"
"…"
쿄코씨가 시계를 보았다. 나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힘겹게 시계를 보니, 12시가 다 되어간다.
"선배, 집에 안가?"
그것도, 연상이네, 하고 쿄코씨가 쿡 웃는다. 귀가 밝은 선배가 그것을 못 들을 리 없다. 그녀는 얼굴을 약간 붉히면서, 머뭇머뭇 대답했다.
"괜찮아요… 집엔… 아무도 없으니까…."
"어머나, 히메카와씨가 밤을 새 주겠다는 거야? 그럼 나는 가도 되겠네."
확실히, 23일, 그러니까 내일은 휴일이다. 종업식 준비로 하루 쉬는 것이긴 하지만… 근데, 왜 그렇게 웃고 있는 거야. 쿄코씨.
"쿄, 쿄코씨… 인간 아님…"
"필요한 게 있음 전화해, 나도 사실 할 일이 있어서 말야~"
그녀는 그대로 일어나, 가방을 들고 히메카와씨, 그럼, 잘 부탁해 라고 말한 다음 휑하니 나가버렸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이제 좁은 병실 안에 남은 것은 선배와 나 뿐.
적막이 흘렀다.
나는 선배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 지금처럼 고마울 때가 없었다.
어색한 두 사람.
행여 눈을 마주치면서 나오는 그 수줍고도 어색한 감정을 피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사, 사과 먹을래요?"
"…깎을 수 있어?"
"오래 걸리지만…"
"…"
"그럼, 규, 귤 벗겨 줄게요."
"응…."
선배는 바구니 속을 더듬어 귤을 찾아내, 조심스럽게 벗겨낸다. 내가 그것을 받으려 하자,
"안 돼요… 누워 있어요."
하면서, 나의 얼굴에 껍질을 벗겨낸 귤을 들이민다. 고개를 잘 돌려서 받아먹는다.
"용현군…"
"…응?"
"아파요?"
"…아니."
"정말로…?"
"…조금 아파."
"…"

갑자기 대화가 끊겼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 보니, 선배가 소리도 내지 않고, 다만 눈에서 눈물만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씩 어깨가 경련하고 있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나… 때문에."
"…아니…"
"피를 흘려가면서… 용현군이 나 때문에…"
"…"
훌쩍, 하고 그녀가 고개를 떨구었다.
"갑자기 뭐가 부서지는 소리에… 정신이 들고 보니 용현군이 와 주었어요…"
…끌려온 거지만, 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용현군은 나 때문에… 맞아서… 그렇게 아프게 되고…."
그녀는 이제 거의 소리를 내어 울고 있었다.
"피를 흘리면서도… 나를 업고… 그래서 쓰러지고…"
"우리 모두, 수위아저씨한테 감사하지."
나는 그렇게 적당히 얼버무렸다. 이 이상 가면 대성통곡이 될 것 같았다.
피곤이 몰려온다.
"그래도… 그래도…"
"…"
"용현군에게 너무 미안해서… 너무 고마워서…"
"…"
"나,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
"용현군을 도저히… ."
"…"
"용현군이 나를 싫어해도 나는…"
잠이 들기 전, 기억에 남는 말은 거기까지였다.

23일은 하루종일 귀찮은 날이었다.
학교에 연락이야, 쿄코씨가 해 놓았을 테고, 제길, 그 망할놈들. 특히 그 히데키라는 자식, 반까지 들었으니 언제 한 번 두고보자.
의사란 작자가 들어와 아픈 건 없냐고 형식적으로 물어대는 것도 귀찮고, 맛달가지 없는 약은 왜 또 그리 많은지, 그놈의 엑스 선이란건 왜 또 찍어야 하는지, 주사 놓으러 오는 간호사 아줌마는 싸가지 없지, 밥맛도 별로지, 정말 짜증나는 시간이었다.
"안 돼요. 밥은 제대로 먹지 않으면."
마다하는 나의 입에다 억지로 떠먹여주는 선배가 없었으면, 창 밖으로 분명 식판을 던져버렸을 지도 몰랐다.(그것도 제대로 입에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서, 번번이 흘렸다.)
"용현군, 아기 같아."
"…나도 좋아서 이러는 게 아니라구."
"하하."
선배가 웃었다.
정말 오래간만에 보는 웃음이다.
"…항상 웃어."
"…네?"
"우는 얼굴은, 보기 싫으니까."
"…네."
누구라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날 하루도 선배는 10시가 넘게 있어주었다. 내일은 종업식이기 때문에, 일단 집에도 들러봐야 할 것이고 옷도 갈아입어야 하기에 선배는 10시를 조금 넘기고 돌아갔다. 내일 다시 올게요, 라는 말을 하고서.
'…'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려고 했다.
'나는 선배를 지켰어. 된거야.'
하지만 비집고 올라오는 생각이 있었다.
그녀가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신하는거냐?
'아니.'
하하하, 바보자식. 네놈이 말한대로 허무를 쌓아가는구나.
'…'
그녀에게 있어서 너에 대한 감정은 단지의 고마움. 누구라도 윤간당하는 자신을 구해준다면 고마움과, 그 이상의 감정은 느끼게 되어 있지.
'…'
그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자신이 뭐라 대답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은 채 나는 잠의 나락으로 빠져들어갔다. 하루종일 피곤했던 터라, 조금만 생각을 하려고 해도 잠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이자, 종업식.
식을 땡땡이 쳤다는 류타자식 외, 악동 놈들이 왔다.
"야, 근데 왜 그렇게 된거냐?"
하긴 이놈들은 이유를 모르지. 쿄코씨한테도 제대로 얘기 못했는데.
"일설에는 네가 야쿠자 동생을 건드렸다는 말도 있어."
"무슨 소리를…"
나는 순간, 놈의 이름이 떠올랐다.
"야, 혹시 3학년의 히데키라는 놈 아냐?"
"히데키…?"
류타는 잠시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곧 손바닥을 치면서 나를 보았다.
"야쿠자만치 성질 더러운 놈이지, 그놈이랑 한 판 붙었냐? 그 놈 자체는 보통 껄렁패랑 다를 게 없는데, 뭐랄까, 복싱부의 '키네유키'란 놈이랑 쌈 좀 하는 '카즈히로'란 녀석이랑 같이 다녀서 귀찮은 놈이지."
망할… 키네(는 애칭이겠지)란 자식 복싱부였구나… 왠지 펀치가 세더라.(일본에서는 애칭이 많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보통은 이름을 반 잘라서 부르는 것이 흔한데 그럴 때 어감이 이상하면 예외로 다른 애칭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히로세'를 '히나'라는 것처럼. 반대로, 친한 사이가 아니면 동급생이라도 서로의 성을 부르며, 존대말을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놈들이랑 어쩌다 시비 붙었다."
"우와, 진짜냐? 얻어맞았지?"
"그래, 3대 1인데 보면 알잖아."
물론 타로 놈도 있었지만… 있으나 마나인 놈이니.

그러다가 검진 시간이 되어, 잠깐 나갔다 혹사당하고 돌아와 보니 녀석들은 조그만 쪽지에 '완쾌하세용'이라는 징글맞은 메시지를 남겨둔 채, 과일만 축내고 달아나 버렸다. 썩을 놈들.
망할 놈들 상대해주랴, 검진 받으랴 이래저래 피곤했던 나는 또다시 잠의 세계로 도피했다.
'아참… 선배가 오기로 했는데…'
란 생각은 결국 뒷전이 되어.

"…사람…"
귓가에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채 뜨기도 전에, 얼굴에 약간 차가운 듯한 조그만 손이 나를 어루만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실눈을 떠 보았다. 약간 주위가 희미하게 어두웠다.
'뭐지…'
사람의 손이 맞는 것 같았다. 고개를 고정한 채로 눈만을 더욱 살며시 떠 보니, 침대 옆에 선배가 서 있었다.
"당신은 나를 싫어하는게 아니라고…"
그녀는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틀림없었다. 평소보다 목소리 톤이 더 낮은데다가, 무엇보다 '용현군'이라 부르지 않는 것만 봐도, 나를 의식하지 않고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아마, 자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겠지.
"…믿어요."
'…'
"설령 그것이 나만의 착각이라고 해도…"
'…'
"보이지 않아도, 당신이 눈 앞에 있는 것이 변함없는 사실인 것처럼…"
'…'
"나와 당신의, 시련으로 엮어진 '키즈나'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키즈나? 그건 선배 이름이잖아?'
"나는 믿어요…."
'아, 아니야…. '키즈나'라는 것은…'
나의 생각은, 거기서 멈추었다. 선배가 자신의 손을 올려놓은, 나의 왼쪽 뺨에 자신의 얼굴을 대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것은…
선배의 입술이다….
선배가 나에게, 내 볼에 그녀의 입술을 갖다댄 것이다.
한순간 전율이 일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아나타와(당신은),"
입술을 뗀 선배가 또다시 중얼거렸다.
"와따꾸시노, 다이세쯔나 히토데스…(나의, 소중한 사람입니다…)"
'…'

키즈나 선배는 직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의자에 앉아 내 침대에 기대어 잠들어 버린 모양이었다. 스― 스― 하는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잠이 확실히 든 것 같다.
'…몽유병?'
…일 리는 없지만, 방금의 선배는, 선배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그건 그렇고…'
복잡하게 밀려오는 생각 중, 나는 끊겼던 아까의 생각을 재개했다.
'키즈나'
선배의 이름으로만 계속 들었기 때문에, 본래의 뜻은 생각지도 않았던 것.
'키즈나(絆)'
그것은, 굴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
인간과 인간을 맺어 주는,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끈.
그것이 단어 본래의 뜻이다.
'보이지 않는… 나와 선배와의 …"
뭐로 엮어진 거랬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이걸로 된 거 아냐?'
옆에서 자고 있는 선배를 바라보며, 나는 '또 하나의 나'에게 쏘았다. 직후, 비꼬는 말이 들려왔다.
과연 그 말로 만족할 수 있을까?
'어째서지? 선배가 나를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럼 왜 그 말을 직접 너에게 하지 않고, 깨우지도 않고 말하는 걸까?
'그, 그건…'
아직은 확실히 모르는 거라구.
괜한 시간 낭비 할 생각 하지 말고, 똑바로 해.
괜한 들뜸은 소멸을 향해서 나아갈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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