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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아도 눈앞에 있잖아요 8

토도사 0 1616 0

#보이지 않아도 눈앞에 있잖아요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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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
0오늘도 마찬가지다. 3학년 D반에는 히메카와 선배 혼자 뿐이었다.
'유우짱은 좋은 여자를 만났어.'
나는 선배의 얼굴을 멀찍이서 바라보며, 히로세가 떠나기 전에 한 말을 떠올렸다.
'지팡이의 아가씨를 만나다니.'
'지팡이의 아가씨?'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고 해서… 히메카와 키즈나선배… 이사장의 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생도,'
'이사장의 딸이라고?'
'아니, 선배의 아버지와 절친한 친구인데, 선배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이사장이 거의 뒤를 봐주고 있는 형편이야…'
그런 여자를, 멋도 모르고 건드리려는 '타로'일당들은 이 사실을 알면 어떻게 나올지…
나의 발소리를 감지한 선배가 문 쪽으로 나왔다.
"용현군…?"
"응, 나야. 선배."
나란 것을 확인하고 활짝 웃는 선배. 나는 그 함박웃음에 다시금 히로세의 말을 떠올렸다.
'유우짱은… 그 사람과라면 어울릴 것 같아. 그녀는 소녀(乙女,おとめ,오토메-사전상의 의미는 처녀지만, 의미를 강하게 하기 위해)거든'
'소녀…?'
'유우짱이 말한 발정이란 욕구를, 느끼지도 못할만치 순결한… 순진한 여자야.'
'그럼 사람이 아닌걸.'
나는 웃으며 그리 말했다.
'사람으로 보지마. 그럼. 천사로 생각해.'
'어쩌면 그런 느끼한 말을 하냐?'
'그만치 순결한 여자라니까.'
그리고 남자들에게 있어 순결한 여자를 더럽히는 것 만치, 흥분되는 것은 없는 것이다. 그것도, 윤간을 한다면…
타로 놈들은 그렇게 하려고 한다.
'내가 지켜주겠어…'
문득 미소짓는 선배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떠오른다.
그렇지만, 어째서? 내가 그녀를 지켜줘야 할 이유따윈 애초부터 없었다. 이사장에게 가서, 말해주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간단한 일을 나는 왜 안하고 있는 것일까. 추운 아침부터 떨어가면서까지.
'…천사는 누구한테나 지켜져야 하니까.'
말도 안 된다.
'선배를 그 놈들한테 줄 바에야, 내가 가지고 싶으니까.'
좀 낫다.
이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키즈나는 내 앞에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내용이란건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어제 저녁 메뉴, 오늘 아침의 날씨, 친구들 얘기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즐겁다. 그런 얘기를 하는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요."
"…응?"
"용현군은, 아빠 냄새가 나요…"
키즈나가 어느새 나의 제복 가슴께까지 얼굴을 갖다대고 있었다. 내 키가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177cm란 신장은 여기서는 제법 큰 축에 속했다. 키즈나는 아무리 크게 잡아도 160… 그것도 굽이 높은 구두다. 자연히 키즈나의 머리는, 내 턱 아래에서 머물렀다.
은은히 풍겨오는 샴프 향기…
눈 앞이 아찔해지면서, 가슴이 고동쳤다. 나는 뒤로 물러섰다.
"…?"
"아, 실례… 그럼 내가 그렇게 늙어보인다는 거야, 선배는?"
"난 보이지 않아요."
두근거림… '이 암컷이 딱이다'라는 신호.
"어릴 때 맡았던 아빠의 냄새가 난다구요."
어느샌가 '좋아해'버리게 된 것인가.
'…내가 …선배를…?'
바보 같은 생각하지 말자… 누구보다도 그 감정이 허황된 것임을 잘 알면서… 서로에게 허무만을 남기게 하는 감정인 줄 알면서…
"선배한테는 청국장 냄새가 나는데…"
"…네?"
선배는 당황해하며, 자신의 소매를 코에 갖다댄다. 풋. 귀엽다.
"…아, 안 나잖아요."
"풋, 하하하하."
이렇게 여자 앞에서 웃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기분이 좋았다. 좋다.
"장난이라구, 선배."
"…너, 너무해요. 그런 걸로 장난하지 마세요. 나 정말로 청국장 묻어도 보이지 않는데…"
퍽!
"아얏!"
코에 가져갔던 양 팔을, 갑자기 휘두르는 바람에 나는 안면을 강타당했다.
"앗-! 미안해요, 용현군! 이렇게 바로 앞에 있을 줄은…"
"크… 선배… 좋은 펀치 가지고 있네…"
"아이, 참-!"

"최근, 이상하네."
"뭐가요…?"
내 방에 마실 것을 갖다 주던 쿄코씨가 나를 둘러보며 한 소리다.
"뭐랄까… 들떠있는 것 같은데."
"쿨(cool)이 인생의 신조인 제가요?"
"그리 보이는데."
"어딜 봐서?"
"여자의 감이야."
"완전히 잘못 짚으셨습니다-"
나는 콜라를 들이켰다.
"…혹시,"
"…?"
"여자라도 사귀고 있는 거 아냐?"
푸웁-
제길, 더럽게… 콜라 조금 뱉어버렸다.
"그런가 보네. 아- 아- 그럼 나 어쩌지? 쓸쓸해서."
"…쿄코씨…."
"농담이야"
그녀는 의미있는 웃음을 짓더니, 계단을 내려갔다.

아침.
출장에서 다녀온 쿄코씨는, 피곤이 쌓였는지 내가 일어난 시간까지도 기척이 느껴지지 아니하였다. 그 덕에, 아침 정기 행사 역시 계속적으로 캔슬되고 있는 형편이다. 덧붙여, 아직까지도 나는 아침을 굶거나, 샌드위치로 개기고 있는 것이다.(아예 만들기 쉬운 샌드위치로 식사를 때우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그동안 일찍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된 나는, 쿄코씨의 기상 여부엔 개의치 않은 채 집을 나섰다.
'섹스는, 히로세하고 한 것이 마지막인가…'
그 날 이후로, 쿄코씨와도 하지 않았었다.(물론 그녀가 나보다 일찍 일어난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상당히 많이 참은 것이다.

'그건 그렇고, 정말… 대단하다고 해야 되나.'
나도 상당히 일찍 가는 편인데, 그 나보다 더욱 빠르게 등교해 있는 선배. 하긴 학교와 집 사이의 거리가 100미터도 안 되는 것 같으니.
…얼래?
선배가 집 대문 앞에 지팡이를 쥔 채로, 서 있었다.
"선배-"
나의 부름에 천천히 옆을 돌아본다. 각도가 미묘하게 틀리지만,(뭐랄까, 나를 보는 게 아니고 내 옆에 날아 다니는 파리를 보는 듯한) 어쨌든 나란 걸 알아차린 모양이다.
"용현군…?"
"아,나야."
"잘됐다…."
"설마…나 기다린거야?"
"네…."
"얼마나?"
"시계가 없어서… 잘…"
"…어쨌든, 가자."
"…네."

저벅저벅…
따닥, 타박. 따닥, 타박.
'저벅저벅'은 내 발소리이고, '따닥'은 지팡이 짚는 소리, 뒤이은 '타박'은 선배의 구두소리이다.
"그런데, 왜… 기다렸어?"
"심심해서요…."
"…?"
"혼자 가는 게 심심해서요."
100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걷는 데 심심해할 틈이 어디있어…?
"전, 느리니까."
"…"
맞다. 지팡이를 짚고 나서 걷는 선배는 내 걸음속도의 반 이상 느렸다. 지금은 내가 그 보조에 맞춰 걷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나란히 걷고 있지만.
"…이사장도 너무하시군, 차 정도 태워주면 어때서."
"아, 아니에요. 걸어 다니는 게… 건강에도 좋고… 도움이 되요."
"무슨 도움."
"계속 차를 타고 다니면 방향감각이 없어져서… 혼자선 아무데도 못 가요."
하긴 그렇다. 그렇지만, 너무 느린걸…
선배의 손에 눈을 돌린다. 지팡이를 쥔 손은 물론, 앞으로 약간 낸 왼손도 차가운 바람에, 빨갛게 얼어 있다.
"…"
나는 선배의 왼쪽으로 돌아가, 포켓 속에 넣었던 오른손을 꺼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
"이렇게 하면, 따뜻하고, 내가 잡아주면 더 빨리 가겠지?"
"…그렇네요."
학교 근처에, 현재 등교하는 학생이 없는 것이 정말로 다행이었다.

"책을 좋아해요."
취미가 뭐냐고 묻는 내 말에, 화색을 띄며 대답한 키즈나.
"독서?"
"네. 용현군은?"
"…나는 별로 책하고 친하지 않은걸. 교과서는 된다면 선생 앞에서 찢어버리고 싶다구."
"지루한가요?"
"선배도 쓸데없는 소리가 좌르륵 눈 아프게 적힌 종이를 보라구. 어떤 기분인가."
"지루해도 좋으니까 보이면 좋겠네요."
선배는 쓸쓸하게 웃었다. 이런, 나도 말을 좀 골라가면서 해야…
"도서관에도 점자책은 있지만."
"…점자책?"
"나같이 맹인을 위한, 더듬어 읽는 책이죠."
"…아."
"빨리 읽고 싶어도, 잘 안되네요."
확실히 더듬더듬 요철을 확인해 가면서 읽는 속도는 기대할 것이 못 되지.
"그래서, 어떤 책을 좋아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라든가, '폭풍의 언덕'…, '제인 에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같은거."
…우겍, 전부 다 클래식이잖아. 나 같으면 첫장도 넘기지 못할 책들이다.
"재밌어? 그게."
"재밌다기보단… 음… 낭만적이라고나 할까요…?"
"낭만적…?"
"베르테르의, 로테에 대한… 아응… 뭐랄까. 용광로같은 정열을 가진 사랑과 동경이…"
사랑…?
아아, 그것은 '발정'으로 설명하기엔 무리가 있는 감정. 왜냐하면, 단순한 '좋아한다'와는 닮았지만서도 조금 거리가 있으니까. 본능적이든, 충동적이든 단시간에 생기기엔 무리가 있는 것이니까.
―그래서, 소설 속에만 가능한, 현실에는 없는 것.
선배는, 그런 허황된 것을 동경하고 있는 것인가.
그러고 보니, '폭풍의 언덕'은 나도 조금은 본…
"…어?"
선배가 나의 등 뒤로, 고개를 약간 내민다.
"왜?"
"방금,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용현군처럼, 더 이상 올라오지 않네요. …아, 방금 내려갔어요."
"클래스를 착각한 멍청이겠지."
"그럴까요…?"
아무렴, 나처럼 히메카와선배를 보러 오는 인간이 어디있겠…
…있다.
"…'타로'?!"
"에? 에?"
나는 얼떨떨하는 선배를 내버려두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저 놈들, 아직까지 포기하지 않은 모양이다. 이 기회에, 선배가 얼마나 '무서운'여잔지 알려주지 않으면, 내가 없을 때 분명히…!
타타타타타탁!
있다. 저번의 그 화장실 쪽으로 가고 있었다. 녀석은 내 달리는 소리를 듣더니, 뒤돌아보았다.
"이봐, 너―!"
녀석은 나라는 것을 확인하자, 화장실로 냅다 달린다. 그렇지 않아도 제법 떨어져 있었는데, 그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거기 서, 타로―!"
타로인지 뭔지는 몰라도.
탁!
먼저 들어간 녀석은 화장실의 문을 굳게 닫아버린다. 나는 그저 그 문을 주먹으로 치면서, 소리지를 수 밖에 없었다.
"너희들이 무슨 짓 하려는지 다 안다. 그렇지만, 알아둬―!"
듣고 있는 건지는 모르지만.
"키즈나는 단지 이사장이 '알기만'하는 사이가 아니란 걸 말야!"
잠잠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발로 문을 꽝 찼다.
"한번만 더 나타나면, 내가 이사장에게 말할 테니까. 조심해!"
홈룸 시간이 될 때까지 숨어서 기다리는 방법도 있었으나, 좋게 말로 하고 끝낼 요량으로, 나는 그렇게만 말하고 화장실을 떠났다.

그리고 수십일이 지났다.
그동안 '타로' 녀석들은 보이지 아니하였다.
아니면, 나 몰래 뒤에서 나를 관찰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그 수십일 동안, 키즈나와 나의 친밀도는 더욱 올라가게 되었다.
아무리 친구라도, 보이는 자와 보이지 않는 자의 벽은 두꺼운 법.
내가 그 벽을 뛰어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선배 쪽에서 그 벽을, 나에게만 허물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쉬웠다.
그렇지만 나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째서 저런 착한 사람에게, 그리고 예쁜 사람에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인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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