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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의 후예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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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넷 야설 카인의 후예 7부에 관한 내용입니다.


2학기가 시작되었다. 하루에 한 시간씩은 꼭 들어 있는 수학 시
간. 그 수학 시간의 담당은 고로도 수학 주임이다. 고로도 선생은
원래 내년에 교감으로 승진하게 되었는데 이번 가을로 승진이 앞당
겨 졌다. 그래서 그의 위세는 더 거세었다.
수학 시간이다. 모두들 잠잠하다. 책장 넘기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
다. 감히 볼펜 소리도 내지 못한다.
고로도 선생은 가장 먼저 출석을 부른다. 방학 동안 잘 지냈느냐는
소리도 없다. 호명된 아이들은 한결같이 손을 번쩍 쳐들며 낭랑하게
예라고 소리친다. 여자라고 예외는 없었다. 그런데 류지오가 결석이
다. 고로도 선생은 여지없이 류지오의 출석표에 작대기를 쭉 그려
놓는다.

카인의 후예 7


고로도 선생은 출석부를 덮고 수업을 시작한다. 그가 가르치는 반
은 다른 반보다 평균 점수가 월등히 높다. 수업 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 일이 터졌다. 류지오가 들어온 것이다.
"이 바보 같은 놈! 어딜 같다 이제 들어오는 거야!"
고로도 선생은 나이답지 않게 날카롭게 소리친다. 이제까지 진행되
던 수업이 중단되었다.
"네 멋대로 시간을 빼 먹다니 용서할 수 없다. 저리 가서 손들고
있어!"
"제 멋대로 시간을 빼 먹은 것이 아니니 잘못한 것은 없군요."
고로도 선생에게 말대꾸하는 사람은 이 학교에 단 두 명뿐이었다.
교장과 류지오였다. 교장이야 고로도보다 나이도 많고 상사니까 그
가 잘못할 경우 질책도 하지만 류지오는 무슨 일이던지 말대꾸였
다.
"너! 어서 무릎 꿇고 손들고 있어!"
"전 가방을 가지고 온 것뿐입니다."
류지오는 자기 자리로 당당히 걸어갔다. 모두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고로도 선생의 화난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서도 호유도와 고로히찌가 류지오에게 눈치를 준다. 도꾸미
의 속은 타 들어간다. 도꾸미 옆에 앉은 리에 역시 안타깝기는 마찬
가지다.
류지오는 가방을 들고 다시 걸어 나왔다. 류지오가 좁은 책상 사이
를 걸어 나오기도 전에 고로도 선생의 커다란 지휘봉이 날아와서 어
깨를 내리쳤다. 그리고 발길질에 채여 류지오는 넘어진다.
"이 교실에 들어온 이상 내 말은 법이다. 어서 저리 가서 무릎 꿇
고 손들어!"
"...!"
류지오는 고로도 선생의 눈을 바로 노려본다. 더욱 화가 난 고로도
선생은 쓰러져 있는 류지오에게 다시 발길질을 하기 시작한다. 거의
십분 동안이나 실랑이가 벌어진다. 류지오가 고로도 선생의 지휘봉
을 팔뚝으로 막아 부러뜨리자 더욱 화가 난 고로도 선생은 가죽 혁
대를 다시 꺼내서 류지오를 내리치고 있었다.
종이 쳤다. 고로도 선생은 마침 종이 치면 여지없이 또 교실을 나
갔다.
"이 미친 개새끼야! 교무실로 따라와!"
류지오는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류지오의 성질 역시
대단했다. 고로도 선생이 교실문을 열고 나가자 바로 자신의 가방을
교실문 창문에다 집어던져 버린다. 유리 파편이 튀어 바닥에 떨어진
다. 거의 이성을 잃은 고로도 선생은 다시 교실로 들어와서 류지오
를 발로 차기 시작한다. 류지오는 고로도 선생의 발길질을 한번도
피하지 않았다. 그래서 교복은 물론 류지오의 몸 전체가 말이 아니
다. 지나가던 선생이 고로도 선생을 말린다. 후에 선생도 고로도 선
생에게 사정하며 매달린다.
그 때 체육 선생이 달려온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오늘 시합에 나갈 아이를 이렇게 만들어 놓
으면 어떡합니까?"
고로도 선생은 젊은 체육 선생을 노려본다. 체육 선생도 그 기에
질려 눈길을 돌린다. 고로도 선생은 말리고 있는 다른 선생들의 손
길을 뿌리치고는 씩씩거리며 가 버린다.
후에는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 류지오의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
준다.
"류지오, 양호실까지 걸어갈 수 있겠니?"
"네."
류지오는 후에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선다. 양호 선생이 류지오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사람이 어떻게 돼 먹었기에 이렇게 애를 개 패듯 해요!"
양호 선생도 화가 나서 소리친다. 류지오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
다. 후에는 류지오의 등에다 얼굴을 박고는 마구 울음을 터뜨린다.
체육 선생이 양호실로 들어와서는 류지오의 상태를 살펴본다.
"괜찮겠니?"
"네. 괜찮아요. 정말 죄송합니다."
"..."
이번 시간이 수학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체육 선생도 류지오더
러 지금 가방을 가지고 오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로도 선생
의 성미를 그도 잘 아는 터라 수업 시간만은 수상이라도 자기 교실
에 못 들어오게 할 사람이었다. 상황이 왜 이렇게 됐는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다.
오늘부터 춘계 고등학교 육상 대회가 4일간 열린다. 육상부로 활동
하지는 않지만 류지오의 100미터 주파 능력으로는 충분히 메달을 노
릴 만했다.
류지오는 체육부 아이들의 학교 버스를 타고 동경 종합 경기장으로
갔다. 총 50여 학교에서 참가하는 큰 대회였다. 류지오는 오늘 두
번의 예선전만 치르면 된다.
류지오와 함께 100미터에 뛸 선수는 가노야마가 있었다. 가노야마
와 류지오는 중학교 때부터 아는 사이였다. 가노야마의 아버지는 실
업자에다가 술 주정꾼이었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 이미 가출해 버렸
고 집안 형편은 실업 수당과 보조금으로 겨우 밥만 먹고 지낼 정도
였다. 류지오는 가노야마를 무척이나 좋아했지만 가노야마는 류지오
를 꺼려하는 입장이다. 천성적으로 활발하다고는 하지만 아무나 가
깝게 지내지 않는 류지오는 가노야마 같은 묵직한 친구를 원했지만
가노야마는 언제나 모자랄 것 없고 게다가 자신의 인생길을 재미로
들락날락거리는 류지오가 미운 것이다. 지금도 자신은 류지오보다
찬밥 신세였다. 하지만 류지오가 고로도 선생에게 심하게 맞아 상처
투성인 것을 보고는 조금 안된 생각이 들었다. 경기장에 도착해서
류지오가 가노야마의 손을 잡는다.
"가노야마. 이번에 우승은 네 몫이야. 열심히 해라. 만약에 네가
결승전까지 올라오지 못하면 나도 포기할 거야."
류지오의 말에 가노야마도 승부 건성에 손목을 마주 잡았다.
"너무 웃기지마! 네 놈이나 걱정하라구!"
"좋았어!"
가노야마와 류지오는 공중에서 손을 마주 쳤다. 류지오는 2조에서
일등을 했다. 가노야마 역시 3조에서 일등을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예선 경기에서 류지오는 1조에서 일등을 가노야마는 2조에서 일등을
했다. 두 번째 경기에서 가노야마가 대회 신기록을 경신했다. 10.6
4초다. 상당한 기록이었다. 체육 선생은 무척 기뻤다. 적어도 100미
터에서는 우승, 준우승은 따 놓은 것이다. 류지오를 200미터에서 제
외시킨 것은 류지오의 체력 때문이다. 늘 운동을 하는 육상부와같이
취급해서는 안된다. 가노야마는 역시 200미터에서도 예선을 모두 통
과했다.
집으로 돌아온 류지오는 조금 피곤했다. 다른 아이들은 아마 지금
도 수업을 받고 있을 것이다.
후에 선생한테 전화가 왔다. 먼저 괜찮냐고 묻는다.
"괜찮아요. 피곤해서 집으로 바로 왔어요."
"음. 예선전을 쉽게 통과했다며!"
"네. 그런데 가노야마라는 녀석이 상당하던걸요."
"가노야마?"
"네. 우리 학교 육상분데... 이번에 저와 백미터에서 우승을 다툴
거예요."
"다른 학교 아이들도 잘할텐데..."
"걱정 마세요. 황금 메달을 받아서 선생님께 드릴게요."
"고맙다...!"
류지오는 후에의 전화를 받고는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류지오를 위로해 주려는 사람은 후에뿐만이 아니었다. 호유도와 고
로히찌가 그를 당구장으로 불러냈다. 이 곳 주인은 이들 셋을 잘 안
다. 고등학교 일 학년 때부터 이 곳 당구장을 들락날락거렸다. 단골
손님이 셈이다. 이 곳은 고등학생들의 휴식처였다. 주인은 이들 모
두를 아주 친절하게 받아 주었다.
고로히찌가 담배를 꺼낸다. 학교 내에서도 담배를 피는 녀석은 고
로히찌뿐이다. 호유도는 학교에서 담배를 필 만한 배짱 큰 놈이 못
되고 류지오는 아직 담배에 물들지 않았다.
"류지오! 넌 이제 300 수준이야! 제대로 놓으란 말야!"
"임마. 너희들은 어떻고? 백이 뭐냐!"
"좋아 그럼 우리도 150할 테니까, 너도 300해라."
"좋았어."
류지오는 이 곳 주인보다도 훨씬 잘 쳤다. 아마 여기 있는 사람 중
에서 류지오보다 더 잘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류지오는 이 곳에
서 3년 전에 개인 교습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니 사실 중학교 때부
터 이 곳을 찾았던 것이다. 이 곳 주인장과 친척 되는 사람이 있었
는데 그는 류지오가 연습구 치는 것을 한번 눈여겨보고는 밤마다 새
로운 당구 세계로 인도해 준 것이었다. 그의 이름은 가와가미 가쓰
오였다. 가쓰오는 젊은 나이에 오사카 예술당구경기에서 세 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예술구의 명인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몇 달간이나 배
운 실력이었다. 류지오가 그에게 당구를 배웠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
랐다. 가쓰오는 그 당시 무슨 이유로 총상을 입었고 상처를 치료하
기 위해 이 곳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류지오가 그와 만날 때는 열
두 시를 넘어선 후였다.
류지오는 바로 쳐낼 수 있는 것도 어렵게 친다. 정확성을 익히기
위해서 늘 그렇게 연습을 해 왔다.
류지오가 그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오는 길에 도꾸미가 골목길에 서
있었다. 그 곳은 큐리라는 개가 살고 있는 집이다. 아마 이 동네에
서는 가장 큰 집이리라.
"이리로 가자."
류지오는 도꾸미의 손을 잡고 놀이터로 끌고 갔다. 놀이터는 이미
연인들과 밤 바람쐬러 나온 아줌마들과 아기들로 시끌벅적했다.
"류지오 괜찮니?"
"뭘?"
"오늘 학교에서 수학 시간에...."
"괜찮아. 그것 때문에 날 기다렸니?"
"응."
류지오는 계속 도꾸미의 손을 잡고 있었다.
서로 아무 말도 없자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렀다.
"류지오. 그럼 나, 갈게."
"조금만 더 있다가."
도꾸미는 벽에 기대어 서서는 자기 발만 내려다본다. 류지오는 도
꾸미의 손을 만지작거린다.
"지금 뭐하고 오는 길이니?"
"호유도 녀석이랑 있다가 오는 길이야."
"네 입에서 담배 냄새나."
"그래?"
"응. 너 담배 피니?"
"아니. 하지만 호유도와 고로히찌가 피니까 나도 가끔은..."
류지오는 자기는 담배도 안 가지고 다닌다는 것을 보여주려는지 주
머니를 뒤집어 보인다.
류지오는 도꾸미의 집까지 함께 가 주었다. 네 블록쯤 되는 거리였
지만 금방 오고 말았다.
"내일 보자."
"음. 잘 가."
도꾸미가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돌아섰다.
류지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큐리라는 개가 사는 그 집을
지나게 되었다. 늘 집을 오갈 때 지나가는 길목이니 지나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집이다. 그럼에도 외벽은 흰색 페
인트가 바래져 회색으로 변해 있고 마치 사람이 살지 않은 듯 언제
나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학생."
비단결처럼 털이 난 조그만 개를 안고 있는 한 여자가 류지오를 불
렀다.
"안녕하세요?"
한때 그림까지 그려 준 적이 있어서 류지오는 깍듯이 인사를 한
다. 류지오가 다가가자 큐리가 으르렁거린다.
"참 오랜만이네요. 그렇지요?"
"네."
"밤인데도 무척 덥군요. 우리 집에 가서 찬 음료수라도 한잔 먹지
않겠어요?"
"음..."
"바쁘지 않으면 한잔 먹고 가요. 저번에 학생이 그려 준 그림은 액
자에 넣어 두었어요. 그것도 보고..."
"그럴까요."
류지오가 그려 준 그림은 거실에 걸려 있었다. 4절지 켄트지에 그
린 그림이라 그렇게 가치 있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 보니
너무 서툰 감이 많았다. 류지오는 시간 나면 그녀의 전신상을 다시
그려 주고 싶었다. 특히 큐리를 안고 있는 모습 말이다. 조금 전 가
로 등불 밑에서 큐리를 안고 있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자. 여기..."
큐리의 주인은 오렌지 쥬스를 두 잔 가져왔다. 류지오는 이 집에
그녀 혼자 산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렇게 큰 집에 여자 혼자라? 귀신 나올 것 같군!'
찬 오렌지 쥬스를 뱃속에 넣은 탓인지 소름이 쫙 끼쳤다.
"이제 방학도 끝났겠군요?"
"네. 오늘 개학했어요."
"재미있어요?"
"뭐가요?"
"학교 가는 거요."
"별루요."
류지오는 그녀를 바로 쳐다 볼 수가 없었다. 부드럽고 자상해 보이
지만 어쩐지 어렵게 느껴지는 얼굴 인상이었다. 특히 그녀의 얼굴은
예전보다 핏기가 더 없어 보인다. 마치 병에 걸린 사람처럼 말이
다.
"아줌마 이름은 뭐예요?"
"이름? 왜요?"
"전 나가야마 류지오입니다. 저번에 제 이름은 밝혔지만 아줌마 이
름을 듣지 못했잖아요?"
류지오는 다시 정중하게 묻었다.
"난 기노시다 아끼꼬예요."
"그럼 앞으로 아끼꼬씨라고 불러도 될까요?"
"좋으실 대로..."
아주머니라고 부르기엔 너무 젊고 아름다워 보였다.
"아끼꼬씨. 전 이제 집에 가 봐야겠어요."
"그래요? 참 학생한테 줄 것이 있어요."
아끼꼬는 자기 방으로 가더니 포장한 상자를 가져온다.
"이건 저 그림에 대한 보답이에요."
"뭘까요?"
류지오는 포장지를 뜯어본다. 조그만 각 안에 반지가 들어 있었
다. 몇 가지 문양이 그려진 은반지였다. 그렇게 비싸 보이지 않아
류지오 역시 부담이 없었다. 겨우 새끼손가락에 들어갔다.
"고마워요. 나중에 시간 있을 때 와서 좀 더 멋지게 그려 줄게요.
이만 갑니다."
"잘 가요."
류지오는 다시 그 큰 집을 둘러보고는 집으로 향해 뛰어갔다.

마지막 예선전이 남았다. 가노야마의 얼굴에 어제 못 보던 상처가
있었다. 류지오는 혼자 앉아 있는 가노야마 옆자리에 앉는다. 가노
야마에게도 친구가 별로 없는가 보다.
"잘 잤냐?"
"..."
가노야마는 아무 말도 없다.
"체육 선생님이 오늘 너랑 같이 뛴다고 하던데..."
"겁나?"
"아니. 적어도 3등 안에 들면 결승전까지 갈 수 있으니까... 난 이
번에 전력으로 달릴 거야. 너도 그럴 거지?"
아마 그럴 것이다. 그는 달리기 말고는 할게 없으니까 말이다.
예선전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가노야마가 보이지 않았다. 가노야
마의 옷가방은 그대로 있었다. 류지오는 가노야마를 찾으러 화장실
로 가 보았다. 그 곳에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갑작스런 설사 때문에
곤욕을 치르지나 않나 해서 시간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가노야마. 너 여기 있니?"
류지오는 닫혀 있는 화장실 문을 두드려 본다. 안에서는 아무런 대
답이 없었다.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려 보았다. 여전히 대답이 없다.
"가노야마가 이 안에 있다면 아무 말 하지 말고 딴 사람이면 어서
대답하라!"
역시 아무 말도 없었다. 류지오는 칸막이를 잡고 올라가서 안을 들
여다본다. 가노야마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너 뭐 하냐? 시간 다 됐는데..."
"..."
"야! 지금 뭐 하는 거야! 딸딸이 치냐?"
"..."
"무슨 일이야?"
"자식아! 날 가만 둬!"
가노야마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절름거린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다리가 왜 이래?"
"난 오늘 달릴 수 없어!"
"왜 그래?"
"어제 녀석들이랑 싸웠어. 다리를 삐어서 달릴 수가 없어."
"시합 날에 싸움은 왜 하냐! 이 멍청이 같은 자식아!"
"누가 싸우고 싶어 싸우냐!"
가노야마는 류지오를 확 밀어붙이고는 절뚝거리며 걸어 나간다. 류
지오는 잔디 위에 앉아 있는 가노야마 곁에 앉았다. 백미터 예선전
이 곧 시작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어서 가 봐."
"아니. 나도 이번에는 안 뛸 거야."
"무슨 말이야. 어서 가 봐."
"싫어. 임마."
"제발 가서 내 몫까지 달려 달란 말이야!"
"너...?"
"그래 우린 친구야. 제발 친구의 부탁을 들어줘. 네 몫까지 달려
달란 말이야."
"좋아. 그럼 같이 가자."
류지오는 가노야마를 부축해서 경기장으로 갔다. 체육 선생이 그들
을 보고는 다급하게 뛰어온다.
"너희들 도대체 어디 간 거야! 가노야마! 그리고 넌 왜 그래?"
"가노야마는 다리를 삐었어요."
"다리를 삐다니?"
"화장실에 물이 고여 있어서 넘어져 있는 것을 제가 데리고 왔습니
다."
"이런... 어쩌지."
체육 선생은 가노야마의 발목을 보더니 도저히 안되겠다며 고개를
젓는다.
"류지오. 너라도 어서 가. 빨리."
가노야마가 재촉한다.
"그래. 류지오 넌 어서 옷 갈아입어."
"네. 그리고 가노야마. 우린 친구야. 그걸 잊지마!"
방송에서 가노야마의 이름이 불렸지만 그 자리는 비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류지오의 이름이 불리자 류지오가 손을 들었다. 모
두 여섯 명이 뛰게 된다. 세 명은 탈락해야 한다. 류지오는 분명히
자신의 일등을 예감했지만 예선전에서 겨우 3등을 했다. 하지만 다
행히도 결승전에 오를 수는 있었다. 하지만 다음날 결승전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지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선생님. 저 먼저 가 볼게요."
"그래. 하지만 내일이 결승전이라는 걸 잊지 말아라. 푹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거 잊지마."
"네."
류지오는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학교로 왔다. 지금은 점심 시간이
다. 호유도와 고로히찌가 교실에서 함께 점심 도시락을 먹고 있었
다. 류지오는 식당으로 내려가 본다. 식당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작거린다. 이런 곳에서 밥이 넘어가는지 이해가 안된다.
류지오는 학교 정원을 돌아다녔다. 드디어 도꾸미를 발견했다. 도꾸
미는 리에와 함께 앉아 있었다.
"도꾸미!"
"류지오!"
한참 리에와 이야기를 나누던 도꾸미가 반갑게 류지오를 쳐다본
다.
"리에도 안녕!"
"음. 근데 왜 학교에 안 나오니?"
"아직 몰라? 나 이번 춘계 육상 대회에 출전하잖아. 도꾸미! 나 내
일 결승전이야! 보러 와 줄 거지?"
"내일?"
"음. 내일 토요일이잖아. 두 시야."
"꼭 갈게!"
"리에도 함께 와. 그럼 점심 잘 먹어! 백미터 결승전이야!"
"류지오!"
도꾸미가 부르는 소리에 한번 뒤돌아보고는 손만 흔들어 주고는 그
냥 가 버린다.
"도꾸미. 너 정말 류지오를 좋아하니?"
"응. 류지오는 다른 애들과는 틀려. 다른 애들은 여전히 애들 같
아."
"후에 선생님이 류지오를 좋아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
"그게 무슨 말이니?"
"후에 선생님이 왜 말썽꾸러기 류지오를 감싸는지 알겠니?"
"도대체 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니?"
"어제 말야. 고로도 선생님한테 매달리던 모습... 만약 고로도 선
생님이 계속 류지오에게 발길질을 했다면 후에 선생님이 대신 맞았
을 지도 몰라..."
도꾸미는 리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계속 말을 듣는다.
"아마 너보다도 후에 선생님이 류지오를 더 생각하는 지도 몰라."
"그럴 거야. 난 류지오가 맞는 것을 그냥 지켜만 봤으니까..."
"그건 네 탓이 아니잖아. 그 일로 자책해선 안돼! 내 말은 류지오
와 선생님이 서로 좋아하는 사이, 아니면 그 이상의...."
"말도 안돼! 단지 류지오가 불쌍해서 류지오를 더 깊이 위하는 것
뿐이야!"
"그럼 너도 그러니? 류지오가 불쌍해서 좋아하는 거야!"
리에의 반문에 도꾸미는 입을 다문다. 도꾸미는 후에 선생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단지 자기보다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언제나
귀공주 같은 차림의 리에가 은근히 류지오를 좋아하고 있다는 데 마
음에 걸릴 뿐이다.
"난 네가 오히려 류지오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아!"
"무슨 엉터리 같은 말이니! 누가 그 따위 건달 같은 애를 좋아하
니!"
리에는 화가 나서 일어선다.
"너의 지금 행동이 그걸 증명하는 게 아닐까?"
"흥! 넌 정말 몹쓸 애구나! 너에게는 류지오 같은 애가 백마 탄 기
사로 보일 지는 모르지만, 난 안 그래! 그런 애를 나와 견주다니!"
리에는 정말 화가 나서 가 버린다.

집으로 가는 길에 류지오는 도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혹시나 가노
야마처럼 다리를 다칠까 걱정스러웠지만 어쩐지 몸이 근질거리는 것
이 땀을 흘리고 싶었다.
"이게 뭐야! 이 자식들아!"
류지오는 도장에서 행패를 부리는 두 명의 사내에게 소리치고는 달
려들었다. 저번에 겐도를 병원 신세지게 한 녀석들이다. 이젠 겐도
도 이 도장에 안 왔다. 하지만 몇몇 아주머니와 대학생들이 호신술
이라도 배울 양으로 꽤 많이 찾고는 있었다. 류지오가 들이닥치자
두 사내는 방향을 돌려 류지오에게 몽둥이를 휘두른다. 류지오는 매
트에 떨어져 있는 접는 의자를 집어들어 몽둥이와 맞선다. 다른 한
녀석이 단도를 꺼내서 류지오의 옆구리를 찔러 들어온다. 류지오는
의자를 들고 있어서 제대로 피할 수가 없었다. 류지오는 오른쪽 겨
드랑이로 찔러 들어오는 손을 꽉 끼더니 한바퀴 몸을 굴린다. 그렇
게 한바퀴 몸을 굴리는 동시에 칼을 든 사내의 손목은 그대로 꺾여
버려 고통스런 소리를 지르며 바닥을 둘둘 구부르게 되었다.
류지오가 일어서서 천천히 다가오자 나머지 한 사내는 조금씩 뒤로
물러선다.
"자식! 겁먹기는!"
류지오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무기가 걸려 있는 곳을 가리킨
다. 그 옆에 있던 여자가 류지오가 가리키는 것을 던져 준다. 쌍절
곤이었다. 도장이 그렇게 크지 않아 긴 봉을 쓰기에는 부적합했다.
류지오는 쌍절곤을 잡더니 한바탕 멋진 춤을 보여 준다.
"이게 뭔지 알아! 부르스 리의 필사의 무기. 쌍절곤이라는 거다!"
쌍절곤은 휭휭 소리를 내며 사내의 이곳 저곳을 강타한다. 류지오
는 쌍절곤을 머리 위로 한바퀴 휭 돌리더니 자세를 낮추며 사내의
무릎 뒤 종아리를 내리친다. 그게 마지막 강타였다.
두 녀석을 병신으로 만들어 놓고는 도장을 한번 둘러보니 엉망으로
어질러져 있었다. 커다란 거울도 두개나 깨어져 있었고 몇몇 사람들
은 그 녀석들에게 얻어맞았는지 입가에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딜 도망가?"
류지오가 다시 쌍절곤으로 쓸쓸 기어 도망가려는 두 녀석의 허리를
내리쳤다.
"으읍! 제발 그만 때리십시오!"
"이 자식아! 맞을 짓을 했잖아!"
류지오는 좀 약하게 그들의 머리를 쌍절곤으로 때린다. 시원한 소
리가 울려 퍼진다. 류지오는 그들 둘을 벽에 세워 놓고는 후센 사부
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 중에 류지오에게 고맙다고 감사하는 사
람이 있었다.
"정말 고마워요. 전 이 곳에 며칠 전에 왔는데 저 때문에 이렇게
된 거예요. 저 사람들이 밖에서 절 집적거리길래 바로 도장으로 들
어왔어요. 그런데 여기까지 따라 들어와서 이렇게 된 겁니다. 정말
고마워요."
"저 녀석들! 예전에도 사부님이 없을 때 들어와서 행패를 부린 적
이 있어요. 임마! 너희들 사부님 대신 나한테 걸린 걸 다행으로 여
겨라!"
후센 사부는 동경 제일의 무술가로 인정받은 적이 있다. 한때는 야
꾸자에 몸을 담고 있었다고도 한다. 지금은 나이가 50줄을 훨씬 넘
겨 이 곳에서 작은 도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
름을 듣고 찾아오고 있었다. 류지오는 아직 자신의 사부의 진짜 실
력을 본 적이 없다. 그에게 많은 기술과 무예를 익혔지만 직접적으
로 대련도 해 본 적이 없다. 아마 상대는 안되더라도 한번쯤은 겨뤄
보고 싶었다. 그리고 때때로 후센 사부와 무예를 겨루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때도 나이 핑계 등으로 대련을 피했
다. 하지만 언젠가 후센 사부가 일본도로 검무하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빠르고 날카로움에 류지오 역시 섬뜩할 정도였다.
"칼이란 잔인할 정도로 무서운 것이다. 넌 절대로 칼을 잡지 말아
라!"
후센 사부는 다시 그 칼을 칼집 속에 집어넣고는 다시는 꺼내지 않
았다. 후센 사부는 일곱 시에 맞추어 들어왔다. 그 때부터 원생들의
연습 시간이다. 다른 원생들도 그 시간에 맞추어 모두들 모여 있었
다.
후센 사부는 류지오가 붙잡아 둔 두 괴한을 보고는 너그럽게 용서
해 준다.
"오늘 있었던 일은 피차간에 많은 피해를 줬으니 이만 돌아가시지
요."
그들의 보복이 무서워 그렇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 타고난
성품 탓이겠지 하고 생각하고 류지오는 도장을 나왔다. 솔직히 자신
의 손수가 조금 사나웠던 것은 사실이다. 아마 그들은 몇 달 동안은
병원 신세를 져야 할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류지오는 내일 있을 경기를 위해 푹 쉬기로 했다.
사도미가 일찍 집에 돌아와 있었다.
"일찍 왔네?"
거실에 앉아 있는 사도미에게 류지오가 말을 건다. 그러자 사도미
는 놀리는 듯한 목소리로 딴소리를 한다.
"넌 참 좋겠다."
"무슨 말이야?"
"널 찾는 여자가 수두룩하던데..."
"어떤 여자?"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이라고 전화 왔고... 도꾸미, 또 리에라는
애한테도 전화 오더구나."
"무슨 일이지?"
류지오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며 다시 반문한다.
"류지오 이리와 봐!"
"왜 이래?"
사도미는 류지오의 허리띠를 풀고는 지퍼까지 내린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우리 침대에서 하는 것이 어때?"
"그게 아냐! 난 단지 네 물건이 얼마나 큰지 한번 보려는 것뿐이
야!"
"그 때 한번 했잖아."
"그 때는 어두워서 자세히 못 봤단 말야!"
팬티를 끌어내리자 덩그런 물건이 드러난다.
"음...!"
사도미는 류지오의 물건을 손으로 끄집어내고는 아무렇게나 어루만
진다. 그러자 물건은 순식간에 발기해 버린다.
사도미는 탄성을 지른다.
"너 그러고 보니 괜찮은 물건을 지녔구나!"
"날 이렇게 만들어 놓았으니 책임져야 해!"
"넌 언제 포경했니?"
사도미는 류지오의 귀두를 만지면서 묻는다.
"중학교 올라와서."
"난 내 사촌 동생이 이렇게 훌륭한 물건을 가진 것에 무척 자랑스
러워... 호호호!"
그러면서 사도미는 이층 자기 방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고 보
니 2층에서는 사도미의 친구가 그 짓거리를 모두 보고 있었다. 류지
오가 따지려는 듯 2층으로 꿍닥꿍닥 올라가고 있는 동안 현관 벨이
울린다.
"누구십니까?"
"나야."
도시에의 음성이다.
도시에가 들어오자 사도미와 그 친구가 나와서 인사한다. 사도미의
친구는 무척이나 애띠고 귀여워 보인다. 사도미는 그 애를 자신의
단짝 기리꼬라고 소개한다.
도시에는 류지오를 보며 할 말이 있다는 듯이 계속 바라본다. 사도
미는 자신의 친구 기리꼬를 데리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고 도시에는
류지오를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류지오. 네 방으로 와. 이 엄마가 할 말 있다."
도시에는 방으로 들어가더니 핸드백을 침대 위에 툭 던져 놓고는
가장 자리에 걸터앉는다.
"잠시 눈감고 있어."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지만 더운지 옷을 갈아입으려고 그렇게 말
했다. 도시에는 옷장 문을 열고는 시원스레 보이는 가운을 걸쳐 입
는다.
"너! 말썽만 피울 거니?"
"무슨 말이에요?"
"학교에서 수학 선생에게 대들었다며!"
"누가 그래요?"
"수학 선생이 우리 가게로 전화를 주더구나!"
도시에는 수학 선생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무척이나 화가 난 표
정을 짓는다.
'아마 내 욕을 실컷 했겠지! 나쁜 놈의 영감탱이!'
"도대체 어쩌려는 거니. 한번만 더 그런 일이 있으면 널 퇴학시켜
버리겠다고 하더구나!"
"난 잘못한 것이 없어요. 그리고 수학 선생이 무슨 재주가 있어서
퇴학을 시킵니까?"
류지오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도시에는 엄한 눈초리로 바
라보더니 말한다.
"난 내가 선생님들한테까지 그렇게 당돌하게 구는지 몰랐구나!"
도시에는 열이 올랐는지 손으로 부채질을 한다.
"휴우! 너 또 그럴 거니, 안 그럴 거니?"
"네가 뭘 그랬다는 거죠?"
"류지오! 선생님은 부모와 같은 분이야! 넌 내가 매질하면 회초리
를 잡아 부러뜨릴 거니?"
도시에는 더욱 큰 소리로 소리친다. 아마 사도미의 방에까지 울릴
듯이 컸다.
류지오는 그 소리에 더욱 부아가 치민다. 언제 자신이 회초리를 잡
아 부러뜨렸는가. 나무 작대기가 부러질 정도로 내리친 사람은 그
영감탱이가 아닌가.
"만약 그 인간이 내 부친이라면 법적 소송을 걸어서라도 부자 관계
를 끊겠어요!"
류지오도 지지 않고 그렇게 소리친다. 워낙 류지오가 거세게 나오
자 도시에는 속을 누그러뜨리고 특유의 부드러운 말투로 타이른다.
"내가 알아보니 그 분이 곧 교감 선생님이 된다며... 그런 분한테
대들면 되니?"
그 말은 다시 류지오의 성미를 건드린다.
"그 노물이 교감이 된다니!"
도시에는 류지오의 그런 험한 말에 참지 못하고 뺨을 때린다. 류지
오는 피할 수 있었지만 그대로 맞는다. 짝 소리가 워낙 크게 울려
퍼져서 도시에는 다시 안타까운 마음에 류지오를 끌어안는다. 어렸
을 때, 매는 몇 번 들었어도 뺨을 때린 적은 없었다.
"류지오. 난... 내 아들이 고등학교도 졸업 못 하는 꼴을 도저히
못 본다."
울음소리에 가까운 그 말에 류지오는 누그러진다.
"걱정 말아요. 아직은 내 편이 더 많으니 맘대로는 안될 겁니다."
도시에는 류지오의 엉덩이를 때려 주며 말한다.
"제발 고분고분해지거라. 학교는 집과는 달라! 내 맘대로는 안 된
다구!"
"걱정 말아요. 그리고 내일 종합 운동장에 와 볼래요?"
"그 긴 왜?"
"내일 내가 100미터 결승전에 나가거든요."
도시에는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류지오는 고로도 선생과
의 마찰이 있었던 날을 대충 이야기해 준다. 도시에도 그 이야기를
듣고는 속으로 마음이 저려 왔다.
"류지오, 어쨌던 선생은 선생이야. 내가 자꾸만 대쪽같이 굴면 이
엄마가 학교에 가서 빌어야 할 판이다. 알겠지?"
"알겠어요."
도시에는 자기 보다 키가 더 큰 아이의 뺨을 토닥여 준다.
"내일 시합이 있으니 저녁에 맛있는 걸로 해 줘야 해요!"
류지오는 빙긋이 웃으며 말하고는 나간다. 사도미의 방을 지나칠
때 안에서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 싶어 들어보니 학교 총각 선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도미!"
류지오가 부르자 사도미는 방문을 열어 준다. 류지오는 아까 당한
일이 있어 복수할 참이었다.
"엄마가 좀 보자고 하던데...!"
"왜?"
"몰라!"
류지오는 무뚝뚝하게 말한다. 사도미가 계단을 내려가서 도시에의
방문을 두드리는 것을 보고는 사도미의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안에서 문을 잠궈 버린다.
기리꼬는 조금 당황한 눈빛으로 류지오를 바라본다.
"아까 뭘 봤어?"
류지오는 대뜸 반말을 한다. 사도미가 자기보다 몇 달 일찍 태어나
누나라는 소릴 듣지만 그래도 같은 3학년이다.
"뭘?"
"둘이서 짜고 한 짓이야? 아니면 사도미가 그러자고 한 거야?"
"뭘...?"
기리꼬는 커다란 눈을 껌뻑껌뻠거린다.
"좋아. 그럼 자세히 보라구!"
류지오는 바지의 혁대를 푼다. 바지를 끌어내리고 팬티까지 와락
끌어내리려고 하자 기리꼬가 두 눈을 질끈 감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류지오는 빙긋이 웃고는 말한다.
"이제 내 물건을 보여줬으니 이제 그 쪽 차례!"
"난 아무 것도 안 봤어!"
"거짓말하지 마. 손가락 사이로 다 보고 있잖아!"
"정말이야! 넌 팬티도 내리지 않았잖아!"
손가락 사이로 보긴 본 모양이다.
"거 봐! 손가락 사이로 그걸 보려고 했잖아?"
"난..."
류지오가 다가와 어깨에 손을 짚자 기리꼬는 흠칫 놀란다.
"자 어서 보여 줘! 그래야 피장파장 서로 억울할 것이 없지!"
사도미는 도시에의 방에 들어가서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소
식이 없다. 기리꼬는 난감했다. 하지만 류지오의 요구는 결코 들어
줄 수 없다.
"그럼 난 그 쪽의 가슴이라도 한번 만져 봐야겠네!"
"안돼!"
기리꼬는 지레 겁을 먹고 두 손으로 가슴을 감싸 안는다.
"그럼 왜 남의 물건에 눈독을 들여! 난 빚지고는 못 사는 성미니
지금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류지오의 그 말은 효과가 있었다.
음식 냄새가 풍겨 왔다. 사도미와 함께 도시에가 부엌에서 고기를
굽고 있는 모양이었다.
"자 어떡할 거야! 정 안되면 소리쳐! 난 나중이야 어떻게 되든 상
관하지 않으니까!"
기리꼬는 자기가 소리를 지르더라도 방문이 잠겨 있어 사도미가 도
와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는 류지오와 협상하기로 결정했다.
"알았어. 그럼 어서 만져 봐!"
"옷 위로 만지면 무슨 재미가 있어!"
류지오는 손가락으로 기리꼬의 어깨를 살며시 누른다. 브래지어 끈
이 느껴진다. 기리꼬는 조금 망설이더니 티셔츠를 가슴 위까지 끌어
올린다. 기리꼬는 자신의 티셔츠 자락을 끌어올려 잡고는 류지오가
행동하기를 기다린다.
류지오는 쪼그리고 앉더니 기리꼬의 유방을 가리고 있는 브래지어
를 살펴본다. 아무래도 등뒤의 호크를 벗겨서 풀어야 할 것 같았
다. 하지만 서투르게 행동했다간 지금의 기회마저 물거품처럼 사라
져 버릴지도 모른다.
"브래지어가 있잖아?"
"더 이상은 안돼!"
기리꼬는 단호하게 말했다.
"별로 크지도 않네! 만져 볼 것이 있어야 만지지...!"
류지오의 그런 말에 기리꼬는 다시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내가 손해잖아! 그러니 어서 여길 보여줘!"
류지오는 기리꼬의 아랫도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기리꼬는 티
셔츠를 끌어내리고는 어쩌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다.
"할 수 없군!"
류지오가 자신의 혁대를 푼다.
"뭘 하려는 거니?"
"널 묶어서 강간하려구! 아까 말했잖아. 난 빚지고는 못 산다고!"
"나 소리 지를 거야!"
"마음대로 하셔. 저 여자 둘이서 문을 열고 들어오려면 하루 종일
은 걸릴텐데!"
"잠깐! 알았어."
류지오는 조금 떨어져서 기리꼬를 바라본다. 기리꼬는 류지오가 정
말 자신을 강간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분명히 사도미는 여기 괴한처럼 버티고 서 있는 녀석과 관계를 맺었
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으니 말이다. 처음 기리꼬는 그 말을 믿지 않
았고 그래서 사도미가 그녀를 데려와서 확실히 증거를 보여준 셈이
다.
기리꼬는 앉은 채로 청바지를 벗어 내린다. 몸에 딱 붙는 청바지는
겨우 그녀의 허벅지까지 내려온다. 기리꼬는 티셔츠의 자락을 잡아
당겨 그 곳을 가리고는 팬티를 약간 끌어내린다.
"자 한번 뿐이야!"
기리꼬가 티셔츠의 자락을 싹 들어올리자 류지오는 조금 전의 기리
꼬처럼 두 손으로 얼굴을 싹 가려 버린다. 그리고 역시 손가락 사이
로 기리꼬의 드러난 부분을 보며 말한다.
"잠깐만!"
기리꼬는 다시 셔츠 자락을 잡아당겨 가린다.
"잘 안보이잖아!"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류지오는 형광등을 켠다. 갑자기
방안이 환해진다. 기리꼬의 얼굴은 새빨개져 있었다.
"부끄럽지?"
"응."
기리꼬는 아주 작은 소리로 대답한다.
"그럼 아까 왜 사도미랑 그런 짓을 꾸몄지? 그 때는 부끄럽지 않았
어?"
"사실은... 사도미가 너랑 섹스를 했다기에 내가 믿지 않았지...
그러니까 사도미가 확실히 보여 주겠다며 그러는 거야...!"
"사도미가 나와 그걸 했다는 것을 말했단 말이지?"
"응."
"좋아. 그거야 어쨌던 여기 침대에 누워. 그래야 자세히 보지!"
"싫어! 난 멀찍이서 본 것뿐이데!"
"그럼 너도 다시 자세히 보면 되잖아! 먼저 볼래?"
류지오는 자기 바지를 끌어내릴 듯했다. 그런데 기리꼬는 좀 전과
는 달리 눈을 말똥말똥히 뜨고는 지켜본다. 류지오는 이제 자기 뜻
대로 이루어진 셈이었다. 그렇다고 기리꼬 앞에서 덜렁거리는 물건
을 꺼낼 필요는 없었다. 기리꼬는 이미 바지를 벗고 있었고 겨우 티
셔츠로 그 곳을 살짝이 가리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기리꼬의 손이
약간 움직이는 것을 본다. 그 곳을 살짝이 누르는 것이다.
류지오는 다시 빙긋이 웃어 보인다. 여기서 장난을 끝내야 할 것
같았다.
"이번엔 내가 손해를 봤어!"
그리고는 방을 나갔다. 이내 사도미가 저녁 먹으러 내려오라고 소
리친다. 잠시 뒤에 기리꼬가 내려왔다.
기리꼬는 얌전하게 식사를 했다. 식사 도중에 전화 벨이 울리자 류
지오가 가서 받는다.
"여보세요?"
"류지오?"
"누구십니까?"
"나야!"
"도꾸미! 무슨 일이야?"
"응. 내일 응원하러 갈게!"
"고마워."
"꼭 일등 해야 해!"
"그래."
도꾸미는 그렇게 짧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는다.
"누구니?"
도시에가 묻는다.
"친구요."
"친구 누구?"
도시에는 확실히 묻는다. 류지오가 나쁜 친구를 사귄다면 자기 책
임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예전처럼 무관심으로만 대응할 수는
없다.
"도꾸미라고 해요. 내일 경기 잘하라고 전화해 준 거예요."
"너랑 친하니?"
"네."
류지오가 성의 없이 대답하자 도시에도 더 이상 묻지 않는다. 도시
에는 류지오에게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은 상당히 좋은 징조라고 생
각했다. 류지오가 자기 또래의 여자아이에게 관심을 가진다면 정상
적인 이성 관계다. 그래서 좀 더 관심을 가져 본다.
"류지오, 도꾸미라는 얘가 이쁘니?"
도시에가 은근한 눈빛으로 물었지만 류지오는 다시 덤덤하게 예라
고 대답한다. 사도미와 기리꼬 앞에서 여자 친구를 떠벌리는 것이
싫었다.
류지오는 먼저 일어선다.
"내일 경기 때 엄마도 보러 오세요."
그렇게 말하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류지오의 방에는 몇 일 전
부터 담배 냄새가 배기기 시작했다. 호유도에게 받은 담배가 책상
서랍 안에 들어 있었다. 버리기도 아깝고 해서 어쩌다 한번씩 피던
것이 벌써 몇 개피 남아 있지 않았다.
도시에는 류지오의 방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 류지오의 방에 붙어
있는 누드 사진들이나 책상의 책꽂이에 있는 잡지책들, 만화책, 비
디오 테이프 등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뿐이다. 하지만 그 옆의 커
다란 책장 속에는 이른바 양식서라고 불리는 책들로 가득 꽂혀 있
다. 그리고 유우끼찌가 썼던 컴퓨터도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벽에는
테니스, 배드민턴 라켓 등이 걸려 있다. 방문의 왼편에는 낡고 큰
캐비닛이 있고 옆으로는 미술 도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게다가
침대까지 자리잡고 있으니 한번 어지럽혀다 하면 정말 발디딜 틈도
없을 것만 같다. 이렇게 가득 메워진 그의 방은 그만의 성역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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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토도사 2023.07.2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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