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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 1부

TODOSA 1 299 0

 

산다는 건.. --- 1부


생활정보지를 덮으며 은혜는 긴 한숨을 몰아쉬었다. 아무리 불경기고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지만 이건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젓이
대학을 졸업한 뒤 은행에서 5년이나 일했고, 은행을 그만두고도 학원 강사를
이태나 했건만, 마땅한 일자리 하나가 없다니....살 길이 막막했다.
IMF가 닥치면서 감원열풍이 몰아치면서 주부사원이라는 이유로 명예퇴직의
대상이 될 때만 해도 은혜는 이렇게까지 궁지로 몰릴 준 몰랐다. 더구나
다행스럽게도 은행을 관두자 마자 아는 사람의 소개로 조그만 학원에서
중학생 영어를 가르치게 되면서 은혜는 IMF는 남의 얘기로만 느껴졌었다.
오히려 복잡한 은행업무를 관두고 전공을 살려 영어를 가르치면서 야간에는
대학원을 다니며 못다 한 공부를 한다는 게 새로운 인생의 전기를 맞이하는
듯해 사못 즐겁기까지 했다.

 

산다는 건.. --- 1부


하지만 행운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한참 IMF가 끝났다고 떠들고 난리더니만,
다시 줄줄이 부도가 나고 불경기가 겹치면서 은혜가 다니던 학원이 문을 닫게
된 것이다. 이번에도 은혜는 기실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나이가 29이나 된
다는 게 좀 걸리기는 했으나, 어디에 나가면 모두가 처녀로 볼만큼 미모와
몸매에 자신이 있었고, 학원강사를 하면서 영어공부를 꾸준히 한 덕분에
어디든 취직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은혜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틀이
멀다하고 원서를 내고 인터넷 취업사이트에도 등록하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나, 원하던 취직이 되지 않았다. 남편은 이참에 쉬면서 애나 갖자며
설득했지만, 친정오빠를 돕느라 남편 몰래 빚을 낸 것이 있는 은혜로서는
남편의 충고를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사실 결혼한 후 은혜의 수입은 항상 친정을 돕는 데 사용되었다. 큰오빠가
사업을 하다가 망하면서 남편의 양해 하에 은혜는 자신의 모든 수입을 오빠의
빚을 갚는데 써온 것이다. 처음엔 남편도 싫은 내색없이 잘 도와주는 편이었으나,
그 생활이 3년을 넘어가고 IMF가 닥치면서 부터 곧잘 싫은 소리도 하곤 했다.
그러나 늘 해오던 대로 자신의 수입을 친정에 보내곤 하던 은혜는 명예퇴직을
하면서 앞으로는 자신이 친정을 도울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 받은 퇴직금을
몽땅 친정에 줘버렸다. 그 일로 남편과 몹시 다투고 앞으로는 절대 친정에
남편 몰래 돈을 주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둘은 겨우 화해를 했었다.
학원에 다니면서는 아예 월급액수를 줄여서 남편에게 말하고 친정을 도왔던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오빠가 부도를 내고 감옥에 가자 은혜는 남편 몰래
1억원의 거금을 마련해 친정에 주고 그 빚을 갚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덜컥 학원이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친구들에게 빌린 돈과 은행에서
빌린 돈은 만기 연장을 해가며 은행의 친구에게 사정을 해가며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지만, 오천 만원 사채를 낸 게 걱정이었다. 일수를 끊은 같은
아파트 앞동 아줌마는 돈을 갚지 않으면 남편에게 알리겠다며 노골적인 협박을
하고 간 것이 벌써 일주일 전이다.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함을 깨달은 은혜는 마침내 거들떠보지도 않던 생활
정보지의 구인란까지 샅샅이 훑고 있지만, 마땅한 일자리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온통 유흥주점같은 곳에서 초보자 환영이라고 내어놓은 광고가 도배를 하고
있었다. 세상에 무슨 술집이 그리도 많은 지...은혜는 불경기라는 말이 실감나지
않았다.
그때였다. 벨소리가 들렸다. 전화벨인 줄 알고 화들짝 놀랐던 은혜는
인터폰소리란 것을 알고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인터폰을 들었다.
"네...."
"1206호....1206호 죠"
경비아저씨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아저씨. 무슨 일이시죠?"
"등기왔어요...받아가      세요...."
"네...제가 지금 내려...."
그때 은혜의 말을 막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냐...1206호..내가 가져갈게..."
이윽고 인터폰을 내려놓는 은혜의 귓전에 일수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저 주세요. 제가 1206에 갈 일이 있거든요"        
잠시 후 일수아줌마가 올라왔다. 편지를 들고....
'새날 사무소' 은혜는 처음 보는 상호에 의아해하며 편지를 뜯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은혜에겐 날벼락같은 소리가 담겨있었다. 이자가 두 달 밀렸다며
이틀 안으로 연락 없으면, 집으로 찾아오겠다는 사채업자의 내용증명이었다.
일억을 마련할 때 돈이 조금 모자라 스포츠신문에 대출란을 보고 찾아갔던
사채업자였다.
기억하기에는 1,000만원을 빌리는 데 선이자를 떼고 925만원인가를 주었던
곳이다. 그나마 급한 김에 앞 뒤 재지 않고 돈을 빌렸던 은혜는 지난 달
학원을 그만두고 어수선하여 이자를 송금하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아울러
거기에는 1,000만원 원금을 갚을 날짜가 일주일 앞으로 돌아왔다고 되어있었다.
빌린 돈이 많아 원금과 이자를 갚기에 벅차 우선 이자만 갚으면서 돈을
모아보려던 은혜였는데, 돈을 모으기는커녕 이자까지도 연체되어 있었던 것이다.
"새댁, 사채도 빌린 모양이네..."
어느 틈엔가 어깨 너머로 편지를 보고 있던 일수아줌마가 한마디 거들었다.
일수아줌마가 있다는 것도 잊고 있던 은수는 그제서야 편지를 얼른 숨겼다.
"네...조금...친정에 급한 일이 있어서..."
"조금...조금이 아니네, 여기저기 널려있는 게...앞 동 709호도 1,000만원
있다던데...그건 그렇고 돈은 준비했겠지?"
"저. 아줌마...아직...며칠  ? ?더...."
"이봐...새댁...일수를   며칠 째 안 끊으면 난 어떡해...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일수아줌마의 언성이 높아졌다.
"저, 알아요 아줌마...죄송해요...제      가 곧 취직하면...."
"취직....? 이봐 새댁...그 소리가 벌써 몇 번 째 인줄 알아....!"
"네...하지만, 조금만 더....허드렛일도 해보려했지만 그건 돈이 너무 작아서
도저히 안되겠고....여기저기 알아보는 중...."
"이봐요 새댁, 그건 새댁 사정이고....무슨 일이든 해서 돈을 마련할 생각을
해야지..."
"네....그건 저도 알아요...하지만 마땅한 데가 없어서...이자를 낼 정도는
되어야죠...."
"이자가 얼만 진 모르지만, 요즘 같은 불경기에 돈을 많이 주는 데가 있으려고...
유흥업소라면 몰라도..."
"네...네...네...아줌마!      !!"
은혜는 갑자기 은성을 높이며 말했다.
"저도 안다고요...알아요...하지      만 그런 건 모두 밤에만 하는 일자리니...제가
할 수도 없쟎아요!!!제발....제발,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이봐! 새댁, 지금 누구한테 화를 내는거야...나 원 참..."
그러면서 일수아줌마는 일어섰다.
"하여튼 내 이틀만 더 봐 드리리다. 그 담엔 나도 어쩔 수 없어...남편에게
얘기해서라도 받아야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아줌마는 현관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한참을 멍하니 있던 은혜는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일단을 사채사무실에 들러
이자부터 갚고 원금문제를 해결해야했다. 그리고 일수아줌마 말처럼 하루바삐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은혜는 은행에 들러 생활금으로 두었던 돈을 찾아 일수사무실로 갔다.
처음에 상담할 때, 두 번 째 대출할 때에 이어 세 번 째 하는 걸음이지만
기분이 그래서인지 사무실은 꺼림칙했다. 조그만 사무실입구에 여직원 하나가
앉아 있고 안쪽으로 사장인 듯한 사내 하나가 있었다.
지난 번 자신과 이것저것 서류를 하러 다니던 젊은 사내는 보이지 않았다.
"저...이것 때문에...."
은혜가 들고 온 내용증명을 보이자 여직원이 은혜를 사장에게 안내했다.
"한은혜씨..."
"네..." 죄를 지은 마냥 은혜는 고개를 숙였다.
"이자는 갖고 오셨죠...?"
"네..." 은혜는 이자를 순순히 건넸다.
"이봐. 미스김...이거 처리해"
사내는 여직원을 불러 은혜가 가지고 온 이자를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원금은 어떡하실거예요...이제 일주일 남았는데...."
"안그래도 그것 땜에....저...좀...연기할 수 없을 까요?"
"연기라...아니 이자도 제 때 안 갚는 데 무얼 보고 연기를 해줘요?"
"아저씨, 저 제발 한번 만 어떻게 편의를...제가 다니던 직장이 문을 닫아서..."
은혜는 급한 마음에 말을 이었다.
"허허 참...그래..어디 담보라도 있소?"
"담보요?  아니 그건...."
"담보도 없다...그럼 어떡한다...허허...참!"
그때 한 사내가 들어섰다.
"사장님, 다녀왔습니다."
은혜가 얼굴을 아는 바로 그 사내였다.
"어..갔다 왔어! 이봐 미스터 하..."
사내가 얼굴을 돌리며 사장에게로 다가왔다.
"이, 아가씨가 원금을 연장하고 싶다는 데...."
"다시 대출받아서 갚아야죠 머..."
미스터 하라 불린 사내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런데, 이번엔 원금도 까 나가야 할 껄요..."
"네?" 은혜는 원금도 갚아야 한다는 말에 놀라서 되뇌었다.
"이미 한번 대출했으니까 이자만 갚는 건 안되고...돈을 다시 빌려
천만 원을 갚고 다시 빌린 돈은 원금과 이자도 같이 갚아야 한다고요..."
그러면서 사내는 의자를 당겨 은혜 옆에 앉더니 방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천 오백만 원을 빌려 대출 수수료 200만원을 떼고 1,350만 원 중에
천만 원을 갚고 나머지 300만원에서 첫 달치 이자와 원금상환액을 떼고 100만원을
준다고 했다.
은혜는 급한 김에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한 후 이틀 후에 들르기로 하고
사채 사무실을 나왔다. 그리곤 돈을 갚아야한다는 생각과 자신의 한심해진 신세를
한탄하며 정처없이 거리를 거닐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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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토도사 01.17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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