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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2부  1

TODOSA 1 237 0

 


그대로 자고 싶었지만 기다리고 있을 진이 때문에 늦은 시간이었어도 돌아와야만 했다.
낚지의 빨판처럼 감고 늘어지는 린의 몸뚱이는 정말 일품이었지만 미숙한 계집애의 유혹은 간신히 견딜 수 있었다.
별로 무섭진 않았지만 진작에 사고를 쳐놓아서 시끄러운 판에 한가지 사고를 더 추가할 필요는 없었다.
온몸으로 대쉬하는 계집애의 욕망에 얼씨구 춤을 추다가 내 정체가 드러나기라도 하면 정말로 콩밥 몇 년은 각오해야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했다.
이장에겐 읍내에 갔다 오는 길에 우연히 만나서 같이 온 거라고 둘러댔다.
계집애도 친구랑 말다툼을 하는 바람에 집으로 돌아오다가 마침 나를 만났다고 연기력을 구사해서 깜찍하게 제 아버지를 속인다.
무언가 의심쩍은 눈초리를 보이던 이장은 곧 체념했는지 고개를 주억렸다.
기다리다 지쳐서 모니터 앞에 고꾸라져 잠이 든 진이를 반듯이 뉘이고 옆에 누웠다.
'나는 과연 진이의 작고 앙증맞은 몸뚱이를 원하는 것은 아닐까? 위선을 떨어가며 보호자인양 이빨을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닌가?'
몇번을 뒤새김하며 내 마음속을 뒤져 보았지만 진이를 이성이나 노리개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 처지에 딱히 누군가를 돕는단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그냥 마을사람들에게 더 이상 괴롭힘이나 당하지 않도록 해 주었으면 좋겠다 싶은 것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고서도 내 자신을 믿지 못해서 새근새근 잠든 진이의 봉긋한 젖가슴을 쓰다듬어 보았다.
아무 감흥도 일지 않았다.
새알같이 봉긋 솟아올라오기 시작하는 젖가슴에 약간 뭉클한 어떤 감정이 아주 없진 않았지만 특별하게 생각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며칠동안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시간이 흘러갔다.
여전히 밖은 푹푹찌는 삼복더위중이고 에어컨을 틀어도 더운 방안에서 빤쓰와 런닝차림으로 일을 했다.
진이도 나와 똑같은 차림을 고집했지만 계집애가 그러면 안된다는 내 말에 수긍을 하지 못하면서도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었다.
어쩌다 진이의 시선이 내 빤쓰 앞의 불룩 나온 부분에 고정된 느낌이 들어서 쳐다보면 얼른 시선을 돌리고 시침을 뚝 떼는 눈치가 보였다.
10억원이나 하는 통계프로그램의 락을 풀어 크랙파일을 인터넷으로 전송하고 밖으로 나왔다.
진이를 처음 본 강가의 들로 내려갔다.
강가의 모래밭을 개간해서 만든 밭에 일하는 사람이 보였다.
마땅히 돌아갈 길도 없어서 밭둑을 따라 강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더운데 쉬어가며 하세요..어?"
근수 부인이었다.
한낮의 이글이글한 열기에 벌겋게 달아오른, 선이 또렷한 얼굴에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자는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훔친 뒤 다시 부드러운 사질의 흙으로 시선을 내렸다.
두어 발짝 더 걷자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잠깐만요."
"네?"
"저번에 주신 돈 받기로 했어요. 변명이지만 병원비도 그렇고 도저히 돈 마련할 방법이 없어서 어쩔 수 없네요. 합의서 써 드릴테니 저녁때 집으로 오세요."
"합의서는 필요 없습니다. 남편이 고소를 원한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만약 이번 일이 제 잘못으로 판결이 난다해도 전 괜찮습니다."
"남편도 비록 짐승같은 짓을 했지만 앞뒤도 모르는 사람은 아니예요. 합의서 얘기는 애아빠가 먼저 한 얘기예요. 오히려 미성년자 간음으로 고발하지 않겠다는 합의서를 댁에서 받아 두라고 하더군요."
"간음요? 남편께 전해 주십시오. 그건 간음이 아니라 강간이었다고요. 지금 제 심정으론 마을남자들 전부 고발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한 둘이 아니더군요. 한 마을을 폐허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 이를 악물고 참고 있다는 말입니다. 앞으로 누구든 한번만 더 그런 짓을 하면 그때는 참지 않겠습니다. 이 동네에 남자들 씨가 마르는 한이 있어도 어린 녀석들까지 한놈도 빠짐없이 잡에 넣을 겁니다."
"......."
"이 동네 사람이 살 곳이 아니더군요. 오래 있진 않을 겁니다. 그 동안만이라도 아무 일 없기를 바랍니다. 그럼.."
"저기요...그럼 오늘 저녁에 제가 부인회를 소집하겠어요. 부인들에게 남자들 단속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불쌍한 아이 도와주는 셈치고 그렇게 해 주십시오."
"제 입장에서 그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더 이상 죄를 지을 순 없겠죠."
한동안 강가를 거닐다가 집으로 향했을 때 근수부인은 밭에 없었다. 밭 매던 일을 다 마무리하지 못하고 돌아갔는지 밭둑에 호미 두개가 놓여 있었다.
날이 잘 길들여져 반짝이는 호미와 벌겋게 녹이 슨 호미는 그 부부의 현재 처한 모습처럼 보였다.
"어이! 나 좀 봅시다. 어이!"
저녁 먹고 TV 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밖에서 걸찍한 탁성이 시끄러웠다.
"누구십니까?"
방문을 열자 몇 명이 이미 방문앞에 와 있었다.
"당신 잠깐 좀 봅시다."
건장한 스포츠 머리 너냇명이 험악하게 인상을 긁었다.
"무슨 일입니까?"
"보자면 빨랑 나오지 웬 말이 그리 많아!"
한 녀석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진이가 내 뒤로 붙으며 겁을 먹었다.
"애도 있는데 소리 지르지 마슈. 나갈테니까..."
앞장을 선 녀석은 갓 스물 쯤 된 애송이였다.
"여기는 사람이 잘 안옵니다요. 형님! 여기서 말씀하시죠!"
"그래! 니들은 내려가 있어라. 이 친구랑 둘만 있고 싶다."
"예! 형님."
녀석들이 맨 깡패영화만 보고 살았는지 구십도로 우렁차게 인사를 하고는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담배 피우나?"
"제 담배 있습니다."
"자! 피워."
체구도 나랑 비슷한 사내가 어지간히 무게를 잡으면서 담배를 내게 권했다.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 학생이야? 운동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비웃는거야?"
"아닙니다. 컴퓨터 공부합니다."
"그래? 말은 들었는데 컴퓨터같은 거 하려면 샌님일텐데 말야...어쩐지 당신은 샌님같아 보이지 않아!"
"샌님되기 싫어서 운동 조금 했습니다."
"고향이 예산이라며?"
"네!"
"당신 이름이 뭐야?"
"전태수라고 합니다."
"전태수! 자네 나이가 서른?"
"스물 아홉입니다."
"음!!!"
사내의 입에서 무거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자네 친구가 어떻게 됐는지 아나?"
"모릅니다."
"고향소식을 전혀 못 들은 모양이군! 그 친구 작년에 자살했네."
"그랬군요."
"마약 때문에 완전히 폐인이 됐었지. 차라리 잘 된거야! 어린 나이에 빵에서 7년간은 너무 심했어."
"십오년을 받은 걸로 들었습니다만...."
"모범수로 가석방 됐었네. 오년을 독방에서 지냈다고 하더만, 아마도 그때 정신이 이미 망가진 모양이야. 나와서도 큰일을 낼 뻔했지만 다행히 수습을 한 모양이야."
"........"
"자네 얘기를 듣고 혹시나 싶어서 한번 와 본 거네. 이번 말썽은 잘 수습될 모양이더군."
"......."
"근수 그 사람도 한 때 영동서 밥을 먹던 사람이야. 참 잘 나갔었는데.....어쩌??실수를 해서 사람 꼴 되긴 틀려버렸군."
"......."
"고향 와서 한 식구로 두긴 껄끄럽고, 그 사람도 원하지 않아서 형님 대접만 했는데 이젠 그것도 그만 두어야 할 것 같네. 여자 생각이 나면 날 찾아오면 될 것을 쪽팔리게 그런 짓을 하다니..."
"......."
"어쨌든 자네 친구도 내 사람이었고, 내 입장에서 자네도 막 볼 사람은 아니니 이번 일은 무聆構?끝맺게 될 걸세. 하지만 빠른 시일 안에 정리하고 여길 떠나게. 애들이 말이 많아."
"여름만 보내고 떠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될 수 있으면 빨리 떠나게. 자네가 남아 있으면 말이 많아져서 내가 불편해."
"저는 이제 다른 사람입니다. 신경쓰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래도 사람들 기억에 자네는 아직도 그때 그 모습이야. 말썽꾼이지!"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게! 읍내는 자주 나오나?"
"한번 나갔었습니다."
"오면 한번 찾아오게. 술 한잔 하자구..."
"예! 그러겠습니다."
사내는 번쩍이는 시선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고는 언덕을 내려갔다.
승용차 불빛이 고개 너머로 사라졌다.
참 오래된 얘기를 오늘 다시 생각하게 됐다.
내 친구는 살인을 했다.
죽은 자도 친구였다.
가슴이 떨릴만큼 아룸다운 한 여자를 두고 죽은 친구와 죽인 친구는 십여년간 우정을 나누고 다툼을 벌였다.
두 남자 사이를 오가면서 사이좋던 두 친구를 핏물속에 담근 여자는 외모는 경국지색이라고 할 만 했지만 마음은 악마였다.
두 친구는 여자와 관련된 온갖 문제로 싸움을 벌였고, 실력이 엇비슷했던 둘은 늘 밀고 밀리면서 비슷한 전적을 쌓고 있었다.
여자가 처녀성을 죽임을 당한 친구에게 주었을 때, 죽인 친구는 칼을 들고 쳐들어가서 두달 동안 입원할 만큼 중상을 입혔다.
소년원에서 출감한 18세의 가해자에게 여자가 출감 기념으로 자신의 몸뚱이를 내주자 칼에 찔렸던 친구는 연적을 납치해서 물에다 던져 버렸다.
엉망이 돼서 간신히 살아난 이후로 둘은 여자를 번갈아 차지했다.
한 남자가 그 여자를 차지한 동안 다른 남자는 감옥에 가거나 경찰에 쫒겨 다녔고, 한 친구가 출감을 하던 날 저녁에 비극이 일어났다.
그런 일이 있을까봐 이웃한 이곳 읍내로 자리를 옮겨 마련한 출감축하연에 여자가 참석한 것이 화근이었다.
같이 살던 여자가 집에 없는 것을 확인한 죽인 친구가 일본도를 휘두르며 술집에 난입했다.
단칼에 목이 떨어진 시체에 대고 다시 칼을 휘둘러 어깨에서 팔이 떨어지고 피와 내장이 흐르던 그 자리에 나도 있었다.
여자를 죽이려 달려들던 친구의 칼을 빼앗고 꽁꽁 묶어서 경찰에 넘긴 것이 바로 나였다.
배신자로 낙인 찍혔지만, 단 한번 친구의 면회를 갔을 때 그는 내게 고맙다고 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죽이지 못하게 막아준 것을 그는 고마워했었다.
고향을 떠난 후 몇 년 동안 패거리는 행동대의 맹장들을 셋이나 잃은 일로 두패로 쪼개어져서 세력다툼을 계속했고, 삼사년 전의 일제검거에서 와해되어 버렸다는 소식이 들렸다.
요물 여자는 수년전에 참석한 결혼식에서 만났었다.
그녀는 재벌가문의 셋째 며느리가 되어 있었다.
돋보이는 미모에 재력까지 갖춘 요물은 마력이라고 느껴질만큼 매력을 발산했지만 그 자리의 누구도 여자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화장실로 가는 통로에서 잠깐 얼굴을 마주친 여자는 내게 쓸쓸한 웃음을 보이고는 사라져 버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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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토도사 03.2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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