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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로맨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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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로맨스10


(아래의 것은 5. 안찰의 연속입니다.)

민수는 화끈거리는 볼을 주먹으로 비볐다.
  "............"
멍한 시선.
침대에 걸터앉은 민수는 그렇게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엄마에게 뺨을 맞은 충격도 충격이거니와 자신도 받아들일 수 없는 자신의 말에 놀라있었다.
  [내가 미친 걸까.........]
차마 해서는 안될 말.
민수는 그 말을 해 버린 것이었다. 단지 말....언어...그 뿐이건만, 그건 비수보다 더 사람을 잔인하게 헤친다.
  [유린.............!!]
  "크크크....큭......"
음산하다고 할까. 민수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흘렀다.
유린.
함부로 짓밟는 것.
  "단지....... 말로 말이지? 큭........."
우스웠다.
엄마와의 성관계가 떠오르면서 민수의 웃음은 점점 흐느낌과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갈께요..."
깔끔하게 옷을 다시 차려입은 보경이 동식을 보며 말했다.
  "정말 바래주지 않아도 되겠어요?"
  "예..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
동식은 미안한 표정으로 보경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눈은 취기 때문인지, 피로 때문인지 다소 충혈 되어 있었다.
  "전화하세요."
  "제 전화 기다리지 마시고 주무세요. 피곤해 보여요."
  "풋~~ 걱정에 잠이 올까 그게 걱정인데요."
  "핏~~~"
보경은 가볍게 웃고는 뒤로 돌아 아파트 복도를 걸어갔다. 그런 보경의 작은 체구를 동식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동식은 낯선 주변 환경을 한 번 돌아보고 문안으로 들어갔다.
텅 빈 실내.
보경이 종일 정리를 하였기에 그런 대로 정결하였으나, 어딘지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좁은 곳을 구할 것을......."
혼자만의 온기로는 채워지지 않을 듯한 커다란 실내를 보며 동식이 나직이 말했다.
피로가 밀어닥치는 데도 정신은 더욱 맑아져만 가는 그는 거실의 소파로 조용히 다가가 앉았다.
-틱......-
탁자에 있는 담배를 베어 물고서 불을 붙였다.
  "후.................."
담배 연기가 길게 뿜어져 나왔다.
지난 한달 여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아득한 옛 일처럼 느껴졌다. 매 순간이 고통의 연속이었다. 한 치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지옥.
아직도 그 지옥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부정한다고 지옥을 벗어나는 게 아니란 것을 이제 그는 안다. 부정하고, 무시하고, 기억에서 지워버리려 하면 할수록 더욱 늪 속으로 빠져버린 다는 것을....
그렇다고 인정해 버릴까...
그러기에는 동식이 알아왔던 사랑에 대한 미련이 너무 깊었다.
  "사랑........."
실내에 퍼지는 담배 연기 속으로 아들과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의 목숨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그들의 모습이.......

따뜻한 봄날의 가족 나들이...
찌는 듯한 한 여름에 찾았던 어느 산 골 시원한 골짜기.
단풍의 아름다움에 넋을 빼 놓았던 어느 가을날의 산.
눈이 곱게 내리던 어느 겨울날 산장의 벽난로에서 보내었던 시간.
그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고, 아들의 웃음소리만큼이나 깊었던 행복의 향기가 묻어나지 않는 기억이 없었다.
  ".........."
지난 시절을 떠올리던 동식의 입가엔 어느새 미소가 번졌다.
너무나 그리운 시간.
다시 한번 돌아가고 싶은 시절...
  "........."
생을 마감하는 사람 마냥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그리움에 가슴이 미어졌다.
그 모든 것이 혼자만의 사랑이요,
혼자만의 착각이란 것이 밝혀졌지만....
버릴 수 없는 사랑이고, 버리지 못하는 기억이었다.

혼자만의 사랑.
짝사랑이라 불리는 이 사랑을 흔히 사람들은 조롱하며 놀리기도 하고, 짝사랑하는 이를 바보취급 하기도 한다. 정말 그럴 정도로 하찮은 사랑일까?
영양가 없는 사랑.
그래 어쩌면 영양가 없는 사랑일 것이다. 아무리 사랑을 주어도 받는 이는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랑.
부모님의 내리 사랑, 그 역시 영양가 없는 짝사랑이요. 부모에게 버림받고, 애인에게 버림받았으며, 사회에서 천대받은 남자가 군인으로서 국가에 충성하는 것도 영양가 없는 짝사랑일 것이다.
영양가 없기에, 무시당하기에 하기 싫은 사랑.
그래도 어찌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렇게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면 애초부터 사랑이라 이름 짓지도 않았을 것을.
  "............."
담배 불을 끄며 동식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찌되었든 아내와 아들을 떠나 집을 나온 것은 잘한 일이었다.



  *             *               *               *                *               *



서먹한 기운이 아침 식탁을 내리 눌렀다.
같은 실내를 이용하기에 아침에 몇 번이나 마주쳤건만 지혜와 민수, 서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었다.
  "약발라야 되는 것 아니니?"
아들의 볼에 약간의 피멍이 든 것을 아침 일찍 보았건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던 지혜가 먼저 말을 꺼내었다.
  "괜찮아요."
  "그래......."
용기를 내어 애써 미소를 머금으며 아들에게 말했던 지혜는 자신을 처다 보지도 않고 말하는 아들을 머쓱하니 처다 보다가 이내 식탁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시 식탁에서는 딸그락거리며 식사하는 소리만 약하게 났다.
침묵 속의 식사.
그 것은 그리 낯선 식사 풍경은 아니었다. 예전 동식이 없을 때면, 종종 있어왔던 풍경이었다. 그래도 그 때는 어색함과 서먹함이 지금 같지는 않았다.
  "저.........."
  "죄송해요..."
지혜가 무슨 말을 하려 말문을 열었을 때, 민수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응.......?"
  ".........."
지혜는 아들의 말에 아들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여전히 식사에만 열중하였다.
  "아냐... 괜찮아."
  ".........."
  "어제는 나도 심했어."
살짝 웃으며 지혜가 말했다.
  "그런데... 내 얼굴을 좀 봐 줄 수는 없는 거니?"
  ".........."
  "많이 화났나 보구나..."
  "............"
민수는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다. 지혜는 식탁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노력할게요."
  "오늘 도서관 갈거니...?"
  ".........."
  "일찍 들어올래?"
  "예..... 알았어요. 잘 먹었습니다."
어느새 식기를 비운 민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곤, 빠른 걸음으로 주방을 벗어나 거실에 있던 가방을 들고 아파트 현관문을 나섰다.
  "다녀오겠습니다."
무엇에 홀린 듯 민수는 아파트 문을 닫았다. 그리고 아파트 복도에 선 민수는 긴 숨을 내 쉬었다.

숨이 막혔다.
민수는 버스 정거장으로 가며 답답한 가슴을 몇 번이나 쥐어뜯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아니 그것은 비단 지금 뿐만이 아니라 어제 밤부터 계속된 증상이었다.
엄마의 육체를 가졌고,
이성으로서의 엄마의 사랑도 느끼고,
이성으로서 엄마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도 느끼며,
여느 엄마의 사랑도 원했다.
그리고, 미처 느끼지 못했던 아버지의 사랑도....
  "..........."
지금까지는 단지 엄마의 육체만을 가졌을 뿐이라고, 단지 육체에 관련된 사랑만을 느끼고 있을 뿐이라 여겼던 민수는 이제 자신의 문제가 그에 국한되지 않음을 확실히 알았다.
어제 아버지가 집을 나간 그 순간.
그 때부터 알 수 없이 일어났던 복잡한 분노를 이제 민수는 분명히 인지하였다. 그리고 그 분노는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란 것도...

승강장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출근하는 직업인과 등교하는 학생들이 뒤섞여 웅성거리며 서성이었고, 그들의 복장은 겨울을 연상시키듯 두터웠는데, 그들의 복장에 대조되는 차림의 민수는 3월의 변덕스런 추위를 더 시리게 느꼈다.
  "어머 그랬어... 호호........"
  "그래...꺄르르르........"
입김을 불어내며 웃는 소녀들의 맑은 음성을 들으며 민수는 그녀들 뒤에 멀찌감치 서서 차를 기다렸다. 평소보다 더 일찍 집을 나온 민수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한 명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게 조금 우습다고 해야할까...
  "............"
문득, 민수는 상현이 생각나 길 건너 저편에 우뚝 솟아있는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20분...
앞으로 20분 후면 친구는 어김없이 그 곳에서 나 올 것이다. 동생과 그가 사랑에 빠진 꼬마 숙녀를 초등학교 입구까지 데려다 주고서 말이다.
  [기다릴까.........]
시계를 보던 민수는 잠시 상현을 기다릴 생각을 하였으나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늘 밝은 그 친구를 만나면 지금의 이 더러운 기분은 사라질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
우려하던 문제.
오래 전부터 직감하고 있던 그 무겁기만 한 난제(難題)는 이제 눈앞의 현실.
피한다고, 잊어버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갈구하던 꿈일지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꿈에 불과한 것이다.

꿈.
금기의 영역인 근친상간. 그 것이 꿈일 수밖에 없는 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누려왔던 제도의 질서, 혹은 생활의 기본 골격이 꿈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정형화 되어있는 가족의 관계, 감정. 어쩌면 그 것은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것일 수 있으리라.
하지만, 세상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하여 웃지 않는다.  
웃기는커녕 외려 신성시하며, 더욱 아름답고, 숭고한 것으로 승화시키지 못해 안달한다. 사람들이 바보라서 그럴까?
  "어머.. 얘... 너네 아빠 너무 골 때린다."
  "그지... 내가 우리 아빠 때문에 요즘 팍팍 늙는다니까... 봐라 봐.. 내 눈가의 주름말이야."
  "그래도... 너는 아빠만 그러니까 다행이다. 우리 집 늙은이들은 아주 쌍으로 나를 못살게     군다니까......"
민수의 앞에 서 있는 세 명의 여학생의 대화 주제는 어느새 자신들의 부모 이야기로 넘어가 있었다.
  "........."
민수는 그런 그 여학생들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불만을 표시하는 여학생들.
분명 무슨 문제가 있기에 그런 말들을 할 것이다. 아니 할 수밖에 없으리라. 완벽하지 않은 인간에게 어찌 불만이 없으랴...
그러나, 그 불만은 그저 [보다 낳은 것이 있다.]라는 의미.
  "............"
민수의 고민도 그 곳에 있었다.
보다 낳은 것으로 선택한 엄마와의 관계. 하지만 그 것은 보다 낳은 것이기보다는 지금은 시작하지 말았어야 될 꿈이었다.
너무 많은 것은 잃어버리게 하고...
너무 많은 질문을 던져주고 있었다. 성이 개입되면서부터 자신도 모르게 이전과 다르게 느낄 수밖에 없는 엄마의 존재, 아버지의 존재, 자신의 위치......
  "............"
처음에는 미처 느끼지 못하였던 그 작은 변화가 이제는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저 옛날처럼 살고 싶었다. 아무런 근심 없이, 부모를 있는 그대로 느끼며, 그들의 그늘 아래에서......
하지만, 그러기에는 돌아가지 못할 강을 너무 많이 건너와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지혜는 창가에 서서 버스가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민수야.........]
아들이 탓을 버스를 바라보며 지혜는 속으로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메였다.
  ".........."
그러나 굳게 다문 그녀의 입과 똑바로 밖을 응시하는 그녀의 시선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아니 흔들림이 들어 설 자리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돌아가지는 않아......]
  [놓치지도 않아........]
어디로 돌아간다는 것인지, 무엇을 놓치지 않겠다는 것인지 그녀로서도 명확하게 알지는 못했으나 이전과 분명히 다른 지금의 자신이 소중했다.
  "후........."
지혜는 손을 올려 자신의 가슴을 지긋이 눌렀다. 심장의 박동이 손에 느껴지며 살아있음을 그녀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생명.
그 자체로 존귀하다고 한다. 아침에 기쁘게 인사를 해야하는 것은 서로가 살아있음을 확인하였기에, 저녁에 기쁘게 인사를 해야하는 것은 만남을 기약하는 이별이 되길 기원하는 마음에 그러해야 한다고 한다.
언제 어느 때 사라질지 모를 유한한 생명.
의술이 발달하고, 약이 기상천외하더라도 그 것이 생명의 보조수단인 이상 유한성을 가진 생명을 근본적으로 어쩌지는 못한다. 생명의 길고 짧음은 유한성을 가진 생명의 범위 내에서 일뿐, 영원성과는 거리가 멀다.
유한한 생명.
그러기에 아름다운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살아남았기에 행복한 것이라고도 말했다.
  "말도 안돼......."
어느새 북적이는 아파트 단지를 보며 지혜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거짓말쟁이들......."
지혜는 입술을 물었다.
생명을 예찬하고, 경외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글. 분명 그 사람들은 지극한 철학적 사유를 거치고, 삶의 경험에서 오는 진수(眞髓)를 글로서 옮겨 적은 것이겠지만 그 것이 무슨 소용이랴.
정작 지혜 본인은 십 수년간 그 말을 단 한번도 이해하지도 경험하지도 못했는데... 언제 살아있다고 행복을 느꼈던가?
  "사기꾼들.....오만한 사람들........"
지난 시절 그녀가 읽었던 책의 구절 구절이 떠오를 때마다 지혜는 그 책을 쓴 저자들이 미웠다. 그들의 생각을 따르려 했던 자신이 미웠다.
지혜는 그들이 자신의 철학을 뽐내며, 자신의 행복을 자랑하는 이들로 여겨졌다. 그들의 철학과 그들이 느꼈을 행복... 그것은 절대로 내 것이 될 수 없으니.......
  "............."
지혜는 조용히 거실의 창가를 떠나 컴퓨터가 놓여 있는 서재로 들어갔다.
그리고 컴퓨터를 켜고, 방안에 처진 커튼을 걷었다.
간단한 몇 가지 조작으로 이내 워드 화면이 켜졌고, 그 곳에 그녀가 쓰는 소설이 나타났다.
-타타타타타......-

-내 생의 최초 실수는 배운 것을 따라한 것이요. 두 번째 실수는 타인의 행복을 닮으려 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실수는 나 자신을 찾지 못한 것이었다.

-타타타타탁.......-
그녀의 소설의 두 주인공 중, 한 명이 쓰는 편지를 마무리하고는 키보드에서 손을 떼었다. 소설이 어떻게 전개가 될지는 그녀 자신도 모른다. 처음 소설을 쓸 때 그때처럼 그냥 손가는 데로 글을 쓸 뿐...
자신을 찾아가는 길... 그 것이 그녀가 글을 쓰는 의미였으니...


공부를 독려하는 담임의 조례시간이 끝났다.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소리. 그 말은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지겨움을 넘어 이제는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 있었다.
  "공부..공부..공부.......아 머리 빠개지겠다."
2학년이 되어서도 같은 반이 된 상현이 민수의 곁에 다가왔다.
  "넌 안 그러냐?"
  "뭐가?"
민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무심하게 반문하였다.
  "뭐는 뭐야... 공부하라는 노인네들의 잔소리지......"
  "별루..........."
여전히 관심 없는 투로 말하며 민수는 수업 들어갈 교재를 꺼내었다.
  "너는 그럴지 몰라도.. 나는 아주 진저리가 난다. 듣기 좋은 소리도 자주 들으면 성질 나     는데, 이건 무신 훈계를 매일 그리 할게 많은지 원...."
  ".........."
  "지겹다 지겨워..... 난 저 소리를 들을 때마다 공부가 하기 싫어진다니까..."
민수는 상현을 슬쩍 바라보다가 이내 오늘 배울 부분을 펼쳤다.
  "야.. 근데... 너 오늘 몇 시에 나온 거냐?"
  "20분 정도 일찍...."
  "........."
상현은 민수의 말을 기다렸으나, 민수는 그렇게만 말할 뿐이었다.
  "무슨 일 있냐?"
  "........."
민수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머쓱해진 상현은 뒷목을 긁었다.
  "뭐 말하기 싫으면 관두고..."
  "고마워...."
친구의 관심. 그 것은 분명 고마운 것이었다.
  "하하...고마울 것까지야.. 그나저나 나 오늘 오후에 동생이랑 놀이 공원 갈 건데 너도 갈     래?"
  "놀이공원?"
상현의 말에 민수가 고개를 돌렸다.
  "그래.. 놀이공원... 꼬맹이들이 놀이공원 가고 싶데......"
  "꼬맹이들?"
  ".......?"
  "........."
  "야야....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진짜로 그 애들이 가고 싶다고 했어..."
  "그래.. 알았어.."
  "같이 갈 거지?"
  "글세.. 난 네 동생과 놀아주는 거 자신 없는데......."
민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하하......짜식... 눈치 채었군."
  "속을 훤히 내 놓고 있는데 봉사라도 보겠다......"
  "크큭.... 역시 넌 달러........ 그래.. 갈 거지?"
  "글세.. 동변이도 간다면.... 난 네 동생 정말 자신 없어..."
민수는 화장실을 다녀오는 동변을 슬쩍 처다 보며 말했다. 그 말에 상현은 빙긋 웃으며 허리를 숙여 민수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거라면 걱정 마라....아주 믿음직스러운 봉사가 오니까....."
  "풋~~~~!"
민수의 시선을 느꼈는지 동변이 걸어오며 손을 들었다.


토요일 오후는 늘 번잡스럽다.
날씨와 상관이 없고, 계절도 타지 않는 축제의 날.
일주일의 스트레스를 푼다는 명목으로, 혹은 특별한 약속을 핑계로, 혹은 외롭다는 이유 등등 사람의 수만큼이나 많은 이유들로 가득한 거리. 쏟아져 나온 학생들, 직장인들로 거리는 시골의 5일 장터의 몇 곱절이나 복잡하였다.
  "와 사람 진짜 많다...."
동변이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그러게... 이 상태로는 어느 한 구석 조용한 곳이 없겠는데......."
묘한 여운을 남기며 민수가 상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자........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줄서자... 꼬맹이들 내 손 놓치면 안 된다.."
상현은 민수의 시선을 무시하며 동생과 꼬마 숙녀를 챙겼다.
  "........."
그런 친구를 보며 민수는 질투를 느꼈다.
사랑.
민수의 친구인 상현은 지금 그 사랑을 하고 있다. 그 것도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을 사랑. 단순한 나이차이 때문이 아니라 신분의 차이로 인해 금기 시 되는 사랑을.... 어쩌면 그리도 자신의 입장과 같은지...
그러나 분명히 다른 것이 있다면, 상현의 사랑은 시간이 해결해 줄 사랑이었다.
초등생 혹은 어린이라는 신분은 시간이 흐르면 사라질 신분 혹은 지위였다. 초등생을 상대로 '성'을 결부시킨 사랑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 사회에서 상현은 분명 위험한 사랑을 하고 있다. 비록, 아직 실현시키지는 않았지만...
  "왜.....?"
민수의 시선을 느꼈는지 상현이 돌아보았다.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마....괜한 생각 마라......"
  "하하.... 알았어.."
민수는 계면쩍게 웃으며 말했다.
  "근데... 수미는 왜 같이 안 온 거야?"
옆에 있던 동변이 말했다.
  ".......?"
  "수미 말이야 수미....."
  "동변이 너 몰랐냐?"
상현이 동변을 보며 말했다.
  "뭘?"
  "수미 토요일에는 외출 금지잖아.."
  "왜.......?"
  "낸 들 아냐..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상현은 가볍게 말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최이사..... 어서 오시게나..."
  "안녕하십니까?"
동식은 이지석과 그의 부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예.. 어서 오세요."
이지석의 부인인 오미희가 인자한 미소를 띠며 동식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천상 어머니의 모습을 간직한 여인.
  "늦어서 죄송합니다."
약속시간 보다 약 1시간 가량이 늦은 동식이었다.  
  "오는 데 차가 막혀 고생은 안 했어요?"
  "예... 오늘따라 길이 좋던데요. 시간에 더 늦어 사모님께 혼나지 말라고 하늘이 돕더군요"
  "원... 그런 말을..."
  "하하....."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그들은 음식이 차려진 주방으로 향했다.
2시가 조금 넘은 시간.
그 시간에 점심을 먹는 다는 것이 습관상 동식이나 이지석, 오미희 모두에게 조금 어색하기는 했지만, 늦은 시간만큼 공복 감이 있어서인지 음식은 아주 맛있게 느껴졌다.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거실로 나오자 곧 뒤따라 나온 찻잔을 들면서 동식이 식사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랬다니 다행이네요."
오미희는 빙긋 웃으며 동식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이사님은 행복하시겠어요. 이렇게 음식을 잘하는 사모님이 계셔서요."
  "하하.. 그런가? 자네 부인의 음식 솜씨도 보통이 아니던데....."
  "그렇긴 하지만... 사모님만큼은 아닌 것 같은데요.."
동식은 미희에게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아니 이 사람.. 아부도 할 줄 아네..."
  "하하... 어쩔 수 있나요. 사모님께 미운 털이 박혔으니......."
  "...뭐라구.....? 허허..... 그 말을 하면 어떻게 하나?"
  "아..... 이 말은 비밀이었던 가요? 이런 어쩌죠?"
동식은 짐짓 큰 실수라도 한 양 포즈를 취했다.
  "아주 두 양반이.... 나를 놀리는군요."
  "하하... 당신 알아들은 거야?"
이지석은 재미있다는 듯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럼 내가 바보인 줄 아세요?"
  "하하하.........."
  "하하하..........."
동식과 이지석이 한꺼번에 웃었다.
  "사모님...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 해주십시오."
  "아.. 아니에요. 최이사님은 잘 못한 것 없어요. 회사 사정을 내가 모르는 바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하니 감사합니다."
  "다만... 주책없이 부부간의 일을 말하고 다니는 이 주책바가지 영감은 용서를 못하겠군      요."
  "예....?......하하........."
  "이런 불똥이 왜 갑자기 나에게 튀나?"
이지석은 아내를 보며 동그랗게 눈을 떴다.
  "당신 나중에 봐요..."
  "싫은데... 오늘부터 각방 써요...."
  "..........?"
  "왜 그렇게 보는 거요? 당신 화날 때면 맨 날 하던 소리가 아니오? 그 말을 내가 먼저 하     면 안되나?"
이지석의 말에 미희는 어이가 없다는 듯 멍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 보기 좋네요.. 두 분은 언제 뵈어도 행복해 보여요."
  "이게 행복해 보이는 건가?"
이지석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예.... 솔직히 부러워요. 제 아내는 화를 전혀 내지 않으니까요."
  ".........?"
  ".........?"
동식의 말에 이지석과 미희가 그를 바라보았다.
  "때론... 그게 좋을 때도 있었지 만요... 하하.....그나저나 두 분은 처음에 어떻게 만나신 건     가요?"
  "우리?"
  "........"
  "글쎄.....우리가 어떻게 만났지?"
이지석이 아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 그건 저도 잘......"
  "하도 오래 되어서 잊어 먹었어. 분명 처음 만났을 때가 있긴 있었을 텐데... 너무 어릴 적     이라 그런가?"
  ".......?"
  "그냥... 언제부터인가 이 사람이 내 곁에 있었어.. 한 동네에 살았거든....."
  "아...예......"
  "실은 이 사람... 내 증조할머님의 조카의 딸이야..."
  "예.....?"
  "여보.. 왜 괜한 소리를......"
미희가 깜짝 놀라 남편에게 말했다.
  "뭐 어때요. 나쁜 말 한 것도 아닌데....."
  "............"
남편을 미희는 흘겨보는 듯하다가 이내 체념한 듯 고개를 돌려 동식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그 것은 치부를 들친 사람의 표정이기보다는 달관의 경지에 오른 이의 미소 같은 것이었다.
  "시간이 꽤 흘렀죠..."
미희가 중얼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지 정말 시간이 많이 흘렀어."
  "........."
동식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지석 부부는 근친이라면 근친이었다. 촌수계산을 굳이 한다면 7촌이니... 그러나 가부장제 하의 촌수계산에 여성 쪽은 들어가지 않았다. 설령 들어간다손 치더라도 법은 자신의 기준으로 어머니 쪽만 계산할 뿐이었다.
  "왜.. 우리가 이상한가?"
동식의 묘한 표정을 읽은 이지석이 말했다.
  "아.. 아닙니다."
  "그래.. 이상하기도 할거야. 자네만 그리 본 것도 아니니... 하하......"
이지석은 자조적인 웃음소리를 내며 말을 이었다.
  "마을이 난리가 났었으니..."
  "이사님의 증조할머님의 친정 가문도 같은 동네에 살았었나 보죠?"
  "응?... 아.. 그건 아니네. 음.. 내 증조할머님의 친정은 강원도에 있었어."
  "예.....?"
  "그러니까... 내 고향 마을은 이씨와 오씨로 이루어진 마을인데, 증조할머님의 조카가 그      오씨네 가문으로 시집을 온 거지.."
  "아...."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동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마을 사람들이 반응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
  "증조할머님의 가문도 아닌데... 왜 그렇게......"
동식이 알고 있기로는 예전에는 남자 쪽의 가문만 따졌지, 여자 쪽의 가문은 따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동성동본 금혼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어머니 쪽의 가문도 따지긴 했지만, 그거야 어디까지나 가부장제에서 나온 파생 개념에 불과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하... 예전의 우리랑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군요."
동식의 말을 들은 이지석은 외려 아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게요..."
미희는 동식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
  "그래.. 자네 말이 맞네... 그리고 그 생각으로 인해 지금의 우리가 있는 거고..."
  "......."
동식은 말없이 이지석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당시 마을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더군. 더구나 생존해 계셨던 내     증조할머님은 심한 충격에 몸져누우셨고..."
  "........."
  "생각의 차이가 참 많은 일들을 발생시켰지. 집사람과 나는 사랑을 찾았지만, 가족을 잃어     야만 했으니 말이야."
그 말을 하는 이지석은 담담했다.
  "가족이란 것은 단순히 성씨와 혈연의 관계는 아닌 것 같아요."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미희가 말을 꺼내었다.
  "그때 마을 사람들은 우리와 다른 말을 했었어요. 비록 그 말을 지금에서야 겨우 이해할     수 있었지만......"
  "무슨........?"
  "마음.......요."
  "마음..?"
동식은 이해를 못하고서 미희의 말에 스스로 자신에게 반문하였다.
  "그래도 이해를 못하는가? 그래 마음이지.. 내가 집사람과 언제 처음 만났는지 기억 못한     다고 하였지 않나.. 그건 아주 어릴 적부터 집사람이 우리 집에 출입을 했다는 말이지..      가족의 일원으로서 말이네."
  "........"
동식은 여전히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동식을 바라보았다. 그런 동식의 시선에 이지석은 빙긋 웃었다.
  "가족은 그릇이 아니라, 그릇 속에 담겨진 어떤 것이지."
  ".......!!"
  "가족 제도가 있기에 가족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있기에 가족 제도가 있는 이치랄     까? 그런 거네...."
  "......!!!!!!!!!"
동식은 뭔가가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내 얼굴이 달아올랐다.
지난 시절 자신의 결혼을 반대하였던 가족들의 얼굴이 하나 하나 떠올랐고, 그 중에서도 자신을 가장 귀여워했던 할아버지의 얼굴에 가슴이 미어졌다. 외국까지 나가 무슨 공부를 하고 온 거냐고 불같이 화를 내던 모습, 지혜네 식구가 야반도주하였다는 소식에 자신의 앞에 놓인 돈 궤짝을 걷어차던 모습, 자신에게는 금족령을 내려놓고서 사람들을 풀어 지혜 식구를 찾던 일까지...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그리고......
자신을 보면 발짝을 하던 아내의 마음도, 언제부터인가 마네킹이 되어버린 아내의 모습도, 그리고 자신의 아들과 몸을 섞을 수 있는 아내의 행동도 이해가 되었다.


  "왜 그러나....?"
동식이 붉어진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이지석이 말했다.
  "아... 아닙니다. 아무 것도........."
  ".........."
이지석은 동식을 의아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런 남편을 미희도 다소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 녀석 어디로 간 거야?"
동변이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상현과 약속한 장소에서 40분 가량을 기다리던 동변은 기다림에 짜증이 났는지 일어서서 서성거렸다.
  "곧 오겠지.. 조금만 기다리자..."
아이스크림을 상현의 동생인 상진에게 주면서 민수가 말했다.
  "자.. 그만 서성이고, 이거나 받아....."
  "에이.. 녀석 기다리다가 시간 다 보내겠네......"
동변은 민수에게서 아이스크림을 낙에 채 듯 받아들었다. 그런 동변을 모습을 바라보던 상진이 옆에 앉은 민수에게 속삭였다.
  "형아.. 이건 형에게만 말하는데.. 나 우리 형 어디 있는지 안다.."
  "응.....?"
  "한나랑 지금쯤 컴컴한데서 뽀뽀하고 있을 꺼야.."
  ".......?"
민수는 순간 머리가 띵- 해졌다. 그런 민수를 보며 상진은 뭐가 그리 좋은지 활짝 웃었다.
  "..........."
민수는 뭐라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도무지 맹랑한 건지, 순진한 백치인지 모를 꼬맹이에게 어떤 말을 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너.. 그걸 어떻게 알아....."
한참을 떨떠름하게 있던 민수는 이리저리 상현을 찾아다니는 동변을 보고는 상진에게 물었다.
  "우리형이 말해 줬어.. 물론, 그 전에 내가 일기장을 먼저 보아서 알고 있었지만 말이야.      하지만 이건 우리형한테 말하면 안돼.. 알았지? 내가 일기장을 보았다는 건 아무도 모르     니까 말이야."
민수는 어이가 없어서 실소를 터뜨렸다.
  "그리고, 이건 정말 비밀인데.. 음.... 말해 줄까 말까...."
  "비밀이 또 있어...?"
  "음.. 이건 정말 약속 해줘야 되는데... 안 그럼 나 한나에게 맞아 죽어..."
  "한나...? 한나와 관련 된 거야?"
  "앗........!!!"
상진은 자신의 실수를 인지를 했는지 자신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말해봐.. 괜찮으니까.. 약속은 지킬게..."
  "응.. 그럼 형을 믿고 말한다. 아무한테도 말하지마.."
  "그래 알았다.."
  "사실은... 한나도 우리형을 좋아해."
  "정말........? 하하...."
  "왜...?"
  "아냐 아무 것도... 그래 너 어떠니?"
  "뭐가.....?"
  "너네 형이랑 한나랑 어떻게 보이냐고......"
  "난 좋아... 난 한나랑 우리형이랑 결혼했으면 좋겠어. 그럼 학교에서 아무도 날 깔보지 않     을 거야.."
상진은 마치 간절히 그 것을 바라는 사람 마냥 말했다. 그런 꼬맹이를 보며 민수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 것이 그리 어이없을 일인가?
  ".........."
민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6살 차이.
성장 단계에서 그 6살 차이는 엄청난 차이임은 분명하지만, 그 차이를 근거로 상진을 무시할 수도 없었고, 그의 형인 상현과 한나를 우습게 볼 수도 없었다. 몇 가지를 모른다고 하여 무시하고, 몇 가지를 더 안다고 하여 순수한 마음을 우습게 볼 수 있는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순수했나......]
민수는 엄마를 떠올렸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지내왔던 십 수년. 그저 남들이 말하는 엄마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당연한 존재로서의 엄마의 모습. 남들에게도 있듯이 나에게도 있고, 다른 아이들이 엄마의 관심을 받듯이 자신도 엄마의 관심을 받고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변했다.
그저 자신이 알고 있던 엄마의 모습에서 한가지만 덧붙이려 했던 시기. 그냥 '성(性)'만을 결부시키면 될 뿐이라 믿었고, 그 것을 간절히 원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렇게 되어간다고 생각하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가졌던 엄마의 모습은 점점 변해만 갔다.
민수로서는 그것이 힘들었다.
엄마가 아닌 여자로 느껴지는 것이...... 시간이 흐를수록 색다른 감흥은 사라지고, 현실이 조금씩 느껴졌다. 그리고 이제는 그 현실이 싫을 정도로 피부에 닿고 있는 중이었다.
  

    *        *         *          *          *         *            *          *


  "다녀왔습니다."
  "............"
지혜는 아들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평소 같은 인사말도 건네지 않았다.
  "밥은 친구들이랑 먹었어요."
음식 냄새가 민수의 코를 자극했다.
  "그래........"
지혜는 짧게 답하고는 주방으로 걸어갔다. 마치 예상이라도 한 양 그녀의 행동은 자연스러웠다. 그런 엄마의 뒷모습을 민수가 잠시 바라보았다. 주름잡힌 긴 스커트가 걸음마다 흔들렸다.

민수가 목이 말라 방을 나왔을 때, 지혜는 소파에 앉아서 읽던 책을 내리며 아들을 바라보았다.
  "시간 있니?"
아들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던 지혜는 그렇게 말했다.
  "왜요?............"
  "대화를 나눌까 해서..."
  "어제 이야기라면 하고 싶지 않아요."
민수의 목소리는 냉랭하였다. 그렇게 차갑게 말하지 않아도 될 일이건만, 아니 그럴 자격도 없는 그였다.
  "........"
지혜는 아들의 말에 할 말을 잃고 아들을 바라보았다.
  "나중에... 조금 더 시간이 주세요."
민수는 주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
민수는 걸음을 멈추었다.
  "왜 그러시는 거죠?"
  "우리.. 일상적 대화도 나눌 수 없는 거니?"
  "....!"
민수는 답하지 않았다.
아니, 답할 수가 없었다.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 성 관계를 가지면 다른 일상도 사라지는 것일까?
그 것은 전혀 아니었다. 민수 자신의 하루 생활만 보아도 알 수 있는 게 아닌가. 비록, 엄마와의 관계로 갈등을 느끼고 있을 지라도, 생활의 모든 순간을 그 갈등으로 보내진 않는다. 오늘만 하여도 놀이공원에 가서 재미있게 놀지 않았던가...
  "후......... 물 한 컵 가져 다 줄래?"
잠시간의 침묵을 깨며 지혜가 말했다.
  "........."
민수는 엄마의 말에 답하지 않고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고마워...... 그 곳에 앉을래?"
지혜는 물 컵을 받아들며 아들에게 자리를 권했다.
  "예...."
  "오늘 왜 그렇게 늦었니?"
민수가 자리에 앉자 곧 지혜는 오늘 아들이 늦은 이유를 물었다. 토요일 오후에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모를 리 없었지만, 단순히 그 이유로만 아들을 이해하기에는 그가 보이는 태도는 심히 걱정스러운 것이었다.
  "죄송해요."
  ".........."
  "........?"
자신의 말에 엄마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 민수는 고개를 들어 엄마를 바라보았다. 마주친 엄마의 시선에는 약간의 노기와 걱정이 서려있었다.
  "걱정 많이 했어..."
지혜는 시선을 탁자 쪽으로 보내며 말했다.
  "...........?"
  "너를 기다리며 그런 생각도 했단다."
  "........?"
  "내가 왜 너를 걱정해야 하는 건가 하고 말이야. 예전의 나라면, 네가 늦는다고 하여 오늘     처럼 걱정하지는 않았을 거야..."
  ".......!!"
지혜의 말이 민수의 가슴에 비수처럼 파고들었다. 스스로 인정하기는 했지만, 그 말을 직접 엄마의 입을 통해 듣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선언(宣言).
엄마의 말은 분명 선언이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이제 더 이상 민수가 알고 있는 예전의 엄마가 아니란 선언.
  "너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난 그리 좋은 엄마는 아냐. 너에게 많은 잘 못을 했다는 것도     알아. 그 잘못을 원인으로 지금 이런 힘든 시기를 보낸다고 하여도 변명의 여지는 없어."
  ".........."
  "하지만, 이 것은 분명히 알아... 지금의 고통은 너 혼자만의 문제도, 나 혼자만의 문제도     아닌 너와 나의 문제란 것을....."
그 곳까지 말하고 지혜는 아들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민수는 엄마의 시선을 마주 응시하였다.
  "우리의 문제란 것을 알아주었으면 해..."
  "......!!!!!"
우리의 문제... 민수는 또 한방 먹은 기분이었다.
그랬다.
민수는 지금까지 모든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였었다. 자신의 입장에서 엄마를 받아들였고,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자기 혼자 괴로워하고, 괴로움에 지쳐 다른 곳에 정신을 팔고, 외면하고....
어쩌면, 그 자신이 지금 힘겹게 잡고 있는 '엄마'란 존재에 대한 향수는 그 자신의 착각일지도 몰랐다. 실제의 엄마와는 전혀 상관없이, 아니 아예 관심도 두지 않고 혼자 만들어 버린 허상(虛想).
그 허상 만들기에 세상도 동참하여 더욱 깊이 민수의 뇌리에 각인 시켜서 그 것이 진실이 되어버린 것인지도...

  "그래...알아. 내가 네 엄마란 것을.... 그래서 네가 힘들어한다는 것도...."
지혜는 차분히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어떻게 해야한다는 것을 잘 알아. 세상은 참 많은 것을 가르쳐 주거든. 엄마란 어떠     해야한다라고 말이야. 책이나, 영화나, 드라마나.... 좋은 엄마가 어떻다는 것을 정말 잘      말해주기에 엄마 노릇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이들도 정말 멋지게 할 수 있을 정도지...."
지혜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
  "나... 그렇게 했고, 앞으로도 할 수 있단다."
  ".........?"
  "넌 내 아들이니까.."
지혜는 강한 시선을 아들에게 보내었다. 그 곳에는 깊은 애정이 담겨져 있었다. 그 것은 결코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
그 것은 무한하고, 영원한 것이라 한다. 그러기에 너무나 평범하고, 자식들은 사랑 받고 있다는 느낌조차 받을 수 없는 것인지도..

  "하지만..... 민수야...."
  "........"
  "세상은 그 것은 알려주지 않았어. 아들을 남자로 사랑하는 엄마의 노릇을.... 아들과 성관     계를 맺어버린 엄마 노릇을 말이야."
  "아........"
엄마의 입장. 지금까지 민수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부분이었다. 민수는 확실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에 언뜻 스쳤던 생각.
근래 자신의 행동과 고민은.... 단지 엄마에 대한 칭얼거림에 불과한 것이라고....
  "죄송해요...."
  ".........."
지혜는 아들의 사과를 받지 않았다. 그저 손에 들린 물 컵을 조용히 탁자에 내려놓았다.
  "제 생각이 짧았어요. 엄마의 입장을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
  "그저... 예전의 우리 가족 그대로의 모습 속에.... 엄마와 나의 관계가 있기만을 바랬죠. 지     금 생각하면 참 바보 같은 생각이고, 정말 욕심 많은 바램이지만...."  
  ".........."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었다는 것만큼은 인정     할 수밖에 없네요."
민수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우리 함께 풀어가자.. 그랬으면 해.... 생소하기만 한 엄마 노릇... 그리고 너에겐 생소한      아들 노릇을 말이야."
  "생소한...?"
  "..............."
그때 불현듯 민수가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왜 그러니?"
  "하하.... 진작 엄마와 대화를 나눌 걸 그랬나 봐요. "
  ".......?"
  "제 문제는 겨우 그 문제였어요. 생소한 아들 노릇을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하는........"
아들이 말에 지혜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그 말뜻을 알아차리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 엄마를 보며 민수도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의 눈에 습기가 차 오르더니 방울이 되어 볼을 타고 흘렀다.
  "엄마와 나.... 분명 과거로 돌아 갈 수는 없는 거겠죠?"
  "........"
지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잘 못하여 바닥에 엎지른 물. 이제 우린 그 바닥에 있는 거죠...?"
  "그래.... 잘못을 했으니까..."
  "엄마 잘 못은 아니죠."
  "아니... 있어..."
  "................"
  "하지만.........난 지금이 행복해...."
엄마의 말에 민수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민수의 가슴이 탁 트이는 듯 시원했다. 너무나 시원하여 눈물이 멈추지 않을 정도로.....







6. 도전(挑戰)


춘분.
1년 24절기 중 낯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날. 낯이 양이고, 밤이 음이라면 음양이 가장 조화를 잘 이루는 날일 것이다.
조화를 굳이 산술적 평균으로 본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 것이 틀린 관점이란 것은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낯과 밤의 길이가 같다고 하여 어찌 음양이 가장 조화롭다 할까.... 만물의 근원을 이루는 상반되는 두 성질인 음양의 조화는 사람의 인위적 가해만 없다면, 1년 24절기, 1년 365일 계속하여 발생하는 것이리라...
자연의 섭리에 잘 따르고 있는 모든 자연 생태계에 있어서는....


민수는 소파에 길게 누워 일요일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모처럼 느끼는 느긋한 일요일 오후... 오후의 햇살이 거실의 창을 넘어 민수가 누워 있는 소파의 반대 쪽 벽 아래에 살짝 걸렸다.
조금만 있으면, 그 벽 아래에 걸린 햇살은 점점 벽을 따라 길게 뻗을 것이다.
남향집의 좋은 점은 바로 이 것이었다.
하루 종일 햇살을 받을 수 있다는 것.... 특히 민수가 살고 있는 주변 산으로 인해 아파트는 그 위치가 기가 막혔다.
  "간식이라도 줄까?"
서재에서 나와 아들을 보며 지혜가 말했다.
  "저는 괜찮은데요..."
민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엄마를 보며 말했다. 그런 민수의 표정에는 다소 여유가 있었다.
  "그래.. 배가 출출하거든 말해라..."
지혜는 아들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짓고는 화장실로 향했다.

겨우 8일째...
그건 분명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지혜와 민수는 서로 마음의 안정을 어느 정도 잡아가고 있었다. 아직 서로의 새로운 신분에 익숙하지는 않았기에 잠자리를 아직 같이 하지는 않았지만, 그에 대하여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연스러움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풋~~!"
민수는 가벼운 실소를 터뜨렸다.
누가 그랬던가? 여자와 한번 잠자리를 같이 하면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라고... 한번 몸을 섞으면 그 다음부터는 내숭이나 비밀 같은 것이 없어진다고......
전혀 그렇지 않음을 민수는 잘 안다.  
성관계 한번 한번은 그 나름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일상의 한 부분. 늘 빈집의 문을 잠구어야 하고, 주차된 자동차의 문을 잠구어야 하는 것처럼, 혹은 매일 식사를 하고, 세수를 해야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어느 누가 어제 밥을 먹었으니, 오늘 당연히 밥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오늘도 식사를 할 수 있으려면 그에 합당한 준비를 미리 해야할 것이다.
그 것이 일상.
그리고, 그런 일상은 자연스럽게 자아의 사고체계에 자리잡혀야 한다.

  "왜 웃고 그래?"
언제 다가왔는지 지혜가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아.. 아무 것도 아니에요."
  "싱겁긴......."
  "글은 잘 쓰여지세요?"
  "그럭저럭...."
지혜는 별문제가 없다는 듯 살짝 미소를 지었다.
  "친구들이 많이 궁금해하는데... 앞으로 진해될 상황을 말해 줄 수 있나요?"
  "훗~~ 너는 궁금하지 않은가 보지?"
  "아... 하하......"
  "너..... 혹시 내 소설 읽지도 않은 거 아니니?"
  "괜한 말을 했네..."
민수는 뒷목을 손으로 쓸었다.
  "아냐... 읽지마... 사람들이 좋아하긴 하지만...이상하게 난 부끄럽기만 하거든..."
  "왜요.....?"
  "글세... 왜일까...."
  "흠... 그럼 꼭 읽어야겠네..."
민수는 장난기 가득한 음성으로 말했다.
  "네 말.... 조금 이상하네..."
  "뭐가요?"
  "불순한 의도가 느껴지는데...."
  "불순한 의도? 하하..... 알았군요..."
  "나를 놀릴 거라면 읽지마..."
지혜는 살짝 눈을 흘겼다.
  "놀려요....? 설마... 조언이죠..."
  "과연 그럴까? 지금 네 모습을 보면 전혀 그럴 것 같지가 않은데...."
  "하하... 걱정 마세요. 저도.. 여느 사람들과 비슷해요. 그 사람들이 그렇게 격찬을 하는데,     저라고 별 수 있겠어요?"
  "그런가.......?"
  "예... 하하...."
지혜는 말 대신 웃으며 아들의 손을 잡았다.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손보다 더 커버린 아들의 손. 그 것은 한 남자의 손이기도 했다.
  "저 엄마... 나 엄마 무릎 베고 누워도 돼요?"
민수가 말했다.
  "그래... 그러렴..."
  "시간 빼앗는 게 아닌가요?"
  "아니야... 쉬려고 나온 거야.."
지혜의 허락이 떨어지자 민수는 그녀의 다리를 베고 소파에 누웠다. 조금 전 혼자 소파에 누웠을 때보다 훨씬 더한 포근함이 전해져 왔다.
  "나 질투를 느낄까?"
아들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지혜가 말했다.
  "예......?"
  "지금 쓰는 글에... 여자가 질투하는 장면이 있어서...."
  "예...."
민수는 이해하겠다는 듯 길게 답하며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 것이 어찌 이해가 되랴. 이제 겨우 18살이 된 청소년에 불과한데... 그 나이의 어떤 사내아이가 자신의 엄마가 한 여인으로서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질투를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이나 할까?
앞으로 수많은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질투를 느낄 것 같으세요?"
민수는 몸을 엄마의 몸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이내 지혜의 속 들어간 복부에 민수의 얼굴이 닿았다. 부드러운 옷감의 촉감을 볼로 느끼며, 잠깐 그 것이 살결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글세......"
  "............"
  "네가 보기에는 어떠할 것 같니?"
  "느끼지 못할 거예요."
  "......?"
  "질투를 느낄 상대가 아예 없을 테니까요........"
  "뭐.....? 푸풋~~~~~"
지혜는 실소했다.
물론, 민수는 엄마를 배려한 마음에서 한 말이었다. 비록 엄마를 엄마로서, 한 여인으로서도 받아들여 그녀와 섹스도 하였고, 앞으로도 할지 모르지만, 아내로서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아니... 여인으로서 책임진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다. 정상적인 모자관계는 아닐지라도 그에겐 엄마가 필요했다.
아내는 아내일 뿐, 엄마가 아니다. 물론, 민수는 결혼이란 것을 생각해 본 적도 없지만... 그저 엄마면 족했다. 다른 여자는 필요 없었다.
  "정말 그럴까.....?"
지혜가 말했다.
  "예......"
  "고마워....."
지혜도 알고 있었다. 아들의 말이 빈말이라는 것을... 설령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지라도 갓 18살이 된 소년의 그런 생각을 어찌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래도 상관이 없었다. 삶이 순간이니, 순간의 진실도 진실인 것을....
  [아무렴 어떠랴...]




  "그대로 누워 있으세요."
퀭한 눈으로 몸을 힘겹게 일으키려는 동식을 제지하며 보경이 말했다.
  "오시지 않아도 되는데... 가게는 어떻게 하고 온건가요?"
  "어머... 이 땀 좀 봐... 언제부터 이런 거예요? 약은 드신 거예요?"
보경은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하하.. 한 번에 한가지만 물어요..."
  "아..... 미안해요... 언제부터 이런 거예요?"
  "어제 오후부터인가... 하지만 지금은 많이 괜찮아 졌어요."
동식은 애써 미소 지으며 말했다.
  "병원에는 다녀오신 거예요?"
  "아뇨... 감기 몸살인데... 병원까지 갈 필요 있나요.. 그냥 약 지어먹었어요."
  "식사는요..."
  "먹었어요. 걱정 말아요..."
동식의 말을 보경은 믿지 않았으나,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런 남자들의 빈말... 고인이 된 그녀의 남편도 그랬었다. 숙 들어간 눈으로 말하는 남편의 모습과 지금 동식의 모습은 너무나 닮았다.
보경은 동식의 곁에 잠시 더 있다가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예상대로 주방에는 음식을 해 먹은 흔적이 없었다.
  "........."
보경은 짧은 숨을 내쉬고는 우선 밥부터 앉혔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있는 대로 꺼내어 간단하게 반찬을 만들고는 밥이 될 동안 가까운 가게로 향했다.
돌아온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작은 소반과 과일 그리고 찬거리가 들려있었다.

  "식사하세요..."
보경의 손에 들려진 작은 소반에는 미음과 반찬 몇 가지, 그리고 과일이 정성스럽게 놓여있었다.
  "입맛이 없을 것 같아 미음을 쑤었어요."
  "이러시지 않아도 되는데...."
동식은 어지럼증을 이겨내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앞으론 거짓말하지 마세요....."
  "하하......."
무슨 말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동식은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입맛이 살아나네요."
소반 위에 놓인 음식을 보며 동식이 말했다.
  "그럼 많이 드세요."
  "예..."
동식은 애써 미소를 짖고는 수저를 들어 음식을 입에 가져갔다. 어제부터 너무 앓아서 인지 음식이 입에 썼다. 그러나, 동식은 꾹 참고서 보경이 해온 미음을 다 비우고, 접시에 놓인 과일의 반을 먹었다.
그 음식을 먹는 동안 동식은 아내인 지혜를 떠올렸다.
  [아내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상하게도 쉽게 연상이 되질 않았다.
비록, 결혼 생활 동안 단 한번도 아픈 적이 없기에 이런 경험을 해보지 못했더라도 긴 결혼생활의 기간으로만 보아도 상상이 될 법도 하건만... 그저 동식의 머리 속에는 마네킹 같은 아내의 모습만 떠오를 뿐이었다.

  "연락도 하지 않나요?"
동식이 음식을 다 먹자 보경이 말했다.
  "예.......?"
  "지혜씨 말이에요."
그렇게 말하는 보경의 눈에는 다소 화가 서려있었다. 그런 보경을 동식은 그저 말없이 바라보았다.
  "너무 하는군요...."
  "저... 좀 누워도 될까요...?"
어지럼증이 점점 심해짐을 느끼며 동식이 보경의 양해를 구했다.
  "예.. 누우세요."
보경은 얼른 소반을 한 쪽으로 치웠다. 그런 보경을 보며 동식은 천천히 자리에 누웠다. 억지로 식사를 해서인지, 아니면 어제부터 비어있던 배에 음식물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들어가서인지 속이 메스꺼워 토할 것만 같았다.
  "..........."
자리에 눕자 어지럼증과 메스꺼움이 조금 더 심해져 동식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왜... 속이 안 좋은가요?"
  "아.. 아닙니다."
다소 증상이 누그러들자 동식은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실로 오랜만에 앓은 심한 몸살.
언젠가 할아버지의 명으로 금족령이 내려져 집에 갇혀 있을 때, 한 번 이 보다 더 심하게 앓은 적이 있었다. 온 몸에서 열이 나고, 식욕도 사라졌으며, 급기야는 시력도 약해져 모든 것이 초점 없이 희미하게 보인 적이 있었다.
그래도 하나는 분명하게 보였었다.
눈앞에 없을 지라도, 확연히 보였던 아름다운 여인이.

그러나,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
동식은 조용히 천장을 응시하였다.
  "방 공기가 탁하네요... 환기를 시켜야겠어요."
동식의 모습을 바라보던 보경이 방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래요...."
  "....."
동식의 말에 보경은 대꾸 없이 일어나 커튼의 젖히고, 창문을 열었다. 서향으로 난 창으로 이내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날씨가 너무 좋아요..."
밝은 음성으로 말하며 보경은 잠시 창 밖을 내다보았다.
구름 한 조작, 바람 한 점 없는 따뜻한 봄.
맑은 날의 가을도 이렇게 좋지만, 분명 봄과 가을이 주는 느낌은 달랐다. 만물이 소생하고, 만물이 열매를 맺는 다는 것의 차이에서 그럴까? 아니면, 뒤편에 있는 가을과 여름의 차이 때문? 그 것도 아니면, 앞으로 다가올 여름과 겨울의 차이?
어째든 봄과 가을은 너무나 닮았으면서도...또한 너무나 틀렸다.
  "저는 봄이 가장 좋아요..."
보경이 말했다.
  "남들은 가을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다고 하는데... 저는 이상하게 봄에 그런 충동을      느껴요. 어때요? 동식씨도 봄을 좋아하세요?"
  "예......."
  "........"
  "혹 쓰신 글이라도 있는 가요?"
  "있지요. 예전에 봄이 될 적마다 썼으니까요. 노트로 3권쯤 될 걸요?"
  "시도 있나요?"
  ".......?"
동식의 말에 보경이 돌아보았다. 그런 보경을 보며 동식이 빙긋 웃었다.
  "아... 방 청소를 해야겠다.."
보경은 딴 전을 피우며 마치 급한 일이 생각이라도 난 듯 방의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잘 정돈된 방에는 먼지만 약간 앉아 있을 뿐 달리 청소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시를 읽어 본 적이 꽤 오래 된 듯 하군요.........."
동식의 말이었다.
  "이렇게 먼지가 쌓여 있으면 외려 병이 더 심해지죠."
보경은 엉뚱한 말을 하며 살짝 웃고는 방을 빠져나갔다. 왠지 그런 보경이 동식은 귀엽게 느껴졌다.

돌아온 그녀의 손에는 깨끗한 걸레가 들려져 있었다.
  "저녁에는 목욕을 하시고 주무세요.."
  ".......?"
  "음... 참 옷은 갈아 입으셨어요?"
  "옷..요?"
  "예.. 분명 땀에 절어 있을 텐데.. 그 것을 계속 입고 계시면 몸에 해로워요."
동식의 주변부터 먼저 닦으며 보경이 말했다.
  "아직......"
  "그럼 안되죠. 음... 저녁에 목욕할 것도 없이 지금 당장 해요. 목욕물 받아 놓을 게요.."
보경은 동식의 의사도 묻지 않고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방을 나가 욕탕에 물을 받고, 방을 닦고, 욕탕에 물이 어느 정도 차자 동식을 반 강제로 욕실로 밀어 넣었다. 다소 호들갑스런 보경의 행동에 동식은 그저 바라만 보며 그녀가 시키는 대로했다.
그러나, 싫지는 않았다. 외려 그런 상황 속에서 동식은 약하게나마 행복이란 것이 별게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동식이 아는 행복은 아주 어려운 문제 같은 것이었다.
느끼는 행복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행복 같은 것...

몸의 고통과 어지럼증 등의 이유로 가만히 누워만 있었던 동식은 어째든 보경의 억지 같은 호들갑에 목욕을 했다.
조금 뜨겁다 싶은 욕탕에 앉아서 힘들게나마 동식은 손을 놀렸다.
  "동식씨........"
문 밖에서 보경의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예..."
  "휴 다행이네.... 무슨 목욕을 그렇게 오래 하세요..?"
  "하하.. 생각보다 힘드네요..."
  "도와 드릴까요?"
  "아뇨... 다 되었어요."
마치, 당장이라도 들어올 것처럼 말하는 보경에게 동식은 황급하게 답했다. 비록 함께 잠자리도 하여 서로의 몸을 잘 안다고 하지만, 침실이 아닌 곳에서 알몸을 보여준다는 것이 어색한 동식이었다.
더구나, 상대는 친구의 아내...
아직, 동식에게 있어 보경의 이미지는 친구의 아내란 이미지가 강했다. 물론, 관계가 시작된 그 때부터 서로가 인정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럼 옷은 문 밖에 둘게요.. 갈아입으세요."
보경은 문을 향해 그렇게 말하고는 옷을 내려놓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동식의 방으로 들어온 보경은 창문을 닫았다.
봄의 따뜻함이 있다고는 하나, 아직 다소 간의 한기가 느껴지는 날씨였다. 창문을 닫고 자리에 앉으며 보경은 새로 깔은 이부자리를 손보았다.
  ".........."
보경은 방 한 편에 있는 책장의 서랍을 보았다. 조금 전 청소를 하다가 우연히 열어 본 그 곳에는 동식의 가족사진이 들어 있었다.
보경은 동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배신을 당하고도, 아니 있을 수 없는 일을 그대로 묵인하는 그 마음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자신이라도 찾아가 동식 대신 그의 아내와 아들에게 욕설이라도 한바탕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면서.......
  [바보같은 생각.........]
하지만, 그런 다고 뭐가 달라질까. 아니 자신이 그럴 자격이나 있을 것일까? 세상의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동식과 자신 역시 손가락질 받기에 충분하니...
  "후........."
그래도 답답한 것은 어쩔 수 없었고, 동식이 측은해 보이는 마음이 그의 가족에 대한 분노로 바뀌어지는 것 역시 어쩔 수 없었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참... 사람의 마음만큼 간사한 것도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달깍.....--
문여는 소리와 함께 동식이 들어왔다.
  "새로 깔았군요."
  "예... 어서 누우세요..."
보경이 일어나며 동식에게 자리에 눕길 권했다.
  "고마워요.. 이제 그만 가보세요. 여기에 계속 있다가는 감기 옮아요."
  "그런 것은 걱정 말아요. 이래도 건강체질 이니까요."
약해 보이는 자신의 몸을 슬쩍 보며 보경이 말했다. 그런 그녀를 동식이 바라보며 이부자리 속으로 들어갔다.
새 이불의 깔끔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이사를 할 적에 보경이 산 이불이었다.
  "바보같이 혼자 이렇게 앓지 마세요..."
누워있는 동식에게 보경이 말했다.
  "............"
동식은 답할 수가 없었다. 무슨 답을 하랴... 지금까지 회사와 집밖에 모르던 그가 누구에게 연락을 할 수 있을까?
아내에게? 아들에게?
아니면 아부떨기에 바쁜 철새 부하직원? 자신의 계열에 서서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는 부하직원?
  "저라도 부르세요...."
보경이 말했다.
  "예... 고마워요."
동식은 살짝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하지만 어찌 그녀를 부를 수 있을까? 그녀에게도 그리고 고인이 된 친구에게도 약속한 일이 아니던가?
그들의 사랑을 지켜 주겠다고...
그런 그가 어찌 힘들 때마다 보경을 불러 그녀의 마음을 받고, 또 줄 수 있느냔 말이다. 사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이란 것을 이제 동식도 잘 알고 있었다.
성적인 관계의 허상.
그 것은 오래 전부터 동식이 느껴 왔던 것이기도 하다. 흔히 사람들은 말한다. 사귀던 사람과 잠자리를 같이 하면 모든 것이 끝난 것이라고...
동식도 그 것을 믿었고, 십 수년간 믿으려 노력했었다.
그러나 그 것은 바보 같은 착각.
  "..........."
동식은 보경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다시 천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섹스를 하면 여자가 내 것이 된다고......?]
  [거짓말....]
그것은 정말이지 완벽한 거짓말이라고 동식은 생각했다. 단 한번도 아내는 자신에게 모든 것을 열어 보인 적이 없었다. 자식을 놓고, 수많은 밤을 함께 보내었지만 아내는 그 자리에 서 있을 뿐 자신을 향해 걸어오지도, 돌아보지도 않았다.
성적인 관계...
그 것은 징표는 될 수 있어도, 결코 그 자체가 마음일 수는 없었다.
고인이 된 친구는 그 것을 알았던 것일 거다. 그리고, 그의 아내인 보경도 그 것을 느끼기에 자신과 성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마음이 결부되지 않는다면, 성행위는 단순한 배설행위...

  "그 친구가 화내지 않을까요...."
침묵을 깨고 동식이 말했다.
  "예.......?"
  "당신의 이 모습을 본다면.... 그 친구가............"
  "........."
어른 이해가 되지 않는 다는 듯, 보경은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이내 동식의 말의 뜻을 이해한 듯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아뇨........"
  "...........?"
  "그 사람이 살아 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그가 있겠죠."
  "............"
잠시 보경에게 시선을 보내다가 거두며 동식이 말했다.
  "조심을..."
  "알아요."
  ".........."
  "시험할 마음도, 장난칠 마음도 없으니 걱정 말아요."
말을 마치며, 보경은 구겨진 이부자리를 바르게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마음의 흐름이라면, 그도 이해할 거예요."
  "..........!!"
의미심장한 말. 적어도 동식은 그렇게 느꼈다.
그러기에 동식이 보경을 바라보았지만, 보경은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그 말만 하고서 조용히 웃었다.
  [현수.... 자네... 나쁜 친구야......]
늘 친구가 좋은 아내를 얻었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것이 아닌 듯.... 보경이 좋은 남편을 얻은 것이라는 느낌을 동식은 지울 수가 없었다.

열녀비(烈女碑)란 것이 있다.
그 얼마나 우긴 것이냐고 일부 사람들은 말한다. 아니.. 지금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말한다. 그건 정말이지 바보 같은 것이라며... 그리고 그 중에는 여성을 종 또는 노비(奴婢)로 생각하는 사고의 부산물이라며 격렬하게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
하지만, 보경은 열녀각을 우습게 생각지 않는다. 열녀비의 주인공이 수절을 하여 가치가 있는 것이라 생각지 않기에...  
성관계가 그리 중요한 것일까?
그녀에게 있어 성관계는 그 자체로서의 의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것이 상징하는 의미가 중요한 것이었다.
사랑, 신뢰 혹은 믿음........
그녀의 의미는 그 것이었다.
언젠가 그녀는 남편과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신 내가 죽어도 나를 사랑할 거야?}
   {그럼요..}
   {그럼 증명할 수 있어?}
   {............?}
   {난......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으로도 돼...}
   {아니... 하지 않을 거예요.}
   {...............}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어느새 날이 어두워 졌는지 창 밖이 검었다.
  ".........."
보경이 동식을 보았을 때 그는 고른 숨을 내쉬고 있었다. 수면이 달콤한지 그이 표정은 너무나 편안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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