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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푸른 꽃잎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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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의 푸른 꽃잎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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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푸른 꽃잎 8


(8) 아레샤의 홀로 서기


아레샤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길 한 켠을 가로막고 있는 눈익은 세단을 발견하고 차를 멈췄다.
생각대로 그 세단은 마시모의 차였다.

"무슨 일이에요?"

앞후드를 연 채 엔진부를 체크하고 있던 마시모는 그녀를 보자 반가운 얼굴빛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곳에서 기름이 떨어지다니..."

"도와드리죠."

"차를 끄는 로프는 있어요?"

"있지요, 쓰세요."

아레샤는 짚차 뒤쪽을 가리켰다.

"이거라면 되겠군."

로프를 찾아 든 마시모가 말했다.

"인생이란 건 참 이상하군요!"

"왜 이상해요?"

"도와주겠다고 이야기한 건 나였는데.. 이번에는 당신에게 내가 도움을 받다니..."

"호호.. 무슨 교훈 같군요!"

"정말로 공교롭군."

아레샤는 로프를 메고 있는 마시모의 모습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그는 남자답게 별 어려움 없이 짚차의 뒤에 세단을 견인했다.
그리고 그는 거침없이 짚차의 운전석에 올랐고 아레샤도 별 저항감 없이 그 옆자리에 앉았다.

"당신은 농사일이 어울리지 않아요!"

"어째서요?"

"용모가 너무 예뻐요. 허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지."

"그럼 뭐가 문제란 말이에요?"

"농장을 계속하겠다는 용기 말이요."

"생활을 위해선 어쩔 수 없어요."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그럼 어떻게 생각하는데요?"

"술이나 마약에 빠지는 무리들과는 틀리는 거 같소?"

그 말은 그녀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퉁명하게 말했다.

"그럴만한 여유는 없어요."

"이렇게 말하면 화나시겠지만.."

"말해보세요!"

"당신에겐 아직도 맥이 흐르고 있어요."

그의 끈적거리면서도 여유 만만해 보이는 말에 아레샤는 자신을 추스리기 위해 그쯤에서 귀를 막았다.



한편 같은 시각 자전거를 탄 아레타가 집 앞 비포장 도로를 따라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그때 저 앞쪽에서 흰 봉고차 한대가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단박에 그 차가 무슨 차인지 알아 차렸다.
생각대로 그 차는 우편배달부의 차였다.
멀리서부터 그녀를 알아본 그는 그녀 옆에서 차를 세우고 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아레타!"

"우편물이 있어요?"

"또 등기우편물이더군요."

"마님께서는 너무 오래 기다리셨어요."

"그런데 우린 언제 재미볼 수 있겠소?"

우편배달부의 능청스런 그 말에 아레타는 쉬이 답했다.

"오늘밤 방문을 열어 놓을 테니 그때 들어와요."

"오, 알았소!"

그 말에 그는 쾌재를 부르며 손살같이 달려나갔다.
아레타도 자전거 바람에 치마를 허리까지 휘날리며 신나게 페달을 밟았다.



짚차에 함께 탄 아레샤와 마시모는 아직 할 얘기가 남았는지 차를 도로 옆에 세운채 대화를 계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화라기보다는 마시모의 일방적인 의도에 따른 것이었다.

"당신이 나가야 할 길은 따로 있는 것 같소."

"뭔 데요?"

"현실을 잘 볼 수 있는 일이요."

"어떤 일인데요?"

"댁은 아직 젊고 아름답소. 흙이나 비료를 주무르며 일생을 살 신분이 아니에요."

"허지만 건강적이잖아요."

"그거야 그렇죠. 그러나 남성도 필요해요."

그 말에 아레샤는 짤라 말했다.

"필요 없어요."

"인간에게 사랑이 필요하다는 건 당신도 잘 알고 계실텐데..."

"내겐 자식이 있어요."

"당신을 황홀하게 만들 그런 남자 말이요."

아레샤는 불쾌한 기색을 내 보이며 말했다.

"당신 얘기하는 건 아니겠죠?"

"누구라는 건 아니고.. 왜 난 안됩니까?"

"나를 조롱하시나보군요!"

"농담을 좋아하지 않는 남자입니다."

"그런 얘기는 싫어요."

"그럼 난 여기서 내리겠소! 무례한 점 사과하오!"

그는 냉정하게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반 협박조로 내뱉었다.

"내가 죄를 짓는다면 아마 당신 때문일 겁니다."

아레샤도 편치 않은 기분을 표정으로 내보이며 그가 내린 자리로 자리를 옮겨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쳐다보는 그를 남겨두고 횅하니 달려가 버렸다.



그날 밤 아레샤는 불꺼진 방 창가에 서서 그날 따라 유난히도 밝은 달을 쳐다보고 있었다.
너무 밝아, 너무 눈부셔서 창백해 보이는 저 달이 어쩜 자신을 닮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방안으로 화사하게 들어오는 그 달빛을 조명 삼아 오늘 낮 마시모와의 그 찝찔한 조우를 훌훌 털어 버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옷을 하나하나 벗어내고 있었다.

가운을 벗겨내고 거들과 브레지어, 그리고 마지막 꺼풀을 벗겨 낼 때도 그녀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데 옆에 걸린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는 순간 와락 쏟아지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었다.
그러나 차마 소리내어 울 수는 없었다.
옆방에 안드레아가 잠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역시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그러나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젖가슴을 만지자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전율에 아찔해 했다.
정말 그녀는 스스로 마시모의 말대로 아직 젊고 아름다우며 온몸으로 흐르는 맥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가능성이 아니라 멍에가 되리라는 불길한 예감이 그녀의 전신을 감싸오는 것이었다.

거울 속의 얼굴이 뒤죽박죽 일그러지며 석고상처럼 창백하게 굳어 가는 모습이 보였다.

또 두 줄기 눈물이 양 볼을 타고 내렸다.
저 안쪽으로 유년기의 자신의 모습과 쭈글쭈글 불쌍한 할머니가 된 미래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가 서로 교차하면서 산산이 부서져 갔다.

"몽블랑~~"

가는 신음소리와도 같은 흐느낌으로 그 이름을 불러 보았다.
그러나 그 소리는 메마른 방안에 공허한 메아리만 남긴 채 흩어져버렸다.
그녀는 그대로 침대에 내려앉으며 격양되어 오르는 울분을 누그러뜨리려 안간힘을 썼다.



한참 후에야 아레샤는 혼돈뿐인 뇌리 속에서 어렵게 한 가닥 희망을 건졌다.

'그래 그 뿐이야! 그는 내 유일한 희망이요 꿈이야! 그를 위해 살면 나는 행복한 거야...'

그렇게 다짐하고 있었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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