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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음계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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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음계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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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음계 1-05


고찰(古刹),
연경과 그다지 멀지 않은 산 속에 자리한 낡은 고찰.....
휘이이잉.....
스산한 바람이 고찰을 할퀴며 지나갔다.
이때,
번쩍!
밤하늘에 포물선을 그리며 하나의 인영이 떨어져 내렸다.

아니,
그들은 두 사람이었으며 한 사람은 몹시 심한 부상을 입은 듯 다른
사람에게 부축을 받고 있었다.
대략 칠순 정도에 접어든 노인들이었다.

"육노우, 견딜만 한가?"
일신에는 청의를 걸쳤으며 등 뒤에 한 자루 금산도를 비스듬히 차고
있는 노인이 말했다.
부축을 받고 있는 --- 머리카락이 핏빛처럼 붉고 두눈이 독수리의
그것처럼 날카로와 보이는 노인이 밭은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쿨룩.....! 도리가 없지 않은가? 버틸 때까지 버텨보는 수밖에 ....."
노인의 왼쪽 옆구리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져 있었으며 손으로 그곳을
틀어 막고 있었다.

또한,
오른쪽 가슴에는 한 자루 혈우전이 부러진 채 박혀 있었다.
이런 상처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버티는 것으로 보아 그이 내공은
몹시 심후한 것 같았다.


청의노인이 말했다.
"일단 저 고찰에 몸을 숨기도록 하세."
"안전할까?"
"놈들의 추적이 시작된 이상 이 세상에서 안전한 곳은 단 한군데도
없네."
부상당한 노인이 어금니를 짓 깨물었다.
"빌어먹을.....!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 우욱!"
그는 말을 끝내다 말고 몹시 고통스러운 듯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러면서 말했다.
"역노우, 그래도 대단하지 않은가? 놈들의 손아귀에서 칠일 이상을
버틴 사람은 아마 우리 두 늙은이밖에는 없을 걸세."
"....."

대관절,
이들은 누구이며 이들을 쫒고 있는 자들은 또 누구란 말인가?
두 사람의 대화로 미루어 볼진데 추적하는 무리들은 무서운 인물들인
것 같았다.

문득,
부상당한 노인은 고통의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놈들이.....언제쯤 이곳으로 들이닥칠까?"
청의노인이 입을 열었다.
"길어야 이틀이겠지"
"이틀....."
청의노인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부상당한 노인의 어깨를 잡았다.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네. 누가 아는가? 놈들이 혹시 그냥 이곳을
지나칠지....."
"그래 주었으면 좋겠군."
청의노인은 문득 두 눈에서 예리한 광채를 뿜어내며 손으로 가슴을
더듬었다.
"하여튼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것만큼은 놈들에게 넘겨줄 수 없네."
"....."
"만약 우리에게 최후의 순간이 온다면 ..... 노부는 이것을 지상에서
영원히 없애 버릴 생각이네."

그는 품속에서 무엇인가를 굳게 움켜잡았다.
헌데 바로 그 순간,
"윽.....!"
갑자기 청의노인은 입을 크게 벌리며 싯누런 핏덩이를 울컥 토해냈
다.
"역노우?"
부상당한 노인은 크게 경악하며 청의노인을 바라보았다.

청의노인의 안색은 삽시간에 푸르죽죽하게 변했으며 듬성듬성 머리카
락이 빠져 나왔다.
"지독.....하군. 그 놈의 부골형시독....."
독을 입었는가?
"괜찮은가, 역노우.....?"
청의노인은 소맷자락으로 입가의 피를 쓱 문지르며 호기있게 말했다.
"걱정말게. 이 따위 부골형시독쯤으로 나가자빠질 역계송이 아니니
까...!"

실로 대단한 기개였다.
청의노인은 슬쩍 고찰을 바라본 뒤에 부상당한 노인에게 말했다.
"걸을 수 있겠나?"
"해 보지."
부상당한 노인은 마비된 다리를 한 걸음 떼어놓다가 청의노인을 바라
보았다.
"고찰에 사람이 없을까?"
"눈치 채지 못하게 들어가야지."

.....
두 노인은 서로 부축하며 고찰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그들이 있던 자리로 다시 어둠이 밀려들었다.



第 三 章 기인  다솔(奇人 多率)


새벽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있는 연못,
"....."
한 처녀가 쪼그리고 앉은 채 하염없이 연못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
그녀는 몹시 아름다웠다.
꽃잎을 베어 문 듯한 붉은 입술이 그러했고, 갸름진 턱의 운곽이 그
러해 보였다.

그녀의 눈은 참으로 반짝거렸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듯 그렇게 영롱한 빛깔이었
다.

그러나,
물결에 반사된 때문일까?
그녀의 눈동자는 촉촉이 젖어 있었다.

공손초혜(公孫草慧)---

아홉 살의 나이로 기적에 들어야 했고, 아직 채 자라지도 않은 열 두
살 나이에 이름도 모르는 남자에게 첫정을 바쳐야 했던 그녀.....
그때부터 그녀의 불행은 시작되었다.

기녀(妓女).....
숱한 남자의 틈바구니에서 웃음을 팔아야 하고,
목구멍에 차오르는 역한 술냄새에도 불구하고 뭇사내들이 권하는 천
배 술인들 마다할 수 없는 기녀.....
깨어나 보면 또 마시고..... 사내 품에 안겨 자신을 내맡기고..........



새벽 안개 탓일까,
공손초혜의 안색은 몹시 창백하며 병색마저 드리워져 있었다.
그렇다.
그녀의 몸은 지극히 나약했으며 오래 전부터 원인모를 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또르르르.....
뺨을 구르는 눈물,
그것이 새벽 안개에 닿아 차가운 느낌을 주고 있었다.

한없이 외롭고 쓸쓸해 보이는 처녀.....
헌데 그때였다.
저쪽으로부터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고, 공손초혜는 그곳을 향해 고개
를 돌렸다.

풍류영,
몹시 지친 모습으로 걸어오고 있는 그.....
".....!"
연못가에 앉아 있는 공손초혜를 보았는가,
풍류영은 일순 걸음을 멈추며 공허하고 비참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
다보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공손초혜는 자신이 단칠낭에게 불려간 것을 알았고, 이곳에서 그가
돌아오기를 밤새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풍류영은 힘없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누나, 미안해....."
단칠낭과 그 짓을 한 것을 죄스럽게 생가하고 있는가?
그게 어디 풍류영의 잘못인가?
공손초혜는 작은 미소를 입가에 떠올리며 자기 옆자리를 가리켰다.
"피곤해 보이는구나. 이리와 앉아....."
"....."

풍류영은 그녀 옆에 앉았다.
그러면서 문득 그녀의 얼굴을 바라다보았다.
"누나, 또 울었구나?"
"보기 싫으니?"
"싫어! 세상사람이 다 울어도 누나가 우는 건 보기 싫어. 정말이야.....
누나가 울면 난 웬지 슬퍼져....."

(녀석.....)
공손초혜는 소맷자락으로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그래 이제부터는 안 울께."
"저번에도 그렇게 약속해 놓고...."

문득,
공손초혜는 우수에 잠긴 눈으로 연못 한복판을 바라보았다.
"영아, 우리 죽어 버릴까?"
"....."
공손초혜는 고개를 돌려 풍류영을 응시했다.
"왜 대답이 없어?"
풍류영은 그녀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누나하고라면..... 난 언제든지 죽을 수 있어."
공손초혜는 풍류영을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다
시 시선을 연못으로 돌렸다.
"내 잘못이었어. 그날..... 이곳으로 데려오는 것이 아니었어....."

그렇다.
풍류영은 공손초혜로부터 생명의 구원을 받았다.
이년 전 겨울.....
풍류영은 차디찬 대지 위에 쓰러져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공손초혜가 그를 발견했고, 풍류영이 의지할 곳
없는 천애고아라는 것을 알고 이곳으로 데려왔던 것이다.

풍류영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누나, 우리 정말 죽어 버릴까?"
"....."
바람이 불어와 공손초혜의 머리카락을 흐뜨려 놓았다.
"영아."
"응?"
"나에게는 꿈이 있었단다. 아주 예쁜 공주가 되는 꿈이었지. 공주가
되어.....백마를 타고 나타나는 왕자님을 만나는....."
"....."
공손초혜는 허전한 웃음을 흘리며 풍류영을 쳐다보았다.
"우습지? 내꿈이....."
풍류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우습지 않아. 누나는 꼭 그렇게 될 거야. 그러구....."
"그러구?"
"난.....난 왕자가 되어 하얀 백마를 타고 나타날 거야. 정말이야. 난
꼭 그렇게 돼서 누나를 기쁘게 해 줄 거야."
말을 하면서 풍류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

풍류영을 바라보는 공손초혜의 눈이 이 순간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만이 느끼는 감동!
(착한 녀석.....)
헌데 바로 그 순간,
"아.....!"
돌연 공손초혜는 심한 현기증을 느끼며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그녀.....
얼굴은 밀랍처럼 창백해졌으며 구슬 같은 땀방울이 쉴 새 없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풍류영은 깜짝 놀랐다.
"누나, 또 어지러워?"
공손초혜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았다.
그녀는 가끔 심한 현기증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그 시간은 무척 짧았다.
"누나....."
풍류영은 몹시 걱정스러운 듯 공손초혜의 어깨를 잡고 몇 차례 흔들
었다.

얼마 후,
공손초혜는 어지러움이 가셨는지 머리에 대었던 손을 떼며 풍류영을
향해 창백하게 웃어 보였다.
"이젠 괜찮아....."
풍류영은 볼멘 소리로 말했다.
"날 기다리느라고 맨 날 찬이슬을 맞으니까 그렇잖아. 이제부터 그런
바보짓 하지 마."

공손초혜는 그 한 마디가 무척이나 대견스러운 듯 풍류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알았어. 이제부터는 안 그럴께."
풍류영은 그제서야 활짝 웃었다.
"약속!"
그는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래, 약속....."
공손초혜도 새끼손가락을 내밀었고.....두 사람의 손가락은 하나가 되
었다.

문득,
풍류영은 한 차례 하품을 했다.
"누나, 나 졸려....."
그러면서 새우처럼 몸을 움츠리고는 공손초혜의 품속으로 파고들었
다.
"얘.....?"
공손초혜는 품속으로 기어 들어오는 풍류영을 내려다보며 눈을 흘겼
다.

풍류영은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 사이에 머리를 베고는 활짝 웃었다.
"누나 품은 꼭 엄마같아....."
".....!"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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