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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일지 12부

쌍봉낙타 1 816 0

소라-2/ 602 



형사일지 12부


혁재녀석은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부모를 졸라 자금을 마련한후 이사업을 시작했다.

고교때부터 화류계 주변에서 논 경험이 있는데다가 연예기자들은 물론 방송국 PD니 의상 디자이너들이니 평소 부모의 후광을 업고 많이들 알고 지내던 녀석이었기 때문에 사업을 시작하는것은 어렵지 않았고, 더구나 녀석에게는 타고난 사업수완이 있었다.

그자신 간간히 패션쇼 무대에 설 정도로 용모와 몸매가 뛰어난 녀석은 그야말로 이바닥에서 탄탄대로를 달렸다 한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는 너무 잘되는 사업에 권태를 느꼈는지 마약에 손댄다는 소문도 있고해서 검찰에 주목을 받고있는 형편이었다.

녀석은 그녀가 잠깐씩 쉴때마다 물이니 음료수니 가져다 주면서 농담을 해서 그녀를 웃겼다.

그녀는 녀석의 농담에 잘 응하며 너무도 순진하고 화사하게 웃곤했다.

나는 속에서 불덩어리가 치밀어오르는것을 느끼고 했지만 그걸로 뭐랄수는 없는 형편이었다.

아무튼 그녀가 그곳에서 일하게 된지도 그럭저럭 한달가량 지나가고 있었다.

녀석은 그 최초의 잡지카탈로그 계약건때 그녀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주었고 특별보너스다 뭐다해서 누가보더라도 과잉친절을 베풀고 있었다.

내가 그림자처럼 그녀를 따라다녔기 때문에 녀석은 그녀에게 그정도로 밖에는 접근을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집안은 그녀가 벌어오는 수입으로 그럭저럭 형편이 풀리게 되었고 그동안 그녀와 난 상당히 친해졌지만 그녀는 여전히 경계는 늦추지 않은듯이 보였다.

나는 마땅히 할일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가 차가 없다는 핑계로 거의 그녀의 운전기사겸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녀석의 그녀에 대한 애정공세는 꾸준하게 이어졌고 그녀도 녀석이 그닥 싫지는 않은 눈치였다.

그러던 어느날 이었다. 나는 그날도 그녀를 출근시키고 사우나에 가서 시간 죽이고 있다가 오후늦게나 되어서 으슬렁 으슬렁 돌아오는 길이었다.

사무실에는 녀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그녀도 연습실에 없었다. 나는 별다른 의심없이 담배나 피울까해서 녀석의 사무실옆에 있는 비상계단의 문을 무심코 열었다.

녀석은 한구석에서 영선을 껴안고 키스를 하고 있었다.

나는 눈이 뒤집히는것 같았다. 그녀는 나를 보자 후다닥 떨어졌다.

녀석은 똥씹은 얼굴로 입가에 흐른 침을 스윽 닦더니

"형님 왔수?"

했다. 나는 녀석의 멱살을 잡았다.

"너 이자식, 지금 누구한테 그따위 수작이야!"

"어허 이거 놔요, 형님이 상관할 일이 아니잖아요?"

"뭐라구? 너 영선이가 그런 여자앤줄 알아?"

"우린 사랑하는 사이요, 왜이러는 거요?"

영선은 뒤돌아서서 어쩔줄 모르고 서 있었다.

나는 녀석과 더이상 실랑이하기가 싫어져서 그녀 손목을 홱나꿔채서 바깥으로 끌고 나왔다. "이거 놔요 아저씨, 손목 아프단 말에요"

밖으로 나오자 그녀가 손목을 비틀어 빼내며 말했다.

"정말 사랑하는 사이냐?"

내가 물었다. 그녀는 날쳐다 보더니 고개를 가로져었다.

"아뇨, 그냥...자꾸..."

"자꾸 뭐? 자꾸 키스하재서 그냥 해줬니?"

"...."

"너 그녀석이 얼마나 바람둥인줄이나 아니?"

"...."

그녀는 날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아저씨, 아저씨가 왜 상관하시는 거죠? 저 그사람이랑 사귀면 안돼요?"

"...안돼"

"왜요?"

"내가 널 사랑하니까"

"!"

그녀는 놀랜 얼굴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분명 그날 경찰서에서 나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들은 적이 있으나 아마도 농담쯤으로 넘겼는지 몰랐다.

"아저씨, 지금 그게 저한테 할수있는 말이라구 생각하세요?"

"넌 장난처럼 들리겠지만 정말이야"

"아저씨, 오빠가 얼마나 친절하게 저한테 잘해주는지 알아요? 아저씨랑은 틀려요."

"!!"

그녀는 나보다 2살위인 녀석에게 오빠라는 명칭을 쓰고있었다. 나와는 틀리다는 것이다.

"그래, 내가 너한테 잘못한건 인정할께, 하지만..."

"인정이라구요? 그게 인정하고 말고 할 문젠가요? 제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으니까 용서했다구 생각하세요?"

"그럼 내가 어떻게 해줄까?"

"아저씬 제 일자릴 구해줬으니까 이제 됐어요,...이제...아저씨랑은...저도 그일은 잊으려고 노력해볼께요...그러니까..."

"그러니까?...이제 그만 서로 보지 말자구?"

나는 속에서 불덩이가 치미는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씻을수 없는 죄를 지었다. 그녀가 날 지금까지 상대해준것만 해도 고마와 해야할 나였다.

그녀가 녀석과 좋아지내는걸 내가 말릴 처지는 전혀 아니였다.

다만 내가 걱정되는것은 녀석이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하느냐 였다. 이젠 내가 그녀에게 매달릴 차례였다.

그녀와 여기서 헤어진다면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영선아, 제발 용서해줘"

"이제 됐어요,아저씨..."

"영선아 내가 너 운전수 노릇이라도 할께, 너 운전하고 챙겨줄 사람 필요하잖니...그녀석과 사귀는건 니맘대로 해라, 난 이제 상관하지 않을께"

"...."

그녀도 날 지금까지 증오해오진 않았을 것이었다.

그녀처럼 상냥하고 착한 성격의 애들은 남의 잘못도 잘 용서해주는 법이니까.

그래서 또한 녀석과 같은 남자가 얼마나 여자를 울릴수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것이다. 어쨋든, 그날 사건으로 그녀와 녀석은 급속도로 가까와져 갔다.

그녀는 모델일이 전혀 적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녀석도 그녀가 모델 그만두고 다음학기에 복학하길 바라고 있었다.

그녀집안의 생활비나 학비등은 녀석이 책임지겠다고 하고 있었으나 나도 그녀도 그런건 보기좋지 않은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녀석은 그녀를 정복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것 같았으나 나는 그런 기회를 제공해 주지 않았다. 아직까진 모델일을 하고있었기 때문에 내가 항상 그녀옆에 붙어있을수 있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럴수 있는것은 아니었다.

나도 내 개인적인 볼일이 가끔 있었기 때문에 그녀옆을 떠날일이 있었는데 그런날을 녀석은 노리고 있었다. 그날은 마침 약속이 두개 겹쳐있었다.

저녁엔 박반장의 문상약속되어 있었고 그담엔 고교동창회 였는데, 동창회는 나가지 않으면 그만이었으나 박반장님의 문상에는 나가지 않을수 없었다.

내가 대학졸업후 아무 일자리 없이 떠돌다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경찰에 지원해서 강력반 형사까지 이르렀던 것도 박반장 덕이었다.

그는 형사생활 오래한 사람 답지않게 너그럽고 따뜻한 심성의 소유자로 날 많이 돌봐줬다.

내가 폭력형사로 오명을 날리고 있을때도 나에게 제일 많은 충고와 훈계를 주던 분이었다.

나는 그 당시만해도 그의 그런 충고가 듣기싫어 짜증을 내곤했으나 내심으론 존경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일하는 도중에 쓰러져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 했다.

그런 그와의 작별하는 자리에는 반드시 나가야 했다.

나는 아침에 영선을 사무실에 데려다 주고 그녀의 일하는모습을 내내 지켜보다가 저녁 7시쯤 영안실로 갔다. 다음날 아침 9시쯤 되어서야 나올수 있을것 이었다.

그날은 마침 녀석의 모델들이 대거 출연하는 패션쇼가 끝나는 날이어서 저녁에 쫑파티가 있을 예정이었다. 물론 그녀도 참가하기로 되어있었다.

나도 무척이나 참가하고 싶었으나 어쩔수 없이 영안실로 가야했다.

영안실에 도착한 후 나는 문상을 드리고 예전에 같이 일하던 동료들 옆에 끼어 앉았다.

나는 문득 착잡한 심경에 사로잡혔다.

박반장의 나이 이제 50이 갓 넘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쓰러져 그대로 오지못할 길을 떠났다. 사람이 산다는게 무엇인가, 왜 사는가 하는 의문들이 떠올랐다.

이렇게 허무하게 가는 인생이라면 왜 굳이 우리는 아둥바둥 살아가느 것일까, 지금 내앞에 있는 사람들처럼 고를 외칠것인가 스톱을 할것인가 고민하는 얼굴이 '사람은 왜 사는가' 라는 대명제 앞에서 엄숙한 표정을 짓는 얼굴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우리삶의 이 쪼잔함이 문득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우리는 결코 살아야 하는 진짜 이유를 모른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그녀는 무슨 의미일까. 나는 왜 그녀를 강제로 범했을까. 그녀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있는 사이 화투판은 점점 열기를 띄어갔고 나도 그들의 성화에 억지로 참여하게 되었다.

내 핸드폰으로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내가 문득 시계를 본건 자정이 다되가서였다.

"여보세요"

"아저씨, 빨리 여기로 좀 와주세요 빨리요~"

그녀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영선이?"

"네, 아저씨 빨리요, 저 무서워 죽겠어요~"

"왜그래?"

나는 반사적으로 튀어일어서면서 물었다. 나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했다.

그녀는 정말로 무서워하는 목소리였다.

속삭이듯이 말하는 걸로 봐서 짐작컨대 자신의 말소리가 누군가에게 들리는걸 꺼리는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한단 말인가?

나는 아무생각없이 그대로 영안실을 박차고 나왔다.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으나 나는 그녀가 위험한 상황에 빠져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런것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영선아 다른사람은 주위에 없는거니?"

"네, 지금 아무도 안보여요"

"알았어, 어떻게 된건진 가서 얘기하고 지금 있는곳에서 한발짝도 움직이지마 알았지?"

"네, 알았어요"

"그리고 10분마다 나한테로 전화해줘 잘있는지, 배터리는 충분하니?"

"예, 알았어요, 빨리오세요 아저씨 지금 너무 무서워요~"

그녀는 겁에질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녀석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

한참 신호가 간후에 그의 아버지쯤으로 보이는 목소리가 받았는데 나는 무슨 배달가는 사람처럼 해서 갑자기 전화가 불통이라고 둘러대어 그 별장의 주소를 알아 낼수가 있었다.

녀석의 아버지는 오늘 그곳에서 파티가 있다는걸 알고 있었고 평소 녀석의 버릇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순순히 가르쳐 주었다.

나는 전속력으로 그곳을 향해 달렸다.

최소한 1시간은 소요되는 거리였다. 나는 내심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릴수가 없었다. 쫑파티후에 녀석의 별장으로 간다는 말은 없었다.

도데체 난데 없이 무슨일인가 그리고 왜 같이간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나는 그녀가 무사하기만을 바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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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토도사 2022.10.02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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