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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방황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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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퐁행몬스터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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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10/ 610 




시간을 방황하는 자 0

0. Prologue


따르르르르릉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안전선 뒤로 한걸음....."


빠아아앙~ 덜컹 덜컹


승강장이 차량에 타고 내리는 사람들로 잠시 부산스러워졌다.

성호는 지하철에 타려는 듯 벤치에서 일어나다가 다시 털석 주저앉았다.


"후우~"


촛점을 잃은 눈으로 천정을 바라보던 그의 입에서 자그마한 한숨이 배어나왔다.

그는 벌써 넉 대의 열차를 그냥 보내고 있었다.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까지 됐지?'


정성호. 29세. 애인 없음. 백수.


'어휴~ 집안 사람들을 무슨 낯으로 보나.'


그는 오늘 3번째로 9급 지방 공무원 시험을 치고 오는 길이었다.

처음엔 행정고시로 시작했다가 다음엔 7급, 그리고 9급으로 낮추었지만 2번이나 낙방의 쓴 잔을 마셨다. 게다가 오늘 시험도 결코 잘 봤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아니, 아는 문제보다 모르는 문제가 더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년 동안 공부는 커녕 게임과 소설에 빠져 폐인같은 생활을 했던 것이다.

워낙에 낙천적이었던 터라 '그냥 어떻게 되겠지'하며 살던 성호는 오늘 시험 후에 문득 두려움을 느꼈다.


'혹시 계속 이렇게 나이만 먹어가다가 끝나버리는건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상상할수록 답답하고 두려운 마음은 커져만 갔다.

남들 직장 잡고 결혼해서 기반을 마련할 때에 지금껏 공부한답시고 세월만 보내다가 취직할 나이도 지나갔다.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건성건성 시늉만 하며 백수 생활을 만끽했던 그였다.

앞길이 암담해지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갈수록, 시험에 한 번씩 떨어질 때마다 두려움은 커지고 있었다.


따르르르르릉


생각에 잠겨있던 성호는 벨소리에 깜짝 놀라 튕기듯 일어섰다.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퇴근 시간이 지나서인지 승강장 안은 한산했다.

창백한 형광등 불빛과 탁한 공기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성호는 선로를 뚫어지게 바라보다 갑자기 표정을 굳혔다.


'그래 이렇게 고민하면서 사느니.... 편해지자.'


빠아아앙~ 덜컹 덜컹


열차가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성호는 선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꺄아아아아악!"


누군가의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귓전을 때리고, 멍청한 표정으로 눈코입을 한꺼번에 벌리고 있는 기관사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야에 꽉 찼다.


"허억!"


성호는 헛바람을 삼키며 벌떡 일어섰다. 조금 전에 그가 앉아있던 벤취였다.


"꾸, 꿈이었나?"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지만 이상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는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곤 조금 전의 풍경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앉았다.


'꿈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생생할 수가...'


또렷하게 기억난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죽는 순간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는 것도 경험했던 것 같다. 게다가 그 끔찍한 공포. 비록 꿈이었지만 죽겠다고 마음을 먹고 뛰어들었는데... 마지막 순간의 공포는 정말 아찔한 것이었다.

그는 피식 피식 실소를 흘리며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그, 그래... 자살이라니... 죽는 것보다야 사는게 낫겠지...'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성호는 새로이 마음을 다졌다. '이번에야말로'라는 생각으로,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한 번만 더 해보자고 스스로를 다잡는 것이었다. 꿈이었지만 한 번 맛본 죽음의 공포가 반대로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가로등도 꺼진 어두운 길이었지만 성호의 마음은 여전히 의욕에 불타고 있었다. 저 멀리서 비틀비틀 다가오는 트럭도 괜시리 흥겨워 보일 정도였다.


'자, 잠깐! 비틀비틀?'


무슨 생각을 하기도 전에 갑자기 눈앞이 확 밝아지더니 몸이 붕 떠서 뒤로 날아갔다. 트럭 운전사가 졸음 운전을 했던 것일까? 아니면 음주?


'이런...말도 안 돼는..억울해... 이젠 정말 열심히 살려고 했단 말이야!'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전봇대에 쳐박혔다.


"으아아아~"


성호는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벌떡? 트럭에 치었는데? 아직 안 죽었나?'


"아유, 깜짝 놀랐잖아. 자려면 조용히 잘 것이지 웬 잠꼬대야?"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에 옆을 보니 웬 아줌마가 불만에 찬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주변을 보니 호기심어린 시선들이 그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지하철 안이었다. 그는 목덜미까지 빨개져 자리에 앉으며 고개를 무릎 사이로 묻을 수밖에 없었다.


"젠장, 오늘 왜 이러지? 스트레스가 쌓였나?"


성호는 담배 연기를 하늘로 뿜어내며 투덜거렸다.

그가 사는 아파트 베란다는 전망이 좋은 편이었다. 앞에 5층 이상의 건물이 없어서 12층인 그의 집에서는 도시의 야경이 막힘없이 시원하게 보이기 때문에 가슴이 답답할 때는 언제나 베란다에서 담배 한 대 피워무는 것이 그의 낙이라면 낙이었다.

조용히 담배를 피며 야경을 바라보던 그는 문득 중얼거렸다.


"대학 땐 나도 이렇지 않았는데... 어디서부터 꼬인걸까?"


명문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알아주는 대학을 다니던 그는 꽤 성적도 좋은 편이었다. 내성적이긴 하지만 모나지 않은 성격으로 대인 관계도 원만하고 친구도 많았다. 그때는 친구들과 걱정거리 없이 어울려다니며 살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 어머니께 뭐라고 말하지?'


부부동반 동창회에 나가신 부모님은 그가 돌아왔을 때 집에 계시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돌아오시면 누구 아들은 어디에 취직했다느니, 승진했다느니, 결혼했다느니....심지 어 아들을 낳았다느니 하며 그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게 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 시험 결과를 물어보시면....


"휴우~ 뭐라고 대답하지?"


성호는 다시 의기소침해져 고개를 떨구었다. 보도블럭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12층에서 떨어지면 뼈도 못추릴 것이다.

바람이 볼을 간지럽히며 지나간다.

죽음의 공포도 두 번이나 - 비록 꿈에서였지만 - 경험하다보니 무뎌진 것도 같다.


"에라~ 모르겠다!"


두 손으로 베란다 난간을 붙들고 다리를 박찼다. 어느 순간 몸이 중심을 잃으며 기울어졌다. 추락한다기보다는 날고 있는 것 같은 기분...


"야! 여기 멍하니 서서 뭐해?"


왠지 낯익은 얼굴이 성호의 어깨를 툭 치며 지나갔다. 뒤이어 눈앞에 별이 번쩍였다. 누군가 뒤통수를 친 것이다. 반사적으로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그의 눈앞에는 어쩐지 10년은 젊어진 것 같은 친구가 웃으며 서 있었다.


"강의실 문 막고 서서 뭐하냐? 수업 듣기 싫으면 당구나 치러 가자."


'어..엉? 뭐야 이거? 어떻게 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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