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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풋 - 06

꼬알라 2 704 0

빅풋 - 06 

빅풋 - 06

정민은 집에 돌아오자 마자 공부를 시작했다. 국토순례다 여행이다 해서 가뜩이나

부족 할 것 같은 생각에 내심 마음이 조급했는데 어제 오늘도 이래저래 공부해야

할 시간을 뺐겨 버렸기 때문에 몸이 좀 피곤한듯 했지만 찬물로 샤워를 한 후에

바로 책상에 앉아 공부를 시작했다.

진영의 집에 갈 시간이 거의 다 되서야 정민은 기지개를 켜고 잠시 방바닥에 누워

휴식을 취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다.

‘섹스’라는게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정신만 건강하게 유지

할 수 있다면 어차피 자신은 젊은 나이였고 주체 못할 성욕을 크게 물의를 일으키

지 않는 범위에서 해결한다면 오히려 자신을 위해 더 좋은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진영 어머니와 처음 섹스를 한 이후로는 몽정을 해본 기억이 없었다.

전엔 아침에 일어나면 팬티가 축축 할 정도로 몽정을 해 불쾌 했었는데 신기하게

도 그런 일이 없어진 것이다.

진영 어머니와의 섹스는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거지만 비서 누나와는 크게 문제

될게 없을 것 같았고 따지고 보면 둘 다 먼저 원했지 정민이 먼저 원한 건 아닌데

다가 결혼한 부부나 애인처럼 둘에게 얽매일 필요도 없는게 정민으로선 단순히 성

욕을 풀어줄 대상이다 생각하면 나쁠게 전혀 없었다.

정민은 그렇게 생각하다가 자신의 머리를 스스로 쥐어 박았다. 아무리 그래도 진

영 어머니나 비서 누나를 성욕을 풀어 줄 창녀 같은 존재로 생각한다는 건 못되

먹은 생각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민은 다시 세수를 하고는 진영의 집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방학인데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여름이라 그런지 학교엔 아무도 없었다.

정민은 교련복에 옷가지가 든 베낭을 메고 교무실로 가고 있었다.

국토순례가 내일 출발이라 오늘 그 최초 집결지 까지 가야하기 때문에 아침일찍

담임 선생님을 찾아뵙고 자세한 안내를 받아야 했다.

약속된 시간보다 30분 일찍 교무실에 들어섰지만 담임 선생님 께서는 진작부터 기

다리고 계셨는지 반가이 정민을 맞이했다.

담임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약속된 시간이 되었지만 아직

정은이가 오지 않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수첩을 뒤져 정은이 집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하려고 하는 순간

정은이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교무실로 들어왔다.

자신이 늦은 걸 알았는지 미안해 하는 표정이었고 뛰어 왔는지 얼굴은 발갛게 상

기되어 있고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정민이와 정은이는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앞으로 일정과 집결지 까지 가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안내를 받았고 안내가 끝나자 바로 출발하게 되었다.

국토순례는 매년 있는 행사였는데 올해는 그 코스가 대구를 출발해 동해안을 끼고

강원도를 돌아 휴전선 근처까지 올라갔다가 서울을 최종 목표로 하는 엄청나게 긴

코스였다. 담임 선생님 말로는 오전에 햇빛이 강렬하지 않을 땐 걸어서 이동하고

무더운 오후 시간은 차로 이동하다가 다시 저녁이 되면 걷는 식으로 되어있고 중

간에 하루 정도 야간행군이 있을거라 했다.

정민으로선 그게 별 문제가 안됐지만 정은은 무지 많이 걸어야 한다는게 다소 불

안했던지 담임 선생님께 안내를 받는 내내 얼굴이 어두웠다.

둘은 일단 서울에 있는 학교 학생들과 함께 대구로 가야 했기 때문에 그 집합장소

로 갔다. 마침 세영이가 다니는 S여고가 그 집합 장소였다.

S여고에 도착해보니 이미 많은 애들이 듬성듬성 나무 그늘을 찾아 앉아 있었고

운동장 한편에 관광버스 두대가 서 있었다.

정민과 정은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이는 아니지만 전부 모르는 애들이고 그나마

아는 애라고 둘밖에 없어 계속 붙어 다녔다.

정민은 교무실로 가서 담당 선생님으로 보이는 분한테 접수했다. 그 선생님께서는

정민과 정은에 덩치를 재보려는 듯 한번 훑어 보더니 옷과 신발 사이즈를 물었고

정민과 정은이 대답하자 베낭과 함께 옷과 신발을 내주셨다.

그러면서 갈아 입으라고 하셨고 입고 온 옷과 신발은 내주신 포장지와 끈으로 잘

포장하고 겉에 각자의 집주소를 적으라고 하셨다.

정민과 정은은 각자 갱의실로 지정해준 곳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선생님이 시키

신데로 옷을 포장하고는 다시 선생님께 전해주었다.

그러고 나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해 정민과 정은은 빈 나무그늘을 찾아 자

리잡고 앉아서 언제까지 인지도 모르는 채 무작정 기다리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동안 정민은 혹시라도 민지가 어딘가 보이지 않을까 쉴새없이 두리번 거

리느라 별 지루함을 못 느꼈지만 정은은 무지 더운데다가 따분한게 짜증이 났다.

“야 민정민 뭘 그렇게 두리번 거려?”

“어 … 엉 … 아무것도 아냐 그냥 다른 학교 애들을 보니까 신기해서”

“웃겨 … 신기하긴 뭐가 신기하냐 다 똑 같은 사람인데 …”

“어 … 아니 그냥”

정민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정민은 정은을 자세히

보게 되었다.

정은은 긴생머리에 얼굴은 그리 어려 보이지 않았고 피부가 깨끗하고 여려보이는

데다 동그랗고 까만 썬그라스를 끼고 있어 꽤 귀엽게 보였다.

전반적으로 눈에 띌 만한 이쁜 얼굴은 아니지만 대체로 이쁜 축에 들었고 의외로

키는 여자치고는 조금 큰 편이었다.

“너 키 몇이니?”

“키 … 169 … 키는 왜?”

“어 … 꽤 커보여서”

정민은 자신이 본대로 쾌 크구나 생각하며 정은에 다리를 보았다.

정은에 다리는 여느 학생에 다리마냥 무다리가 아니었고 오히려 비서 누나 보다도

훨씬 더 이쁜 다리였는데 아마도 비서 누나보다도 훨씬 다리가 길어 그렇게 느껴

지는 것 같았다.

“야 뭘 그렇게 봐”:

정은은 정민이 자신에 다리를 보는 걸 알았는지 다소 얼굴이 붉어지며 정민을 밀

치며 말하곤 책상다리 자세로 자신의 다리를 조금이라도 감추려 했다.

정민은 무안함을 느껴 벌떡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며 애써 무안함을 감추려 했다.

한참을 기다리자 교무실에서 본 선생님이 나와 흩어져 있는 학생들을 모두 끌어

모아 한명 한명 이름을 부르며 확인하면서 차에 오르라고 했다.

정민은 차가 두대인게 하나는 남학생 차고 하나는 여학생 차인가 보다 생각했었

는데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는 순서는 중구 남방이었고 이름을 부르는 순서대로

앞차부터 번호순으로 앉으라고 하셨다.

정은에 이름이 불려 정민은 다음이 자신이겠지 싶었지만 기대와는 달리 다른애들

을 다 부르고 자신만이 차를 못타고 남을 때까지 부르지 않아 혹시 빼먹었나 하

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은 혼자 남은 정민이 혼자 남았음을 확인하자 정민을 불러 말씀하셨다.

“내가 앞차를 선탑 할 테니 네가 뒷차를 선탑해라”

“예?”

정민은 선탑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하였다.

“아참 군대를 안갔다 왔으니 선탑이 뭔 말인지 모르겠구나 … 그냥 반장 같은거야

일단 이거 받아라”

선생님이 주신 건 출석부 같은 서류철과 워키토키 였다.

“별거 없구 차내에서 멀미 하는 사람이 생기면 좀 신경써 주고 가끔 나랑 무전기

로 연락하면서 이상 없는지만 확인하면 되구 … 휴게소 같은데서 쉬다가 출발할

때 인원체크 하는거 정도만 하면되”

“아 … 예”

정민은 하필 자신에게 그런걸 시키는게 조금 못 마땅하긴 했지만 내색 없이 차에

올랐다. 조수석을 보니 다른 좌석과는 달리 좀 불편하게 생겨 실망이 컸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서 베낭은 짐칸에 찔러 넣고 조수석에 앉았다.

잠시후 무전기를 통해 선생님이 출발해도 되겠냐고 물어 오셨고 정민이 이상없다

고 하자 드디어 차가 출발했고 그렇게 국토순례의 장정이 시작되었다.


국토순례를 하는 내내 정민은 기대했던 바에 못미쳐 실망스러웠다. 더욱이 민지

는 무슨 일이 있는지 아니면 세영이가 잘못 알었던지 참석하지 않아 더 실망스러

웠고 전체 남학생 대표를 정민이가 맡아 이래저래 피곤하고 힘들기만 했다.

그래도 좀 위안이 되는건 친구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는 거다. 남자 여자 할거 없

이 정민이가 남학생 대표여서 인지 모두들 스스럼 없이 대해 주었고, 특히나 여학

생 대표인 소연이와는 더없이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사실 정민은 모르고 있었지만 모든 여학생들이 정민을 흠모하고 있었다.

단순히 남학생 대표여서가 아니라 잘생긴 외모에 큰 키, 적당하게 붙은 근육질 몸

매 만으로도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 했고 더욱이 이런 행사에 참여 할 정도면 학

교성적이나 품행을 이미 보증 받은거나 다름없으니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여자 애들중 더러 적극적인 애들은 정민에 관심을 끌어 보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정민이 워낙 그런데 둔감하다 보니 쉽지 않았다. 그러던중 ‘김성희’라는 여자애가

과감하게 정민에게 대시를 해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핸드폰 번호를 알게되

었고 그게 모두에 질투를 사 왕따가 되다시피 해버렸다.

정은 역시 내색은 않지만 사실 이곳에 오기로 한 것 부터가 정민 때문이라는 걸

자신만이 아는 비밀일 정도로 철저히 숨기며 남몰래 정민을 좋아하던 터인데 정

민이 모든 여학생 들에 표적이 되자 무지 짜증나고 신경질이 났다.


마지막 날 밤 캠프파이어가 예정되어 있었다.

모든 학생들은 일찍 저녁식사를 마치고 캠프파이어 때 할 장기자랑 연습을 하느

라 조별로 난리였다.

정민과 소연은 진행을 맡기로 되어 있어 모처럼 둘만이 한가한 시간을 보낼 기회

가 되어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소연은 정민처럼 다른 애들과는 달리 가정환경이 좋은 편이 못되었다.

소연의 집은 서울이었는데 아빠는 대기업 중역이었지만 엄마와 이혼하셨고 지금은

새엄마와 더불어 살고 있고, 한가지 어이없는 건 그런 새엄마의 나이가 자신과는

11살 밖에 차이가 안난다는 것이었다.

소연은 그런 새엄마와 친하게 잘지내고 있지만 가식적인게 많다고 했다.

정민 역시 부모님 모두 돌아가셔서 지금은 고아신세로 혼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고 둘이 그런 이야기를 서슴없이 주고받을 만큼 많이 친해져 있었다.

소연은 가정환경이 그래서 인지 생각이 무지 깊고 어른스러웠고 그건 외모역시 마

찬가지 였다.

빅풋 - 06

이런 곳에서 만났으니 학생이라고 생각했지 아마 길가다 우연히 만났다면 전혀 학

생이라고 상상도 못할 정도 성숙했고 얼굴뿐 아니라 몸매 역시 그러했다.

소연의 말로는 어렸을 때 어린이 잡지 표지모델을 몇번 했다고 했다. 지금도 가끔

쇼핑잡지에 모델을 해달라고 가끔 연락이 오지만 공부 때문에 모두 외면하고 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막바로 캐나다로 유학을 갈거라고 했다.

정민은 유학을 간다는 소리에 알 수 없는 서운함을 느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그

런 소연에 심정이 이해가 가기도 했다.

정민은 소연이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히 말해줘서 자신도 부모님이 돌아가

셨을 때 어떤 심경이었고 어떻게 행동 했었는지 숨김없이 이야기 했다.

소연은 정민이 항상 밝은 얼굴이라 그런 어려운 때가 있었다고는 생각치 못했던지

다소 놀라는 듯 했고 모든걸 혼자 잘 극복해낸 정민을 더 크게 보게 되었다.

그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사이 어둠이 깔려 캠프파이어가 시작됐고 정민과 소연

은 조금 서툴긴 했지만 호흡이 잘 맞아 그런대로 장기자랑 진행을 잘 이끌었고,

모든 애들이 다들 매우 즐거워했다.

장기자랑 끝에는 여태껏 인솔한 인솔교사 모두가 한명씩 차례로 돌아가며 노래를

했고 정민과 소연도 예외가 없었던 지라 둘은 듀엣으로 합창을 했다.

둘이 모습이 너무도 잘 어울려 여자 애들은 반은 정민의 노래에 맛이 갔고 반은

자신이 함께 부르지 못하는 것을 시기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서울에 도착해 헤어질 때 소연과 정민은 경황이 없어 인사도 제대로 못 나눈체 헤

어 졌지만 이미 서로에 연락처를 받아 놓아 별 걱정이 없었다.


정민은 집에 들어오자 마자 밀려오는 피로에 쓰러지듯 엎어져 그대로 잠 들었다.

한참을 자다보니 핸드폰이 울려왔다. 정민은 간신히 눈을 뜨고 엎어지 자세 그대

로 전화를 받았는데 예상 한대로 여지없이 세영이었다.

세영은 어째 전화 한 통 못해주냐며 잡아 먹을 듯이 쏴대기 시작했고 아직도 비몽

사몽간인 정민은 세영이 지칠 때 까지 냅두자는 심정으로 전화를 들고 있었다.

그런 정민을 옆에서 보고 있는 사람마냥 세영은 점점 더 독이올라 소리가 커졌고

정민은 이대론 안되겠다 싶어 정신을 차리고 달래기 시작했다.

세영은 정민이 만나러 나가겠다는 말을 하고서야 겨우 잠잠해졌다.

정민이 시간을 보니 저녁 7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정민은 몽롱한 정신 그래도 옷

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약속 장소엔 이미 세영이 나와 있었지만 정민은 세영의 맞은편 자리에 앉을 때까

지도 잠이 덜 깨서 몽롱한 정신 그대로 였다.

그런 정민을 앞에 두고 세영은 쉴새없이 재잘 되었다. 얼마를 그러다가 세영이가

영화를 보러가자고 했다. 정민은 귀찮은 아무 생각없이 그러자고 했고 영화관에

들어가선 첨엔 그런대로 영화를 제대로 보려고 눈을 부릅떠 보기도 했지만 끝내

세영의 어깨를 베고는 깊은 잠이 들어버렸다.

세영은 정민이 자신의 어깨에 기대와 움찔했지만 그 느낌이 싫지 않았고 원인모를

묘한 흥분감에 휩싸였다.

남자에 신체를 맞대 본적이 없는 세영은 정민의 그런 행동만으로도 기분이 이상해

지는게 점차 얼굴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아마도 그런 느낌이 없었다면 세영은 정

민에 허벅지를 세게 꼬집어서라도 잠을 깨워 놓았을 것이지만 지금은 온몽에 힘이

빠져 나가는게 전혀 그럴 생각이 들지 않고 오히려 좀더 뭔가를 원했다.

세영은 살며시 정민에 손을 잡아 보았다. 정민이는 깊은 잠에 들었는지 아무런 반

응이 없어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정민에 손은 손가락이 길어 매끈한 여자 손을 연상케 했지만 살결 만큼은 매우 단

단하게 느껴졌고 그건 팔뚝을 쓰다듬어 봐도 마찬가지였다.

정민이 그러고 계속 잠을 자자 세영은 어깨가 뻐근해졌지만 그렇다고 정민을 깨우

지는 않고 오히려 정민에게 잠을 깨워 놓을까 두려워 숨을 최대한 죽이며 쉬었다.

세영은 스크린을 쳐다 보면서도 영화내용이 머리속에 들어오지 않았고 온 신경이

정민이 기댄 어깨에 쏠려 있었다.

영화가 끝나자 세영은 어쩔 수 없이 정민을 흔들어 깨웠다. 정민은 크게 기지개

를 켜다말고 세영에게 미안했던지 겸연쩍어 하며 영화 재미있었냐고 물었지만 세

영은 할 말이 없어 그냥 일어나 영화관을 나갔다.

정민은 그런 세영의 행동이 화가 단단히 나서 그러는 줄 알고 미안해 어쩔 줄 몰

라 했고 급히 쫒아 나가 달래야 겠다고 생각했다.


세영은 묵묵히 땅만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 정민은 그런 세영에 뒤를 몇발짝 뒤

에서 조용히 따르고 있었고 내심 어찌 달래야 하나 고민중 이었다.

세영이 여태 저런 심각한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인지라 정민은 무지 걱정됐다.

세영은 계속 땅만 보고 가다가 골목에서 술에 취해 몰려 나오는 일행과 부딛쳤다.

별로 세게 부딛친게 아니라 세영은 죄송하다고 말하고 계속 가던길을 가려했지만

부딛친 일행중에 하나가 시비를 걸어왔다.

“야! 사람 죽여 놓고 미안하다면 다야”

세영은 험한 인상을 써가며 윽박 지르는 바람에 잔뜩 겁먹은 얼굴로 움추러 들어

말을 못하고 있었다.

“뭘 그렇게 빤히 쳐다봐 … 씨 … 내가 너한테 지금 술주정 하는거 같애”

정민은 갑작스런 소동에 당황하며 소리를 지르는 남자 앞으로 달려가 정말 죄송

하다는 이야기를 대신했다.

“넌 또 뭐야 … 어 둘이 사귀냐 … 대갈빡에 피두 안마른 것들이”

술에 취한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정민에 머리를 쥐어 박았다.

정민은 여태껏 누구에게도 머리를 쥐어박혀 본적이 없었으므로 상당히 불쾌했고

쥐어박힌 자리를 한손으로 감싸고 술취한 남자를 쳐다봤다.

“어쭈 네가 쳐다보면 어쩔거야”

그 남자는 다시한번 정민을 쥐어 박으려 했지만 다행히 일행중에 한명이 뜯어 말

리는 바람에 헛손질만 하게 되었고 그래서 더 약이 올랐던지 발길질을 해가며 욕

을 퍼부었다.

정민은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느꼈는지 세영의 팔목 잡고 가자고 하였고 세영은

머뭇했다고 바로 정민을 따라 갔다.

그러고 몇 발짝을 걸었을까 갑자기 정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를 그대로 맞은

듯한 번쩍거림이 왼쪽 머리에 작렬했고 일순 아찔한게 귀가 멍해졌다.

그 순간이 매우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민에겐 꽤 길게 느껴졌고 정민의 눈앞에 빈

소주병이 떨어지며 깨지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정신이 들자 머리에 바람 구멍이라도 생긴듯 시원함이 느껴졌고 빗물은 아닌 것

같은데 왼쪽 머리를 흥건히 적시며 떨어지는 무슨 물 같은게 느껴졌다.

정민은 술 취한 남자가 빈병을 던졌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때까지 정민의 오른편에 서있던 세영은 뭔일인가 싶어 눈이 동그래져 있다가

정민이 완전히 돌아서자 머리에서 물이 쏟아지듯 넘치는 피를 보곤 비명을 질렀다.

정민은 세영이 지르는 비명소릴 듣고서야 자신의 왼쪽 머리를 만져 보았고 손바닥

을 보고서야 피가 흐르고 있었음을 알게되었다.

정민은 붉게 물든 자신의 손바닥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아까의 그 남자

가 정민의 앞으로 덤벼들었고 정민은 그런 남자의 턱을 뒤돌려 차기로 완전히 돌

아가 버리게 했다.

남자는 그자리에서 한바퀴 획 돌면서 넘어가 버렸고 숨이라도 끊어진듯 미동조차

하지 않은채 대자로 누워 버렸다.

술취한 남자의 일행과 세영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모두가 그렇게 누워버린 남자를 바라보면 멍하게 있다가 일행중 한명이 나서서 누

워 있는 남자를 흔들어 깨우려 하면서부터 다시 소란이 일었다.

남은 일행은 네명이었는데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일제히 정민을 덥치기 시작했다.

정민은 그럼에도 별로 두려운 기색이 보이질 않았다. 오히려 눈빛이 빛을 발하듯

번뜩인다 싶더니 마주 달려가며 주먹을 뻗어 제일 가운데 있던 사람을 쓰러 넘어

뜨리고 막바로 그사람의 왼편에 있던 사람을 팔꿈치로 명치를 쩍어 꼬꾸라지게 하

고는 남은 두사람이 주츰 할 때 틈을주지 않고 한사람의 턱을 걷어 올리친 뒤 연

속으로 다리를 들어올린 채 뛰어올라 남은 한사람의 어깨를 찍어 내리며 가슴을

걷어 차 버렸다.

순식간에 네명은 바닥에 널부러져 신음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너무도 순식

간이라 세영은 어안이 벙벙했고 그건 누운 남자를 흔들어 깨우고 있던 남자도 마

찬 가지였다.

정민은 흐르는 피를 한손으로 막으며 다시 세영의 손목을 잡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젠 누구도 그런 정민을 막으려 들지 않았고 그럴 수 도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말없이 걸었다. 정민은 아무생각 없이 그저 걷기만 했고 그런 정민

에게 손목을 붙들린 채 걷고 있는 세영은 더욱 더 아무생각이 들지 않았다.

얼마를 걸었을까 정민이 걷고 있는 방향의 앞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약국이 있

었고 지금 막 문을 닫으려고 하는지 약사로 보이는 듯한 아주머니 셔터 문을 내리

려고 까치 발을 하는 모습이 세영의 눈에 들어왔다.

세영은 그제서야 제정신이 들은 듯 정민의 손을 뿌리치고 약국으로 달려갔다.

정민은 세영이 자신의 손에서 벗어나 뛰쳐 나가자 그자리에 멈춰섰다.

세영과 약국 아줌마가 실랑이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한동안 실랑이하

다 약국 아줌마와 세영이가 약국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정민은 머리가 욱신하는

게 아파오기 시작했다.

길가는 사람은 그런 정민이 마치 괴물처럼 보였는지 두려운 눈으로 힐끔 거리며

멀찍히 피해 다녔다.

그도 그럴 것이 정민은 자신이 흘린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갑자기 그런 사람들에 눈을 피해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민은 잠시 두

리번 거리다가 때마침 길가에 서있는 빈 택시를 보고는 무작정 달려가 뒷자리에

타 버리곤 역삼동으로 가자고 했다.

기사는 차안이 어둡고 정민이 뒷자리에 탔으므로 정민에 몰골이 어떤지 잘알지 못

했는지 순순치 차를 출발 시켰고 그후 약국에서 나온 세영은 없어진 정민을 찾으

려고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정민은 힘겹게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관악산도 뛰다 싶이 오르는 정민에게 평소

늘 오르내리던 이 계단은 아무것도 아닐텐데 지금 이순간에 무지 버겁게 느껴졌다.

4층 마지막 계단을 올랐을 때 정민의 다리는 완전히 풀려 후둘거리고 있었다.

정민은 갑자기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고 누군가 옆에 있어주길 바라는 심정이 되어

주위를 두리번 거렸지만 아무도 없었고 택시를 타고오는 동안 계속 울어대던 핸드

폰 마저 잠잠해진게 더욱 공포심을 느끼게 했다.

정민은 자신의 원룸과 문을 마주하고 있는 정선생님의 원룸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정선생님은 아직 주무시고 있지 않았던지 바로 물어오셨지만 정민은 입을 열지 못

하고 다시 초인종만 눌렀다.

선생님은 다소 짜증 스러운 듯 묻다가 나중에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는지 문 가까

이서 계속 누구냐고 물었고 정민은 입을 떼고 말하려 했지만 입이 떨어지질 않아

답답함을 느꼈다.

정선생님 역시 답답하고 궁금했던지 안전고리를 풀지 않은채 문을 살짝열고 누군

가 엿보려고 했고 그제서야 정민은 입을 열 수 있었다.

“저예요”

“어휴 … 진작 말하지 겁먹었잖아””

선생님께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렇게 이야기 했고 문을 다시 닫고 안전 고리를

푼 다음에 활짝 열어젖혔다.

문을 활짝 열었을 때 선생님은 여태까지 정민이 장난 친 줄 알고는 함빡 웃을을

머금고 있었지만 정민은 문이 다 열리는 순간 모든게 아득해지면서 선생님 가슴팍

으로 고목이 넘어가듯 쓰러져 버렸고 아득한 저편에 아련히 비명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의식을 잃어버렸다.


정민이 눈을 떠보니 자신이 여태껏 본적 없는 곳에 누워있음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주위를 확인하려 고개를 돌려보려 했지만 극심한 두통을 느끼며 그게 여의치 않다

는걸 느꼈다. 다시 가만히 눈을 감고 어찌된 일인지 생각해보았다.

세영과 영화를 보고나서의 일들을 쭉 훑어보니 여기사 선생님 집일거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고선 자신이 왜 의식을 잃었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별거 아닌 일로 의식을 잃었다는게 부끄러웠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께선 남자는 강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운동을 배웠고 꾸준히 자신을 단련 해왔으므로 정민

은 자신이 강한 남자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강하다는게 누구와 싸워 이긴것만

을 말하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민은 자신이 의식을 잃은게 병에 머리를 맞은 탓도 있지만 정신적으로 나약했기

때문이라고 단정지었다.

난생 처음 대련이 아닌 쌈박질을 해봤고 결과야 자신의 완승이었지만 누굴 잔인하

게 짓밟았다는 사실이 정민으로선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 충격으로 받아졌다.

그걸 강하게 극복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웠지만 다시는 이렇게 허무하게 무저지

지 않을거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문득 은은한 향기가 자신의 머리를 맑게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렵게 향기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거기엔 선생님이 잠들어 있었다.

정민을 옆으로 누워 바라보는 자세로 잠이 든 선생님에 얼굴은 걱정스러움이 베어

있엇고 정민은 괜한 걱정을 시켰다는 생각에 죄송스런 마음이 들었다.

정민은 선생님의 살내음인 듯한 향기를 좀더 가까이에서 느껴보고 싶은 충동을 느

끼며 힘겹게 얼굴을 선생님의 가슴쪽으로 가까이 했고 좀더 짙어진 향기가 너무도

상큼하게 느껴졌다.

정민은 별 생각없이 선생님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고 선생님은 잠결에 몸을 뒤척이

다 정민에 머리를 자신의 품에 보듬고는 계속 잤다.

정민은 선생님이 깨는 줄 알고 긴장했다가 쌔근 거리는 숨소리를 듣고선 안심을

했고 선생님의 은은하고도 상큼한 살내음에 취해 다시 잠이들기 시작했다.


정민은 선생님이 몸을 흔들고 이름을 부르며 깨울 때 눈이 떠졌다.

“정신드니? 괜찮어?”

“아 예 … 괜찮아요”

정민은 아직도 두통이 싹 가시지는 않았지만 애써 웃으며 그렇게 이야기 했다.

“더 자게 두려다가 밥은 먹어야 할 것 같아서 … 힘들면 조금 더 누워있어”

“아뇨 괜찮아요”

정민은 그러면서 상체를 일으키려 했지만 머리가 띵한게 쉽지 않아 인상이 찌푸려

졌고 그런 정민을 선생님께선 아직 안되겠다 싶었던지 가슴을 살짝 내리 누르며

좀더 누워 있으라고 했다.

정민은 어찌된 일인지 설명하려 했지만 선생님께선 이미 알고 계시다고 했다.

아침 일찍 세영에게 핸드폰이 와서 선생님이 받았는데 그간에 사정을 모두 이야기

해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좀더 잘 처신하지 그랬냐고 꾸중하는 듯한 표정을 장나

스레 지셨고 정민은 진지하게 죄송하게 되었다고 이야기 했다.

정선생님은 그런 정민에 머리를 가늘고 긴 손으로 쓸어 넘겨 주시면서 다음 부턴

조심하라고 말씀하셔다.

정민은 그러겠다고 대답을 하면서 선생님의 손이 참 따스하다고 느꼈다.

“참 … 식사해야지? … 뭘 먹나 반찬이 변변치 않은데 …”

선생님은 갑자기 일어서 싱크대로 향하시며 그렇게 말씀하셨다. 원룸인지라 주방

이 따로 없었으므로 거기서 거기였지만 정민은 선생님이 조금이라도 떨어져 버리

는게 아쉬웠다.

“뭐 해줄까 … 큰 건 기대하지 말구… 나두 자취 시작한지 얼마안되서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거든 … 그래도 김치찌개 정도는 끊이니까 잠시만 기다려 내가 환자를

위한 특별 김치찌개를 끊여 줄게”

선생님은 그러면서 다소 부산을 떨었다.

“저 그냥 안아만 주시면 안되요?”

정민의 뜻밖에 말에 당황 했던지 선생님은 고개를 획 돌려 놀란 눈으로 정민을 바

바 보았고 정민은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자신도 놀랬다.

선생님은 말없이 어이없는 듯한 표정으로 정민을 계속 쳐다봤고 정민은 자신의 말

실수를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걱정하며 얼굴이 벌게졌다.

정민은 선생님과 눈이 안마주치기 위해 눈동자를 어디에 둬야 하난 안절부절 못했

고 그런 정민에 모습을 바라보는 선생님은 어느새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정민이 부모없는 고아신세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아마도 정민이 안아

달라고 하는건 자신에게서 엄마의 정을 느꼈는지 모른다고 생각했고 아침에 잠이

깼을 때 정민을 자신의 품안에 안고 있었던 상황이 떠오르자 정민이 부모잃은 어

린 아이처럼 느껴져 애처로운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말없이 정민의 옆으로 들어와 머리를 자신의 가슴에 묻고는 포근하게 안

아 주었다. 정민은 내심 벼락 같은 호통이라도 치면서 자신을 야단 칠 줄 알았는

데 막상 선생님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안아주자 뜻모를 눈물이 흘렀다.

선생님은 정민의 작은 흐느낌을 느꼈고 가슴이 정민의 눈물로 촉촉해지자 좀더 정

민의 머리를 조여 안았다.


빅풋 - 06

 

2 Comments
토도사 2022.12.19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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