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야설

철가방과 음악선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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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부터 공부에 취미가 없었던 나는 부모님과 선생님의 기대를 충족시킨다는 것은
생각할 수 조차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시험때만 되면 공부한답시고 부모님께
독서실을 가야 된다는 거짓말을 하고 돈을 타내서는 모든 잡념(?)을 떨쳐버릴수
있는 구름과자를 사서 먹곤 하였다.
어쩌다 마음이 내켜 공부라도 할라치면 그놈의 웬수같은 책은 처음 인쇄될때부터
그랬는지 모든 글자가 제맘대로 춤추고 있는가하면 여러겹으로 겹쳐 있기가 일
쑤였고, 그럴때마다 나는 우리나라 참고서를 찍어내는 사장님들의 알량한 양심에
대고 욕을 퍼붓곤 하다가 죄없는 책위에다 물자욱만 남기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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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나는 교육청에서 치는 시험으로 이번 기말고사를 대치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서 - 물론 나랑은 별 상관은 없었지만 - 부모님께 공부하러 간답시고
돈을 타내설랑 내 가장 최고의 기호식품을 사다가 정말로 맛나게 피워대고 있었다.
"그놈 참 담배 한번 맛깔스레 피는구만 그래."

갑작스런 인기척에 나는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여느 불량학생들과는 달
리 대로변에서 담배를 피는 일은 없었는데 그것은 그래도 내 양심에 학생으로서의
마땅한 도리가 아닌 처신을 할 때에는 최소한 자랑하듯 내놓고 하는 거만함을 부려서
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우리 학교 뒷편 경마장에 올라가 담배를 피곤 했는데,
그곳은 우리 학교 학생들 - 학생이라고 보기엔 그 처신이 그에 합당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의 완벽한 비행장소 였다. 때문에 그곳에는 늘 담배꽁초와 소주병, 본드
묻은 비닐봉지들이 즐비했다. 그런 우리만의 장소에 우리 또래라고 보기에는 세월
의 깊이가 있는 목소리를 들었을때 내가 놀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학생이지?"
"네...."
어둠속에서다가오는 희미한 인영을 바라보며 대답하는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나도 한대 빌릴 수 있을까?"
"네..."
담배를 건네주며 산밑의 도로 가로등 불빛에 어슴프레 비치는 그 불청객의 모습을
난 그제서야 찬찬히 볼 수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에 짙은 눈썹, 떡 벌어진 어깨,
그러나 웬지 이상한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었을때 내 눈에 비친 것은 바로
서로 다른 그의 다리였다. 그는 절름발이였던 것이다. 동시에 또한가지 내 머리를
언뜻 스쳐 지나가는 것은 그의 모습이 웬지 낯익다는 것이었고, 얼마후에 나는
그가 바로 우리학교앞 철가방 아저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뭐하고 있었어?"
"아. 네...그저.. 공부가 잘 안되서.."
"그래? 공부는 잘 하남?"
"...."
"바람 쐬러 나왔나 보지? 그럼 내가 재미있는 야그 하나 해줄까?"
그날 내가 그로부터 들은 얘기는 당시만 해도 순진(?)했던 내겐 큰 충격을 주기에
충분한 얘기였으니, 그것은 바로 우리 음악 선생님에 관한 얘기였던 것이다.그것은
나에게 여자의 숨겨진 본능에 관해 첫눈을 뜨게 한 엄청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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