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담야설

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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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내에 계시는 신사 숙녀 여러분 잠시 주목을 해 주십시오”사회자가 마이크 앞에서 말을 하는데

앞에는 <경 구 성대 회갑연 축>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붙여져 있으나 일반적인 회갑연의 경우처럼

음식상이 없는 것을 두고 회갑연을 축하 해 주려고 온 손님들이 이상하다는 듯이 곳곳에서

수근 대고 있다가 사회자로 보이는 젊은이가 마이크를 잡고 말을 하자 일제히 시선이 그 곳으로 집중을 한다.

“오늘 제 친구인 구 범모 군의 부친 회갑연이라고 여러분들을 초대하였습니다, 그러나 범모 군의

모친인 한 성숙 여사께서 한 번 입는 드레스도 못 입어 본 것이 평생 한이 된다는 말씀을 평소에

아들인 범모 군에게 하셨든지 효자인 범모 군이 회갑연을 핑계로 만장하신 하객들을 모신 이 자리에서

어머님의 소원인 결혼식을 올려 드리기로 하였답니다. 이에 저는 두 어른의 결혼식 사회를 볼 박 성화입니다,

비록 모르시고 오셔서 황당한 마음이 생기더라도 두 분의 결혼식에 많은 축복을 주시길 간절하게 바라며

먼저 주례를 맡으신 범모 군의 대학 교수님이신 이 대수 교수님을 모시겠습니다.”하자 초로의 신사가 단상으로 올라온다.

나의 늦은 결혼식은 이렇게 시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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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 내 아내와의 일을 회고한다.

정말 까마득한 옛날의 이야기이다.

이북에서 홀로 월남을 하신 아버님은 남한에 피붙이라고는 하나 없었다.

그러다가 일정시대에 몰락을 하여 가족 없이 홀로 사는 엄마를 만나 결혼식도 안올리고 소위 요즘으로 말하는 동거생활을 하다가

먼저 나를 낳고 5년 후 여자 동생을 낳아 누구에게도 부럽지 않은 다복한 생활을 하였으나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던 해에 그만 불의의 사고로 두 분은 저세상으로 가 버리시고 말았다.

졸지에 가장이 되어버린 나는 학교에 다니는 것을 포기하고 신문팔이며 구두닦이 점원생활 등등을 전전하며 생활비와 여동생의 학비를 대기에 급급하였다.

그나마 하나 다행인 것은 아버님이 힘들게 장만을 해 둔 비록 초라하지만 집은 있었다.

요즘 그런 집은 아마 구하기 힘이 들 정도로 이상한 집이었습니다.

위치는 아주 좋아 큰길 옆에 있었으나 방 하나에 콧구멍만한 부엌 하나로 줄줄이 입구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세를 놓기 위하여 지은 전형적인 집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살아생전에는 부모님 한 칸 저 한 칸 그리고 동생이 나머지 한 칸을 사용하였으나 아침이고

점심이고 저녁이고 간에 식사를 하려면 여동생과 나는 콧구멍만한 부엌을 지나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부모님이 주무시는 방 앞의 그 콧구멍만한 부엌을 지나서 엄마아버지 방으로 가서 식사를 해야 하는 정말로 이상한 구조의 집이었습니다.

겨우 방이 세 개인 그 집에 방 두 개는 나와 동생이 하나씩 쓰고 나머지 하나는 세를 주었는데

매달 들어오는 그 돈도 우리의 생활비에 아주 큰 보탬이 된 것은 누가 생각을 하여도 자명한 일이었다.

나이 스물이면 군대에 입대를 해야 하였기에 군에 복무를 하는 동안 동생이 혼자서 학교도 다니고

생활도 하여야 하였기에 군대에 가기 전에 그 비용을 저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아침 한 끼는

동생하고 같이 먹고 점심은 운이 좋으면 먹고 아니면 걸러야 하였고 저녁이면 동생에게는 밖에서 먹었다고 하고는

주린 배를 움켜잡고 배가 고파서 안 오는 잠을 억지로 청하며 살아야 하였고 그 덕에 내가 군대에 입대를 할 즈음에는

배부르고 넉넉하게는 쓸 형편은 아니지만 군대에 입대를 하였을 때 여동생이 계속 공부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저축은 하였다.

동생을 혼자 집에 두고 하는 군대생활은 정말로 지루하고 긴 세월이었다.

내 나이 23살에 제대를 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여동생 나이 18살이었다.

난 다시 힘들게 사회생활을 하여야 하였다.

하나뿐인 나의 유일한 피붙이 여동생만은 고생을 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공장에서 일을 하였다.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이 있듯이 내가 일을 하던 공장 사장이 3달치 월급을 안주고

차일피일 미루더니 급기야는 야반도주를 하고 말자 정말 앞이 막막한 것이 살 의욕이 안 났다.

그 날도 그랬다.

월급을 때어먹고 달아난 사장을 찾으려고 온종일 발품을 팔다가 늦게 서야 우리 집 부근에 온 나는 주머니에 있던

몇 푼으로 단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었던 술을 마시고 만취가 되어 집으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게 왔었다.

“오빠, 간밤에 무슨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셨어? 자 일어나 콩나물국으로 몸이나 풀어”아침에 동생이 날 일으키며 말하였다.

“성숙아 미안하다, 흑흑흑, 이제 우리 어떻게 살아야 하니?”정말로 눈물이 났다.

“오빠 산 입에 풀칠이야 어찌 못 하겠어? 나도 학교 그만두고 돈 벌래”하였다.

“아니야 넌 무조건 학교에 다녀야 해”하자

“오빠 고마워”하며 동생이 내 얼굴을 두 팔로 감고 가슴에 안았다.

“.................”놀랍게도 동생의 품에서 여자의 향기가 느껴졌다.

“난 오빠하고 영원히 함께 살 거야”동생은 내 그런 마음도 모르고 더 힘주어 끌어안았다.

“..................”어리다고 생각을 하였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 얼굴에는 뭉클한 동생의 젖가슴 탄력이 그대로 느껴졌다.

“오빠, 오빠 너무 힘드니까 내 방도 세 주고 한 방에 같이 지내자, 응”여동생은 내 마음도 모르고 뜻밖의 제안을 하였다.

“성숙아 그건 아니다, 남들 보는 눈도 있다”난 놀라며 동생을 밀쳤다.

동생을 밀치지 않고 계속 그렇게 있으면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나 자신도 예측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더구나 남이라면 몰라도 한 뱃속에서 나온 여동생이 아닙니까.

“아냐, 난 평생 오빠하고 같이 살 거야”동생은 강한 어조로 말하였습니다.

“성숙이 네가 크면 오빠 마음을 알 거야”하고 그 자리를 피하였습니다.

그 후로 저는 여동생의 접근을 조심하며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하여 노력을 하였습니다.

요즘이야 3D업종이니 뭐니 하며 험하고 궂은 일 그리고 더러운 일을 피하였지만 당시에는 아무리 험하고 궂은일이며

더러운 일이라도 일을 할 자리만 나면 수 십 명 아기 수 백 명이 그 일자리를 얻기 위하여 갖은 수단을 다 써야하였는데

이 세상에서 피붙이라고는 고작 여동생 하나 뿐인 저를 환영하며 일자리를 주는 곳은 아무리 찾아도 없었습니다.

제가 길거리를 방황하며 일자리를 찾으려고 돌아다니는 시간은 점점 길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도 밤늦게 일자리를 구하려고 돌아다니다 집으로 왔습니다.

“오빠 왔어?”동생 방에 불이 켜져 있어야 하였는데 이상하게 동생 방은 불이 꺼져있고 제 방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어서 이상한 생각이 들어 부엌을 지나 방문을 열자 여동생이 환하게 웃으며 저를 반겼습니다.

“성숙아 네 방에 안 있고”하고 말하자

“응, 오빠 내 방 세놓았어, 이제 나 오빠 방에서 잘 거야”하지 뭡니까.

“아니 어떻게 네 마음대로 세를 놨니, 응”하고 언성을 높이자

“오빠 일자리 못 구해 힘들어 하는데 어떻게 편하게 지네”여동생은 오히려 저에게 핀잔을 주었습니다.

무능한 오빠를 둔 탓에 동생을 힘들게 한다는 생각을 하자 우리 남매를 두고 일찍 저세상으로 가신 부모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 날부터 방 가운데에 커튼을 치고 윗목에는 제가 자고 아랫목에는 여동생이 잤습니다.

정말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생활이 시작이 되었었습니다.

잠결에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 동생이 자는 곳을 지나가려면 잠버릇이 안 좋아 이불을 걷어차고 자는

여동생의 모습을 보면 이상하게 여동생이 여동생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보여 정말로 힘이 들었습니다.

안 되겠다고 생각을 한 저는 동생과 자리를 바꾸었습니다.

제 입장으로는 한결 편하였습니다.

여동생도 좋아하였습니다.

그런데 겨울이 닥치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요즘이야 기름보일러나 가스보일러를 사용하기에 온 방이 골고루 따뜻하지만 당시에 연탄보일러는 연탄에 화력이 좋으면

아랫목을 따뜻하지만 윗목은 거의 냉골에 가까워 이불을 여러 겹을 덮어도 추위를 피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오빠라는 놈은 아랫목에서 따뜻하게 자고 동생은 윗목에서 덜덜 떨면서 자게 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짓이 아니었습니다.

생각 끝에 가로로 쳐 진 커튼을 세로로 쳤습니다.

그렇게 하자 동생과 나는 발 부분만 추위를 피할 수가 있었으나 상체는 덜덜 떨면서 자야 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전 일자리를 못 구하고 길거리를 전전하며 일자리 찾기에 동분서주를 하여야 하였습니다.

“아니 커튼은?”그 날 역시 밤늦게 소주 한 병을 사 들고 집으로 왔는데 당연히 있어야 할 동생과 나의 경계선인

커튼이 없었고 부모님이 쓰시던 넓은 이부자리가 아랫목에 깔려있어 놀라며 여동생에게 물었더니

“응, 이제 오빠하고 같이 잘레"여동생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하더니

“저녁은?”하기에

“...............”아무 말을 못 하고 주머니에서 소주병을 꺼내자

“또, 술”하며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구하려는 일자리는 없지 느는 것이 술이었습니다.

“미안하다 성숙아”하며 병마개를 이빨로 따자

“오빠 기다려 김치라도 가져다줄게”하며 잠옷 차림으로 나갔습니다.

“..................”전 부엌으로 가는 여동생의 엉덩이를 봤습니다.

여동생의 엉덩이가 아니라 다 큰 처녀의 엉덩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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