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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처럼 불공정한 스포츠가 있을까요?[박준용 인앤아웃 In 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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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중 폭염으로 돔 지붕을 닫고 있는 로드레이버 아레나. 게티이미지코리아
호주오픈에서 폭염에 따른 선수 보호 규정에 따라 돔 구장 지붕을 닫고 경기를 진행한다는 로드레이버 아레나의 전광판 안내문. 게티이미지코리아

시즌 첫 그랜드슬램 호주오픈이 둘째 주를 맞이하면서 어느덧 대회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필자는 테니스를 수년간 취재하면서 테니스가 정말 불공정한 스포츠라고 생각해 왔는데 지난 한 주의 호주오픈을 보며 그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테니스는 흔히 ‘신사의 스포츠’라고 불리지만 그 이면에는 철저한 자본 논리와 랭킹에 따른 차별이 존재합니다. 특히, 실력만큼이나 환경의 격차가 승패를 가르는 ‘불공정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선수가 평등한 규칙 아래 경기를 치르지만 그 경기가 열리는 장소는 절대 평등하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야닉 신네르(이탈리아, 2위)입니다. 지난 24일에 열렸던 엘리엇 스피지리(미국, 85위)와의 32강에서 신네르는 톱랭커로서의 혜택을 톡톡히 누렸습니다.

이날 멜버른의 온도는 37도까지 올라갈 정도로 무척 무더웠습니다. 이 때문인지 신네르는 세 번째 세트에서 오른쪽 다리 경련으로 거의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서브를 넣을 때 발을 전혀 떼지 못했고 상대의 공을 전혀 쫓아가지 못할 정도로 상태는 심각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세트 중간 폭염 규정으로 경기가 10분간 중단됐습니다. 이 규정은 섭씨 35도가 되면 실내 코트의 경우 지붕을 닫아야 하고 실외 코트는 경기를 중단하는 내용으로 올해 신설됐습니다.

이 규정 덕분에 신네르는 10분간 휴식을 취할 수 있었고 경기가 열린 로드 레이버 아레나의 지붕은 닫혔습니다. 여기에 에어컨까지 가동됐습니다. 경기가 재개되자 신네르는 거짓말처럼 살아나면서 역전승을 거두고 16강 진출을 확정지었습니다.

반면, 지붕이 없는 야외 코트에서 경기하는 선수들은 휴식 시간이 끝난 후 또다시 땡볕 아래서 경기를 해야 했습니다. 말이 37도이지 하드코트 위에서 느끼는 체감온도는 더했을 겁니다.

호주오픈 경기장 중 지붕이 설치된 코트는 센터코트 로드 레이버 아레나를 비롯해 마가렛 코트 아레나, 존 케인 아레나 세 곳 뿐입니다. 이들 코트에는 세계랭킹이 높거나 호주 자국 선수 등 주로 흥행 중심으로 선수들의 경기가 배정됩니다.

그러다 보니 비가 내리거나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때 톱랭커들은 걱정이 없습니다. 그들은 항상 개폐식 지붕이 있는 센터코트에서 경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실내 환경은 바람 등 변수가 많은 야외 코트보다 훨씬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장합니다.

톱랭커들이 지붕 아래서 경기를 마치고 휴식을 취할 때 하위 랭커들은 경기가 중단되어 하염없이 대기하거나 투어대회의 경우 다음 날 ‘더블 헤더(하루 두 경기)’를 치러야 하는 체력적 불이익을 얻습니다. 지붕이 없는 야외 코트에서 경기하는 하위 랭커 선수들은 신네르처럼 지붕이 닫힌 코트에서 경기하는 호사(?)를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부전승(Bye)’ 역시 대표적인 불공정한 사례 중 하나입니다. 그랜드슬램에는 없지만 투어대회에서 시드를 받은 선수들에게 1회전을 치르지 않고 2회전에 직행할 수 있는 ‘Bye’라는 엄청난 혜택이 주어집니다.

‘Bye’를 받지 못한 하위 랭커들은 1회전에서 체력을 소진할 때 톱랭커들은 컨디션을 관리합니다. 대회 후반부로 갈수록 한 경기를 덜 치른 톱랭커의 체력은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불공정한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더위로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는 등 고전한 신네르. 게티이미지코리아

테니스의 불공정함은 역설적으로 이 스포츠가 얼마나 철저한 ‘승자독식’ 구조인지를 보여줍니다. 랭킹이 높아야 좋은 코트에서 뛰고, 좋은 코트에서 뛰어야 승률이 높아지며, 승률이 높아야 더 많은 상금을 챙기는 이 순환 고리는 하위 랭커들에게 넘기 힘든 벽입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본다면 신네르가 누린 지붕과 에어컨 바람은 단순히 운이 좋아서 주어진 행운이 아닙니다. 살인적인 폭염과 무명의 설움을 이겨내고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 낸 승자만이 쟁취할 수 있는 ‘전리품’에 가깝습니다.

하위 랭커들이 이 불공정한 굴레를 벗어날 방법은 단 하나뿐입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야외 코트에서 살아남아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고 언젠가 로드 레이버 아레나의 지붕을 닫게 만드는 톱랭커의 자리에 오르는 것입니다.

테니스는 절대 평등한 스포츠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 불공정한 특권을 누릴 자격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오직 실력만이 결정합니다. 지붕이 닫힌 코트에서 경기하는 전리품을 얻고 싶다면 그 지붕 아래 설 자격을 스스로 증명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박준용 테니스 칼럼니스트(loveis5517@naver.com), ENA 스포츠 테니스 해설위원, 아레테컴퍼니(주) 대표>

원문: 바로가기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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