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판도를 좌지우지하는 ‘슈퍼 에이전트’의 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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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토도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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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김형준 SPOTV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스콧 보라스(76)는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MLB)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슈퍼 에이전트다. 메이저리거의 꿈을 접고 마이너리그 선수로 은퇴한 보라스는 대학에서 화학과 약학을 전공했으며, 로스쿨 졸업 후 의료 소송 전문 변호사가 됐다. 보라스는 마이너 선수 시절 동료의 요청에 따라 1980년 스포츠 에이전트의 세계에 뛰어들었고, 45년이 지난 지금은 1500명이 넘는 프로와 아마추어 선수를 거느리고 있다.
메이저리그 최초의 1억 달러 계약(1999년 케빈 브라운), 최초의 2억 달러 계약(2001년 알렉스 로드리게스), 프로 스포츠 역대 신기록이 된 후안 소토(뉴욕 메츠)의 7억6500만 달러 같은 역사적인 계약들이 보라스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2022년 시즌 후 보라스는 자신의 고객들에게 12억 달러를 안겨 에이전트 역대 신기록을 세웠다. 에이전트는 계약 총액의 5%를 가져가기 때문에 보라스의 몫은 6000만 달러(788억원)였다. 보라스가 관리 중인 계약은 49억 달러에 달하며, 이는 보스턴 레드삭스 구단 전체의 가치와 맞먹는다. 순자산은 5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보라스는 메이저리그에서 커미셔너(롭 맨프레드) 다음으로 중요한 존재가 됐고, 선수노조를 조종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보라스 존재 가치, 커미셔너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겨져
보라스가 시장을 지배하는 방식은 이렇다. 보라스는 좋은 떡잎으로 보이는 아마추어 선수들을 빠르게 선점한다. 드래프트에서 뽑는 선수들조차 보라스와 협상해야 하니, 구단들은 보라스와 관계가 껄끄러우면 곤란하다. 규모의 경제가 통하다 보니, 고객들에게 좋은 훈련 시설과 코칭을 제공하고, 선수들은 가치를 높여 더 좋은 계약을 따낸다.
메이저리그 자유계약(FA) 시장은 철저하게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된다. 최대어가 먼저 계약하고 그다음으로 좋은 선수가 계약하는 식이다. 그런데 보라스는 선수를 워낙 많이 거느리고 있다 보니, 계약의 흐름까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지난해 겨울 뉴욕 양키스는 후안 소토가 최우선 목표였고, 실패하면 블레이크 스넬을 잡을 계획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소토 계약 완료 후 스넬의 시장이 열려야 했다. 하지만 보라스는 LA 다저스가 스넬에게 좋은 제안을 하자 양키스에게 스넬을 먼저 결정하라고 재촉했다. 소토에게 집중하고 있던 양키스는 스넬에게 줄 제안을 만들 수 없었다. 결국 스넬은 다저스와 계약했고, 양키스는 소토와도 계약하지 못했다.
보라스에게 점점 더 힘이 실리는 이유는 성과가 좋다 보니, 선수들이 FA를 앞두고 보라스에게 오는 일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타임 6년을 채운 후 얻는 FA 계약은 선수와 에이전트가 함께 지은 농사라고 할 수 있는데, 보라스가 수확을 워낙 잘하다 보니 함께 길러온 열매를 나누는 쪽은 보라스가 된다.
보라스는 한국 선수들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박찬호는 2001년 FA를 앞두고 에이전트를 보라스로 교체했다. 박찬호는 그해 훌륭한 성적을 냈지만, 허리 부상으로 몸이 정상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보라스는 박찬호가 텍사스와 5년 6500만 달러 계약을 맺게 했다. 박찬호는 부상 후유증으로 크게 고전했고, 한동안 메이저리그는 투수 5년 계약이 나타나지 않았다.
역시 보라스로 에이전트를 갈아탄 추신수는 2013년 뛰어난 시즌을 보내고 FA가 됐지만, 많은 나이와 올스타 경력이 없는 것이 약점이었다. 그러나 추신수는 텍사스와 7년 1억3000만 달러 계약을 맺어, 올스타 경력 없이 1억 달러 계약을 맺은 최초의 선수가 됐다.
류현진과 보라스는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다. 보라스는 협상 테이블의 갈등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데, 가끔은 압박감을 버티지 못한 선수가 먼저 백기를 든다. 하지만 배짱이 보라스만큼 두둑한 류현진은 다저스와의 포스팅 협상 때 계약 마감시한이 30초 남을 때까지 버텨 마이너 거부권을 최초로 받아냈다.
류현진은 2018년 시즌 후 FA가 될 예정이었다. 다저스는 류현진이 떠날 거라고 생각해 선수들이 잘 받지 않는 1년 연장 계약(퀄리파잉 오퍼)을 제시했다. 하지만 류현진과 보라스는 시장을 냉철하게 보고 받아들였다. 부상으로 시즌의 절반을 놓쳤기 때문에 'FA 한 해 재수'가 맞다고 판단했다. 이는 적중했다. 이듬해 류현진은 ERA 1위와 사이영상 2위에 오르는 대활약을 펼쳤고, 그 결과 4년 8000만 달러라는 대박 계약을 토론토와 맺었다.
처음부터 보라스와 계약하고 메이저리그 도전에 나선 이정후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6년 1억1300만 달러 계약으로 일본 선수들을 제치고 아시아 타자 최초의 1억 달러 계약 선수가 됐다. 샌프란시스코가 보라스에게 당했다는 평가가 있었고, 결국 계약을 주도한 사장은 한 시즌 만에 해임됐다.

순간순간 허를 찌르는 특유의 '벼랑 끝 전략' 주효
이번에 보라스와 한배를 타고 있는 선수는 김하성이다. 김하성은 FA가 되기 직전에 어깨 부상을 당했지만, 보라스는 버티고 버텨 좋은 계약을 가져다줬다. 부상에서 언제 돌아오는지와 관계없이 올해는 무조건 1300만 달러를 보장하고, 내년에도 계속 뛰면서 1600만 달러를 받을지 아니면 팀을 떠날지는 선수가 결정하는 '2년 2900만 달러' 계약을, 그것도 돈을 가장 안 쓰는 팀 중 하나인 탬파베이로부터 받아냈다. 보라스가 아니고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최고 조건의 계약이었다.
보라스와 김하성은 한 번 더 놀라운 선택을 했다. 김하성은 올시즌 어깨 수술에서 회복이 더뎌 늦게 돌아와 24경기밖에 뛰지 못했고 성적도 좋지 않았다. 때문에 내년에 1600만 달러를 받으면서 재수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1600만 달러를 포기하고 과감히 FA 시장에 뛰어들었다.
시장에 유격수 자원이 많지 않다는 점, 5년마다 맺는 노사협약으로 인해 내년 시장이 나빠질 수 있다는 점,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다년 계약을 시도하는 게 낫다는 점이 고려됐다. 하지만 상황은 쉽지 않다.
보라스가 믿은 것 중 하나는 시즌 중 김하성을 탬파베이에서 데려갔던 애틀랜타는 유격수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반드시 붙잡을 거라는 예상이었다. 하지만 애틀랜타는 김하성이 FA를 택하자 휴스턴에서 마우리시오 두본을 데려와 유격수 공백을 메웠다. FA 시장에 유격수는 적지만, 트레이드 시장에 나온 유격수는 적지 않다.
보라스의 핵심 전략은 서둘러 계약하지 않고 버티고 버티면, 간절한 팀이 틀림없이 나타난다는 소위 '벼랑 끝 전략'이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통했고, 사활이 걸린 대마는 한 번도 잡힌 적이 없다. 하지만 김하성은 아직 대마급이 아니다. 또 지금껏 보라스가 무리하게 밀어붙였다가 실패한 경우는 대부분 김하성급 선수들이었다. 보라스의 판단이 이번에도 적중할지, 거기에 김하성의 내년 시즌 운명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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